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제 729호 (2009년 11월 23일)

윤리 경영 지침은 ‘디테일’해야 성공해

기사입력 2009.11.17 오후 01:48

윤리 경영 지침은 ‘디테일’해야 성공해
한국은 유독 ‘한턱내는’ 문화가 발달해 있다. 서구처럼 개인별로 영수증을 끊어주는 업소는 찾아보기 힘들고 일본처럼 철저하게 1인당 입장료를 계산하지도 않는다. ‘너’와 ‘나’가 명확히 구분되지 않는 문화가 장점이 될 때도 있지만 불투명한 기업 경영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신세계는 2005년부터 ‘신세계 페이’를 통해 투명한 경영 프로세스를

정착시키는데 앞장서고 있다. 비록 작은 한걸음이지만 비리가 발생할 수 있는 가능성을 원인부터 차단하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생각해 보자. 나 자신이 E업체의 구매담당 팀장이고, 자신의 회사에 납품을 원하는 업체 A사의 임원과 저녁 식사를 한다. 그런데 식사 비용은 각자 먹은 만큼만 내야 한다. 식사를 주문할 때마다 자신이 주문한 음식의 가격을 기억해야 한다. 그리고 계산할 때는 먹은 만큼만 따로 계산하겠다고 얘기해야 한다. A사 임원도 어색해하고 나 자신도 머리가 복잡하다. 공식적인 만남은 회사 돈으로 먹겠지만, 꼭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자신의 돈도 나가야 하니 비싼 음식점은 피하고, 또 웬만하면 사무실에서 만나 간단히 즉석커피를 마시는 선에서 끝낸다. 시행 첫날부터 직원들의 불만이 제기된다.

신세계가 2005년 4월부터 시작한 ‘신세계 페이’도 처음에는 직원들의 불만이 많았다. “이젠 밥도 못 먹게 됐다”는 불만이 제기됐다. 점차 거래처와 밥 먹는 횟수가 줄어들고 차 마시는 시간이 늘어났다. 직원들을 독려하기 위해 회사는 등록 프로그램을 만들어 실적을 기록하도록 해 일종의 성과 경쟁을 유도했다. 그 결과 2005년 3만2000건이던 실천 건수가 2008년 22만 건, 2009년은 상반기에만 21만 건으로 정착됐다.

이렇게 나눠 내는 문화가 정착되면서 사내 분위기도 덩달아 변했다. 사내 회식을 하더라도 직원들끼리 각자 내는 문화가 생기기 시작한 것이다. 예전처럼 선배가 후배들에게 한턱내는 일은 이제 거의 없어졌다고 한다. 신세계 측은 “이렇게 하다 보니 얻어먹는 것 자체가 금기시됐다”고 전했다. 이에 따라 회식비로 나가는 회사 경비도 줄어들었다. 이렇게 줄어든 비용은 연말에 신세계 페이 장려금으로 다시 직원들에게 돌려줬다. 과장은 30만 원, 부장은 50만 원을 지급하는 식이다. 신세계 측은 “신세계 페이가 회사의 경비를 줄이기 위해서 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세이브(save)된 돈을 직원들에게 다시 돌려주는 것”이라고 배경을 설명했다.

비리 차단은 사소한 것부터 시작

신세계 페이가 정착될 수 있었던 데는 회사 측의 강력한 의지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대개 기업들의 윤리 경영은 강당에서 모든 사원이 모인 데서 선서를 한 뒤 업무에 복귀하면 잊어버리는 경우가 많다. 선언적인 의미에 그치는 것이다. 그러나 신세계는 선언에 그치지 않고 ‘신세계 페이 5대 실천 지침’을 만들어 구체적인 행동 지침까지 마련했다.

△공사 구분 명확히 하기 △먼저 제안하고 실천하기 △발생 시점에서 즉시 지불하기 △적은 금액도 나눠 계산하기 △공평하게 부담하기가 그것이다. 심지어 자동판매기의 자판기를 이용할 때도 신세계 페이를 실천하도록 장려했다.

나눠 내는 문화는 어느 한쪽이 일방적으로 하자고 해서 되는 것도 아니고, 또 을(乙)의 위치에 있는 사람이 하자고 해서도 안 되는 것이다. 신세계는 신세계 페이 시작 이후 협력사 직원들을 대상으로 한 교육으로까지 캠페인을 확대했다. 최근에는 국세청이 벤치마킹을 위한 실사를 할 수 있느냐는 요청까지 들어왔다.

