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년간 아르헨티나 정치를 지배해 온 페론주의가 막을 내렸다.”(AFP·뉴욕타임스)
“좌파가 득세하던 아르헨티나에서 균형을 찾게 됐다.”(CNN)
12년 만에 우파 후보가 당선된 아르헨티나의 대통령 선거에 대해 세계의 주류 언론들은 ‘포퓰리즘에 대한 심판’이란 평가를 내렸다. 새 대통령 당선자인 마우리시오 마크리(56) 부에노스아이레스 시장에 대한 서방세계의 기대도 그만큼 크다. 하지만 ‘아르헨티나 병’은 깊고 포괄적이다. 페로니즘의 ‘위대한 유산’을 어떻게 감당해 낼지가 마크리 정부에 주어진 당면 과제다.

1946년 후안 페론 이후 내리막길

‘신은 진정 위대했다. 이 풍요롭고 넓은 아르헨티나 땅을 창조해 낸 것이 그렇다. 하지만 아르헨티나 사람들까지 만들어 낸 것은 신의 실수였다.’ 아르헨티나 사람들끼리도 하는 자조 섞인 우스갯소리다. 1946년 군 출신 후안 페론이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남미 최대의 부국이었던 아르헨티나는 퇴보 일변도의 길을 걷게 된다. 페로니즘으로 20세기 인류 역사에 한 챕터를 남기기까지 아르헨티나인들은 반세기 이상을 포퓰리즘에 갇혀 살았다. 페로니즘의 결과는 나태와 궁핍, 의타심의 심화였다. 11월 23일 아르헨티나 대선은 그런 아르헨티나의 종언을 의미한다.

아르헨티나의 경제와 국력은 페론과 밑바닥 출신 대중 가수로 그의 재혼 부인인 에바 페론의 활동과 함께 기울어지기 시작한다. 리더 개인의 감정과 감성에 국가 정책이 크게 좌우되는 국가사회주의 시스템의 발동이었다. 대령에서 정계로 투신해 제2차 세계대전 때까지 노동부 장관과 부통령을 지낸 그는 전쟁 중에 드러내 놓고 이탈리아와 독일을 지지했다.

이 일로 공직에서 쫓겨났지만 그는 노동계급을 선동하면서 바로 집권했다. 동시에 이전에 지지했던 대로 파시즘과 나치즘을 잉태시킨 국가사회주의적 노선을 하나씩 밟기 시작했다. 대통령 부부가 대중과 직접 감성적으로 ‘소통’하면서 관료·언론·학계·연구기관 등 중간 지대의 전문가 그룹들이 사회적으로 설 자리가 없어져 버린 것도 페론주의 아르헨티나의 주요 특징이다.
70년 만에 페론주의 벗은 아르헨티나
시장경제 질서는 자연스럽게 무너져 갔고 최근까지도 개방과 거리가 먼 행보를 보인 것도 이런 전통에서였다. 늘어난 것은 미래를 내다보지 않은 무분별·무차별적인 복지였다. 생활 보조금 등 각종 보조금과 정부 지급 연금은 계속 늘어나 지금은 정부 예산의 20%를 차지할 정도다.

이번에 물러나는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와 바로 전임자인 그녀의 남편 네스토르 카르치네르 집권기에 이 나라 경제는 특히 더 피폐해졌다. 2003년부터 지금까지 12년간 계속된 좌파 부부 대통령 시기의 정책들은 경제지표들을 놀라울 정도로 악화시켰다.

2007년 사별한 남편을 뒤이은 페르난데스 대통령은 집권 직후 정부가 지급하는 연금과 봉급을 두 배로 올려버렸다. 정부에서 연금이나 봉급을 받는 국민이 40%에 달한다. 저소득층엔 매월 일정액이 지급됐다. 모든 학생들에게 최신 모델의 넷북을 무상 지급한 것은 ‘디지털 격차를 줄이자’는 구호에 따른 것이었다.
그 결과 올해 재정적자는 국내총생산(GDP)의 6%를 웃돌 전망이다. 경제성장률은 지난해 마이너스 2.5%로 떨어졌다. 올해도 0.4%에 머무르고 있다.

