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훈 르네상스’에 춤추는 집값

“SH(오세훈 시장)에게는 SH(SH공사)만 있고 HS(Housing Strategy:주택 전략)가 없다.”“반세기 넘게 중앙정부조차 하지 못한 서민 주거 정책의 가이드라인을 마련한 주거 혁명의 전도사다.”오세훈 서울시장의 주택 정책에 대한 시장의 평가는 이처럼 극단적이다.긍정론자들은 민간 주도의 주택 시장에 공공의 입김을 크게 불어넣는데 오 시장의 역할이 컸다고 보는 반면 비판론자들은 임기 말로 갈수록 주택 정책이 정치적 도구로 악용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며 우려를 표시한다.특히 비판론자들은 최근 잇따른 선심성 발표로 집값 거품이 커지고 있다며 비판의 날을 세우고 있다.오세훈 서울시장의 주택 정책은 초반만 해도 파격의 연속이었다. 당시 참여정부도 난색을 표시하던 분양 원가 공개를 시범적으로 실시한 것이나 ‘시프트’(SHift)로 불리는 20년 장기 전세 주택을 전격 도입한 것은 서울시 정책의 서막을 알린 커다란 사건이다. 이 두 제도는 중앙정부도 풀어내지 못한 문제를 일거에 해소했다는 측면에서 우리나라 주택 역사에 큰 전환점으로 평가받고 있다.실제로 서울시는 지난 2006년 9월 은평뉴타운의 분양 원가를 공개해 업계에 신선한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비록 고가 분양의 논란에 휩싸였지만 민간 기업의 고유 영역인 분양 원가를 서울시가 주도해 공개했다는 점은 시민들의 환영을 받기에 충분했다. 이후 오 시장은 은평뉴타운을 후분양 방식으로 전격 전환, 서울시 주택 시장의 새바람을 일으켰다.오 시장의 가장 큰 치적은 ‘시프트(SHift)’라고 불리는 장기 전세 주택이다. 이 주택은 지금도 서민 주거 안정의 표본으로 불릴 정도의 혁명적인 정책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서울시가 2007년 6월 발표한 시프트 정책은 주변 전세 값의 80% 수준으로 최장 20년간 살 수 있는 집을 공급하겠다는 것이 골자다. 역대 시장 누구도 생각하지 못한 놀라운 변화다.서울 집값 상승의 주범으로 지목받은 뉴타운 개발에 대해 명확한 입장을 보인 것도 나름대로 의의가 있다는 평가다. 출범 초기만 해도 오 시장은 전임 이명박 시장의 무분별한 뉴타운 개발 사업이 부작용을 더 많이 양산해 냈다며 추가 지정에 난색을 표시해 왔다. 이 때문에 임기 내내 4차 뉴타운을 지정해 달라는 서울시의회, 산하 지자체와의 마찰이 계속됐지만 그는 아직까지 추가 지정에 소극적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학계와 시민단체가 초기 오 시장의 주택 정책에 환영 일색을 보낸 것도 이 같은 이유에서다. 경쟁자인 김문수 경기도지사가 ‘뉴타운’ 개발에 총력을 기울이는 것과 뚜렷이 대비된다.하지만 공공성 강화로 요약되는 서울시 주택 정책에 변화가 감지된 것은 지난해 총선부터다. 총선 기간에 오 시장과 한나라당 후보 간 ‘뉴타운 밀약설’로 논란의 중심에 섰다. 선거 후 단순 해프닝으로 끝났지만 결과적으로 서울시의 주택 정책은 이후부터 조금씩 변화되는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는 것이 부동산 업계의 공통된 인식이다.서울시 르네상스 개발 계획은 부동산 시장의 최대 화두다. 그동안 공공성 강화에 치중해 온 서울시가 뉴타운보다 훨씬 넓은 권역개발론을 들고 나오면서 시장의 열기는 갈수록 고조되는 모습이다. 해당 지역 집값이 이상 급등을 기록하자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대표적인 것이 지난 1월 발표된 한강 공공성 회복 선언이다. 한강변 대규모 아파트 단지를 재개발하겠다는 것이 골자인 이 대책 발표 후 해당 지역 아파트 값은 강세가 뚜렷하다. 물론 투자처를 찾지 못한 부동 자금이 안전 자산인 부동산으로 몰리면서 전체적인 집값을 끌어올리고 있지만 계획 발표 후 걱정은 어느새 우려로 바뀌는 양상이다.서울시가 당시 밝힌 취지는 한강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병풍과 같은 아파트를 재개발해 한강을 모든 시민이 공유할 수 있는 친수공간으로 탈바꿈시키겠다는 것이다. 시 계획이 발표된 직후 해당 지역 아파트 값이 폭등한 것은 당연한 결과다. 국민은행에 따르면 2월 중 강남구는 한강르네상스 호재에 힘입어 매물이 빠르게 소진되면서 집값 상승률이 0.7%, 강동구는 0.5%, 송파구는 0.4%를 기록한 것으로 조사됐다. 