신세계 사례를 보면 윤리 경영은 비리의 원인을 정확하게 찾아내 이를 해결하려는 적극적 의지와 창조적인 아이디어가 필요하다. 또 구체적인 실천 지침을 마련해 직원들에게 동기를 부여하고, 또 나름의 경쟁 체제를 통해 보람을 느낄 수 있도록 한 점이 특징이다. 그렇지 않을 경우 보여 주기 식밖에 되지 않는다.

신세계의 주력 사업은 백화점과 대형 마트다. 제조업체로부터 제품을 받아 판매하는 업종이다. 신세계·이마트라는 브랜드 파워 때문에 신세계 매장에 제품을 납품하려는 업체들이 줄을 선 상태다. 네이버 뉴스 검색에 들어가기를 원하는 소규모 인터넷 언론사들이 대기하고 있는 것과 비슷하다. 이 때문에 신세계는 갑의 위치에, 납품 업체는 을의 위치에 서게 된다. 당연히 신세계에 납품하려는 경쟁이 치열할수록 무리한 향응과 선물 제공이 이뤄질 가능성이 크다. 경쟁력이 떨어지는 제품 비중이 높아질수록 유통업체의 브랜드 가치도 하락할 수밖에 없다. 장기적으로 윤리 경영은 기업의 지속 가능 경영과도 관련이 있는 것이다.

신세계가 윤리 경영을 선포한 것은 1999년 12월이다. 당시 재계는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을 거치면서 계열사 지급보증으로 인한 그룹 해체, 분식회계 등으로 몸살을 앓던 때였다. 이런 사례들은 투명하지 않았다는 공통점이 있다. 신세계는 납품처와의 깨끗한 관계 유지를 위해 향응이나 선물을 받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초기엔 “국내 정서상 교류가 있어야 하고 선물이 오가야 우정도 오간다. 너무 무 자르듯 하는 것 아닌가”라는 반발도 있었다. 그러나 과감히 밀어붙였다. “갑과 을의 위치를 가장 먼저 버리자”는 것이 그 취지였다. 일단 선물을 받지 않았고, 오히려 신세계 직원들이 협력사에 오렌지 상자를 선물로 돌리기도 했다. 2000년부터는 계약서상에 ‘갑(甲)’과 ‘을(乙)’이라는 표현도 전부 없앴다.

앞서 말한 대로 선포에 그치지 않고 체계를 갖추기 위해 ‘기업윤리실천사무국’을 설치, 규범·이념을 차례로 만들고 강력하게 추진했다. 임원들을 대상으로 수시로 워크숍을 통해 윤리 경영을 숙지하도록 했다. 또 방송이나 사보를 통한 사내 홍보에 집중하고 이를 실천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신세계 페이가 도입된 것은 2005년에 이르러서였다. 신세계 기업윤리실천사무국의 홍순상 부장은 “임직원의 부정·부실은 개인의 도덕보다 회사 제도, 즉 시스템 때문에 일어난다. 윤리 경영을 위한 기업 문화가 디테일하게 조성돼 있으면 자연스럽게 없어질 것”이라고 배경을 설명했다. 또 “작은 액수도 기입하게 함으로써 ‘이 정도는 괜찮지 않나’ 하는 개인적 판단이 개입되지 않도록 했다”고 설명했다.

윤리 경영 지침은 ‘디테일’해야 성공해
협력사들이 바이어 비리 신고

그러나 모든 제도가 완벽하지 않듯 몰래 얻어먹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신세계는 대신 감시 기능을 강화해 명확하게 비리라고 판단될 때는 확실하게 처벌하고 있다. 또 협력사들이 바이어들의 비리를 신고할 수 있도록 했고 제보자의 신분을 보호하기 위해 외부 협회 산하 기관(KEBI)을 이용하고 있다.

지속 가능 경영의 측면에서 바이어와 협력회사 사이의 비리가 없어질 경우 협력사는 바이어 관리보다 품질 경쟁력에 더 많은 관심과 투자를 기울일 것이다. 이렇게 되면 바이어 한 명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납품이 철저히 품질 위주로 바뀐다. 바이어가 회사를 그만두더라도 회사에는 아무런 문제가 발생하지 않게 되는 시스템 경영으로까지 이어진다.

