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신연해특구 옌청 르포

중국 동부 연해도시 옌청 국제공항에서 서남쪽으로 차를 타고 30분을 달리면 ‘중국 제1에서 세계 제1로 나가는 화루이풍력발전산업원’이란 표지가 눈에 들어온다. 지난 9월 옌청시의 상급 정부인 장쑤성이 특색 산업단지로 승인한 중국 최대 풍력발전설비단지 조성 현장이다.짙은 안개 속에서 크레인이 바쁘게 돌아가고 있는 이 단지 면적은 9.6㎢. 반년 전만 해도 농지였던 곳이다. 리창 옌청 시장은 “내년까지 정부와 민간이 합쳐 247억 위안(4조4460억 원)을 투입한다”고 말했다. 중국 최대 공작기계 업체인 친촨그룹이 연간 1500개의 풍력용 증속기를 만들 공장 터에 있는 현장 표지판엔 내년 5월 완공 목표가 적혀 있다. 옌중 옌청 대외경제무역합작국 부국장은 “최근 세계 처음으로 5MW급 풍력 설비를 개발한 화루이가 중국 최대 규모의 해상 풍력연구개발센터를 짓는다”며 “세계 최고 수준의 풍력 설비 단지의 두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 설비 단지는 3년 내 80MW급에서 1000MW급으로 확충될 옌청 연해의 풍력발전단지에 설치할 터빈 등의 공급기지 역할을 하게 된다. 풍력 시장과 공장을 함께 조성하는 것이다.◇ 장쑤성 해안선의 56%를 차지하는 810만 인구의 옌청시가 신연해특구로 부상하고 있다. 중국에선 덩샤오핑의 점·선·면 개발 정책에 따라 선에 해당하는 중국 동부와 남부의 해안선에 개혁 개방의 수혜가 집중됐다. 하지만 장쑤성의 해안선은 푸젠성의 해안선과 함께 고성장의 혜택에서 소외돼 왔다. 푸젠성은 적대 관계에 있던 대만을 마주보고 있는 관계로 성장이 지체됐지만 최근 양안(중국과 대만) 관계 개선으로 양안특구가 조성되는 등 성장이 탄력을 받고 있다. 푸젠성에 이어 장쑤성의 해안선 도시도 주목을 받고 있다. 옌청에선 화루이 풍력설비단지처럼 신산업 단지가 속속 생기고 대형 건물이 속속 올라가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장쑤성은 중국의 대표적인 개혁 개방 지역이지만 해안선이 몰려 있는 옌청과 같은 창장(양쯔강) 이북에 있는 쑤베이 지역은 상하이와 가까운 난징 쑤저우 등이 있는 쑤난 지역과 달리 교통이 불편해 개혁 개방에서 소외되다시피했다. 철도가 옌청에 처음 깔린 2000년 이전만 해도 상하이까지 10시간이 걸렸다. 2년 전 상하이까지 연해 고속도로가 개통되면서 3시간 거리로 좁혀진데 이어 내년에 착공할 고속철도가 완공되면 1시간 30분으로 단축된다. 공항도 한국 홍콩에 이어 일본과 동남아 항공편을 추가하기로 하는 등 규모를 키워 2020년 이전까지 신공항을 세운다는 계획을 세워놓고 있다. 국영 국가전력그룹이 빈하이항구에 1000억 위안(18조 원) 투자를 결정하고 다펑항구는 올해 부산 및 인천과 화물선 운항을 시작하는 등 방치되다시피 했던 4개 항구 개발도 본격화하고 있다. 특히 다펑항구에선 11월 18일부터 10만 톤급 선박도 드나들 수 있게 된다.창장삼각주 경제권의 북쪽 날개로 부상할 수 있는 육해공 인프라가 조성되는 것이다. 리 시장은 “국무원(중앙정부)이 개발되지 않은 마지막 연해지역을 살리기 위한 장쑤성 연해대개발 사업을 지난 6월 국가 전략으로 승인했다”며 “옌청의 발전은 중국 최대 경제권인 창장삼각주 균형 발전을 가속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옌청시는 풍력 태양광 조선 농산품 가공 환경보호 등 신산업 육성과 함께 자동차 기계 방직 화공 등 주력 산업의 업그레이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옌중 부국장은 “연해 도시지만 토지 가격은 쑤저우에 비해 4분의 1 수준이고 인건비도 30% 낮다”며 “자연스럽게 간석지가 형성되면서 토지가 매년 1330헥타르가 늘어날 만큼 풍부해 기아차처럼 일정 규모 이상의 투자자에게는 토지를 무상 공급하고 있다”고 말했다. 옌청에는 2000억㎥의 천연가스가 묻힌 것으로 추정될 만큼 동부 연해지역 최대 가스전을 보유하는 등 자원도 풍부하다.