망원 합정동과 성수동 다세대, 다가구 주택도 상승곡선이 가파르다. 부동산 정보 제공 업체 스피드뱅크에 따르면 망원동 아파트 값은 4월 한 달 동안 12.2% 상승해 서울시 평균치(0.5%)를 크게 앞질렀다. 동북권 르네상스도 사정은 비슷하다. 서울시는 지난 6월 10일 중랑천을 기준으로 인근 8개 자치구에 2020년까지 18조 원을 투입해 경제·문화·산업 거점도시로 육성하겠다는 동북권 르네상스 프로젝트를 발표했다. 그 결과 집값 상승은 불 보듯 뻔한 일이 돼 버렸다. 수혜 지역 중 한 곳인 이문동만 해도 6월 한 달 간 집값 상승률이 0.48%를 기록했다.이에 앞서 오는 2020년까지 20조 원을 투입해 영등포구 구로구 강서구 일대를 정보기술(IT) 생명공학기술(BT) 산업의 중심지로 발전시킨다는 서남권 르네상스 프로젝트도 해당 지역 집값 상승의 요인으로 자리 잡고 있다. 또 다세대, 다가구 주택 매물이 씨가 마른 용산구 후암동, 중구 신당동 일대는 남산 녹지축 조성으로 대표되는 남산 르네상스 여파가 크다는 것이 부동산 업계의 중론이다.이런 가운데 서울시는 조만간 은평, 서대문, 마포구 일대를 개발하는 서북권 르네상스 계획을 발표할 예정이다. 여기에 삼청동 한옥마을을 정비하는 한옥 르네상스까지 포함하면 사실상 서울시 전 지역이 개발 권역에 포함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논란의 핵심은 이 같은 권역 개발이 과연 실효성이 있느냐는 것이다. 내년 지자체 선거 결과에 따라 정책 수정이 얼마든지 가능하기 때문이다. 자칫 해당 지역 주민들의 기대감이 분노로 바뀌는 최악의 상황도 배제할 수 없다. 참여정부의 행복도시 건설 계획이 수년째 답보 상태에 머무르고 있는 것이 좋은 예다.동북권, 서남권 두 개 프로젝트에 투입되는 비용만 38조 원이다. 서울시 1년 예산의 2배에 육박하는 엄청난 비용을 어떻게 부담할지도 숙제다. 지자체 선거를 1년 남짓 남겨둔 민감한 상황에서 이 같은 엄청난 개발 프로젝트가 연이어 발표되는 것에 대해 주변의 시선이 곱지 않은 이유도 이 때문이다. 민주당 등 야당이 서울시 르네상스 계획에 대해 ‘사전 선거운동’ 운운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서울시가 르네상스 계획을 당초 계획대로 추진하기 위해선 중앙정부와의 협조가 필수적이다. 서울시 계획대로 추진되려면 국토해양부 지식경제부 등 여러 부처와 정책 협조가 선행돼야 한다.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얽혀 있는 상황에서 서울시가 어떤 대안으로 중앙 부처의 협조를 이끌어낼지도 지켜봐야 할 대목이다.정부가 주택담보인정비율(LTV)을 60%에서 50%로 낮췄지만 해당 지역의 열기를 잠재우기에는 아직까지 역부족이다. 토지 거래 허가 등 집값 상승을 막을 수 있는 규제 장치가 중앙정부에 있다는 점도 르네상스 정책에 대해 근본적으로 우려하는 이유다. 세종대 행정학과 변창흠 교수는 “공공성을 회복하고 지역보다 권역 개발로 흐름을 잡겠다는 총론적인 입장은 환영한다”면서도 “강력한 투기 억제책을 마련해 단기 집값 상승을 잡는 방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변 교수는 “중앙정부의 규제책을 하한선으로 놓고 그보다 강력한 조치를 조례로 마련해야 선심성 정책 논란을 잠재울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규제책 마련에 대해 서울시 도시계획과 이정화 팀장은 “매달 해당 지역의 집값 동향을 자세히 살펴보고 있다. 아직 거래량이 큰 폭으로 늘었다고 보기는 힘들다”면서 “이상 급등 현상이 감지되면 국토부와 협의해 해당 지역을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지정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이 팀장은 그러면서 “이번 권역별 개발안은 5년마다 재정비하는 도시기본계획의 일환이며 추진 과정에서 계획이 다소 수정될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이 같은 서울시 설명에 대해 주거복지연대 남상오 사무총장은 “권역 개발 계획이 이처럼 세부적으로 수립된 것은 극히 이례적”이라면서 “재건축 시 20%를 소형 평형으로 공급해야 하고 공공관리자제도를 도입하는 등 재임 기간 공공성을 강조한 그간의 입장과 다르게 이번 대규모 개발 계획은 내년 지자체 선거를 고려한 것 아니냐는 의혹을 씻을 수 없다”고 말했다. 