이한구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위원장

이한구(63)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위원장은 직선적이다. 아무리 예민한 문제라도 눈치를 보거나 에둘러 말하는 법이 없다. 소신에 어긋날 때는 청와대나 정부에도 거침없는 비판을 쏟아내 ‘한나라당의 Mr. 쓴소리’라는 닉네임도 얻었다. 그러면서도 그는 항상 정곡을 찌른다. 정부와 민간 기업, 정치권을 모두 경험하고 당내 정책 사령탑인 정책위 의장을 두 번이나 역임한데서 오는 저력이다.여당 내 최고의 경제 전문가로 꼽히는 이 위원장은 최근 밀어닥친 미국발 금융 위기에 대해 “굉장히 어려운 상황이 당분간 이어질 것”이라며 “언 발에 오줌 누기 식의 섣부른 처방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유독 우리나라 환율이 크게 뛴 것은 지난 10년간 국제 경쟁력 강화를 소홀히 한 결과가 나타난 것”이라며 “이번 위기를 국가 전반의 생산성을 끌어올리는 계기로 만들어야 한다”고 주문했다. 지난 10월 8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이 위원장을 만났다.대외 여건이 요동치고 있어 정부로서는 거기에 맞춰 따라가기도 벅찬 상황입니다. 이럴 때일수록 너도나도 중구난방으로 나서서는 안 되지요. 이번에는 문제가 굉장히 복잡하게 얽혀 있기 때문에 전문가들의 의견을 들어 정책을 내놓아야 해요. 힘 있는 자리에 있다고 무조건 ‘계급장’ 앞세우며 자꾸 나서면 오히려 큰 사고를 낼 수 있어요.1997년이나 지금이나 문제의 성격은 똑같아요. 당시도 한국 경제의 펀더멘털은 좋다고 했지요. 그러다 불이 붙고 난 뒤에야 소위 환 투기 세력을 혼내겠다고 하다가 ‘총알’ 다 날리고 결국 항복했던 겁니다. 이번에도 정부가 걸핏하면 투기 세력 운운하는 것 자체가 좋은 징조는 아니에요. 시장이 투기할만하면 보통 사람도 투기에 참여하고, 반대로 시장이 안정돼 있으면 투기꾼도 가만히 있는 것 아닌가요. 문제의 핵심은 딴 데 있는 거죠. 우리나라의 크레디트 디폴트 스와프(CDS)나 외평채 가산 금리가 외환위기 이후 최고 수준으로 뛰었어요. 우리에게 돈을 빌려주는 외국 금융 회사들이 우리를 그만큼 위험하게 보고 있다는 뜻입니다. 이들의 평가가 잘못됐다고 불평할 수는 있지만, 왜 그런 평가를 하는지 깊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어요.먼저 한국 경제가 구조적으로 약해져 있기 때문이지요. 지난 10년간 국가 경쟁력을 강화하는 노력을 소홀해 해 온 결과가 지금 나타나고 있는 겁니다. 증권시장도 외국 자본을 잔뜩 끌어오긴 했지만 그들에게 신뢰를 주는 정책을 펴지 못했어요. 그러니 위험하다 싶으면 단물만 빨아먹고 나가버리죠. 외환시장도 외화를 조달하는 다양한 기법이 있는데 그동안 다변화에 소홀하다 외통수에 걸려든 격이에요.외환시장 개입은 굉장히 예외적인 조치가 돼야 합니다. 우리나라처럼 거칠게 공개적으로 하는 나라는 없어요. 외환시장 개입은 꼭 필요할 때 적절한 방식으로 이뤄져야 하고 일단 개입하면 반드시 효과를 보는 모습을 보여줘야 해요. 그런 점에서 정부는 몇 차례 실패했어요. 그러니 투기꾼들은 정부를 우습게보고 일반인은 불안감을 갖게 됐지요. 초기에는 그래도 비교적 환율 변동 폭이 작았지만 당국의 노골적 개입 이후 오히려 상승 폭이 더 가팔라지고 있어요. 이건 ‘더 이상 못 믿겠으니 나라도 살아야겠다’는 피난민 심리가 작용한 겁니다.초기에 경제 정책의 컨트롤 타워도 없고 작전 개념도 없다는 이미지를 준 게 사실입니다. 앞으로 경제 문제는 (부총리 자리를 부활해) 부총리 체제로 가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요. 또 하나는 장관들이 제대로 일할 수 있도록 인사권을 줘야 한다는 겁니다. 기업에서도 최고경영자(CEO)에게 모든 권한을 주지 않습니까. 그래야 전체 조직을 장악하고 제대로 실력을 발휘할 수 있어요. 지금처럼 인사권을 한군데서 틀어쥐고 있으면 나머지는 지나가는 과객처럼 남의 일하듯이 하게 돼요. 장차관이 공무원 조직을 컨트롤할 수 있어야 하는데 오히려 그냥 얹혀 있는 식이 됐어요. 정권이 바뀌어도 비슷한 정책이 계속 나오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지요.