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제 862호 (2012년 06월 13일)

넥센 히어로즈서 배우는 위기 극복 노하우

기사입력 2012.06.12 오후 08:46


한국에서 유례없는 독립 구단으로 탄생한 ‘서울히어로즈(옛 히어로즈프로야구단)’의 지난 4년은 험난했다. 빚쟁이들의 독촉에 시달리며 가족을 팔아 생계를 꾸려야 했던 고단한 날들의 연속이었다. 그러던 서울히어로즈가 부활의 조짐을 보이고 있다. 시즌 초반이긴 하지만 5월에 8연승을 기록하며 선두권을 지키며 4강행의 희망을 보여주고 있다. ‘죽도록 고생한 뒤의 극적인 성공’은 한국인이 좋아하는 스토리다. 실망이 깊었던 팬들에게는 2배의 기쁨이고 평소 관심을 갖지 않았던 사람들까지 서울히어로즈의 선전에 박수를 보내고 있다. 그 스토리는 또한 위기를 겪고 있는 기업들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지난 5월 29일 SK와이번스와의 경기에서 9회 말 동점을 만든 데 이어 10회 말 끝내기 안타로 역전승한 직후 기뻐하는 서울히어로즈 선수들.

지난 5월 29일 SK와이번스와의 경기에서 9회 말 동점을 만든 데 이어 10회 말 끝내기 안타로 역전승한 직후 기뻐하는 서울히어로즈 선수들.



서울히어로즈(법인명)의 김시진 감독은 올해 2월 2013년(내년) 시즌의 목표를 ‘우승’이라고 밝혔다. 그를 실현하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해 중위권에 정착하겠다”는 것이 올해의 목표였다. 지난해 최하위 팀인데다 전력상으로도 그 목표는 불가능해 보였고 ‘우승’이란 말을 들은 야구 관계자들까지도 마음속으로 실소를 머금을 수밖에 없었다. 전교 꼴찌가 갑자기 내년에 전교 1등을 하겠다고 한 셈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 그 말에 토를 다는 사람은 없다. 야구 관계자들이 올해 최하위를 점쳤던 서울히어로즈가 깜짝 쇼를 펼치고 있기 때문이다. 선수단 분위기도 완전히 바뀌었다. 2008년 창단 당시 연봉이 최대 80% 삭감됐던 선수들은 지난 4년 동안 암울한 분위기에서 시즌을 치렀다. 지금은 ‘한 번 해보자’는 분위기로 사기충천이다. 지금 분위기라면 정말 ‘전교 1등’이라도 할 기세다. 무엇이 서울히어로즈를 이렇게 바꿔 놓은 것일까.


넥센 히어로즈서 배우는 위기 극복 노하우

국내 최초의 독립 야구 구단으로 출범

서울히어로즈의 부활 과정은 일반 기업의 회생 과정과 비슷하다. ‘파산 위기→대기업의 인수 포기→자구 노력→혹독한 구조조정→인재 육성→실적 개선→재투자→실적 개선→재투자…’가 이뤄지고 있다.

서울히어로즈는 국내 프로야구 역사상 최초로 모기업의 지원을 받지 않는 독립 구단으로 탄생했다. 홍보비 차원에서 적자를 감수하고 운영되는 대기업 계열 구단과 달리 흑자 경영을 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는 구조다. 모기업인 현대그룹의 경영난으로 2007년 현대 유니콘스가 해체 위기에 빠지자 한국야구위원회(KBO)는 NH농협·STX·KT 등에 차례로 인수 의사를 타진했으나 막바지에 모두 물거품이 되는 일이 반복됐다. 농협은 전국농협노조와 농림수산식품부가 “어려운 시기에 농민의 이익을 추구해야 할 농협이 무슨 프로야구냐”는 이유로 반발하면서, STX는 공식 발표 전에 인수 협상이 새나가면서, KT는 KBO가 무리한 조건을 내걸었다가 타구단의 반대에 부딪쳤다.

KBO는 외국계 기업에도 인수 의사를 타진했지만 모두 실패하고 우여곡절 끝에 결국 자본금 5000만 원에 직원 2명 규모의 투자 컨설팅 회사인 센테니얼 인베스트먼트가 야구단을 인수하기에 이르렀다. KBO 가입비 120억 원을 분납으로 내는 조건이었다. 120억 원은 2007년 현대유니콘스 해체를 막기 위해 KBO가 운영비로 투입한 130억 원에서 일부 깎은 금액이다. 프로야구 7구단 체제는 마침 불붙기 시작한 야구 열기에 찬물을 끼얹는 격이어서 KBO는 벼랑 끝 선택이나 다름없었다. 2008년 1월 30일 센테니얼 인베스트먼트는 제8구단 창단 조인식을 통해 인수를 공식 발표했다. 현재 서울히어로즈는 이장석 대표가 66.83% 이상을 가진 대주주로 직접 소유하고 있다.