아쉬운 점은 경영 윤리 프로세스를 실천하는 기업이 얼마 되지 않고 국내에 정착된 지도 오래되지 않아 윤리 경영이 기업 이익에 도움이 된다는 점을 입증한 데이터가 없다는 것이다. 윤리 경영이 단지 숭고한 것이기 때문에 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이익과 연결된다는 것이 밝혀진다면 이를 도입할 기업이 크게 늘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상식적으로 개인 비리가 사라지면 품질 위주의 경영을 할 수 있다고 여길 수 있지만 최근의 경영은 경영자의 감보다는 데이터를 중시하기 때문에 이에 대한 다양한 연구가 필요하다. 연구자들에게는 이를 측정할 수 있는 툴(tool)을 개발하는 것이 하나의 과제다. 물론 여기에는 다양한 변수가 적용될 수 있기 때문에 측정 지표를 객관화하는 작업이 중요하다.

신세계는 윤리 경영을 선포한 1999년 이후 지속적으로 성장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이 윤리 경영 때문인지, 아니면 사업의 수익성이 좋아져서인지, 시장 상황 때문인지 명확하지 않다. 만약 경쟁 기업이 급속히 성장해 신세계의 시장점유율이 떨어졌다면 윤리 경영은 오히려 해가 된다고 판단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범위를 좁혀서 바이어를 통해 납품하는 제품의 가격과 품질이 지속적으로 개선되고 있는지를 측정하는 방법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물가가 꾸준히 상승했고 신제품이 구제품을 대체했을 수 있고 납품 업체가 바뀌었을 수도 있다.

무엇보다 외부 연구진이 이를 분석하기 힘든 것은 납품 가격은 신세계가 밝히기 힘든 대외비라는 점이다. 신세계 측에 따르면 이마트는 납품 업체인 A사가 롯데마트와 홈플러스에 납품하는 가격을 알지 못한다. 가격은 협상이 가능한 부분이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외부의 연구진보다 신세계 내부에서 스스로 이에 대한 데이터를 연구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또는 방법론에서 경영학 교수진의 자문을 받고 외부에는 결과만 발표하면 되는 것이다.

윤리 경영의 경우 사회공헌과 달리 이처럼 객관적으로 측정할 수 있는 지표들이 있기 때문에 연구 과제로서 장점을 갖고 있다. 사회공헌은 직접적인 수혜자들의 설문과 면담, 또 이것을 홍보하는데 든 비용, 소비자들이 받아들이는 정도 등 주관적인 요소가 많지만 윤리 경영은 납품가와 제품의 품질을 계량적으로 측정할 수 있고 구매 시점에서의 소비자 조사가 쉽기 때문이다. 윤리 경영과 사회공헌은 똑같이 숭고한 것이지만 효과에 대한 연구는 윤리 경영이 먼저 진행돼야 하는 이유다.

‘을’의 위치일 때도 실천해야

신세계 페이에서 특이한 점은 신세계가 갑의 위치에 있을 때뿐만 아니라 을의 위치에서도 이를 실천하려고 노력한다는 점이다. 영업사원들에게도 신세계 페이를 실천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물론 이마트가 납품하는 곳이 신세계푸드와 조선호텔 등 신세계 계열사가 많기 때문에 가능하다는 점도 있다. 그러나 신세계 측은 “계열사로 납품처를 한정할 경우 품질 개선 노력이나 가격 인하 동기가 없기 때문에 장기적으로 기업 경쟁력에 해가 된다. 아무리 계열사라도 타 납품 업체와 철저하게 경쟁하는 시스템”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신세계의 윤리 경영은 신세계 측도 인정하듯 당장 먹고살기 힘든 마당에 한가하게 윤리 경영을 하겠다고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신세계 페이 외에도 협력사를 지원하기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이 마련돼 있지만 순이익이 수천억 원대이기 때문에 수백억 원을 지원할 수 있었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대기업부터 경영 윤리를 실천하는 모범을 보이고 이것이 기업 경영에 장기적으로 도움이 된다고 실증적으로 입증된다면 더 많은 기업들로 전파될 수 있을 것이다.

윤리 경영 지침은 ‘디테일’해야 성공해
윤리 경영 지침은 ‘디테일’해야 성공해


이재규 카이스트 테크노경영대학원 교수

우종국 기자 xyz@kbizwee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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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일시 : 2009-11-17 13: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