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기는 눈에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그게 없으면 아무도 살 수 없다. 있을 땐 당연한 것으로 여기거나 보이지 않아 그게 얼마나 고마운지 제대로 느끼지 못하고 살 때가 많다. 조금만 부족해도 금세 그 어려움을 실감하게 된다. 엄마(이런 때는 이상하게도 ‘어머니’보다 ‘엄마’라는 말이 더 살갑고 또렷하게 느껴진다)의 존재가 그렇다.
영문학자이자 수필가인 피천득 선생에게 어머니는 돌아갈 수 없지만 늘 마음에 위안과 희망이 되는 고향과도 같은 존재였다고 한다. 그는 나이 일곱 살에 아버지를 여의고 열 살에 어머니마저 여의었다. 어머니는 거문고와 서화에도 능했다고 하니 어린 아들에게 큰 자리로 차지하고 있었을 것이다(주요섭의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의 모델이 바로 선생의 어머니라고 한다.

자신 버린 어머니 찾아나선 여대생
오죽하면 입버릇처럼 자신에게 영원한 두 여인이 있으니 한 분은 어머니고 또 한 사람은 자신의 딸이라고 했을까. 선생의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은 평생의 아픔인 동시에 그의 글의 보물 창고 역할을 했다. 아흔 나이를 넘어서도 어머니를 떠올리면 언제나 어린 시절로 돌아가는 순수함과 애틋함이 스며든다고 했다. 민태원이 ‘청춘예찬’에서 ‘청춘’은 듣기만 해도 가슴 설레는 말이라고 한 것처럼, 어머니는 하나의 낱말이 아니라 영원한 고향이다. 그러니 어머니를 모르거나 일찍 여읜 사람의 아픔과 상실감은 당사자가 아니곤 짐작하기 어렵다.
오래전 ‘인터뷰 게임’이라는 TV 프로그램을 봤다. 평범한 시민이 알고 싶은 문제나 풀어야 할 의문에 직접 맞닥뜨리며 사람들을 인터뷰하는 독특한 프로그램이었다. 그날의 주인공은 스물두 살 여대생이었다. 무슨 사연이 있어 나왔을까. 그녀는 18년간 헤어진 채 지내온 엄마를 찾아나선 것이었다.
엄마는 그녀를 두고 집을 떠났다. 아버지는 걸핏하면 술 마시고 가족에게 행패를 부렸다. 혼자 남은 딸은 그런 아버지의 행패를 고스란히 받아내야 했겠지만 조금씩 커가면서 더 이상 버틸 수 없게 되고 자신도 성장하면서도 도저히 견뎌낼 수 없게 되자 어쩔 수 없이 거의 인연을 끊고 지내야만 했다.
본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고아 아닌 고아가 된 셈이다. 그럴수록 어머니가 그리웠다. 딸은 직접 엄마를 찾아 나서기로 했다. 바로 그 TV의 ‘인터뷰 게임’에 신청해서다.
멀리 경상도까지 힘겹게 찾아갔는데 정작 외삼촌은 그리 반기는 눈치가 아니었다. 심지어 조금 더 지난 뒤 만나면 어떻겠느냐고 말한다. 아마도 어머니는 재혼했을지도 모르겠다 싶었다. 이미 새로운 가정을 이루고 사는데, 난데없이 나타난 친딸의 존재가 얼마나 곤혹스러울까. 여학생은 애써 의연하게 받아들였다. 몇 시간쯤 지났을까. 이모가 그녀를 만나러 왔다.
“네 엄마랑 꼭 닮았구나.” 그냥 ‘엄마랑 꼭 닮았다’는 그 말만으로도 딸은 행복해 하는 것 같았다. 어쩌면 ‘네 엄마’라는 말은 얼마나 오래 그녀에게 금기의 말이거나 다른 이들에게서 듣기 어려웠던 말일지도 모른다.
“엄마가 날 알아볼까요?” 기억도 나지 않는 엄마 얼굴과 겹쳤을 것이다. 하지만 이모의 말은 그녀의 두려움을 말끔히 씻고도 남았다.
“그럼. 엄마는 틀림없이 널 알아보고 말고. 엄마니까….”‘엄마니까’라는 그 한마디만큼 그 프로그램에서 감동적인 말은 없었다. 마침내 다음날 엄마가 딸에게 나타났다. 저 멀리서 무거운 발걸음을 옮기는 한 중년 여인이 천천히 다가왔다. 그녀의 얼굴은 딸을 만나는 기쁨과 딸에 대한 미안함이 그대로 묻어났다. 마침내 모녀가 상봉했다. 무려 18년 만에….

