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리콜’ 시대의 도래

한번 고전이면 영원히 고전 취급을 받던 시대는 지났다. 이제 널리 고전으로 인정되던 작품마저 고전 반열에서 순식간에 빠질 수 있는 ‘고전 리콜’ 시대를 맞이하게 된 것이다. 21세기 젊은 세대가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읽을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면 천하의 셰익스피어나 괴테라도 고전 대가의 반열을 유지할 이유가 없다는 인식이 퍼지면서 새 시대에 맞는 고전 재선정 작업이 야심차게 추진되고 있기 때문이다.
Besucher betrachten am Freitag, 19. Mai 2006, in Berlin eine von der Initiative "Deutschland - Land der Ideen" aufgestellte Plastik, die einen Stapel Buecher namhafter deutscher Schriftsteller darstellt. Insgesamt sechs Plastiken wurden in der Hauptstadt als ein "Walk of Ideas" als Imagekampagne zur Fussballweltmeisterschaft aufgestellt. (AP Photo/Jan Bauer) ---Visitors look at a sculpture erected by the initiative "Germany - Land of Ideas", depicting piled up books by German writers, in Berlin on Friday, May 19, 2006. The initiative set up six sculptures to form a "Walk of Ideas" as an image campaign for the upcoming Soccer World Cup. (AP Photo/Jan Bauer)
Besucher betrachten am Freitag, 19. Mai 2006, in Berlin eine von der Initiative "Deutschland - Land der Ideen" aufgestellte Plastik, die einen Stapel Buecher namhafter deutscher Schriftsteller darstellt. Insgesamt sechs Plastiken wurden in der Hauptstadt als ein "Walk of Ideas" als Imagekampagne zur Fussballweltmeisterschaft aufgestellt. (AP Photo/Jan Bauer) ---Visitors look at a sculpture erected by the initiative "Germany - Land of Ideas", depicting piled up books by German writers, in Berlin on Friday, May 19, 2006. The initiative set up six sculptures to form a "Walk of Ideas" as an image campaign for the upcoming Soccer World Cup. (AP Photo/Jan Bauer)
특히 시대를 대표하던 대작가의 위치가 위험해진 인물들은 20세기 현대 작가들로 집중되고 있다. 독일 일간 프랑크푸르터알게마이네차이퉁(FAZ)은 최근 21세기 현재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30대 젊은 작가들이 20세기를 대표하는 고전을 다시 선정하는 작업을 시작했다고 보도했다. 5월 초부터 독일 내에서 명망이 높은 신진 작가들을 중심으로 젊은 예술가들만의 시각으로 고전 목록을 다시 작성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동안 독일에선 괴테와 셰익스피어, 칸트 같은 오랜 세월의 시련을 이겨낸 ‘확고부동한’ 고전 외에도 토마스 만의 ‘마의 산’, 귄터 그라스의 ‘양철북’과 ‘고양이와 쥐’를 비롯해 하인리히 뵐, 사무엘 베케트, 어니스트 헤밍웨이, 가르시아 마르케스, 한나 아른트 등 20세기 유명 작가들의 작품이 20세기 고전의 표준으로 여겨져 왔다.

그러나 고전 선정 작업이 어떤 절대적인 기준이 있는 것도 아니고, 법적 제약이 있는 것도 아니어서 그동안 별 비판 없이 유지돼 왔던 고전 목록을 손봐야 한다는 목소리가 끊이지 않고 이어져 왔다.

특히 세대에 따라, 시대에 따라 기준이 바뀔 수 있는 점을 감안해 현대적 의미에서 ‘정전(正典)’을 새로 선정하는 작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젊은 작가 층을 중심으로 제기됐다. 결국 “새 술을 새 부대에 넣듯, 세대마다 필요로 하는 고전 작품도 다를 수밖에 없다”는 얘기가 일각의 목소리에 머무르는 차원이 아니라 일부 작가들이 나서 직접적인 실력 행사에 들어간 것이다.

FAZ는 “나이든 세대 사이에선 요즘 젊은이들이 책을 읽지 않는다는 불만의 목소리가 높은 게 사실”이라며 “그러나 사실은 젊은이들이 책을 읽지 않는 게 아니라 예전 세대와 다른 책을 읽고 있다는 게 좀더 정확한 표현”이라고 꼬집었다.

‘블랙리스트’, ‘살생부’에도 관심

이에 따라 과거에 읽지 않던 고대 문헌이라도 새 세대에겐 수많은 영감을 불러일으키는 고전으로 거듭나는 경우가 있는 것처럼 뉴 제너레이션의 구미에 맞는 새로운 정전 선택 작업이 첫발을 내디뎠다고 신문은 평가했다.

이번 고전 재선정 작업은 근본적으로 젊은 작가들이 지난세대의 결정에 반발하면서 출발한 것이기에 어떤 결과가 도출되는지에 따라 현재 문학계가 어떤 문학적 이상을 추구하는지 살펴볼 수 있기 때문이다.

FAZ는 “21세기 30대 작가들이 숭상하고, 열심히 읽는 20세기 소설들은 20세기 사람들이 좋아하던 작품과 거리가 있는 게 상당히 많은 것으로 분석됐다”고 전했다.

이미 젊은 전도유망한 작가들 사이에선 “21세기 시각에선 도저히 고전이라고 부를 수 없는 작품은 무엇일까”와 같은 질문이나 “20세기에는 인정받지 못했지만 이제는 고전 반열에 올려야 할 작품은 어떤 것이 있을까”와 같은 의문을 제기하는 경우가 많아진 상황이다.

특히 이번 젊은 작가들의 작업 결과 20세기에는 고전으로 추앙받던 작품 중 이미 문학적 수명을 다해 21세기 작가들이 눈길 한 번 제대로 보내지 않는 몰락한 고전들을 모아 놓은 ‘블랙 리스트’, ‘살생부’에 어떤 작품들이 선정될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이 같은 움직임에 대해 FAZ는 “시대를 대표하는 고전 작품을 선정하는 것은 가장 아름다운 그림 100장을 뽑는 것이나, 가장 위대한 영화 100편을 정하는 것처럼 언제나 주관적이고 불확실한 작업”이라며 “새 시대에 맞는 고전 선정 작업 역시 가장 훌륭한 성형의사 10명을 선정하는 작업 못지않게 잡음과 이견이 속출하고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헤르만 헤세와 토마스 만, 귄터 그라스가 과연 20세기 독일 문학 대표 작품 목록에서 쫓겨날지, 만약 고전의 세대교체가 이뤄진다면 어떤 작품들이 선대의 대작을 대신할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김동욱 한국경제 국제부 기자 kimd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