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비즈니스·MASOK 공동기획⑧ - 양재현 아벤트코리아 사장

양재현 아벤트코리아 사장은 LG생활건강에서 잔뼈가 굵은 마케터 출신 최고경영자(CEO)다. 1975년 LG생활건강(당시 락희화학) 생산관리 부서에서 직장 생활을 시작한 후 마케팅·영업·생산 등 회사 핵심 부서의 임원을 두루 거쳤다.

양 사장이 아벤트코리아 대표이사를 맡은 것은 2005년. 아벤트코리아는 유아와 산모를 위한 각종 용품을 판매하는 기업이다. 참고로 아벤트는 영국의 젖병·젖꼭지 브랜드다. 지금은 사업 영역을 넓혀 자체 브랜드가 더 많아졌다.

이 회사의 주력 브랜드는 ‘아벤트(AVENT)’를 비롯해 ‘라스깔라(LA SCALA)’, ‘스킨베리(SKINVERY)’, ‘쏭레브(SON REVE)’ 등이다. 특히 ‘쏭레브’는 임산부를 위한 화장품 브랜드로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아벤트코리아는 양 사장이 대표로 취임할 때만 하더라도 회생이 불가능하다는 소문이 업계에 나돌 정도로 회사 형편이 어려웠다. 그의 회고다. “매출액 100여억 원에 수익률은 매출액 대비 0.5% 수준에 불과했어요. 무엇보다 연평균 직원 이직률이 42%에 달했지요. 자신감을 잃은 직원들은 자포자기 상태에 빠져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가 대표로 취임한 후 회사는 기사회생했다. 지난해 매출액 250여억 원에다 수익률은 8%까지 올랐고 직원의 이직률도 3% 수준으로 뚝 떨어졌다. 더구나 브랜드 마케팅에 성공하면서 유아용품 시장에서 아벤트코리아의 제품은 프리미엄급으로 대접받고 있다. 이는 ‘마케팅 컴퍼니’를 지향하는 양 사장의 35년 노하우가 빚어낸 결과물이라는 것이 회사 안팎의 평가다.
[마케팅 고수의 비밀노트] “5가지 착각서 벗어나고 모험 즐겨라”
브랜드 콘셉트의 일관성 유지해야

‘마케팅 고수’ 양 사장이 제시하는 비밀 노트는 첫 장부터 독특하다. 그의 첫마디는 “착각하지 말라”는 것이다. 뭘 착각하지 말라는 얘기인가. 그는 ‘마케터들이 범하기 쉬운 5가지 착각’을 꼽으면서, 우선 “여기에서 벗어날 때 성공이 어렴풋이나마 보인다”고 했다.

첫 번째 착각은 신제품 출시를 전가의 보도로 여긴다는 것이다. 마케터는 업무 특성상 늘 스트레스에 시달린다. 매출과 시장점유율 추이에 예민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성공하는 브랜드가 그리 많은 것도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대개 신제품 출시로 새로운 돌파구로 찾는다는 것이다. 양 사장은 “기존 브랜드 관리도 제대로 하지 않으면서 신제품 출시에 매달리는 것은 신기루를 좇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강조했다.

둘째, 소비자 조사 결과를 지나치게 신뢰하는 것도 착각이라고 꼬집었다. 조사 결과는 그저 통계일 뿐, 관점에 따라 해석이 달라질 수 있다는 설명이다. 그런데도 조사 결과를 앞세우는 것은 다른 목적이 있다는 것이다. 마케터 본인이 자신감을 갖기 위한 것이거나 윗사람을 설득하기 위한 자료로 활용하려는 의도인 경우가 적지 않다고 지적했다.

셋째, 광고비 및 판촉비 지원이 부족해 실패했다는 판단도 착각이라는 것. 양 사장은 “2등 브랜드가 성과를 내기 위해서는 1등 브랜드보다 1.5~2배의 투자가 필요한데, 그걸 지원해 주는 회사는 거의 없다”고 잘라 말했다.

넷째, 마케터 자신은 잘했는데 영업 부서 등이 잘못해서 일이 틀어졌다는 생각도 착각이라고 단정했다. 양 사장은 “훌륭한 마케터는 영업 부서가 미흡해도 판매가 잘될 수 있도록 좋은 전략으로 소비자를 유인할 줄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운이 없었다”는 착각도 버려야 한다고 못 박았다. 물론 운이 없을 수도 있지만 대다수는 테마나 타이밍이 맞지 않았기 때문에 생긴 문제라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착각하지 말라는 것은 현실을 직시하라는 의미다. 그 다음에는 전진해야 한다. 그런데 요즘 젊은 마케터들이 너무 얌전한 데다 주변 눈치를 지나치게 본다는 것이 양 사장의 생각이다.

