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브 워즈니악 미래를 말하다

두 명의 젊은이가 있다. 20대 초반 대학 휴학생과 중퇴생. 은행 계좌도 없고 돈을 빌릴 친척도 없다.

잘나가는 대기업은 이들의 아이디어를 외면했다. 어렵게 주문을 따냈지만 부품 살 돈이 막막하다.

이들을 이끈 것은 ‘세상을 바꿀 제품을 만들었다’는 확신뿐이다. 1976년 애플의 창업 스토리다.

비좁은 차고에서 탄생한 이 회사는 세계에서 가장 가치 있는 기업이 됐다. 이 놀라운 성공 신화의 주인공 스티브 워즈니악(62)이 한경비즈니스의 초청으로 3박 4일 동안 방한해 한국 젊은이들과 만났다.

그는 “자신의 고유한 생각을 믿고 과감하게 도전하라”고 조언했다.

워즈니악은 5월 31일 한양대에서 열린 ‘캠퍼스 IT 콘서트’와 제주에서 열린 제주포럼 특별 세션

‘스티브 워즈니악과의 만남’에 잇따라 참석했다. 제주 행사에는 제주 지역 고등학생과 대학생 400여 명이 초청됐다.
[스티브 워즈니악] 한국 찾은 ‘IT 전설’, 3박4일 동행취재
스티브 워즈니악은…

스티브 워즈니악은 1950년 캘리포니아 샌호세에서 태어났다. 캘리포니아공대를 나와 록히드마틴에서 미사일 개발자로 일하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어려서부터 전자공학에 심취했다. 초등학교 때 과학 경진 대회를 휩쓸었고 아버지와 함께 햄(아마추어 무선사) 자격증을 따기도 했다. 아버지가 보는 공학 저널에서 최초의 컴퓨터 에니악(ENIAC)을 접하고 강한 인상을 받았다.

고등학교 때 자신만의 컴퓨터를 설계하기 시작했으며 이것이 이후 개인용 컴퓨터(PC) 애플Ⅰ개발로 이어졌다. 이 제품의 가능성을 알아챈 고등학교 5년 후배 스티브 잡스의 제안으로 1976년 애플을 창업했다. 당시 그는 버클리대를 휴학하고 휴렛팩커드(HP)에서 엔지니어로 일하고 있었다. HP는 PC를 만들자는 그의 제안을 다섯 번 거절했다.

1980년 애플이 제너럴모터스(GM) 이후 최대 규모 기업공개에 성공한 이듬해 경비행기 추락 사고로 머리를 다치고 한동안 기억상실증에 걸려 애플을 휴직했다. 이후 회사에 복귀하지 않고 버클리로 돌아가 중단했던 학업을 마쳤다. 1983년 클라운드9이라는 회사를 차려 통합 리모컨을 발명했고 2002년 자신의 애칭을 딴 ‘워즈’를 설립하기도 했다. 그는 록 콘서트 기획자로, 어린이 컴퓨터 교육 활동가로, 자선가와 강연자로 다채로운 삶을 살았다. 현재 데이터 스토리지 업체인 퓨전아이오의 수석 과학자를 맡고 있다.



취재=장승규·이진원 기자·김광현 한국경제 IT 전문기자·이재구 지디넷코리아 국제·과학 전문기자

사진=김기남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