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천리자전거·세코그룹·리한그룹 통해 명맥 이어

‘부자는 망해도 3년 간다’는 속담이 있다. 기업이 망하면 어떨까. 기업 자체는 공중분해되거나 다른 곳에 흡수된다고 하더라도 기업을 일으켰던 사람은 사라지지 않고 남기 마련이다. 한국 최초의 자동차 기업인 기아자동차의 창업주 고 김철호 회장 일가가 대표적이다. 비록 예전처럼 완성차 업체는 아니지만, 창업주에서 4대에 이르기까지 자동차 부품 사업을 통해 명맥을 잇고 있는 후손들을 찾아봤다.
[SPECIAL REPORT] 메이저 부품사로 다시 선 기아차 창업주 김철호 일가
한국 자동차의 역사는 기아자동차의 역사와 궤를 같이한다. 1962년 일본의 마쓰다와 기술제휴해 생산한 배기량 365cc의 삼륜 화물차 ‘K-360’은 한국 기업이 만든 최초의 자동차였다. 기아차는 1970년 11월 10일 경기도 광명 소하리에 66만1000㎡(20만 평) 규모의 자동차 공장 착공에 나서 1973년 6월 완공했다. 소하리 공장 역시 한국 최초의 종합 자동차 공장으로 연간 2만5000대의 생산능력을 갖춘 공장이었다. 1974년 4월 일본 마쓰다의 패밀리아를 기초로 제작한 세단 ‘브리사’는 한국 최초의 승용차라는 기록을 남겼다.

한국 자동차 역사에서 ‘최초’라는 타이틀을 이어 가던 기아차의 승승장구는 계속됐다. 1976년 경쟁사였던 아시아자동차를 인수해 군수용 자동차 생산으로 발을 넓혔고 1978년에는 국내 최초로 디젤엔진 개발에 성공했다. 1980년대 들어선 시련도 맛봤다. 1981년 정부의 ‘자동차 공업 합리화’ 조치로 더 이상 승용차를 생산할 수 없게 된 것. 하지만 승합차 ‘봉고’ 신화를 계기로 전화위복의 기회를 잡았고 합리화 조치 해제 이후에는 1987년 프라이드, 1992년 스포티지 등을 선보이며 완벽한 재기에 성공했다. 특히 프라이드는 당시만 해도 한국에선 볼 수 없었던 작은 차체와 귀여운 해치백 스타일로 국내는 물론 세계적으로도 인기를 얻은 한국 최초의 ‘월드카’였다. 스포티지는 세계 최초로 선보인 도심형 RV 차종으로, 현재 글로벌 기업들이 생산해 내는 도심형 RV의 원형으로 인정받을 만큼 역사적 가치가 있는 차다.

잘나갈 것 같던 기업이 고꾸라지는 것도 한순간이다. 1990년대에 들어선 기아자동차가 그랬다. ‘이대로도 충분하다’는 방심과 ‘뭐든 할 수 있다’는 방만은 여차하는 순간 ‘부도’라는 낙인으로 다가왔다.
[SPECIAL REPORT] 메이저 부품사로 다시 선 기아차 창업주 김철호 일가
경기도 의왕시 오전동 삼천리자전거 의왕공장.
/허문찬기자  sweat@  20100727
경기도 의왕시 오전동 삼천리자전거 의왕공장. /허문찬기자 sweat@ 20100727
1990년대 들어 현대자동차·대우자동차 등 경쟁사들이 사세를 넓힘과 동시에 국내 자동차 산업은 과잉생산 상황에 직면하게 됐다. 이 와중에 기아차는 강성으로 명성이 자자했던 노조의 눈치를 보느라 적자 부문의 과감한 구조조정은 꿈도 꾸지 못했다. 100만 대 생산을 목표로 한 대대적인 설비투자 때문에 부채비율이 급격하게 상승했고, 1997년에는 한꺼번에 신차를 6종이나 개발하느라 수천억 원의 과잉투자까지 이어졌다. 결국 국제통화기금(IMF) 외환 위기의 직격탄을 맞은 기아차는 1997년 법정 관리에 들어갔고 이듬해인 1998년 10월 현대자동차에 인수돼 지금에 이른다. 법정 관리 당시 기아차는 5조2000억 원의 자본 잠식 상태였고 부채비율은 810%에 달했다.


