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 세종시로 향하는 길, 풍세 톨게이트를 지나니 ‘정안IC 행복도시 연결도로 개통’이라는 전광판이 보인다. 11월 23일 갓 개통한 길로 세종으로 가는 시간을 5~10분 단축시킨다. 새 길을 통해 두 시간이 채 안 돼 세종특별자치시에 도착했다.

세종 정부 청사 중 준공을 마친 곳은 가장 먼저 입주한 국무총리실 청사와 국토부 등 11개 기관 청사다. ‘용의 형상’을 본떴다는 세종 청사는 형태를 갖췄을 뿐 아직 공사 중이다. 교과부 등 2단계 이전 청사는 2013년에 완성될 예정이며 국세청 등 3단계 청사는 올해 9월 착공에 들어갔다.

중앙 행정기관은 올해부터 2014년까지 3단계로 나눠 1만452명이 이전하게 된다. 올해에만 총 5498명이 입주한다. 국무총리실 645명, 기획재정부 1173명, 국토해양부 1662명, 환경부 606명, 농림수산식품부 777명, 공정거래위원회 415명, 행복도시건설청 220명이 늦어도 12월 18일까지는 이전을 마무리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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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근·회식 줄어들었다

방문 당시 청사에는 국무총리실 직원 119명이 근무하고 있었다. 지난 9월 14일 가장 먼저 세종 청사에 자리를 잡은 이들이다. 12월 3일부터 근무를 시작하는 국토해양부와 농림수산식품부 등에선 아직 이삿짐만 운반한 상태였다.

건물 풍경은 전반적으로 한산했다. 청사 내부엔 아직 불 꺼진 방이 많고 청사 밖으로 나가면 공사 현장뿐이다. 청사 인근 상가는 내년에 입점할 계획으로 현재는 직원 대부분이 식사를 구내식당에서 해결하곤 한다. 청사 밖으로 나가기 위해선 순환 버스를 타고 지상 지하철 개념의 BRT정류장까지 간 후 다시 상가를 찾아 ‘첫마을’로 나가야 하는데 여간 번거로운 일이 아니라고 한다. 이 때문에 최근엔 수요가 있으면 해당 음식점으로 차량을 보내주는 일명 ‘밥차’도 생겼다.

이동이 복잡하다 보니 한 번 출근하면 여간해선 밖으로 나가지 않게 됐다고 한다. 청사에서 만난 김민지 주무관은 “한번은 몸이 아파 대전에 있는 병원에 가려고 했는데 두 번 버스를 갈아타고 이마저도 시간에 맞춰야 하는 게 번거로워 퇴근할 때까지 참았다”고 말했다. 현재 청사 안에는 이동식 보건소가 있어 간단한 조치를 취할 수 있게 하고 있다.

자연스럽게 야근도 줄었다. 통근 버스를 놓치면 어두운 밤 홀로 인적이 드문 공사장 주변을 15분 넘게 걸어야 하기 때문에 그 누구도 야근을 권유하지 않는다. 회식도 줄어들었다. 익명을 요구한 또 다른 여성 공무원은 “조치원이나 대전 쪽에서 모여야 하는데 회식 이후 교통편이 마땅치 않고 집도 모두 다른 곳에 있어 모이기가 어렵다”며 “회식과 야근이 사라지는 문화가 한편으론 좋기도 하다”고 했다.

세종시에서 현재 이슈가 되는 문제는 주택난이다. 한꺼번에 공무원이 몰리면서 특히 전세난이 심하다. 그 이유는 뭘까. 현재 세종 청사가 있는 ‘행복 도시’ 내에 당장 입주가 가능한 아파트는 ‘첫마을’ 아파트가 유일하다. 나머지 아파트는 2013년 7월 이후 부터 입주가 가능하다. 주택 공급 계획이 원래 이렇게 적었던 것은 아니다. 계획대로라면 지금 세종시에는 한국토지주택공사(LH) 단지와 민간 건설업체 아파트 등 1만여 가구가 입주했어야 했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가 집권 초기 세종시 개발 계획을 수정하겠다고 나서면서 민간 아파트 공급이 늦어졌다. 일부 건설 업체는 LH로부터 매입한 아파트 용지를 반납하기까지 했다.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청 관계자는 “세종시 개발 수정 논쟁으로 세종시 건설 자체가 불투명했고 부동산 시장마저 침체되면서 민간 건설 업체가 사업을 접거나 미루면서 벌어진 일”이라고 말했다.

결과적으로 이주 대상 공무원 ‘특별 분양’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입주 시기가 1년 이상 남은 이들은 어쩔 수 없이 다시 전세를 얻거나 출퇴근을 선택해야 한다. 올해 이주하는 공무원 5000여 명 중 첫마을 아파트 분양을 받은 사람은 955명에 불과하다. 또한 국무총리실 조사에 따르면 1단계 이전 공무원 중 1717명이 당분간 출퇴근할 계획이다. 이 때문에 이들을 제외한 2000여 명이 동시에 전월세 시장에 수요자로 나선 상황이다. 공무원뿐만 아니라 관련 업체와 공사 인력까지 포함하면 그 수는 훨씬 더 늘어난다.

