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석 북팔 대표

김형석 북팔 대표를 만난 것은 콘텐츠 플랫폼에 대한 견해를 듣고 싶어서였다. 의욕적으로 출범한 카카오페이지는 왜 실패했을까. 콘텐츠 플랫폼이 정착하기 위한 조건들은 무엇일까. 콘텐츠 거래 시장은 과연 제대로 돌아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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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특히 전자책과 같은 텍스트 위주의 콘텐츠가 온라인·모바일에서 시장을 창출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에서 시작된 것이었다.

내가 궁금한 것은 디지털 세상에서 사람들이 완성된 콘텐츠로서의 텍스트를 어떻게 접할 것인가에 대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 텍스트는 꼭 전자책이 아니더라도 상관없었다. 김 대표 역시 불확실한 미래와 고난투성이의 현실을 끌어안고 고민하고 있는 수준이지만 그래도 그는 약 2년 전부터 나름대로 이 분야에 대한 답을 내리고 그 길을 걸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 과정에 그의 창업 스토리가 오롯이 배어 있었다.

김 대표는 1994년 현대엔지니어링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서강대 전자공학과 87학번인 그로서는 엔지니어로서의 출발이 자연스러웠을 것이다. 그런데 그는 이 생활에 만족하지 못했다. 무엇보다 앞으로 계속 이렇게 살아야 한다는 생각이 그를 답답하게 했다고 한다.

그래서 그는 커리어에 대전환을 꾀했다. 그리고 이것이 그의 14년 광고 및 마케팅 분야 경력의 출발점이 됐다. 그가 정보기술(IT) 업계로 온 것은 2000년. 당시 트렌디했던 여성 포털과 게임 업체 CCR 등에서 광고와 마케팅 관련 업무를 했다. 2005년부터 2007년까지는 아예 광고회사에 몸을 담았다.


엔지니어로 사회생활 첫발
창업을 생각하게 된 것은 2007년 유행을 탔던 블로그를 보면서 콘텐츠 시장의 가능성을 엿봤기 때문이다. 이 생각이 사실 그 이후 그의 창업 스토리를 좌우하게 된다. “그때 서비스2.0이라는 회사를 차리고 블로그 콘텐츠를 가공해 PC에서 이북(e-book) 형태로 판매하는 일을 했어요. 오프라인에서 매거진 형태로 발매하기도 했죠. ‘콘텐츠 마켓을 우리 힘으로 만들어 보자’는 생각을 했던 거죠. 그땐 가능성이 있어 보였어요. 결과적으로는 잘 안 됐지만요.”

잘 안 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그는 PC 자체의 성격을 우선 거론했다. “PC는 콘텐츠 소비보다 생산에 적합한 도구인 것 같아요. 게임 등 특정 콘텐츠를 제외하면 사람들은 PC에서 콘텐츠 소비를 잘하지 않아요. PC는 일하는 도구이자 장소라는 개념이 강하죠.”

게다가 병행한 오프라인 매거진 분야는 그야말로 죽어가는 시장이었다. 결국 2년여 만에 사업은 실패로 끝났다. 한편으로는 너무 여유롭게, 스타트업 치곤 별로 부족함 없이 사업을 한 것도 실패의 원인이라는 생각도 들었다고 한다. “창업은 좀 쪼들리며 하는 게 맞는 것 같습니다. 그래야 절박함을 갖고 뭔가 결과물을 내놓으려고 하거든요. 첫 번째 창업은 방향을 잡지 못하고 시간만 보냈던 시간이었다는 생각이 드네요.”

실패를 겪은 뒤 후유증은 분명히 있었다. 돈도 잃었지만 그에겐 다른 도전을 하기 위한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는 자책감이 더 컸다. “고객 데이터베이스(DB)든, 서비스든, 콘텐츠든 뭐든 남았어야 해요.”

홍보 대행사에 들어가 일하던 그가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한 것은 때마침 불어 닥친 ‘스마트폰 붐’. 첫 창업 당시 그를 괴롭혔던 문제의식, 즉 ‘PC는 콘텐츠를 소비하기 적합한 도구가 아니다’라는 의문을 스마트폰이 일거에 해소해 줬다. “스마트폰은 확실히 콘텐츠 소비 도구예요. PC와는 완전히 다르죠.”