전 세계가 디플레를 걱정하는 와중에도 아르헨티나는 살인적인 인플레로 고통 받고 있다. KOTRA에 따르면 2007년 페르난데스 집권 후 한두 해를 빼고 물가 상승률이 매년 25%를 웃돌았다. 마이너스 성장한 지난해 물가 상승률은 최소 30%, 최대 38.5%에 달한다는 분석이다. 올해도 25%는 된다고 한다.

보조금에 중독된 국민들…정상화 험난

치솟는 물가는 과도한 공공 지출 외에 억지로 틀어막은 환율 정책 탓도 컸다. 2011년 재선된 페르난데스는 강력한 외환 규제로 달러 환율의 상승을 억지로 눌렀다. 당장 이듬해인 2012년부터 달러화 구매가 힘들어졌고 달러로 해외 송금이 불가능해진 기업들의 불만도 극에 달했다.

지난해 후반 외채 협상이 실패하면서 사실상 국가 디폴트에 처했을 때 달러 대 페소의 공식 환율은 1 대 8 정도였지만 암시장에서는 1 대 16으로 치솟았다. 지금도 공식적으로는 달러당 9.7페소(11월 26일 현재) 수준이지만 암시장에서는 15페소에 거래된다. 물가 상승을 막겠다며 인위적으로 페소화 가치를 높게 유지한 결과가 달러의 고갈과 만성화된 경제 위기였다.

개방경제와 반대로 간 것은 환율 정책만이 아니었다. 고(高)관세로 강력한 수입 규제들이 더해진 것도, 아르헨티나 최대 석유가스 회사인 YPF의 국유화도 페르난데스 재집권 이후 단행된 조치였다. 스페인계 렙솔의 자회사인 YPF가 국유화되자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는 2012년 4월 24일 아르헨티나의 국가 신용 등급을 ‘안정적’에서 ‘부정적’으로 즉각 내렸고 급속한 달러 이탈로 외채 지급불능 상태에 처하게 됐다. 수입만 저지한 게 아니라 수출 억제 정책도 병행했다. 자유시장과 개방경제를 거부하며 복지 확대로 달려온 결과는 쓰디썼다. 재정은 고갈됐고 국가 부도에 처하게 된 것이다.

이번 선거의 의미는 명확하다. 아르헨티나 국민이 대책 없는 막연한 복지보다 결국 성장과 일자리를 택했다는 사실이다. “(향후 10년간) 일자리 200만 개 창출로 경제를 회생시키겠다”며 ‘바꾸자’를 외친 마크리의 공약이 받아들여진 것이다. 1930~1940년대만 해도 세계 4~5위 경제 대국이었던 아르헨티나가 70년 시행착오 끝에 새로운 출발을 모색하는 것이다.

하지만 기회라기엔 위기의 골이 너무 깊다. 음영 짙은 페로니즘의 잔재를 어떻게 극복해 낼지가 마크리 정부에 주어진 힘겨운 과제다. 페소화 가치를 시장에 맡겨 외환시장을 안정시키고 수출 경쟁력도 키우겠다는 것은 그 시작일 뿐이다. 재정 적자에서 벗어나자면 정부 지출의 과감한 삭감이 필요하지만 보조금에 중독된 서민 중산층이 과연 협력할지도 변수다.

국유화를 되돌리고 수출입세를 다시 인하하고 통관 규제 완화 등 반(反)개방 정책도 하나하나 철폐할 때 외국자본의 투자도 살아날 것이다. 막대한 자원 대국이 석유와 천연가스를 수입할 정도로 국내 산업은 빈약하기만 하다. 그러면서도 교통과 전기·가스 등 에너지에까지 막대한 보조금을 지급하고 있다. 마크리의 공약대로 이런 것도 하나씩 정상화해야 한다. 하지만 그는 아직 의회를 장악하지 못했다.

주변 환경도 우호적이지만은 않다. 남미 12개국 중 파라과이와 콜롬비아를 제외한 9개국에 좌파 정권이 남아 ‘좌파 벨트’는 그대로다.

허원순 한국경제 논설위원 huhws@hankyung.com
(한국경제신문‘Vitamin’ 81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