유일한 아파트 첫마을 전세는 벌써 동났다. 계획도시인 세종시 행복도시 내에는 원룸을 지을 수 없게 돼 있다. 이에 따라 공무원들은 세종시 인근 지역을 선택하고 있다. 행복청에 따르면 세종시 인근 지역 전월세 매물은 아파트 436가구, 원투룸, 도시형 생활주택 등을 포함해 2400여 가구 물량이 대기 중이다. 하지만 이 중에는 주변이 허허벌판인 곳도 많아 수요가 몰리는 곳은 정해져 있다.

가장 인기 있는 지역은 대전 지역이다. 세종 청사에서 차로 10~15분 정도 거리이며 무엇보다 인프라가 잘 갖춰져 있다. 대전 지역에서도 세종청사와의 거리에 따라 반석동·노은지구·유성순으로 물량이 소진된다. 조치원역 근처 연기면 일대에도 사람들이 몰린다. 역과 가깝다는 이점이 있다. 이 밖에 장군면·금남면·공주·오송 등에도 다가구주택 지역이 형성돼 있다. 원룸은 33㎡ 기준 보증금 500만 원에 35만~40만 원 선에 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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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행 버스·기차 막차 놓치기 쉬워

상황이 이렇다 보니 세종시에서만 볼 수 있는 특이한 풍경들이 펼쳐지고 있다. 대표적인 게 50대 ‘나홀로족’의 출현이다. 한 50대 공무원은 “맞벌이와 고등학생 자녀 때문에 홀로 내려왔다”고 했다. 그는 “대학 입시를 앞두고 선뜻 학군을 옮길 수도 없을뿐더러 자녀 사교육비를 갑자기 줄일 수도 없어 홀로 33㎡대 원룸을 얻어 살고 있다”고 말했다. 이는 일종의 두 집 살림을 하는 격으로, 원룸 방값 40만 원과 주말 교통비 20만 원을 포함해 한 달 생활비가 60만 원 정도 늘어난다.

국무총리실 세종시지원단이 16개 중앙 행정기관 공무원 1만1552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 전체 응답자 중 41%가 단독 이주를 선택할 것이라고 답변했다. 이 중 중고등학교 자녀를 둔 적지 않은 50대 공무원들은 비용을 아끼기 위해 풀 옵션 원룸을 선택하고 있다. 99~132㎡(30~40평)형 아파트에서 33㎡ 원룸으로 주거 형태를 바꾸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아파트 더부살이’를 선호한다. 한 집에 두세 명이 함께 사는 형태다. 원룸에 홀로 사느니 아파트에 동료와 함께 사는 편이 낫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행복청 소속 유찬석 씨는 현재 대전에서 동료와 함께 아파트에서 살고 있다. 일산에서 직장을 찾아 홀로 내려온 그는 더부살이에 만족한다는 반응을 보였다. “얼마 전까지는 직장 상사와 한 집에 살았는데 서로 외로운 처지이다 보니 직장 상사가 집에서까지 상사는 아니더라. 청소나 설거지 등도 각자 알아서 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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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시지원단이 운영하는 사내 인트라넷 정보 센터에는 계속해서 하우스메이트를 구하는 글이 올라오고 있다. 첫마을 아파트를 분양받은 이가 방 한 칸을 다른 이에게 임대하는 형태, 함께 다가구주택 전세를 구하는 형태 등 다양한 글이 게시되고 ‘거래’가 완료되면 ‘거래 종료’라는 실시간 댓글이 올라온다. 다가구주택은 여성들이 안전상 문제로 투 룸을 구해 함께 사는 형태를 선호하는 것으로 알려진다.

세종시 이전 공무원의 주택난에 대비해 공무원연금공단에서 마련한 임대 아파트도 독신자 숙소로 공유하고 있다. 단독으로 내려오는 공무원에게 268가구의 임대주택을 공급했는데 신청을 받아 추첨으로 방 배정을 했다. 누구와 살게 될지는 복불복이다.

너무 일찍 이사 온 때문에 세종시에서 서울로 ‘역출근’하는 이들도 상당수 있다. 국토부 소속 정헌철 주무관은 첫마을 아파트에 지난 9월 1일 입주했다. 가족과 함께 이사 오면서 불가피하게 매일 아침 6시 30분 서울 과천행 셔틀버스를 타고 있다.

그는 “한 번 버스를 놓쳐 오송에서 KTX를 타고 출근했는데 돈도 많이 들었지만 너무 피곤해 그 뒤론 절대 지각을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정 주무관처럼 역출근하는 인원은 현재 500명에 달한다. 이들을 위해 행정안전부에서 통근 버스를 운행해 매일 아침 6시 30분이면 첫마을 아파트 앞에 대형 차량 7대가 서 있는 진풍경이 벌어진다. 갑자기 사람이 늘 때는 2시간을 서서 가야 할 때도 있다.

