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자문 서비스의 진화

투자자문사는 어찌 보면 가장 원초적인 투자회사이면서도 가장 앞선 형태의 투자회사라고 볼 수 있다. 최인건 브레인투자자문 상무는 “투자자문사는 시장 대비 고성과를 노리는 뮤추얼 펀드와 ‘절대 수익’을 추구하는 헤지 펀드의 중간 단계”라고 설명했다.

금융 선진국인 미국 역시 주식시장 형성기에는 개인 투자자들이 직접 종목에 투자하는 형태가 대다수였다. 이후 몇 명의 개인들의 돈을 모아 투자하는 사모 펀드나 아예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 회사의 형태로 투명하게 운용하는 하는 뮤추얼 펀드, 즉 일반인들이 알고 있는 ‘펀드’ 시장이 커지면서 주식시장이 급성장하기 시작했다.

이 단계를 지나 펀드나 개별 주식 투자를 통해 돈을 번 자산가들이 일정 정도의 수익률을 보장하는 헤지 펀드를 자산 포트폴리오의 하나로 선택하면서 헤지 펀드 업계의 성장세가 두드러졌다. 현재 미국 시장은 개별 주식 투자, 뮤추얼 펀드, 헤지 펀드가 물고 물리며 시장의 발전을 견인하고 있다. 아직 헤지 펀드가 허용되지 않은 국내에서는 투자자문사가 이 역할을 대신하고 있다.

투자자문사가 운용하는 펀드는 자산운용사가 운용하는 펀드와 성격이 좀 다르다. 자산운용사가 운용하는 펀드는 대부분 국내 주식 및 채권형, 해외 주식 및 채권형 등 어떤 명확한 콘셉트를 가지고 있다.

더욱이 이 같은 콘셉트는 법률에 의해 정해져 있기 때문에 이 테두리를 벗어날 수 없다. 하지만 투자자문사가 운용하는 펀드는 운용자에 좌지우지된다. 고객이 맡긴 돈을 운용자의 철학이나 판단에 따라 주식 편입 비율을 0~100%로 마음대로 조정할 수 있다.

또 일반 펀드는 펀드 내에서 특정 종목을 10% 이상 가질 수 없도록 돼 있다. 그러다 보니 다양한 종목으로 펀드를 구성할 수밖에 없다. 즉, 규모가 커지면 커질수록 주식시장의 평균수익률과 함께 움직이는 인덱스 펀드와 비슷하게 운용되는 것이다. 하지만 투자자문사가 운용하는 펀드는 여기에 대한 제한이 없다. 필요하다면 한 종목에 ‘몰빵’도 가능하다.

회사마다 개성 뚜렷해
[투자자문사 '빅뱅'] 소액 투자 ‘쑥쑥’…증시 메이저 ‘부상’
자산운용사와 투자자문사의 비즈니스 모델도 좀 다르다. 자산운용사는 펀드에서 떼는 수수료를 중심으로 운용되는 반면 투자자문사는 수수료는 물론 인센티브가 큰 비중을 차지한다.

투자자문사는 주로 회사의 오너인 운용자의 투자 철학이 절대적이다. 이 때문에 대다수가 비슷한 형식으로 운영되는 자산운용사와 달리 자문사의 운용 스타일도 매우 개성적이다.

업계 관계자들은 투자자문사를 자금의 성격에 따라 세 부류로 구분한다. 첫째, 주로 연금이나 기관 등의 돈을 주로 운용하는 회사다. 주로 코스모투자자문·한가람투자자문·피데스투자자문 등 업계에서 규모가 크고 역사가 오래된 자문사들을 뜻한다.

둘째, 오너 및 소수의 개인 자산가의 돈을 위주로 운용하는 회사다. 아크투자자문이나 브이아이피투자자문이 여기에 속한다.

셋째, 랩어카운트 등의 소매, 즉 비교적 소액 자산가의 자금 운용에 특화된 회사들이다. 브레인투자자문과 케이원투자자문이 이 부류에 속한다. 두 회사 모두 설립된 지 1~2년밖에 되지 않았지만 랩어카운트 시장 성장을 이끌며 현재 자금 운용 규모가 1조 원을 훌쩍 넘어섰다.

물론 투자자문사가 애초에 개인 고액 자산가 시장을 위해 만들어진 만큼 어떤 투자자문사라도 3억~5억 원 정도의 투자 자금을 가지고 방문하면 ‘대환영’한다. 다만 기관이나 연금 자금은 회사 스타일에 따라 호불호가 갈린다.

민후식 파인우드투자자문 대표는 “액수가 적게는 수백억 원에서 많게는 수천억 원에 이르니 회사 규모를 키우고 시장의 신뢰를 얻을 수 있는 효과가 있다”면서도 “하지만 수수료나 인센티브 비중이 낮고 ‘간섭’이 많아 운용자의 철학에 따른다는 애초의 의도가 흐려질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민 대표는 “더욱이 수익률이 나빠 기관 등에서 한꺼번에 돈을 빼면 회사 자체가 휘청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몇몇 투자자문사는 국민연금에 의존하다가 국민연금이 투자금을 회수하면서 주인이 바뀌는 비운을 맞기도 했다.