치열한 경쟁에서는 차별화된 마케팅이 필요한데, 그러기 위해서는 “모험을 즐겨야 한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이런저런 눈치를 보면서 원하는 바를 성취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양 사장은 1990년대 말 LG생활건강 마케팅 임원으로 일할 때의 경험담을 들려줬다. 당시 LG생활건강은 국내 샴푸 시장을 장악하고 있었다. 시장점유율이 50%를 넘나들 정도였다. 그러나 P&G의 ‘비달사순’ 등 외국계 브랜드의 공격으로 견고했던 아성이 무너져 내렸다.

시장점유율은 31%로 뚝 떨어졌다. 위기에 처한 LG생활건강은 별도의 팀을 만들어 대반격에 나설 신제품 개발에 나섰다. 그 결과 나온 제품이 ‘엘라스틴’ 샴푸였다.

그는 공격적인 마케팅 전략을 수립했다. 일류 모델 3명을 주인공으로 한 3편의 CF를 만들어 여러 방송사에서 동시에 내보내겠다는 것이었다. 이영애·전지현·이승연 등 인기 절정의 여배우 3명을 섭외해 촬영까지 마쳤다.

하지만 주변의 반대가 만만치 많았다. 지나치게 파격적이라는 것이었다. CEO도 결재 도장을 찍지 않았다. 결국 양 사장은 광고 모델이었던 이영애 씨와 함께 기습적으로 사장실을 방문해 끝내 결재를 받아냈다. 그렇게 출시한 ‘엘라스틴’이 히트를 치면서 글로벌 기업들의 공세를 거뜬히 막아낼 수 있었다는 것이다.

브랜드가 회사의 소중한 자산이 되기 위해서는 소비자들의 지속적인 사랑을 받아야 한다. 소비자가 브랜드를 선택하는 것은 브랜드 철학이나 콘셉트에 우호적인 반응을 보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마케터가 바뀔 때마다 콘셉트가 달라지는 경우가 적지 않다.

양 사장은 “콘셉트를 바꿀 때마다 추가 비용이 들어가는 것은 물론 콘셉트가 자꾸 바뀌면 소비자들이 혼란스러워 한다”며 “마케터가 바뀌더라도 브랜드 철학이나 콘셉트는 일관성을 유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중소기업 마케터는 대기업 마케터에 비해 모든 면에서 어려울 수밖에 없다. 인지도·노하우·시스템·자금력·유통망 등이 달리기 때문이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을 경험해 본 양 사장은 어떻게 생각할까.

“가장 어려운 게 인적자원의 부족입니다. 그렇다고 뛰어난 인재를 유치하기도 어렵습니다. 결국 잠재력이 있는 사람을 발굴하고 집중적으로 육성해야 합니다. 중소기업 CEO는 인재 육성에 올인해야 합니다.”

양 사장은 내년부터 아벤트코리아의 사업 영역을 유아와 산모 중심에서 일반 소비자로 넓힐 계획이다. 매출액 1000억 원대 기업으로 성장시키겠다는 복안이다. “그동안 충분한 시간을 갖고 크게 성장할 수 있는 기반을 닦았습니다. “이젠 도약할 일만 남았습니다.” 부드러운 그의 눈빛 속에 자신감과 열정이 단단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돋보기후배들을 위한 Tip

“뭐든지 깊이 파고들어라”

양재현 사장은 후배들을 위한 팁으로 4가지를 강조했다. 우선 “마케터로 일한다는 것을 행운으로 생각하라”는 것이다. 그 이유가 재미있다. “마케팅은 자신의 생각을 자기 돈을 한 푼도 들이지 않고 마음껏 전개해볼 수 있는 권한을 가졌습니다. 행복한 일이죠.”

둘째, 뭐든지 깊이 파고들라고 조언했다. 양 사장은 “요즘 젊은 사람들이 마케팅 하는 것을 보면 너무 피상적인 것 같다”고 지적했다.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쉬운 방법만 찾는다는 것이다.

셋째, 일과 중 3분의 1은 공상하거나 노는 것이 현명하다고 말했다. “마케터는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데다 일에 파묻히다 보면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나올 수 없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열정을 가져라”라고 부탁했다.

양 사장은 “담당하는 브랜드가 잘못되면 인생이 잘못된다는 생각을 가져야 한다”며 “요즘 젊은 마케터 중엔 일처리를 대충대충 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고 꼬집었다. 하는 일에 ‘미쳤다’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최선을 다해야 원하는 성과를 낼 수 있다는 것이다.


약력 : 1949년생. 76년 부산대 화공학과 졸업. 75년 LG생활건강에 입사해 생산·기획·상품개발·영업·마케팅 등 다양한 부서를 거쳐 2005년 12월 아벤트코리아 대표이사로 취임했다.

권오준 기자 j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