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ff business 제 747호 (2010년 03월 29일)

방송사 vs 통신사 ‘주도권 잡기’ 빅뱅

기사입력 2010.03.26 오후 02:28

최근 미국의 통신 회사인 버라이존커뮤니케이션스(이하 버라이즌)가 미식축구 리그인 NFL과 공식 후원 계약을 했다. 계약 조건은 4년간 7억2000만 달러(약 8170억 원)를 지불하는 ‘매머드급’ 후원이다.

이 계약을 두고 NFL 내부에서 논란이 벌어졌다. 이 계약이 기업과 리그 간의 일반적인 후원 관계를 뜻하는 ‘스폰서십’ 계약인지, NFL 경기를 중계할 수 있는 ‘미디어 권리’ 계약인지 불분명하다는 것.

미국의 프로스포츠 리그들은 기업들과 계약할 때 돈만 들고 온다고 무조건 받아들이지 않는다. 후원 기업들의 영역을 철저히 분류해 경쟁 기업들을 동시에 받지 않는 것이 원칙이다.

예를 들어 공식 후원 자동차 회사로 현대자동차가 선정되면 도요타나 혼다·크라이슬러 같은 경쟁 자동차 회사는 해당 리그와 계약할 수 없다. 그래서 후원 기업들은 독점적인 마케팅 권한과 지위를 부여해 주는 대가로 거액을 지불한다.

‘미디어 권리 계약’은 스폰서십 계약과는 차원이 다르다. 스폰서십 계약은 고작해야 NFL의 로고를 기업 브랜드에 넣거나 노출하는 수준에 그치지만 ‘미디어 권리’는 NFL의 경기 내용, 즉 고유의 ‘콘텐츠’를 이용해 수익을 창출한다.

미국 통신회사 버라이즌이 NFL과 4년간 7억2000만 달러라는 매머드급 후원 계약을 했다.

미국 통신회사 버라이즌이 NFL과 4년간 7억2000만 달러라는 매머드급 후원 계약을 했다.

NFL은 지난 2003년부터 계약해 온 통신 회사 스프린트와의 계약이 종료되면서 그 자리에 같은 통신 회사인 버라이즌을 택했다. 즉, 버라이즌은 ‘스폰서십’이라는 카테고리 내에 있는 공식 통신 회사 영역이라는 얘기다.

그러나 버라이즌은 미국 내 통신 회사로 3위에 처져 있는 스프린트와 달리 가입자 수로 AT&T와 1, 2위를 다투는 거대 회사다. 버라이즌이 NFL과 초대형 계약을 한 배경에는 가입자들에게 NFL 경기를 중계하기 위한 목적이 더 크다.

계약 조건에 NBC의 일요일 미식축구 중계 경기와 NFL의 자체 채널인 ‘NFL네트워크’가 중계하는 경기를 버라이즌 가입자들에게 전송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받은 점이 이를 뒷받침한다. 이와 함께 버라이즌이 운영하는 IPTV인 ‘FiOS TV’를 통해 NFL의 일요일 경기 하이라이트를 방영할 수 있게 됐다.

버라이즌은 이에 따라 방송을 제외한 휴대전화와 인터넷상에서 NFL를 중계할 수 있는 권리를 차지한 셈이 된다. 단순한 후원 계약이 아니라 ‘콘텐츠’를 사가는 계약 형태를 띠게 된 것이다. 휴대전화 시장에서 갈수록 비디오 콘텐츠 비중이 커지고 있는 점을 감안할 때 버라이즌은 이 계약을 발판으로 AT&T와의 가입자 확보 전쟁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령했다.

NFL은 버라이즌을 ‘스폰서십’ 카테고리 대신 콘텐츠 거래와 관련 있는 ‘미디어’ 카테고리로 분류하면 더 큰 수익을 얻어낼 수 있다. 실제로 4년에 7억2000만 달러는 방송사를 제외하고 일반 기업과 맺은 계약으로는 가장 비싼 금액이다.

이전 계약사인 스프린트는 5년에 6억 달러를 지불했다. 하지만 이번 계약이 기존 계약 관계에 있는 5곳의 TV 파트너들의 권리를 침해할지 여부는 아직 증명이 안 됐다.

콘텐츠 산업 몸값 급등

NFL를 중계하는 방송사가 휴대전화를 이용하는 경우는 이미 진행 중이다. NFL 경기를 디지털 위성방송으로 서비스하는 ‘디렉TV(DirecTV)’는 지난해부터 휴대전화를 통해 10분짜리 하이라이트를 보여주는 서비스를 선보여 큰 성공을 거두기도 했다.

앞으로 통신 회사와 프로스포츠 리그의 콘텐츠 계약은 방송사와 통신 회사 간 경쟁으로 번질 수 있다. 머지않아 통신 회사들이 콘텐츠를 확보하기 위해 네트워크 방송사들과 경쟁을 펼쳐 중계권을 따낼 수 있는 상황도 배제할 수 없다.

디지털 기술 발달에 따른 ‘방송과 통신의 컨버전스(융합)’라는 새로운 미디어 환경은 스포츠 중계 시장 판도에 큰 변화를 초래하고 있다. 이는 앞으로 방송사와 통신사 간의 ‘콘텐츠 확보 전쟁’을 예고한다.

콘텐츠는 비단 스포츠 중계나 드라마·영화 등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무궁무진하다. 방송사와 통신사들의 경쟁 구도는 ‘콘텐츠 산업’을 새로운 수익원으로 부상시킬 것이 분명하다. 통신 관련 업체나 방송 프로그램 제작 업체가 아니더라도 기업들은 자사의 브랜드를 알리고 마케팅에 활용할 수 있는 콘텐츠를 개발하려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다.

마이애미(미 플로리다 주)= 한은구 한국경제 기자 toha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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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일시 : 2010-04-01 14: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