2007년 말 73개에 불과했던 전업 투자자문사는 2010년 3월 기준으로 117개까지 늘어났다. 현재도 20~30개의 신규 투자자문사가 설립을 준비 중으로 알려져 있다. 이처럼 투자자문사의 수가 빠르게 늘어나고 있는 이유는 금융 소비자와 공급자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기 때문이다.

대표이사의 역량이 가장 중요

먼저 금융 소비자의 경우 지난 금융 위기로 펀드 상품이 휘청거리면서 투자자문사에 눈을 돌리게 됐다. 일정한 룰이 있는 일반 펀드 상품은 아무리 운용을 잘해도 시장 상황을 뛰어넘기 힘들다.

하지만 투자자문이 운용하는 펀드나 랩어카운트 상품들은 운용만 잘하면 위기를 그리 어렵지 않게 헤쳐갈 수 있다. 민 대표는 “금융 위기 시작 당시 거액의 돈을 맡긴 고객이 있었다. 아무리 봐도 주식 시장에서 수익 내기는 어려울 듯했다.

채권 상품에 대부분을 투자하고 나머지 20~30%를 SK텔레콤이나 KT&G 같이 배당이 많고 변동성이 적은 주식에 투자했다. 결국 금융 위기를 무난히 넘겼다”고 말했다. 즉, 금융 투자에 밝은 소비자들이 ‘알아서’ 자산 포트폴리오 중 하나로 투자자문사에 돈을 맡기고 있는 것이다.

특히 여러 명이 운용하는 펀드와 달리 투자자문사는 책임 소재가 명확하며 거의 실시간으로 운용에 대한 보고를 받을 수 있는 것도 투자자문의 매력이다.

투자자문사를 이끄는 사람들, 즉 서비스 공급자의 대부분은 증권사 애널리스트나 마케팅 담당 직원 혹은 자산운용사의 펀드매니저들이다. 물론 큰 규모의 자금을 가지고 있는 자산가가 투자자문사를 설립하기도 하지만 실무진은 모두 자산운용사나 증권사 출신이다.

한 증권사 애널리스트는 “요즘 술자리에서 우리도 자문사 한번 차려보자는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며 “큰 조직에서 이것저것 신경 쓰기보다 열심히 노력해서 대가를 제대로 받을 수 있는 게 자문사”라고 말했다.

그는 “웬만큼 시장에 알려진 사람이 자문사를 열면 어렵지 않게 300억 원은 모을 수 있다”며 “쉽게 말해 100%만 수익을 거두면 애초 절대 수익으로 약속했던 10%를 제외하고 270억 원이 남는다.

이 가운데 10%만 인센티브로 가져가도 27억 원이나 된다”고 말했다. 현재 투자자문사는 적게는 3~4명에서 많아야 20명 안팎이 근무하며 인건비 비중은 70~80% 수준이다.

또 다른 펀드매니저는 업계의 고민과 자문사의 성장을 연결시켰다. 즉, 국내 자본시장 구성원의 조로화(早老化)도 자문사 성장에 한몫한다는 것이다. 그는 “2005~2006년 펀드 시장이 급성장하면서 많은 새내기 펀드매니저들이 시장에 진입했다.
[투자자문사 '빅뱅'] 소액 투자 ‘쑥쑥’…증시 메이저 ‘부상’
현재 대부분의 펀드매니저들은 30대 중반에 불과하다. 이에 따라 카운터파트인 애널리스트들의 연령도 크게 낮아졌다”고 설명했다. 이 때문에 40대에만 들어서도 ‘앞으로 무얼 해야 하나’라는 고민에 빠지게 됐다는 것이다.

그는 “증시에서 경험이라는 요소도 무시하지 못한다”면서 “결국 오랜 기간 시장 경험을 한 내공 있는 매니저나 스타 애널리스트들의 새 일터로 자문사가 떠오르고 있다”고 말했다.

물론 증권사에서도 랩어카운트의 성장을 즐거워하고 있다. 일단 랩은 특히 인센티브가 높다. 증권사 수익에 도움이 되는 것이다. 또한 명성 있는 자문사의 운용 노하우를 쉽게 흡수할 수 있다. 쉽게 말해 랩어카운트의 운용 보고서만 봐도 자문사가 어떤 종목에 어떻게 투자하는지 알 수 있다.

이를 기반으로 증권사 내 운용팀이나 계열 자산운용사에 자문사의 운용 방식을 전수하는 형식이다. 실제로 많은 자산운용사 및 증권사들이 투자자문사 설립을 준비 중에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몇몇 증권사는 아예 내부 자산운용팀을 없애고 자문사에 외주를 주는 사례도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이홍표 기자 hawlli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