손자인 김석환 사장이 이끄는 삼천리자전거
기업은 부침을 겪지만 사람은 남는다. 기아차를 창업한 고 김철호 회장은 국내 최초의 자동차, 최초의 승용차, 최초의 자전거, 최초의 종합 자동차 공장 등 한국 자동차 산업의 역사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1905년 경상북도 칠곡에서 태어난 고인은 일제강점기인 1922년 일본 오사카로 건너가 삼화제작소를 창업했다. 볼트·너트 등 자전거와 자동차 부품 사업으로 성공한 그는 1994년 일제 패망이 가까워 오자 고국에 돌아왔다. 그해 12월 서울 영등포에 경성정공을 세운 그는 6·25전쟁 중에 부산에서 국내 최초의 자전거인 삼천리호를 선보였다. 1952년에는 기아산업으로 상호를 변경해 본격적인 자전거 생산에 들어갔다. 이후 기아산업은 1960년대부터 삼륜 트럭을 생산하면서 자동차 기업으로 변신하는 데 성공했다.

김철호 회장은 일찍이 1973년 소하리 공장이 완공되던 해에 세상을 떠났다. 뒤를 이은 이는 장남인 김상문 전 회장이었다. 김 전 회장은 아시아자동차 인수, 기아기공 인수, 기아기연(오늘날 대림자동차) 분리 설립 등에 나서며 오너 경영인 체제를 유지했다. 그러나 연이어 터진 오일쇼크와 자동차 공업 합리화 조치 등의 악재가 겹치며 1980년대 초반에는 2년 내리 500억 원의 적자를 기록하게 된다. 결국 부실 책임을 지고 물러난 김 전 회장을 대신해 공채 1기 출신이자 당시 기아기공 사장이었던 김선홍 회장이 취임했다. 회사 창립 37년 만에 소유와 경영이 분리된 전문 경영인 체제로 바뀐 순간이다.

이후 기아차는 ‘봉고’ 신화로 완벽한 재기에 성공했다. 하지만 끝내 오너 기업 체제로 돌아가진 못했다. 기업의 모태였던 자전거사업부는 1979년 3월 일찌감치 독립했는데, 현재 삼천리자전거의 최대 주주가 바로 김철호 회장의 손자이자 김상문 전 회장의 아들인 김석환 대표이사 사장이다. 김 사장은 현대차가 기아차를 인수하기 이전에는 자금부와 수출 담당 임원으로 기아차에서 일하기도 했다. 2012년 12월에는 기아차와 삼천리자전거가 ‘케이벨로’라는 이름의 컬래버레이션 자전거를 선보인다. 사업적으로는 완전히 분리됐지만 뿌리가 같은 두 기업의 협업만으로도 당시 화제를 모았다.

기아차 창업주 일가와 관련해 주목을 끄는 또 하나의 기업은 ‘세코(SECO)그룹’이다. 그룹을 이끌고 있는 이는 김철호 창업주의 외손자인 배석두 회장이다. 배 회장은 김 회장의 사위인 고 배창수 서진산업 회장의 아들이다. 배창수 회장은 장인인 김철호 회장으로부터 부품 회사를 물려받아 1960년대 ‘서울강업사를 세웠다. 이후 1972년 군포로 공장을 옮기면서 사명을 ’서진산업‘으로 바꿨다.

1954년생으로 한양대에서 산업공학을 전공한 배 회장은 아버지의 사업을 물려받아 사세를 키워 갔다. 그러나 기아차가 법정 관리에 빠지자 주 거래처인 서진산업 역시 급격한 위기를 맞게 된다. 1999년까지 서진산업은 차체 등 핵심 부품을 기아차에 납품하던 주요 1차 벤더로, 매출액이 2000억 원을 넘어서는 중견기업이었다. 하지만 기아차 사태와 외환 위기 등이 겹치면서 핵심 계열사이자 가업인 서진산업을 미국의 타워오토모티브그룹에 넘겨야 했다.


세코그룹, 자동차 부품 메이저로 승승장구
가업의 경영권을 넘기는 아픔을 맛봤지만 그룹 전체적으로는 반전의 기회가 시작된 것도 이 즈음부터다. 배 회장은 이후 핵심 부품인 클러치와 캠 샤프트 제조에 주력하기로 결정했다. 1990년 설립한 ‘서진오토모티브’와 현대차의 자산을 양수해 1999년 세운 ‘서진캠’이 대표적이다. 2011년 ‘서진클러치’에서 사명을 변경한 서진오토모티브는 국내 클러치 분야에서 최고의 기술력을 보유한 기업 중 하나로 사실상 세코그룹의 사업 지주사 역할을 맡고 있다. 현대·기아차 등 국내 완성차 업체들과 제너럴모터스(GM)·푸조·르노 등 해외 메이커들도 주요 고객사들이다.