순식간에 여러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창업을 하고 싶은 욕구가 다시 꿈틀거렸다. 그렇게 고생하고 자책의 시간을 가졌는 데도 말이다. 하지만 상황은 좋지 않았다. 당연히 자금이 부족했고 과거 창업을 같이했던 동료들이 다시 힘든 길을 가려고 할지 우려도 있었다.

“그런데 말이에요, 어느 날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내가 하다가 망하면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런데 내가 하고 싶었던 것을 어느 날 남이 먼저 해내는 것을 본다면? 내가 당장 좀 편하게 살기 위해 선택하지 않았던 그 길에 누군가 어려움을 무릅쓰고 도전해 성공해 내는 것을 본다면? 이건 정말 못 참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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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그는 다시 도전에 나섰다. 2011년 3월이었다. 옛 전우 박대령 이사가 달려왔다. 이번엔 정말 바닥에서 시작했다. 사무실을 구할 돈도 없어 커피숍에서 모였다. 커피숍에서는 회의를 하고 각자 집에 돌아가 개발해 다시 모여 회의를 하는 식이었다.


비즈니스보다 콘텐츠 우선 전략
일이 시작되면 도와주는 손길이 있는 법. 지인이 3000만 원을 빌려줘 종로에 창문도 없는 골방을 사무실 겸 얻었다. 절박함은 속도를 높여 줬다. 5월 애플리케이션(앱) 개발을 시작했는데 6월에 바로 출시됐다. 앱 이름은 북팔. 회사 이름과 같다. 책(book)에 친구(pal)를 합성했다. 무료 책을 기치로 내걸었다. 처음에 200권을 공짜로 풀고 광고 등을 통해 수익을 얻겠다는 계획으로 출발했다. 그에겐 사람들이 일단 책을 보게 하는 게 중요했다.

“처음 앱을 내면서 연말까지 앱 다운로드 10만 건만 달성할 수 있으면 대박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웬걸, 100만 건이 넘는 다운로드를 기록했죠.”

북팔을 시작할 때 그의 생각은 ‘3년 동안 비즈니스를 생각하지 말고 콘텐츠만 쌓겠다’는 것. 첫 실패에서 얻은 교훈이었다. 콘텐츠 비즈니스는 ‘비즈니스’보다 ‘콘텐츠’가 우선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100만 건이 넘는 어마어마한 다운로드가 이뤄지자 생각이 달라졌다. “어? 이거 수익이 나겠는 걸?”

종로 골방에 있던 사무실을 강남으로 옮겼다. 엔젤 투자이긴 하지만 투자도 좀 받았다. “광고를 붙이면 되겠다고 생각했어요. 다운로드 수가 되니까요. 그런데 광고 시장이 너무 빠르더군요.”

김 대표는 기존 책의 전자책 버전이 아닌 소셜 퍼블리싱에 중점을 두고 있다. 소셜 퍼블리싱은 오프라인의 출판 방식으로 출판되지 않는 개인화된 출판 방식을 뜻한다. 그는 모바일 전자책 시장이 바로 이 소셜 퍼블리싱의 성장에 달려 있다고 보고 있다.

소셜 퍼블리싱은 왜 희망이 있을까. 커머스와 광고에서 수익을 찾기 때문이란 게 그의 설명. 두 시장은 합쳐 수십조 원에 달한다. 좋은 작가의 글을 무료로 출판하고 광고·커머스와 결합해 수익을 내면 된다는 것. 그래서 김 대표는 우선 기성 출판 시장에서 소외된 개별 작가들을 네트워킹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그는 이것을 ‘출판의 소셜화’라고 불렀다. 이를 전자책으로 제작해 무료 콘텐츠로 배포하고 광고 비즈니스와 결합해 수익을 만드는 게 북팔의 역할이다.

그의 이런 생각은 차근차근 실현되는 중이다. 북팔은 8월 말까지 누적 다운로드 240만 건을 기록했다. 북팔을 통해 콘텐츠를 생산하는 작가는 1200명에 달하며 이들이 만들어 낸 전자책은 무려 2000여 권이다. 소비자들은 4000만 권에 달하는 전자책을 다운로드했다.

“아직도 죽음의 골짜기를 아직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어요. 그래도 그 어려운 가운데서도 팀워크를 유지하고 꿋꿋이 해 나가고 있습니다. 이대로 가면 연말께는 손익분기점을 맞출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본격 매출은 내년부터죠. 이제부터는 서비스 고도화가 숙제입니다.”


임원기 한국경제 경제부 기자 wonkis@hankyung.com│사진 이승재 기자 fotolees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