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종 셰프의 상징 현정

[Professional Life] "유학 대신 현장 공부 통해 맛을 배웠죠"
명문대 출신도, 해외 유학파도 아니다. 오직 밑바닥에서부터 묵묵히 갈고닦아 온 요리 솜씨만이 전부인, 그래서 많은 토종 셰프들의 희망의 상징된 이, 그가 바로 외식 그룹 SG다인힐의 총괄 수석 셰프 겸 R&D센터장인 현정(36) 셰프다.

언젠가부터 국내에도 이렇다 할 스타 셰프들이 많이 등장했다. 세계 유수의 요리 학교에서 배우거나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외국의 고급 레스토랑에서 경력을 쌓은 해외파 셰프들은 레스토랑의 맛을 책임질 뿐만 아니라 그 레스토랑의 홍보 전도사로도 톡톡히 역할을 하곤 한다.

요즘 SG다인힐의 총괄 수석 셰프인 현정 셰프에게 유난히 많은 관심이 쏠리고 있는 것도 바로 그래서다.

해외파 스타 셰프들이 많이 활약하고 있는 국내 요리계에서 이렇다 할 학벌도 없이, 외국에서 공부한 것도 아닌 그가 외식 그룹 SG다인힐의 맛을 책임지는 총괄 수석 셰프이자 연구·개발(R&D)센터장으로 취임한 것은 그야말로 이례적이라고밖에 말할 수 없으니 말이다.

그 때문에 혹자들은 그가 혹시 SG다인힐 본사와 어떤 특별한 인연이 있는 건 아닌지 의심의 눈길을 보내는 이들도 있을 정도다.

무명에서 외식 그룹의 총괄 셰프로 

하지만 그건 오직 요리에 반해 지난 세월 동안 꾸준히, 그리고 묵묵히 요리의 길을 걸어온 그의 노력을 몰라서 하는 얘기다.

“할 수만 있었다면 저도 유학을 갔겠죠. 더 많이 배우고 공부할 수 있는 기회를 누가 마다하겠어요. 하지만 유학을 갈 수 있는 형편이 아니었기 때문에 현장에서 더 많은 것을 배우고 익히려고 노력했죠.”

그에게 스승은 주방에서 만나는 많은 선배들이었다. 그에게 스승은 요리의 맛에 즉각적으로 ‘좋다, 싫다’ 반응하는 레스토랑의 손님들이었다. 그에게 스승은 주방에서 설거지할 때조차 손님들이 접시에 남긴 요리를 맛보며 어떤 요리를, 어떤 맛을 선보여야 하는지 고민했던 그 시간들이었다.  

“어릴 때부터 원래 공부에는 취미가 없었어요. 그런데 요리는 아무리 공부해도 질리지가 않더라고요.”

요리의 꿈을 처음 키운 순간부터 그랬다. 작은 경양식당을 운영하던 친구네 집에 놀러가 친구의 아버지가 돈가스를 튀기고 수프를 만드는 모습을 본 순간부터 자꾸만 요리에 마음이 끌렸다.

기능대학에서 양식 요리를 배운 후 주방에 취업하지 않고 첫 직장으로 요식업 컨설팅 회사를 택한 것도 요리와 관련된 여러 가지 일을 배우고 싶다는 욕심에서였다.

“월급 이상으로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었던 기회였어요. 실무 지원을 하다 보니 주방의 동선 시스템, 직원들을 트레이닝하는 법, 레스토랑 운영에 관해 다방면으로 배울 수 있었죠.”

본격적으로 주방에서 일하기 시작한 이후에는 한눈 한 번 팔지 않고 오직 요리만 생각하는 나날들의 연속이었다. 선배들의 솜씨를 어깨너머로 보며 자신의 솜씨를 갈고닦던 그 시절, 한창 스스로의 요리 솜씨에 자신이 붙어가던 그때 그에게 작은 위기가 닥쳤다.

“아마 2000년 무렵이었을 거예요. 꼼짝도 못한 채 그저 몇 개월 동안 누워 있을 수밖에 없었죠.” 그저 다 포기하고만 싶었다. 아직도 가야 할 길이 너무나 먼 햇병아리 요리사인데, 젊은 나이에 허리까지 다치고 보니 요리를 계속 하고 싶은 생각조차 사라져버리고 말았다.

“그만두려고 했어요. 다 그만두고 그냥 내 몸이나 추스르자. 그렇게 생각했는데 주위에서 가만 놔두질 않더라고요.” 주방에서 함께 일하는 동료들이, 주방의 선배들이 그의 솜씨를 아까워했다. 포기하지 말라며 격려해 주었고 허리 병에 용한 병원을 앞 다퉈 소개해 주기도 했다.

“그런 모습들을 보니 고맙기도 하고, 내가 전혀 쓸모없지는 않았구나 싶기도 하고. 그만두는 게 너무 아까워지더라고요(웃음).”

다시 주방에 서고 싶다는 욕심을 가지게 됐고 허리가 나은 후에는 더 많이 더 열심히 요리 공부를하기 시작했다. “유학을 가지 않는 대신 유학 간 사람들보다 더 많이 공부하려고 애썼어요. 외국 서적들을 사서 직접 번역해 가며 공부하기도 했고 요리의 트렌드를 분석하고, 더 많이 사랑받을 수 있는 메뉴 고안이나 재료 선별을 위한 공부도 많이 했죠.”