2011년 8874억 원의 연결 매출을 기록한 서진오토모티브는 이듬해 1조239억 원을 올려 처음으로 1조 원 매출 시대를 열었고, 지난해에는 1조1618억 원의 연결 매출액과 162억 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했다. 현대·기아차그룹은 전체 클러치 수요의 절반가량을 서진오토모티브를 통해 공급받고 있다.
<YONHAP PHOTO-1183> 서진오토모티브 코스닥 SPAC 합병 상장기념식

    (서울=연합뉴스) 한국거래소 코스닥시장본부는 19일 서울사옥에서 자동차부품 제조업체인 서진오토모티브의 코스닥 SPAC 합병 상장기념식을 개최했다. 기념식에 참석한 김원식(왼쪽부터) 코스닥협회 부회장, 조우섭 신한SPAC 대표이사, 최홍식 한국거래소 코스닥시장본부장, 최광식 서진오토모티브 대표이사, 강대석 신한금융투자 대표이사. 2012.4.19 << 한국거래소 >> 

    photo@yna.co.kr/2012-04-19 16:03:08/
<저작권자 ⓒ 1980-2012 ㈜연합뉴스. 무단 전재 재배포 금지.>
서진오토모티브 코스닥 SPAC 합병 상장기념식 (서울=연합뉴스) 한국거래소 코스닥시장본부는 19일 서울사옥에서 자동차부품 제조업체인 서진오토모티브의 코스닥 SPAC 합병 상장기념식을 개최했다. 기념식에 참석한 김원식(왼쪽부터) 코스닥협회 부회장, 조우섭 신한SPAC 대표이사, 최홍식 한국거래소 코스닥시장본부장, 최광식 서진오토모티브 대표이사, 강대석 신한금융투자 대표이사. 2012.4.19 << 한국거래소 >> photo@yna.co.kr/2012-04-19 16:03:08/ <저작권자 ⓒ 1980-2012 ㈜연합뉴스. 무단 전재 재배포 금지.>
세코그룹은 200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전체 매출이 2000억 원대에 머무르던 중견기업이었다. 하지만 2010년 들어 매출 1조 원을 넘기며 ‘폭풍 성장’했다. 이러한 성장을 진두지휘한 이가 바로 배 회장이다. 배 회장의 성장 전략은 ‘종합’과 과감한 ‘인수·합병(M&A)’으로 요약된다. 세코그룹은 서진오토모티브를 비롯해 서진인더스트리얼·서진캠·에코플라스틱·코모스·아이아 등의 주요 계열사를 거느리고 있다. 이들은 각각 클러치, 차체, 캠 샤프트, 범퍼, 스티어링 휠, 휠 커버, 콘솔, 호스 등 자동차의 주요 부품들을 생산한다. 국내시장에서 클러치 하나만을 놓고 서진오토모티브와 경쟁하는 부품사는 있지만, 세코와 같이 전체적인 부품 라인을 갖추고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는 ‘종합 부품사’는 세코가 유일하다.

배 회장은 2010년부터 인수·합병(M&A)을 통해 본격적인 사세 확장에 나섰다. 자동차 부품 업체 프라코가 보유하고 있던 에코플라스틱을 인수한 것이 대표적이다. 2011년에는 현대위아로부터 아이아를 사들였고 서진오토모티브와 신한제1호기업인수목적(신한 SPAC)과의 합병도 이뤄졌다.

세코그룹의 M&A 사례 중 업계에서 화제가 됐던 것은 경영난으로 팔았던 모기업인 서진산업을 되찾은 일이다. 부친이자 창업주인 배창수 회장이 세운 그룹의 뿌리를 7년 만에 다시 찾아 온 사연은 어려워진 형편에 가업을 내놓아야 했던 과오를 씻어냈다는 점에서 당시 큰 주목을 받았다. 2004년부터 서진산업을 독자적으로 운영했던 미국의 타워오토모티브그룹은 GM과 포드 같은 거인들이 쓰러지면서 2006년 파산했다. 이후 사모 투자 펀드인 서버러스캐피털 매니지먼트의 소유였던 서진산업을 세코그룹이 다시 되찾아 온 것이다.

한편 세코그룹의 사업 지주사 역할을 하는 서진오토모티브 외에 또 다른 관계사인 ‘인베스트 유나이티드’도 눈길을 끈다. 사실 세코그룹이란 이름은 정식 법인명이 아니다. ‘주주(Shareholder)·직원(Employee)·고객(Customer)을 지향(Oriented)’한다는 의미의 영문 앞 글자를 따왔다는 것이 그룹 관계자의 설명. 개별 사업을 운영하고 있는 관계사들을 통합하고 그룹 전체의 정체성을 확립하기 위한 상징적 이름이라는 뜻이다. 실제로 이 관계자는 “배석두 회장 자신도 사내에서 회장이란 직함이 아니라 사장이라 부르라고 할 정도”라고 말했다.