부재 떠올리면 그의 존재가 고맙다
저 멀리서 한걸음으로 내달리지도 않고 한참을 바라보고 서 있다가 슬로비디오처럼 다가서는 모녀. 선한 눈을 가진 딸은 마음도 고왔다. 자신이 펑펑 울거나 원망의 말을 쏟아놓으면 가뜩이나 자신에게 미안해 할 엄마가 아파할까 싶어 애써 감정을 눅이는 기색이 또렷했다. 혹시 자신의 존재와 갑작스러운 출현이 어머니에게 부담이 되지 않을까 배려하는 마음이 깔려 있었을 것이다. 딸은 어머니가 재혼한 게 아니라는 걸 알았다. 그 말 한마디로 이미 딸에겐 안도의 표정이 그대로 나타났다. 어머니가 일부러 외면한 게 아니라 딸이 아버지와 사는 줄 알고 그 폭력이 두려워 어찌하지 못해 온 것도 알았고 2년 뒤쯤 돈이 좀 모아지면 딸을 찾으려고 했다는 고백도 딸은 들었다.
“엄마, 내가 한번 안아 봐도 돼요?”
얼마나 그 품에 안겨보고 싶은 꿈을 꿨을까. 엄마는 그 말에 다시 눈물을 쏟는다. 그걸 보는 내 눈에도 그렁그렁 짭쪼름한 물방울이 맺힌다.
“사랑해요, 엄마. 이 말을 이렇게 늦게 해서 미안해.”
오히려 엄마를 위로하고 달래준다. 참 아름다운 마음을 가진 딸이다. 엄마는 그 말에 더 이상 할 말을 잇지 못한다. 외가 식구들과 함께 하룻밤을 지낸 그녀는 다시 자신의 삶의 터전으로 돌아갔다. 꿈에도 그리던 엄마와 함께 지낸 그 밤은 모녀에게 얼마나 행복했을까. 버스 터미널에서 그녀가 곧 엄마와 함께 지낼 수 있는 때가 오도록 열심히 살겠다는 다짐으로 꾸벅 인사할 때 겨울의 스산함마저 모두 사라졌다.
“엄마니까….” 세상에 그보다 아름다운 말은 찾기 어려울 것이다. 아니 없을 것이다. 어떤 산보다 높고 어떤 바다보다 깊은 그 엄청난 사랑의 중심. 그것은 논리도 이성도 감성도 뛰어넘을 뿐만 아니라 영혼의 초월성까지도 넘어서는 ‘위대한 이유’다.
그런 엄마에게 할 수 있는 최고의 효는 무엇일까. 맹무백이 어떻게 하는 것이 효냐고 묻자 공자가 대답했다. “부모가 오직 자녀의 질병만 걱정하도록 해야 한다.” 맹무자는 맹의자(孟懿子)의 맏아들이다. 묘하게도 아버지 맹의자도 공자에게 효행에 대해 물었다. 그 물음에 공자는 어김이 없어야 한다(無違)고 답했다. 공자는 자신의 제자의 아들이 효를 어떻게 실천할 수 있느냐고 묻자 아예 부모에게 근심을 안기지 말라고 한다. 질병만 걱정해야 한다는 건 그밖의 것들은 마땅히 걱정을 끼치지 않아야 한다는 뜻을 이미 담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 자식으로서 질병에 걸리면 자신뿐만 아니라 부모에게도 근심이니 늘 건강을 유지해야 하는 게 첫 번째 효의 바탕이라고 가르친 것이다. 공자는 어떤 이가 묻느냐에 따라 대답을 아주 유연하게 달리 내놓았다.
안타깝게도 사서(四書)에서 어머니에 관한 구절을 찾기는 힘들다. 가부장적 사회였기 때문이기도 했겠지만 여기서 말하는 것은 아버지만 뜻하는 게 아니라 어버이를 의미하는 것이다. 그 사랑에 아버지와 어머니의 다름이 없다는 함의로 보면 될 것이다. 함께 살건, 떨어져 살건 항상 자식이 잘 지내고 건강한지만 걱정하시는 분들이다. 부모님께서 걱정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라도 건강해야겠다.
김경집 인문학자, 전 가톨릭대 인간학교육원 교수
늘 희망과 위안이 되는 존재 ‘어머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