건설산업전략연구소 김선덕 소장도 “대규모 개발이 얼마나 위험한지 잘 알고 있는 오 시장이 권역 개발을 선택한 것 자체가 난센스”라며 “거시적인 계획보다 맞춤형 전략으로 인식을 전환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돋보기│시프트 정책도 허점투성이서울시 장기 전세 주택(시프트)에 대한 논란도 거세다. 이 제도는 실수요 무주택자들에게 주변 전세가격의 80% 선에서 20년 장기 임대로 공급한 민선 4기 서울 시정의 최대 자랑거리다. 2008년 6월 현재 공공건설, 재건축 매입 임대를 통해 공급된 장기 전세 주택은 2016가구다. 주택 규모는 전용면적 59~114㎡로 기존 공공 임대주택에 비해 상당히 크다.주요 쟁점은 중형 평형 위주의 공급이 과연 적절했는지다. 중형 평형 위주의 공급은 임대료 부담을 가중시켜 저소득층의 입주에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서초구 반포주공2단지 래미안퍼스티지의 경우 공급 면적 113㎡형의 전세가는 3억 원에 이른다. 은평뉴타운 608가구 111∼125㎡형은 1억3000여 만 원이다. 주거복지연대 남상오 사무국장은 “전용면적 114㎡ 주택을 공공 임대주택으로 공급하는 것은 정책적 측면에서도 바람직하지 않다”면서 “시민의 세금으로 중대형의 공공 임대주택을 소득 7∼10분위 중·고소득층에 시세보다 낮은 가격에 공급하는 것은 사회적 형평에 위배된다”고 비판했다. 지난해 서울시정개발연구원 박은철 부연구위원이 펴낸 ‘시프트 확대 공급에 따른 관리 효율화 방안’ 보고서에서도 이 같은 중형대 아파트 공급은 제도의 취지에 맞지 않는다는 점을 분명히 명시하고 있다. 이 보고서는 “‘소유’에서 ‘거주’ 중심으로 주거 문화를 바꾸기 위해서는 전용면적 85㎡ 이하의 공공 임대주택 공급에 주력해야 한다”고 조언했다.이와 함께 국민주택기금에서 지원받은 국민 임대 전환분만 소득수준에 따라 공급 규정이 정해져 있을 뿐 나머지 분양 전환분에 대해서는 소득 기준이 명확하지 않다는 점도 시급히 개정해야 할 부분으로 지적했다.돋보기│전문가 설문 조사국내 부동산 전문가들은 오세훈 시장의 주택 정책을 어떻게 평가할까. 한경비즈니스가 지난 7월 20일부터 22일까지 국내 대학, 연구기관, 건설사, 시민단체, 은행권 부동산 전문가 18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를 벌인 결과 ‘잘 못하고 있다’가 44.4%를 기록해 38.9%를 기록한 ‘잘하고 있다’보다 다소 높게 나타났다. 하지만 두 응답 간 표차가 크지 않아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오세훈 시장의 주택 정책에 대한 평가는 크게 엇갈렸다.서울시 주택 정책에 점수를 준다면 몇 점을 주겠느냐는 질문에는 응답자의 절반이 B학점이라고 대답했고 44.4%는 C학점 수준이라고 평가하는 등 대체로 긍정적인 대답이 많았다. 서울시 르네상스 지역 집값에 얼마나 거품이 끼었느냐는 질문에는 ‘20% 미만’이 44.4%로 가장 많았고 20~50%를 선택한 응답자도 38.9%에 달했다. 단기 집값 상승 우려 지역으로는 68.4%가 ‘한강변 재건축’을, ‘대기업 소유 미개발지 부근(10.5%)’, ‘동북권(10.5%)’이 그 뒤를 이었다.이번 설문 조사에서 응답자들은 서울시 주택 정책의 가장 큰 문제점으로 ‘지자체 선거를 겨냥한 선심성 정책(61.1%)’을 지적했고 ‘집값 통제책 부재’를 꼽은 응답자도 전체 22.2%를 기록했다. 하지만 재임 기간에 가장 잘한 정책은 응답자의 반이 ‘장기 전세 주택’을 선택해 ‘오세훈 시프트’로 불리는 공공 임대주택에 대해 대체로 긍정적인 평가가 많았으며 35.3%는 집값 규제를 전제로 한 ‘한강 공공성 회복’을 꼽았다. 분양 원가 공개와 대규모 주거지 개발, 규제 완화를 꼽은 소수 의견도 있었다.쫁설문에 참여한 분= 권대중 명지대 교수, 권주안 주택산업연구원 연구위원, 김상기 현대건설 상무, 김선덕 건설산업전략연구소 소장, 김일수 IBK기업은행 부동산팀장, 남상오 주거복지연대 사무총장, 남은경 경실련 도시개혁센터 부장, 박덕배 현대경제연구원 전문연구위원, 박상언 유엔알컨설팅 대표, 박재룡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 안명숙 우리은행 부동산팀장, 이남수 신한은행 부동산팀장, 이상영 부동산114 대표, 이훈복 대우건설 상무, 장무창 미래파워 대표, 지규현 GS건설경제연구소 책임연구원, 최범호 삼성건설 상무, 허윤경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연구위원.(가나다 순)송창섭 기자 realsong@kbizwee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