자신만의 재료, 자신만의 메뉴를 고안하기 위한 노력도 아끼지 않았다. 그 덕분에 일하던 주방에서 한두 가지씩 본격적인 메뉴를 담당하게 됐고, 이후로는 점차 ‘독특한 방식의 신선한 메뉴를 선보이는 젊은 요리사’로 입소문을 타기 시작하며 본격적으로 셰프로서의 자질을 쌓아 나갔다.

2008년, 스시&그릴 레스토랑인 ‘퓨어 멜랑쥬’와 와인&사케 비스트로인 ‘메자닌’ 등을 운영하던 삼원가든의 외식 그룹 SG다인힐에서 새로운 레스토랑 브랜드 론칭 책임자로 그를 선택하게 된 것도 ‘기본을 지키되, 언제나 틀에 갇혀 있지 않은 신선한 발상의 셰프’로서의 그에게 주목했기 때문이다.

그 후 2년, 현 셰프는 그동안 4개의 레스토랑 브랜드 론칭을 성공적으로 이끌어냈다. 이제는 명실상부한 SG다인힐의 대표 브랜드로 떠오른 컨템퍼러리 이탈리아 레스토랑 ‘블루밍가든’을 비롯해 론칭 2년여 만에 레스토랑 평가서인 ‘블루리본 서베이’가 ‘2010 자기 분야 최고의 레스토랑’으로 선정한 파인다이닝(Fine dining) 레스토랑 ‘부띠끄 블루밍’, 이탈리아 타파스 레스토랑인 ‘봉고’ 등을 비롯해 최근에는 수제 햄버거 브랜드인 ‘패티패티’ 등이 모두 그의 작품이다.

신선한 성게알과 부드럽고 달콤한 로제소스로 풍미를 더한 ‘성게알 로제 파스타’나 꽃게 한 마리가 통째로 들어 있는 ‘꽃게 로제 파스타’처럼 간단한 파스타 메뉴 하나에도 톡톡 튀는 그만의 개성과 아이디어를 듬뿍 담아 선보였다.

그 덕분에 그가 론칭한 각 브랜드들은 저마다 입소문을 통해 ‘꼭 가봐야 할 레스토랑’으로 자리 잡기 시작했고 그 결과 4개 브랜드, 총 9개 레스토랑 매장의 연매출만 해도 약 140억 원을 기록할 정도가 됐다.

“인기 비결이라면 특별한 건 없는 것 같아요. 다만 좋은 재료, 그 재료의 맛을 가장 잘 살린 신선한 메뉴, 그 메뉴를 편하게 즐길 수 있는 쾌적한 분위기, 쾌적한 분위기를 위한 청결 등에 각별히 신경 썼을 뿐이죠.”

기본에 충실하면 최고가 될 수 있다

말은 이렇게 하지만 실상 그가 손대는 일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지난 4월 말 문을 연 ‘SG다인힐 R&D센터’의 센터장으로 취임한 후에는 SG다인힐의 모든 외식 브랜드에 대한 메뉴 개발을 총괄하게 돼 더욱 더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각 레스토랑 브랜드마다 개성을 살릴 수 있는 메뉴 개발은 물론 식자재 선별에서부터 맛 테스트, 주방의 동선 시스템 점검에 이르기까지 그야말로 1인 4역, 5역을 담당한다.

새로운 매장을 오픈하는 일과 새로 생긴 매장의 주방에서 몸소 활약하며 전체 매장에 활력을 불어넣는 일 또한 그의 몫이다.

100여 명에 달하는 각 레스토랑의 주방 스태프들, 셰프들과의 조화를 통해 전체 레스토랑이 원활하게 움직일 수 있도록 하는 일, 테스트 키친을 운영하며 또 각 브랜드에 맞는 메뉴를 고안하고 재료를 찾기 위해 세계 곳곳을 누비고, 각 매장별로 매번 새로운 메뉴에 대한 프로모션을 고안하고 진행하는가 하면, 봄여름·가을겨울 시즌별로 메뉴판을 리뉴얼하는 것도 그의 주요 업무 중 하나다.

“맡은 역할이 큰 만큼 어깨가 무겁죠. 토종 셰프라고 더 많이 주목하니까 부담도 많이 되고요. 하지만 기본에 충실하게 하나하나 해야 할 일에 최선을 다한다면 분명 더 많은 분들이 제 요리를, SG다인힐이 선보이는 다양한 맛의 세계를 인정해 주실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라도 지금까지처럼 노력을, 최고의 맛을 선보이고 싶다는 꿈을 버리지 않을 생각입니다.”

약력 : 약력: 1974년생. 98년 정수기능대학 졸업. 2003~2008년 본 뽀스토(청담동) 셰프. 2008년 SG다인힐 외식그룹 컨템퍼러리 이탈리아 레스토랑 ‘블루밍 가든’ 론칭. 2009년 이탈리아 타파스 ‘봉고’ 론칭. 2010년 수제 햄버거 브랜드 ‘패티패티’ 론칭. 2010년 SG다인힐 R&D센터장 및 전체 브랜드 총괄 셰프(현).

김성주 객원기자 helieta@empa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