서울히어로즈는 2008년 우리담배의 스폰서 철회 이후 금액이 큰 메인 스폰서에 의존하기보다 적은 금액의 많은 스폰서 시스템이 구단 운영에 안정적이라고 보고 있다. 다양한 스폰서 광고를 부착한 유니폼 모습

서울히어로즈는 2008년 우리담배의 스폰서 철회 이후 금액이 큰 메인 스폰서에 의존하기보다 적은 금액의 많은 스폰서 시스템이 구단 운영에 안정적이라고 보고 있다. 다양한 스폰서 광고를 부착한 유니폼 모습


‘우리담배 파문’이후 전략 확 바꿔

맨손으로 시작하니 모든 것이 고난의 연속이었다. 서울히어로즈는 운영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사방팔방 뛰어야 했다. 구단 측은 “기존 구단과 차별화된 운영 및 마케팅으로 구단을 경영하겠다. 구단 성명권 판매 등 다양한 스폰서 활용으로 모그룹에 운영비를 받아 쓰는 기존 구단 관행에서 과감히 탈피하겠다”고 선언했다. 우여곡절 끝에 국내 담배 독점 기업 KT&G에 도전장을 낸 제2 담배 회사인 ‘우리담배’와 3년간 총 300억 원의 메인 스폰서십을 맺었다. 이어 2008년 3월 24일 신생 구단 ‘우리 히어로즈’가 창단식을 열었다.

그러나 3년간 300억 원(현금 210억 원, 현물 90억 원)을 약속한 우리담배는 경영난으로 5월부터 스폰서십 납입금을 연체했고 서울히어로즈는 2008년 6월 31일까지 KBO에 납부하기로 한 가입비 1차 분납금 24억 원을 미납하기에 이르렀다. 서울히어로즈의 구단 운영 능력이 의심받기 시작했고 파문이 커지자 우리담배는 이미지 실추를 이유로 스폰서 계약을 일방적으로 파기했다. 서울히어로즈는 ‘우리’ 로고를 떼고 자력으로 생존할 수밖에 없었다. 이후 우리담배는 2008년 말 법원에 화의 신청을 냈고 올해 초 파산 절차를 밟았다.

우리담배와의 악연은 구단 운영의 방향을 새롭게 바꾸는 계기가 됐다. 큰 금액을 후원하는 소수 스폰서 기업에 의존하는 대신 적은 금액을 내는 많은 회사로 스폰서 기업을 꾸리는 것이 구단 운영에 안정적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2010년 50여 개의 스폰서 기업은 2011년 70개로 늘었고 2012년에는 100개를 목표로 하고 있다. 타 구단은 광고 운영을 대행사에 정액제로 맡기는 일이 많지만 서울히어로즈는 마케팅 직원들이 직접 발로 뛰며 스폰서를 유치하고 있다. 타 구단에 비해 마케팅 직원 수가 2배나 많은 이유다. 조태룡 단장은 “그래야 글로벌 금융 위기 같은 악재가 터져도 야구단이 안정적으로 운영될 가능성이 높다”고 얘기하고 있다.
이장석 서울히어로즈 대표.

이장석 서울히어로즈 대표.


2009년에는 시즌 전체를 메인 스폰서 없이 보내야 했다. 용품 거래사가 용품 공급을 끊어 타 구단에서 공을 빌려와 연습해야 할 정도였다. 원정 호텔과 식당에도 외상이 늘었다. 경영진은 큰 빚쟁이에게, 실무진은 작은 빚쟁이에게 1년 내내 시달리는 형국이었다. 구단 경영진이 개인적으로 구단에 대출하기도 했다. 2009년 서울히어로즈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이장석 대표가 구단에 빌려준 대출 잔액은 93억 원에 이른다. 2011년 말에는 66억 원으로 줄었다.

