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스바겐, 한 달 만에 판매량 1위 회복…'공익'보다 '실리' 택한 소비자들

지난 9월 터진 폭스바겐의 디젤 차량 배기가스 조작 사건은 글로벌 자동차 업계는 물론 산업과 경제 전체에 영향을 준 대형 사건이었다. 위법을 저지른 폭스바겐이 창사 이후 최대의 위기에 몰린 것은 물론이고 제조 강국 독일의 이미지까지 한순간에 추락했다는 분석이 연일 쏟아졌다.

‘폭스바겐 디젤게이트’ 후 두 달여가 지난 지금은 어떨까. 결론부터 말하면 한국에서만큼은 위기는커녕 호황이라는 표현이 더 어울린다. 디젤 차량 판매가 급감하고 폭스바겐 중고차 가격까지 떨어지는 등 한바탕 난리법석을 떨었지만 소동의 유효기간은 정확히 한 달이었다.
똑같은 사안을 두고 미국에선 21조 원에 달하는 엄청난 과징금을 매기며 폭스바겐의 도산 위기설까지 나오고 있지만 국내에서는 10월 한 달 잠깐 떨어졌던 독일차 판매량이 11월 들어 이전 실적을 완전히 회복했다. 미국이 대규모 과징금으로 ‘폭스바겐 죽이기’에 나섰다는 얘기마저 나돌고 있는 것과 달리 한국에선 독일차가 위기는커녕 ‘전화위복’의 전기를 마련한 상태다.
한국만 비켜 간 '디젤게이트' 파장
판매량, 10월 소폭 하락 후 급반등

디젤게이트가 터지기 전이나 지금이나 국내 수입차 시장의 절대 강자는 유럽차, 그중에서도 독일차다. 올해 1월부터 배출가스 조작 사실이 알려진 지난 9월까지 독일차가 국내 수입차 시장에서 차지한 점유율(등록 차량 기준)은 69.4%였다. 디젤게이트의 여파가 실제 판매량에 영향을 준 10월까지 누적 점유율은 68.7%로 소폭 떨어졌다. 하지만 11월까지의 누적 판매량은 68.9%로 오히려 반등했다. 불과 두 달여 만에 연비 조작 파문이 시장에서 자취를 감춘 모양새다. 그 사이 전체 유럽차 판매량은 9월 누적 81.0%, 10월 누적 80.9%, 11월 누적 81.2%로 거의 변화가 없거나 오히려 소폭 올랐다.

사건 당사자인 폭스바겐의 판매 추이는 더욱 극적이다. 올 9월까지 브랜드별 누적 판매량을 보면 폭스바겐의 스포츠 유틸리티 차량(SUV) 모델 티구안이 6840대를 팔아 부동의 1위를 차지했다. 2위에 오른 아우디 A6와 3위의 골프, 5위의 파사트 모델 역시 모두 폭스바겐그룹 차량들이다.

폭스바겐의 아성에 금이 간 것은 역시 10월 들어서다. 10월 한 달만 놓고 보면 아우디 A6 TDI가 판매량 4위에, A6 콰트로가 7위에 오른 것을 제외하고는 판매량 상위 10위 안에 폭스바겐 차량이 자취를 감췄다. 전체적으로 독일차가 주춤한 사이 시장을 파고든 것은 푸조(2008 1.6)와 렉서스(ES300h)였다. 푸조 2008은 10월 한 달간 719대를 팔아 수입차 시장 월간 판매량에서 처음 1위에 올라섰고 렉서스의 ES300h가 492대로 뒤를 이었다. 디젤 게이트 여파가 시장에 반영된 10월 한 달만 놓고 보면 유럽차 중 비독일차, 일본차가 반격의 기회를 마련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수입차 시장의 지각변동’ 혹은 ‘일본차의 대반격’이라는 뉴스가 쏟아지며 호들갑을 떨던 사이 발표된 11월 통계는 어떨까. 놀랍게도 폭스바겐 티구안이 1228대 팔리며 다시 1위 자리에 올랐다. 9월에 판매된 771대와 비교하면 457대가 더 팔렸고 두 기간의 판매 증가율은 37%에 이른다. 11월 한 달간 수입차 판매 실적은 폭스바겐(아우디 포함)이 1~3위, 7위, 10위를 휩쓸었다. 판매량 ‘톱 10’ 중 절반을 싹쓸이하며 완벽한 반전에 성공했다. 10월 판매 1위에 오른 푸조는 아예 톱 10에서 자취를 감췄고 렉서스도 9위로 추락했다.

