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가 결혼했다’

이미 결혼한 여자가 다른 남자와 또 결혼한다. 그러니까 애인도 아니고 ‘아내가’ 이혼도 하지 않은 채 또 ‘결혼한다’. 일부일처제의 멱살을 잡고 흔드는 실로 발칙한 발상이다. 제2회 세계문학상을 수상한 박현욱 작가의 소설을 영화화한 ‘아내가 결혼했다’에서 사람들이 가장 기대하는 건 원작의 매력이기도 했던 그 도발성을 어떻게 요리했느냐가 아닐까.대한민국 평균치 남자에 가깝지만 때론 그보다 소심하고 사려 깊으며 축구, 특히 스페인 축구 클럽 레알 마드리드를 사랑하는 노덕훈(김주혁 분). 예쁘고 성격도 좋은데다 FC 바르셀로나의 열렬한 팬인 주인아(손예진 분). 레알 마드리드를 사랑하는 남자가 ‘바르샤(바르셀로나)’를 찬미하는 여자를 만난다. 구속이나 속박 따위는 안중에도 없는 자유분방한 인아에게 완전히 빠져든 그는 그녀를 모조리 소유하려는 심산으로 결혼을 조른다.삶에서 사랑이란 언제든 어느 방향에서든 불어올 수 있는 미풍 같은 것이라고 여기는 여자는 당신만을 사랑할 순 없다며 여러 차례 프러포즈를 거절하지만 그의 진심어린 사랑에 결국 결혼을 수락하고 만다. 달콤한 신혼생활에 빠져 있던 덕훈에게 어느 날 인아가 감히 입에도 담지 못할 욕망을 내비친다. 남자가 생겼다고 아니, 한술 더 떠서 당신과 헤어지지 않은 채 그와도 결혼하고 싶다고.이 영화는 덕훈의 시선이 중심이 되는 구성을 비롯해 몇몇 디테일을 제외하곤 원작의 뼈대를 훼손하지 않으려고 애쓴다. 하지만 내용의 유사함이 그 이야기가 서술되는 미묘한 방식이나 분위기까지 담보하지는 못한 것 같다. 소설상에서 생기로웠던 남녀의 수다, 특히 축구에 대한 애정 어린 언급과 해석들은 스크린으로 옮겨지면서 빛을 잃었고 아내의 또 다른 남편까지 수용하는 덕훈은 ‘찌질한’ 남자로 격하된 느낌이다.무엇보다 결혼 생활 자체를 평면적으로 다루기에, 평범하지 않아 매혹적이었던 인아라는 여성의 행보가 현실에 발붙이지 않아 이해 불가능한 투쟁으로 다가온다. FC 바르셀로나의 경기를 배경으로 한 마지막 장면은 스페인 누캄프 구장에서 직접 촬영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감독: 정윤수 / 출연: 김주혁, 손예진, 주상욱 / 분량: 119분 / 개봉: 10월 23일 / 등급: 18세 관람가이별 통보도 없이 떠나간 옛 애인이 남긴 흔적을 찾기 위해 도서관에 들러 책의 198쪽만을 찢어가는 준오(이동욱 분). 근래 연인과 이별한 뒤 허무함을 느끼던 은수(유진 분)는 그런 준오의 모습을 보고 그의 사연에 호기심을 품는다. 198쪽에 숨겨진 비밀을 찾는 일에 동참한 은수는 준오와 함께 옛 사랑을 반추하고, 두 사람은 서로에게서 새로운 사랑을 발견한다. ‘동감’ ‘화성으로 간 사나이’ ‘바보’의 김정권 감독이 윤성희 작가의 단편소설을 영화화했다.도쿄라는 키워드 아래 펼쳐지는 3인3색 옴니버스 영화. 봉준호의 ‘흔들리는 도쿄’는 히키코모리 남자가 피자 배달부에게 사랑을 느끼면서 세상 밖으로 나선다는 내용. 미셸 공드리의 ‘아키라와 히로코’는 외로움에 젖어 나무로 변해가는 여자를, 3편 중 가장 기괴하다고 할 만한 레오 카락스의 ‘오물’은 하수구에서 출몰한 정체불명의 광인을 주인공으로 내세웠다. 아오이 유, 가카와 데루유키, 후지다니 아야코, 카세 료, 드니 라방 등이 출연한다.동화 ‘인어공주’의 현대적인 변주. 바닷가 마을에 사는 소녀 알리사는 아빠의 얼굴을 모르지만 언젠가 그를 만날 것이라 굳게 믿고 있다. 어느 날 엄마가 다른 남자를 만나는 광경을 목격한 그녀는 집에 불을 지르고 누구도 기다리지 않으리라는 다짐과 함께 입을 닫는다. 갑자기 말을 하지 않는 알리사를, 엄마는 기막히게도 장애학교에 보내버린다. 안나 멜리키얀 감독은 이 영화로 베를린영화제 국제비평가협회상, 선댄스영화제 감독상 등을 수상했다.장미·씨네21 기자 rosa@cine21.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