결국 구단은 최후의 수단으로 유능한 선수를 트레이드하는 것으로 연명할 수밖에 없었다. 이미 히어로즈 선수들은 2008년 시즌을 앞둔 연봉 협상에서 대거 연봉이 삭감된 바 있다. 특히 고액 선수들의 삭감 폭이 컸다. 주전 포수 김동수는 3억 원에서 80% 깎인 6000만 원으로, 외야수 전준호는 2억5000만 원에서 7000만 원으로, 주력 투수 정민태는 3억 원에서 8000만 원으로, 송지만은 6억 원에서 2억 원으로 깎였다. 2012년 시즌에도 서울히어로즈는 전 구단 중 평균 연봉 최하위다. 구단 인수 당시 연봉은 깎았지만 100% 고용을 승계했다. 다른 구단에서는 매년 신인 선수를 받고 또 기존 선수를 내보내기도 한다.

2008년 서울히어로즈는 좌완 에이스 장원삼을 삼성 라이온즈로 전격 트레이드했다. 삼성의 좌완 박성훈과 30억 원을 받는 조건이었다. 이 돈으로 2차 분납금 24억 원을 내고 나머지를 외상 결제에 사용했다. 2009년 시즌 종료 후에는 이택근과 이현승을 LG 트윈스와 두산 베어스에 트레이드하며 35억 원을 확보해 KBO 잔여 분납금 36억 원을 냈다. 메인 스폰서 없이 운영비를 조달하기 위한 고육지책이었다. 이어 2010년 시즌 전에 마일영을 한화로, 시즌 중반 황재균을 롯데로 보냈다. 팬들은 이장석 대표에게 ‘빌리장석’이라는 별명을 붙이기도 했다.


넥센 히어로즈서 배우는 위기 극복 노하우

장부상 ‘적자’ 실질적으로는 ‘흑자’

2010년에는 넥센타이어를 메인 스폰서로 영입하고, 현대해상으로부터 헬멧 광고비를 유치하며 재무적으로 안정을 찾기 시작했다. 서브 스폰서도 70개로 늘었다.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적자 폭은 2008년 38억 원, 2009년 6억 원, 2010년 5억 원 규모로 줄었다. 5억 원이면 독립 구단으로서는 기적에 가깝다는 평가다. 더구나 2009년까지 완납한 120억 원의 KBO 가입비를 다음해인 2010년부터 무형자산감가상각비(비용)로 매년 24억 원씩 회계에 반영하고 있어 장부상으로는 적자지만 실질적인 재무 상황은 그리 나쁘지 않은 상태로 보인다. 조태룡 단장은 2010년 말 한국경제와의 인터뷰에서 “창단 후 첫 손익분기점”이라고 말했다.

2011년에는 41억 원의 적자를 봤지만 선수 활동비가 전년 118억 원에서 149억 원으로 늘었고 급여 총액도 17억 원에서 20억 원으로 늘었다. 재무 상황이 개선되면서 선수단에 대한 투자가 늘어나기 시작한 것이다. 그전까진 선수 활동비와 급여 총액은 매년 줄었었다. 2012년 서울히어로즈의 성적이 좋아진 데는 이런 재무적인 상황도 무시할 수 없는 요인이다. 한마디로 ‘투자 있는 곳에 결실 있다’는 명제를 확인한 것이다.

서울히어로즈가 올해 의미 있는 성적을 낸다면 향후 전망은 더욱 밝을 것으로 보인다. 성적이 그다지 좋지 않았던 지난해까지도 관객 수는 꾸준히 증가했다. 2008년부터 갑자기 높아진 야구의 인기 덕에 타 구단 팬들이 몰렸던 영향이 크다. 장부상 ‘운동장 수입’은 2008년 13억 원, 2009년 22억 원, 2010년 28억 원으로 꾸준히 늘었고 성적이 최하위였던 2011년에는 오히려 42억 원으로 증가했다.

올해는 더 큰 증가 폭을 보일 것으로 예상된다. 올해 상위권 구단의 성적이 막상막하로 흥행이 폭발하고 있고 더구나 서울히어로즈의 성적이 급등하면서 팬은 물론 팬이 아니던 관객의 관심도 받고 있기 때문이다. 서울히어로즈에 따르면 총 19경기를 치른 목동구장의 관객 수는 지난해 총 12만3162명에서 올해 총 19만4147명으로 58% 증가했다. 매출 규모는 크지 않지만 야구 용품 판매도 2배로 늘면서 서울히어로즈 구단의 인기를 반영하고 있다.
넥센 히어로즈서 배우는 위기 극복 노하우



우종국 기자 xyz@hankyung.com│사진 제공 서울히어로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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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일시 : 2012-06-14 13: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