“무엇보다 매일 장거리 이동을 하다 보니 몸이 약해 하루 종일 몽롱한 상태에서 일할 때가 있다. 쉬운 게 아니더라”고 행정안전부 관계자는 말했다. 현재 역출근하는 이들 중에선 내년과 내후년 이전이 예정된 기관 공무원도 포함돼 있어 이러한 피로감은 더해질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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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서 세종시로 출퇴근을 선택한 이들에게 때로 사무실은 곧 집이 된다. 야근을 피하는 분위기이긴 하지만 불가피하게 늦게까지 일해야 할 때가 있는 것. 한 여성 사무관은 평소 깔끔하기로 소문나 있지만 국정감사 기간에 ‘반전’을 보여줬다. 매일 밤마다 대기하면서 차가 끊겨 집에 가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며칠 동안 사무실에서 먹고 자는 생활을 반복하니 얼굴에 다크서클이 저절로 생겼다. 이렇게 야근으로 사무실에서 숙식하는 이들이 생기면서 사무실 한쪽에는 라쿠라쿠 침대도 등장했다.

실제로 세종 청사에서 오송역으로 가는 BRT 막차를 놓치면 서울로 가는 길이 묘연해진다. 버스는 7시 30분에 막차를 운행하고 조치원역에서도 10시 14분 이후면 기차가 끊긴다. 세종 청사에서 조치원역까지 버스로 50분 정도 달려야 하고 세종 청사에서 버스 정류장으로 나오는 시간도 있기 때문에 시간이 조금 지체되면 사무실에서 숙식을 해야 한다.

또 다른 면에서 이 지역의 특이한 점은 학구열이 높다는 것이다. 첫마을 아파트에는 공무원보다 인근 지역에서 이주한 이들이 더 많은 비율을 차지하고 있다. 첫마을 아파트 계약자의 지역별 분포도는 2단계 입주민은 수도권 30.5%, 충청권 64%, 기타 5.5%다. 대전·공주 등 인근 지역에서 이사 온 이들의 상당수는 초등학생 자녀를 둔 학부모들인 것으로 알려진다.

일대 초등학교가 ‘스마트 스쿨’로 알려지며 우수한 학군을 기대하고 이사 온 것이다. 첫마을에는 점차 사교육 시장이 생겨나고 있다. 학원뿐만 아니라 과외도 활성화되고 있다. 한 마을 주민은 “몇 명이 동아리를 만들어 1주일에 한 번씩 서울에 가서 교육 정보를 듣고 선생님도 모셔온다”며 “이곳이 제2의 대치동이 되지 않겠느냐”는 기대감을 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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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생이 많이 몰리면서 인근 초등학교는 최근 고등학교 건물 한 층을 빌려 반을 증설하기도 했다.

한 부동산 업체 전문가는 “아직 이곳엔 소문만 듣고 이곳저곳에서 모여든 이들이 많다. 어느 신도시나 그렇듯이 두 번 정도 물갈이가 되고 2015년 정도 되면 안정된 커뮤니티가 생길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세종시 부동산 한풀 꺾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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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 세종시를 방문했을 때와 달라진 점이 있다면 부동산 업체들이 한결 친절해졌다는 것이다. 이전에는 “바빠서 다음에 오라”고 했던 곳에서도 “앉아서 차 한잔 마시라”고 말할 정도였다. 그 이유는 최근 손님이 줄어서다. 한 부동산 업체는 “하루 전화를 50통씩 받았는데 이제는 7~8통이면 많이 받는 것”이라고 말했다.

세종시 부동산 시장은 투자와 투기를 넘어 최근 ‘실수요 중심’으로 재편되는 중이다. 이전엔 투자 목적으로 각지에서 사람이 모여들었다면 11월 들어서면서 실제 거주 의향이 있는 사람들이 문의하는 추세다. 올해 11월부터 아파트 전매 제한이 풀려 분양권 프리미엄을 합법적으로 팔 수 있지만 일부 전망 좋은 자리를 제외하고는 실거래가 잘 이뤄지지 않고 있다. 수요자와 공급자 간 가격 온도 차이 때문이다.

이 때문에 일부 공인중개소에서는 원룸을 구하는 공무원들에게 ‘전세난’을 강조하며 외딴 지역을 소개하기도 한다. 부동산 열풍으로 전국에서 몰려든 공인중개사들은 이제 많게는 월 500만 원에 달하는 월세 걱정을 해야 한다.

그래서 일단 팔고 보자는 식으로 방을 소개하는 곳이 생기고 있는 것. 세종시에 방을 구하는 공무원들은 주말을 이용해 방을 구해야 하고 지역 사정을 잘 몰라 공인중개소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다. 또한 실제로 일부 인기 지역에는 원룸 부족 현상이 나타나고 있어 만족스럽지 않아도 계약하는 이가 많다. 한 30대 여성 공무원은 “4층 방을 구하고 싶었는데 1층밖에 자리가 없었다. 그런데 공인중개소에는 지금 이것저것 따질 형편이 아니라며 ‘초치기’ 계약을 독촉했다”며 주의를 줬다.



이현주 기자 charis@hankyung.com | 사진 김기남 기자 kn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