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특별한 꿈
오늘 운전사가 딸린 차를 타다가도 내일은 토큰 하나 들고 나갈 수 있는 사람, 출장비가 부족하다면 바나나 한 다발로 3일을 버틸 수 있는 강인한 정신 그 자체가 아버지였다.

아버지의 조금 특별한 꿈은 ‘재벌’이다. 그리고 그 꿈은 나이 70이 넘으신 지금도 여전히 진행형이다. 아버지는 1970년대 초 30대에 이미 운전사가 딸린 차를 타고 다니셨고, 동네에서 가장 큰 두 집 중 하나가 우리 집이었으며 내 어릴 적 주말의 기억은 백화점과 동격이었으니 아버지의 그러한 꿈이 허황된 것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렇다고 아버지가 넉넉한 집안에서 태어난 것은 아니었다. 촌에서 6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나 어린 나이에 홀로 상경하셨다. 왕십리 방앗간 하는 친척집에 기숙하며 밥과 장(醬)만으로 끼니를 때우면서 고학했다는 당시 어디선가 들어보았을 법한 일화의 주인공이셨다. 상황이 그러하니 아버지는 공부 욕심에도 불구하고 가솔들을 챙기기 위해 생활 전선에 뛰어들 수밖에 없었다.

무역상사에 다니면서도 저녁에는 청계천에서 다른 장사를 하셨다고 한다. 어머니도 같은 직장에 근무하며 아버지를 만나셨는데, 말수가 없고 일에 몰두하는 모습에 끌렸다고 하신다. 하도 말씀을 하지 않으셔서 당시 주변 동료들로부터 불린 별명이 냉전시대와 철의 장막을 빗댄 ‘크레믈린’이었다.

아버지는 신혼여행을 가서도 호텔에 어머니를 혼자 남겨 두고 거래처 미팅을 나갈 정도로 일에 몰두하셨다. 내가 기억하는 아버지의 모습도 크게 다르지 않다.

내가 아버지의 진면목을 알게 된 건 서른이 넘어서였다. 역사는 반복되는 것인지 나 역시 아버지가 졸업한 대학을 나와 무역상사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하게 됐다. 직장에서 어머니와 같은 학교 같은 과를 졸업한 아내를 만나게 됐는데 내게는 아버지가 갖지 못한 하나가 더 있었다. 언제든 비빌 언덕이 될 수 있다고 생각되는 아버지가 계시다는 것.

그 비빌 언덕 때문인지 첫 직장을 너무도 쉽게 떠나 아버지 회사에 취직했다. 이미 60대 중반에 접어든 연세에도 아버지는 여전히 정력적이었다. 해외 출장 시 하루에도 7~8건의 미팅을 처리하셨으니 당시 나는 30대 초반 왕성한 체력에도 불구하고 헉헉대며 쫓아다녀야 할 정도였다. 과거 동업자 중 한 분은 아버지를 ‘머천다이징의 천재’라고 말씀하셨는데 아마 시장조사를 위해 발품을 파는 분량과 어느 오지라도 마다하지 않고 가시는 열정을 조금이라도 알았더라면 그렇게 간단히 이야기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장남 부자 간 기 싸움 때문이었을까. 취직한 지 1년 남짓 돼 아버지 회사를 떠나게 되었다. 당시로선 가능성이 없어 보이는 일, 믿을 수 없는 사람들에게 자산을 낭비하는 아버지의 모습을 이해할 수 없었다. 결정적인 손해를 본 경우도 많았는데 그때마다 왜 말씀을 듣지 않으시는지 견디지 못할 정도로 속이 상했다.

그러나 이제와 돌아보니 전부는 아니어도 부분적으로는 이해가 된다. 언제나 ‘주는 것(give)’ 먼저, 그리고 ‘받는 것(take)’. 주는 순간에는 어떠한 최신의 경영 지식과 기술도 결코 사람을 확신시킬 수는 없다. 그러나 아버지는 배짱이라는 말로 요약하셨다. 뿌릴(give) 배짱이 없는 사람이 무엇을 수확(take)하길 바라겠느냐고, 그리고 세상은 주는 사람들로부터 움직이기 시작한다고 말씀하셨다.

‘사업가 마인드’, ‘전략적 직관’ 같은 세련된 표현은 아버지와 어울리지 않을지 모른다. 다만 오늘 운전사가 딸린 차를 타다가도 내일은 토큰 하나 들고 나갈 수 있는 사람, 출장비가 부족하다면 바나나 한 다발로 3일을 버틸 수 있는 강인한 정신 그 자체가 아버지였다.

이제 70대 중반에 접어든 아버지는 이전보다 체력이 떨어지셨다. 그래도 일이 있다면 여전히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움직이려고 하신다. 그냥 말고 ‘재벌’이 될 듯이. 언젠가 아버지가 취중에 말씀하셨다. “난 죽는 순간까지 일하는 게 소원이다. 그리고 재벌이 될 거다.”

큰 꿈을 가진 아버지의 가족들은 사실 좀 힘들기는 하다. 그런데 누가 아버지의 꿈을 허황되다고 이야기할 수 있을까. 여전히 정정하신 아버지가 혹 이 글을 읽게 될지도 몰라 한 말씀만 드리고 싶다. “아버지, 이제 어머니를 위해 배짱을 조금만 줄여 주세요.”

유덕현 에듀케이시아 대표

한양대 자원공학과를 졸업한 뒤 고려대에서 경영학 석사를 받았다. 지난 2000년 글로벌 기업을 대상으로 경영 교육과 기업 교육 컨설팅 서비스를 담당하고 있는 에듀케이시아 한국지사를 설립했다. 현재 삼성그룹·현대기아차그룹·삼성화재·우리투자증권 등 다수의 사내 교육 과정을 맡아 진행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