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3 손실액 10조 육박…'아, 옛날이여'
전 세계 조선업을 호령하던 국내 조선 업계가 휘청거리고 있다. 대우조선해양·삼성중공업·현대중공업 등 국내 조선업 ‘빅 3’의 올해 손실액이 무려 10조 원대에 육박할 것이란 분석이 제기되는 가운데 저유가, 중국 조선업의 약진, 일본 조선업의 부활 등 외부 환경마저 어렵다.

정부가 방향을 잃고 침몰하는 국내 조선 업계에 방향을 제시하고 구조에 나섰지만 업계 전문가들은 국내 조선업이 환골탈태하지 않으면 상황은 더욱 악화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조선 업계는 화려했던 과거의 명성을 되찾을 수 있을까.

‘빅 3’ 간 과당경쟁이 문제

한국수출입은행 해외경제연구소가 10월 26일 발간한 ‘2015년도 3분기 조선 해운 시황 및 전망’에 따르면 국내 조선 산업의 3분기 누적 수주는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줄어들었다. 수주량과 수주액은 각각 전년 동기 대비 2.5%, 19.4% 감소한 877만CGT(가치환산톤수), 190억5000만 달러(약 22조 원)를 기록했다.

해양 플랜트 시장의 침체가 지속되고 있는 가운데 컨테이너선과 유조선을 제외한 대부분의 선종이 감소세를 나타냈다. 전 세계 선박 발주량이 큰 폭으로 떨어지자 국내 조선 업계 역시 불황의 늪을 피해 갈 수 없었다.

이재우 한국수출입은행 해외경제연구소 팀장은 “올해 수주액은 전년 대비 약 27% 감소할 전망”이라며 “해양 플랜트 시장의 극심한 침체가 지속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저유가 기조가 계속돼 신조선 시장은 2016년까지 수주 감소 분위기가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국내 대형 조선사는 2008년 금융 위기 이후 시황 침체에 대비해 2010년부터 해양 플랜트에 집중했다. 하지만 핵심 역량이 부족하고 납기일이 지연되자 수익성이 악화되는 악순환이 반복됐다. 문제가 된 해양 플랜트 구조물은 바다에 매장돼 있는 석유·가스 같은 해양자원을 발굴·시추·생산해 내는 활동을 위한 장비와 설비를 뜻한다.

해양 플랜트 시장의 침체는 무엇보다 빅 3 간의 과당경쟁이 주된 원인으로 지목된다. 기술력을 고려하지 않은 채 경쟁사보다 더 많은 수주 계약을 하기 위해 무턱대고 뛰어들었기 때문이다. 해외 선주와 수주 계약을 놓고 협상 중인 경쟁사보다 더 낮은 가격에 유리한 조건을 내세워 무리하게 수주 계약을 성사시킨 사례도 있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시중 경제연구소 연구원은 “해양 플랜트 설계·구매·시공은 국내 빅 3가 과점하고 있는데, 이런 지위를 활용하지 못한 채 서로 경쟁하다가 독박을 쓴 격”이라며 “설계는 대개 설계 전문 업체가 진행하는데 과당경쟁으로 설계에 대한 책임까지 떠안았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문제가 발생하고 나서야 뒤늦게 계약서를 찾아보는 등 빅 3 모두 안일하게 대처해 화를 자초한 면이 있다”고 덧붙였다.

추락한 유가도 국내 조선업을 불황의 늪에 더욱 깊게 빠지게끔 만들었다. 지난해 배럴당 107.26달러를 기록했던 국제 유가는 현재 배럴당 45달러 선에 머무르고 있다. 에너지 공급과잉으로 저유가 상황이 지속되자 오일 메이저들은 발주를 지연시켰다.

중국 조선업의 두드러진 약진과 일본 조선업의 부활은 국내 조선 업계의 잠재적 위협 요소다.

산업통상자원부 조선해양플랜트과 단희수 과장은 “중국과 일본은 전문·대형화 등으로 기존 일반 상선과 함께 고부가 선박 등 국내 조선사의 주력 시장 진출을 적극 추진하고 있어 치열한 경쟁이 예상된다”고 말했다.
빅3 손실액 10조 육박…'아, 옛날이여'
정부, ‘당근과 채찍’ 들고 유인해야

업계 전문가들은 정부가 적극적인 지원과 함께 조정자 역할에 나서줄 것을 주문했다. 특히 KDB산업은행·한국수출입은행 등 정책 금융회사를 통해 국내 조선사들이 바람직한 방향으로 변해 갈 수 있게끔 유인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국내 조선 산업의 구조조정에 대한 목소리가 높아지자 정부도 움직이기 시작했다. 정부는 시장 지배력 강화, 시황 대응 능력 향상, 생태계 자생력 구축 등을 통해 조선 해양 산업 개편을 진행해 나갈 방침이라고 밝혔다. 먼저 시장 지배력 강화에 나섰다. 해양 플랜트 등 고부가 선박 분야에 독점적 공급자인 국내 조선사들이 공급자로서의 지위에 걸맞은 힘을 갖게끔 유인할 계획이다. 과당경쟁이 빚은 문제점을 되풀이하지 않도록 사전에 방지하겠다는 것이다.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주재로 11월 10일 열린 해외 건설·조선업 부실 방지를 위한 관계 기관 간담회에서 국내 정책 금융회사들은 무리한 수주를 방지하기 위해 사업성을 평가하는 시스템을 만들겠다는 방안을 내놓았다. 앞으로 수익성이 없는 수주에 대해서는 금융 지원을 하지 않겠다는 방침이다.

김보원 카이스트 경영대학 교수는 정부의 이 같은 방침에 대해 “조선업의 건전성을 유지하기 위해 금융 지원을 제한하겠다는 것”이라며 “정부가 조선 산업을 바른 방향으로 이끌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무기”라고 평가했다. 하지만 정책 금융회사 관계자들이 조선업 프로젝트의 수익성 여부를 판단할 수 있을지 여부는 미지수라는 지적도 뒤따랐다.

정부는 이어 포트폴리오 다변화를 통해 그룹 내의 시황에 따른 대응 능력을 강화해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정부는 이를 위해 1년 전부터 삼성중공업과 성동조선해양 간의 업무 협약을 물밑에서 추진해 왔다. 삼성중공업과 성동조선해양은 지난 8월 31일 경영 협력 협약을 체결했다.

정부 관계자는 “삼성중공업은 해양 플랜트에 중점을 두고 있고 성동조선해양은 상선에 중점을 두고 있는 회사”라며 “두 회사가 전략적 제휴를 맺으면 수주 포트폴리오에 맞춰 플랜트 시장이 좋지 않을 때에는 상선 시장으로 버티고 반대로 상선 시장이 좋지 않으면 해양 플랜트 시장으로 버틸 수 있다”고 말했다.

생태계 자생력 구축을 위한 정책도 적극 장려할 전망이다. 이번에 문제가 된 엔지니어링 능력을 키우고 기자재 국산화율을 높여 보겠다는 정부의 의지로 풀이된다. 김 교수는 “현재 중소 조선 업체와 기자재 업체는 홀로 설 수 없는 상황이며 앞으로도 마찬가지”라며 “빅 3를 정점으로 빅 3와 중소 조선사들 간의 밀접한 생태계가 형성돼야 한다”고 말했다.

현재 해양 플랜트에 들어가는 수백 개의 벌크선 자재 및 블록 등은 대부분이 해외에 의존하고 있다. 이런 부품들을 중소업체가 전문 역량을 키워 최고 품질의 제품을 만들어 낸다면 국내 조선업을 살리는 생태계가 구축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김현기 기자 heny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