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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충정로 종근당 빌딩을 찾았다. 기능성 소재 ‘고어텍스’를 만드는 고어의 한국 법인 고어코리아의 대표를 만나기 위해서다. 아웃도어 의류의 인기와 함께 주목받는 고어텍스가 궁금했을 뿐더러 4무(無서열·고정된 업무·큰 조직·명령) 정책으로 유명한 고어의 기업 문화를 직접 보고 싶었다.

대표에게서 받은 명함에는 김재경 컨트리리더라는 직함이 쓰여 있었다. 김 컨트리리더는 대외적으로 대표이사에 해당하지만 사내에서는 섬유사업부 일원으로 실무를 담당한다. 별도의 방도 없다. 이처럼 직책도 직위도 없는 수평적 조직을 자랑하는 고어는 포천지의 ‘가장 일하고 싶은 100대 기업’에 매년 상위 랭크되고 있다. 고어코리아 또한 얼마 전 GPTW(Great Place to Work: 일하기 좋은 기업) 선정 ‘대한민국 일하기 좋은 100대 기업’에서 외국계 부문 대상을 수상했다.

“컨트리리더이지만 소속 부서 이외 비즈니스에는 직접적으로 관여하지 않아요. 각 사업부별로 독자적으로 각각의 사업 목표에 맞춘 비즈니스를 합니다. 기본적으로 팀장이 업무 지시를 하는 구조가 아니에요.”

고어코리아 직원들은 정해진 업무를 하기보다 프로젝트에 따라 자발적으로 모여 일을 한다. 이때 많은 지지자들이 자연스럽게 따르는 사람이 연차에 관계없이 리더가 된다. 공식적인 승진의 개념은 없다.
김재경 고어코리아 컨트리리더 “권위와 명령 없어도 직원 만족도 높죠”
약력 : 2004년 ‘나이키’ 매니저. 2006년 ‘리복’ 디렉터. 2008년 고어코리아 입사. 2010년 고어코리아 컨트리리더(현).

“내재된 권위가 없는 것이 독특하면서도 직원 만족도가 높은 고어만의 문화죠”

직책도 연공서열도 없는데 열심히 일할까. 비즈니스 성과에 반영될까. 김 컨트리리더는 “입사 후 1년 만에도 리더가 될 수 있고 10년이 지나도 리더 역할을 못할 때도 있다”며 “동기부여가 되는 분야에 자발적으로 참여하기 때문에 업무에 열정과 책임을 느끼며 최선을 다한다”고 말한다.

이를 위해 피드백 시스템과 평가 시스템이 잘 구축돼 있다. 컨트리리더라고 할지라도 함께 일하는 모든 직원에게 피드백을 받는다. 또한 ‘스폰서(sponsor) 제도’를 둬 스폰시(sponsee)는 스폰서로부터 다각도의 멘토링을 받을 수 있다.

1991년 20여 명의 조직으로 출발해 현재 70명의 직원을 두고 있는 고어코리아는 지난해 처음 21년 근무 이후 정년퇴임한 직원을 배출했다. 고어코리아의 이직률은 5% 수준이다.

고어 하면 아웃도어 의류 소재인 고어텍스가 먼저 떠오르지만 의류뿐만 아니라 산업·전자·의료 등 분야에서도 사업을 활발히 펼치고 있다. 고어의 핵심 기술은 단연 안에서 열기를 배출하고 밖에서 수분을 차단하는 ‘방수와 투습’이다. 이 기능을 어떤 제품에 어떻게 적용하는지가 가장 큰 기술력이자 성장의 근간이다. 인공 혈관, 케이블, 노트북, 휴대전화, 자동차 부품 등 트렌드에 맞게 적재적소에 적용하고 포트폴리오를 구축하고 있다.

“스마트폰이 지금은 대세이지만 5년 전, 10년 전만 해도 아니었죠. 전자사업부에서는 이를 간파하고 빠르게 움직여 스마트폰에 우리의 기술을 접목했어요”

B2B 사업을 하는 고어의 주 고객은 아웃도어·캐주얼 브랜드, 휴대전화·노트북·자동차 제조 회사, 대형 병원 등으로 퍼져 있다. 전 세계적으로는 의료제품사업부가, 고어코리아는 섬유사업부와 산업제품사업부의 매출 비중이 가장 높다.

“제가 신은 구두에도 고어텍스가 들어가 있어요. 기타를 좋아한다면 고어에서 개발한 기타 줄을 본 적도 있을 겁니다. 고어의 다양한 제품은 이미 생활 깊숙이 들어와 있습니다.”




이현주 기자 charis@hankyung.com │사진 서범세 기자 joycin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