파격 할인으로 위기 넘겨

국내시장에 한정된 사례이긴 하지만 독일차, 특히 폭스바겐은 불과 두 달 만에 이처럼 극적인 부활의 드라마를 써내고 있다. 위기의 극단에 몰렸던 기억치고는 다소 맥이 풀리기까지 하는 결과다. 10월 한 달간 947대에 그쳤던 폭스바겐 차량의 판매량은 11월 들어4571대로 급증했다. 두 달간 판매량 증가율은 377%에 달한다. 11월 판매량은 그간 폭스바겐코리아의 역대 월 판매 기록 중 최고 실적이다. 종전 기록은 올 6월의 4321대였다. 주요 시장인 영국과 미국에서 11월 한 달간 판매량이 20% 이상 급감한 것과도 대조적이다.

전 세계에서 유독 한국 시장에서만 잘나가는 폭스바겐의 위세는 ‘파격적인 할인 공세’에서 찾을 수 있다. 지난 10월 폭스바겐은 최대 20%에 이르는 공격적인 할인 마케팅에 나섰다. 모델에 따라 최대 1800만 원에 이르는 할인 폭이다. 60개월 무이자 할부 판매도 전 차종으로 확대했다.

디젤게이트 이후 반짝했던 독일차 인기 하락이 결과적으로는 가격 인하로 이어지고 이를 통한 판매 확대로 이어졌다는 분석도 나온다. 한국자동차산업협회 자료에 따르면 10월 한 달간 수입된 자동차 물량은 9월에 비해 25% 정도 감소했다. 특히 독일산 자동차의 수입 대수는 올 1월 이후 아홉 달 만에 처음으로 1만 대 이하(9918대)로 떨어졌다. 최고 기록을 세웠던 8월(1만6111대)과 비교하면 38%나 급감했다.

줄어든 물량은 고스란히 가격 하락으로 이어졌다. 독일산 차량은 총수입액은 지난 9월 5억2190만 달러에서 10월 들어 4억3337만 달러로 17% 정도 줄었다. 올 들어 처음 감소세를 보인 10월의 독일차 수입량과 금액이 100% 폭스바겐에만 적용된다고 볼 수는 없다. 하지만 폭스바겐이 디젤게이트 여파로 수입량을 줄였고 덩달아 전체 독일차 수입량 감소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게 업계의 분석이다. 결국 폭스바겐코리아의 대대적인 할인 공세의 배경에도 수입가 인하가 자리 잡고 있었다는 해석이 가능해진다.

소비자에겐 가격 인하만큼 좋은 조건이 없다. 더구나 오염 물질이 많이 배출된다고 해서 연비나 차량 성능이 떨어지는 것도 아니다. ‘공해 유발 주범’이라는 낯 뜨거움을 감당할 수 있다면 폭스바겐의 디젤 차량이 경제적인 면에선 오히려 유리하다. 배기가스를 많이 내뿜을수록 연비는 좋아지기 때문이다. 환경오염 방지라는 공공의 이익이 개인의 경제적 가치 앞에서 무릎을 꿇었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돋보기
독일차 주춤한 사이 대공세 나선 일본차


국내 수입차 시장에서 일본차가 차지하는 비율은 2014년 기준 12.3%다. 2001년 처음 정식 수입된 일본차는 2008년 35.5%의 시장점유율로 정점을 찍은 이후 줄곧 하향세를 그려 왔다. 1994년 49.2%에 달했던 미국차 비율도 20년 만인 2014년엔 7.4%로 추락했다. 반면 20년 전 50.8%로 미국과 시장을 양분했던 독일차는 지난해 80.4%의 점유율을 기록했다. 수입차 10대 중 8대가 독일산이라는 뜻이다.

폭스바겐 사태를 계기로 한국 시장 탈환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는 곳은 일본이다. 디젤차의 인기가 주춤한 사이 하이브리드와 가솔린에 강점을 지닌 일본 브랜드들이 국내시장 점유율 확대 열을 올리고 있다. 9월 한 달간은 렉서스가 가장 많이 팔린 수입차 2위에 오르기도 했다.
지난 10월 도요타가 선보인 ‘뉴 캠리 하이브리드 LE’는 리터당 17.5km의 고연비에 가격도 3570만 원으로, 국산 경쟁 차종인 쏘나타 하이브리드와 가격 차이가 크지 않다. 닛산도 가격 인하 공세에 나섰다. 고성능 스포츠카 ‘370Z 2016년형’을 새로 선보이며 부분 개선 모델임에도 가격을 이전보다 570만 원이나 낮춘 5190만 원에 내놓았다. 닛산의 프리미엄 브랜드인 인피니티도 유로6 기준을 적용한 ‘Q50 2.2’를 기존 유로5 모델과 똑같은 4380만~4920만 원에 선보여 사실상 가격이 인하됐다는 평가다.

장진원 기자 jj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