지난 10년 동안 세계 경제는 거품 속에 있었어요. 그게 미국에서 먼저 터지고 금융 시스템을 타고 유럽으로 옮겨 붙은 겁니다. 또 한편으로는 미국 내에서 실물경제로 위기가 확산되고 있어요. 거대한 미국 수출 시장이 막히는 거지요. 중국의 대미 수출이 줄면 우리나라의 대중국 수출도 줄게 됩니다. 거기에 대미 수출까지 막히는 거죠. 한국 경제의 유일한 버팀목이던 수출이 무너지게 되는 겁니다. 또 국내에서도 그동안 끼었던 거품이 빠질 수밖에 없어요. 부동산 시장은 지금보다 한 단계 더 심각한 상황에 빠질 겁니다. 조만간 저축은행, 건설 업체, 은행으로 문제가 이어질 거예요. 수출이 안 돼 대기업도 어려워지고 자산시장도 엉망이 되고 소비도 줄고 투자도 줄고. 위기는 이제부터 시작인 것이죠.어려우니까 여러 요구가 다 쏟아집니다. 금리 인하하라, 재정 지출 확대하라, 부동산 경기 부양하라. 하지만 그건 좋은 방식이 아닙니다. 지난 10년간 그런 식으로 하다 국제 경쟁력을 갖추지 못하고 또 이런 일을 당하는 거예요. 한마디로 ‘언 발의 오줌 누기’가 될 뿐이죠. 옛날에 전방에서 보초 서 본 경험이 있는 사람들은 이게 무슨 의미인지 잘 압니다. 혹독한 추위에 발이 너무 시리니까 발등에 오줌을 눕니다. 그러면 당장은 발이 따뜻해지지만 얼만 안 돼 발이 얼어붙고 말아요. 바보짓이지만 사람의 마음이 그런 거죠. 그런 유혹을 견뎌야 해요. 기존의 처방을 쓰면 어떻게든 당장은 넘어가겠지만 두고두고 후유증을 부담해야 해요. 물가 뛰고, 금리 오르고, 빚은 늘고. 그런 상황에서는 경제가 제대로 돌아갈 수 없어요.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잔뜩 얼어붙어 있는 부동산 시장을 움직이도록 해줘야 합니다. 이건 돈을 대주는 부양 정책과는 분명히 다른 거죠. 자기가 산 것은 자기가 분명하게 책임을 져야 합니다. 하지만 일단 급한 사람은 팔고 나갈 수 있도록 거래가 이뤄져야 한다는 겁니다. 집을 여러 채 갖고 있는 사람이나 고가 주택을 갖고 있는 사람을 죄인 취급해서는 안 됩니다. 가지고 있는 집을 빨리 팔아서 그 돈으로 빚을 갚게 하는 게 경제 전체로는 더 도움이 되죠. 수도권이 어렵다면 지방이라도 우선 양도세 중과세 같은 걸 없애거나 더 낮춰 거래가 활발하게 이뤄지게 해야 합니다. 종부세 문제는 사실 천천히 처리해도 됩니다. 오히려 경제 활성화 차원에서 기업이나 중산층과 관련된 감세 정책을 신속하게 시행할 필요가 있어요.물론이지요. 국제 경쟁력을 키우려면 규제 완화와 작은 정부는 불가피한 선택입니다. 미국 금융 위기는 금융 완화의 문제예요. 그동안 통화 공급을 엄청나게 해 온 겁니다. 보통 돈이 많이 풀리면 인플레이션이 발생하면서 브레이크가 걸리는 게 보통이지요. 하지만 이번에는 브레이크가 작동하지 않았어요. 중국과 인도가 값싼 상품으로 공급해 줘 십여 년 동안 인플레이션이 발생하지 않은 겁니다. 그러니 돈을 아무리 풀어도 물가가 오르지 않았고, 그 돈은 자산시장으로 흘러가 주식시장과 부동산 시장이 호황을 누린 것이죠. 그렇기 때문에 이번 사태는 규제 완화나 작은 정부와 아무 관계가 없습니다. 물론 위기가 터지면 항상 정부가 주도권을 쥐고 규제 강화에 나섭니다. 이게 더 위험한 거죠.쓴소리가 아니라 바른 소리라고 생각하지요. 정말 많은 고생 끝에 우파정권을 만들어 냈기 때문에 어떻게든 반드시 성공해야 해요. 실패하면 좌파정권으로 다시 넘어가게 됩니다. 그러면 나라가 망한다고 봅니다. 그런데 초기부터 이상한 정책이 나오고 한나라당이 국민에게 한 약속에 맞지 않는 것이 있어 그걸 지적한 것이죠. 그걸 두고 강만수 장관과 각을 세운다, MB에 도전한다고 하는데 말도 안 되는 얘기예요. 제가 쓸데없이 각을 세우거나 도전할 일이 뭐가 있어요. 보수정권이 유지돼야 우리나라가 선진국이 된다는 생각에서 나선 겁니다. 다른 생각은 없어요.1945년 경북 경주 출생. 69년 서울대 경영학과 졸업. 84년 미 캔자스주립대 경제학 박사. 69년 행정고시 합격(7회). 78년 재무부 이재과장. 84년 대우그룹 회장실 상무. 89년 대우경제연구소 소장. 2000년 제16대 국회의원. 2004년 제17대 국회의원. 2007년 한나라당 정책위의장. 2008년 제18대 국회의원(대구 수성갑).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위원장(현).장승규 기자 skjang@kbizwee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