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 지표에 울고 웃는 옐런
지난 11월 6일 미국의 10월 고용 지표가 발표된 후 12월 금리 인상 가능성을 예상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실업률, 신규 일자리 수, 시간당 임금 등 여러 지표가 ‘기대 이상’으로 나오면서 ‘이 정도면 12월에 금리를 올리는 데 문제가 없다’는 주장에 힘이 실리고 있다.
미국 등 글로벌 증시가 하락하고 미 달러화 가격이 오르는 등 세계 금융시장도 인상 가능성에 반응하고 있다. 12월 금리 인상은 이제 기정사실화돼 가는 분위기다. 과연 미 중앙은행(Fed)은 내부 직원들까지 금리 인상을 두고 내기를 하는 혼란 상태에 종지부를 찍을 수 있을까.

한 달 전만 해도 금리 인상은 ‘정신 나간 이야기’
한 달 전 Fed의 2인자 스탠리 피셔 부의장은 9월 고용 지표가 예상보다 낮게 나오자 “12월 금리 인상은 예상이지 약속이 아니다”고 말했다. ‘12월에 금리를 올리지 않으면 손에 장을 지지겠다’는 식이었던 데니스 록하트 애틀랜타 연방은행장도 ‘몇 주 전보다 경기 하방 압력을 더 느낀다’고 한 발 물러섰다. Fed 내부에서는 마이너스 금리를 고려해야 한다는 얘기까지 나왔다. 한 달 전만 해도 ‘연내 금리 인상’은 정신 나간 얘기처럼 간주되는 분위기였다.
미 노동부가 11월 6일(현지시간) 발표한 10월 고용 지표에 따르면 실업률은 전달과 비교해 5.1%에서 5.0%로 떨어지고 신규 일자리 수(비농업 부문 기준)는 13만7000개에서 27만1000개로 크게 늘었다.
실업률은 글로벌 금융 위기 직전 수준을 회복했다. 2007년 12월 실업률은 5.0%였다. 2009년 10월 10%까지 올랐던 것에 비하면 6년 만에 절반 수준으로 떨어졌다. 구직 포기자들까지 포함한 실업률도 9.8%로 2008년 5월 이후 처음 10%를 밑돌았다. 신규 일자리 수는 전 달의 두 배 수준으로 증가했을 뿐만 아니라 시장 예상치(18만개 안팎)도 크게 뛰어넘었다. 미 언론들은 이를 ‘고용 서프라이즈’라고 평가했다.
가장 눈에 띄는 부문은 임금 상승률이다. 그동안 미 Fed는 실업률이 떨어져도 임금 상승률이 낮아 소비가 일어나지 않은 점을 우려해 왔다. 소비가 일어나야 물가가 오르고 물가 상승률이 어느 정도 받쳐 줘야 금리 인상에 나설 수 있다.
미 근로자들의 임금은 10월에 전월 대비 0.4%, 전년 동월 대비 2.5% 상승했다. 2009년 5월 이후 가장 높은 기록이다. 임금 인상이 물가를 끌어올려 금리 인상 부담을 덜어줄 수 있다는 추론이 가능해졌다.
이제 전문가들은 모두 12월 인상을 얘기하고 있다. 지난 11월 4일 미 하원 금융위원회 청문회에서 재닛 옐런 Fed 의장은 “다음 회의 전까지 물가와 고용 상황이 기대를 충족시킬 정도로 개선된다면 12월 인상 가능성은 살아 있다”고 운을 떼어 놓은 상태다.
여기에 지표까지 괜찮게 나왔으니 거칠 게 없다. Fed 이사들이 일제히 공개 석상에서 12월 인상 가능성을 언급하기 시작했고 시장에선 발 빠르게 이에 부응하는 보고서를 내고 있다.

춤추는 고용 지표…반짝 상승 후 하락 반복
뱅크오브아메리카는 9일 낸 보고서에서 ‘페덱소더스(Fedexodus)’가 세계경제에 타격을 주지 않을 것이라는 근거를 5가지 열거했다. 페덱소더스는 Fed와 대탈출(Exodus)의 합성어로 Fed의 통화 완화 탈출, 즉 첫 금리 인상을 뜻한다.
이유는 ▷미 경제의 펀더멘털이 금리 인상을 견딜 정도로 강해졌고 ▷금리를 올리더라도 그 대신 재정 투입을 통한 경기 부양이 가능하며 ▷중국의 성장 둔화에 따른 리스크가 실제보다 과장돼 있고 ▷글로벌 금융시장이 이미 미국의 점진적인 금리 인상에 대비하고 있어 혼란이 적을 것이라는 논리다. ‘채권왕’으로 불리는 빌 그로스 야누스캐피털 펀드매니저는 “12월 인상 가능성은 100%”라고 말했다.
하지만 시장에선 아직 신중론이 있다. 10월 고용 지표가 좋게 나온 것은 사실이지만 아직 미국 경제가 견실한 회복 궤도에 올랐다고 보기에는 의심 가는 부분이 있다는 분석이다.
월스트리트저널은 Fed가 중요하게 여기는 임금 상승률이 과거 ‘반짝 상승 후 하락’이라는 패턴을 계속해 왔다고 지적했다. 또 노동시장 참여율이 여전히 저조(62.4%)하고 3분기 경제성장률이 1.5%로 전 분기 대비(3.9%) 크게 떨어진 것도 선뜻 금리 인상에 나서기 부담스럽게 만드는 요인이라고 분석했다.
가장 큰 걱정은 물가다. Fed는 물가가 중기적으로 연 2% 정도 오르는 모습을 보여야 금리를 올리더라도 소비가 바로 꺾이지 않을 것으로 보고 물가 지표를 주시해 왔다. Fed가 물가 지표로 주목하는 개인 소비지출(PCE) 기준 물가 상승률은 9월 0.2%(전년 동월 대비)였다. 변동성이 큰 에너지와 식품 분야를 뺀 핵심 PCE 물가 상승률도 1.3%였다. 둘 다 목표치(2%)에 크게 못 미친다. 더 큰 문제는 물가가 오르는 추세가 아니라 내려가고 있다는 것이다. 저유가와 달러 강세, 소비 부진의 영향이다. Fed 내부에서도 경기가 금리를 올리기에 충분히 달궈지기까지는 2020년은 돼야 한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신흥 시장의 동향과 금융시장의 불안정성도 미국이 ‘마이웨이’를 외치기 어렵게 만드는 대목이다. 벤 버냉키 Fed 전 의장을 비롯해 로렌스 서머스 미 재무부 전 장관. 폴 크루그먼 프린스턴대 교수, 조지프 스티글리츠 컬럼비아대 교수, 모리스 옵스펠트 UC버클리대 교수(현 IMF 수석 이코노미스트) 등 저명한 경제학자들이 일제히 섣부른 금리 인상 경계론을 펼치고 있다.
서머스 전 장관은 “섣부른 금리 인상은 글로벌 경제에 대재앙이 될 것”이라고 강한 톤으로 반대하고 있다. 특히 중국 변수에 대한 우려가 크다. 딘 크로셔 미 리치먼드대 경제학 교수는 “중국 상황은 국제 금융시장과 경제에 언제든지 돌풍을 일으킬 수 있고 미국도 그 영향권 내에 들어있다”며 “12월 금리 인상을 단정하는 것은 실수”라고 말했다.
워싱턴포스트는 11월 말, 12월 초 나올 10월 소비·물가 지표와 11월 고용 지표가 주목된다고 보도했다. 그 내용에 따라 얼마든지 분위기가 다시 달라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워싱턴= 박수진 한국경제 특파원 ps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