옌청은 내수형 업종이 많아 금융 위기에도 타격을 덜 입었다. 올해 경제성장률이 14%를 기록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월마트가 문을 연데 이어 까르푸가 첫 개점을 앞두고 거리에서 판촉 광고전을 펴는 등 외국계 대형 마트의 시장 선점 경쟁도 가열되고 있다. 쑤저우에서 무역업을 하는 이경록 위징무역 사장은 “옌청처럼 연해지역의 2선급 도시는 구매력이 있는데도 한국 제품을 찾지 못해 사지 못하는 소비자들이 많다”며 “한국 기업들도 이들 지역 내수시장에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옌청시는 현지에 2개 공장을 두고 있는 기아자동차의 질주에 힘입어 자동차 산업기지 건설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백현철 공장장(상무)은 “원자바오 총리가 베이징 올림픽을 앞두고 옌청을 시찰했을 때 시를 장쑤성의 자동차 산업 도시로 키우라고 지시한데 시 전체가 고무돼 있다”고 전했다.자동차 매매는 물론 부품 거래까지 이뤄지는 대형 거래센터가 내년 개장을 앞두고 막판 공사가 진행 중인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용닝투자실업유한공사가 2억 위안(360억 원)을 투자해 건설하는 이 거래센터에는 자동차 대리상뿐만 아니라 자동차 매매에 필요한 행정 절차를 원스톱으로 받을 수 있는 관공서도 들어설 예정이다. 옌청시 정부는 20억 위안(3600억 원)을 투자해 자동차 시험장도 건설할 계획이다. 둥펑웨다기아의 승용차를 비롯해 종다그룹의 대형 버스, 웨다그룹과 일본 기업이 합작해 만드는 특장차, 둥펑과 웨다그룹이 함께 투자한 전기자동차가 옌청의 자동차 산업을 이끌 것이라고 현지 언론들은 전했다. 기아차가 2100년 역사의 소금 도시 옌청을 장쑤성의 디트로이트로 변신시키고 있는 것이다.지난 11월 8일 중국 장쑤성의 연해도시 옌청시에 있는 국제회의센터. 옌청시는 이날 개최한 연례 경제무역협력교류회에 맞춰 자동차 방직 기계 화공 등 4대 주력 산업과 풍력 항만 등 신산업을 소개하는 전시장을 마련했다. 유독 1개 기업의 실적을 표시한 자동차 코너가 눈길을 끈다. 기아자동차 중국 합작법인인 둥펑웨다기아 1개사가 옌청의 자동차산업기지를 상징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교류회에 참석한 중국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정협, 정치자문기구) 쑨정차이 부주석이 전날 산업 시찰하면서 첫 번째로 들른 곳도 둥펑웨다기아의 제2공장이었다.둥펑웨다기아는 중국 지도부의 단골 시찰 코스가 될 만큼 질주하고 있다. 백 공장장은 “중국도 주5일 근무지만 최근 수요가 급격히 늘면서 평일 생산 시간을 늘리고 1공장과 번갈아가며 휴일 가동 체제에 돌입했다”고 전했다. 2공장 조립 라인 위에 시간당 37대 생산이라는 전광판이 눈에 들어온다. 둥펑웨다기아는 올들어 10월까지 1, 2공장에서 14만 대 이상을 생산·판매했다. 전년 동기보다 55% 늘어난 수준이다. 기아차 브랜드는 상하이 베이징 등 대도시뿐만 아니라 2, 3선급 도시에서도 불티나게 팔리고 있다. 옌청시 도로를 달리는 승용차의 절반은 기아차 브랜드일 정도다. 주문을 맞추지 못해 2공장 생산 능력을 연간 20만 대에서 30만 대로 확충하는 작업이 진행 중이다. 둥펑웨다기아는 지난 11월 6일 1, 2공장 합쳐 누계로 80만 대 생산을 돌파했다.백 공장장은 “미국과 유럽에서 기아차 품질이 호평을 받으면서 중국 소비자들의 평가도 좋아진데다 노동 유연성이 높아 판매 수요에 발 빠르게 대처할 수 있는 덕분”이라고 설명했다.·자동차 방직 기계 화공 4개 주력 산업 업그레이드·풍력 태양광 조선 물류 환경보호 등 신산업 육성·농산품 가공 대기업 육성 등 현대 농업시범구 조성·세계 최대 두루미 월동지 등 습지 관광 지역으로 개발옌청(중국 장쑤성)=오광진 국제부 기자kjo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