베일에 싸인 컨트롤 타워, 인베스터 유나이티드
그룹의 사업 지주사인 서진오토모티브의 최대 주주는 배석두 회장으로 26.29%(2013년 기준)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여기에 특수관계인 주식 소유 현황을 살펴보면 인베스터 유나이티드가 12.36%의 지분으로 서진캠(12.55%)에 이어 주요 주주로 올라 있다. 그런데 인베스터 유나이티드의 최대 주주 역시 배 회장으로 약 60%의 지분을 보유 중이다. 특수관계인 주식 현황만 놓고 보면 배 회장과 인베스터 유나이이트, 서진캠 등이 서진오토모티브의 지분 51.19%를 보유하고 있어 안정적인 경영권 확보가 가능해진다.

그렇다고 “배 회장이 세부적인 경영 활동에 직접 나서지는 않는다”는 게 그룹 관계자의 말이다. 실제로 배 회장은 1990년 서진산업 대표이사로 취임해 2004년 사임한 후 전문 경영인 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대부분의 계열사에서 최대 주주이자 등기임원(이사)을 맡고 있지만 실질적인 경영 활동은 대규모 투자나 해외 진출 같은 굵직한 활동 위주라는 게 그룹 측의 설명이다. 업계에선 서진오토모티브가 사업 지주 역할을 맡고, 실질적인 경영 컨트롤 타워는 인베스터 유나이티드의 몫이라는 견해도 많다.

한편 인베스터 유나이티드의 금융업 진출에도 관심이 쏠린다. 2000년 ‘기업 구조조정 전문 회사’로 등록하며 설립된 이 회사는 2005년 들어 ‘경영 컨설팅’으로 주 사업부문을 변경했다. 이어 2012년 충남 지역을 기반으로 하는 오투저축은행을 인수했다. 1998년 설립 이후 14년 만에 영업정지 위기에 몰렸던 오투저축은행은 인베스터 유나이티드에 인수된 후 세 차례의 유상증자(148억 원) 등을 통해 2013년 9월 흑자 전환하는 등 회생에 성공했다.

이에 더해 인베스터 유나이티드는 지난 7월 16일 부산 흥국저축은행 인수 우선 협상 대상자에 선정됐다. 흥국저축은행은 STX그룹 팬오션의 자회사로 2007년 고려제강그룹에서 STX로 주인이 바뀌었다. 이번 흥국저축은행 인수전에는 러시앤캐시로 유명한 대부 업체 에이앤피파이낸셜그룹도 관심을 보인 것으로 알려졌는데, 결국 인베스터 유나이티드가 새로운 주인으로 나서게 될 전망이다. 현재 구체적인 인수 방향 논의와 실사가 진행되고 있는데, 세부 계약 사항 협상이 완료되면 최종 인수 절차를 밟게 된다.



돋보기
오뚝이처럼 다시 일어선 리한그룹

고 김철호 회장의 후손 중 자동차 부품 사업을 운영하는 이는 또 있다. 자동차 흡기 시스템 부품을 주요 품목으로 하는 ‘리한그룹’이다. 리한은 1979년 박인철 회장이 설립한 ‘대기산업’이 모태로, 2011년 9월에 현재의 사명으로 변경됐다. 박 회장은 김철호 기아차 창업주의 외손녀 사위로, 서진산업(배창수 창업주가 박 회장의 장인)에서 근무하다가 1979년 창업 자본금 3000만 원으로 ‘대기산업주식회사’를 설립하며 독립했다. 리한 역시 기아자동차의 발전과 위기를 함께 겪었다. 1997년 기아차의 법정 관리는 기아차의 주요 부품 납품사였던 리한이 맞은 최대의 위기였다. 하지만 이후 현대차 등으로 거래처를 늘리는 데 성공하며 반전을 이뤘고 꾸준한 제품 개발과 중국·미국 등의 해외 공장 건립으로 사세를 넓히는 데 성공했다. 2013년에는 현대모비스 우수 협력사로 선정됐고 ‘5000만 달러 수출의 탑’을 수상하는 등 자동차 흡기계 분야 전문 기업으로 자리 잡았다. 박지훈 리한 사장은 박 회장의 아들이다. 김철호 회장 이후 4대에 걸쳐 ‘자동차’와의 끈을 잇고 있는 셈이다.











국내시장에서 세코와 같이 전체적인 부품 라인을 갖추고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는 ‘종합 부품사’는 세코가 유일하다.


글 장진원 기자 jj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