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권지도⑪]‘노인들의 홍대’에 젊은 층 발길 시작
종로가에서 익선동을 들어가기 위해서는 꼭 지나쳐야 하는 곳이 있다. 낙원상가가 자리한 낙원동과 단성사, 피카디리 극장 등이 자리잡고 있는 돈의동이다. 대형 악기상가와 극장 등을 끼고 전통적인 ‘구도심 상권’으로 발달해 온 이들 지역은 오랫동안 변화 없는 정체된 상권이었다. 최근 들어 낙원상가 뒷동네인 익선동이 새롭게 주목 받으면서 낙원동과 돈의동에도 젊은 층이 유입되기 시작하고 있다.

◆ 밤늦게까지 먹을거리 판매, 젊은층 발길 시작

1층에서 4층까지 악기 전문 상가들이 꽉 들어차 있는 낙원상가는 1970년대부터 인사동 입구에 자리 잡고 있는 대형 상가 건물이다. 국내에서는 보기 드물게 전문 악기점들이 밀집해 있다. 특화된 업종으로 1990년대까지만 해도 안정적인 성장을 누려온 낙원상가는 2000년대 들어서면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인터넷을 통한 온라인 상거래가 활발해지면서다. 낙원상가 매장은 점포 운영비 등을 고려해야 하기 때문에 가격을 떨어뜨리는 데 한계가 있다.

2009년 오세훈 당시 서울시장의 “낙원상가가 주변 경관을 해친다”는 말에 철거 위기에 휩싸이기도 했다. 천명수 성도컨설팅 대표는 “악기상가를 철거하려면 그곳에서 생업을 꾸리는 상인들에게 대체지를 마련해 줘야 한다”며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 현재까지 보류되고 있다”고 말했다. 3.3㎡(1평) 기준으로 2009년 1500만 원이었던 점포 매매가는 현재 1300만 원으로 하락한 상태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곳에서 반전의 기회가 찾아왔다. 2010년 엠넷의 ‘슈퍼스타 K’ 참가자였던 가수 장재인이 통기타를 들고 노래 부르는 모습이 큰 인기를 얻으면서 취미로 음악을 선택하는 직장인과 학생들이 크게 늘어난 것이다. 낙원 상가에 있는 두리뮤직 관계자는 “다양한 오디션 프로그램들이 인기를 얻은 덕분인지 취미 생활을 위해 악기를 구매하는 이들이 꾸준히 늘고 있는 추세”라고 말했다.

낙원상가 입구와 뒤쪽을 둘러싸고 종로3가역까지는 먹자 상권이 크게 형성돼 있다. 그중에서도 가장 많은 업종은 ‘국밥집’과 ‘백반집’이다. 국밥 한 그릇에 3000원, 모둠전 하나에 6000원 등 저렴한 가격대의 서민 밥집이다. 낙원상가 앞으로는 포장마차가 즐비하게 늘어서 있어 색다른 풍경을 만들어 낸다.

이처럼 낙원상가 주변에 저렴한 서민 밥집이 밀집한 것은 이 일대가 노인 고객을 중심으로 발달한 상권이기 때문이다. 종로3가까지 이어진 돈화문로 일대는 무임 지하철을 타고 고령층이 집결하는 중심지다. 일명 ‘노인들의 홍대’로 불린다. 이곳에 자리한 종로낙지 관계자는 “근처에 탑골공원, 먹고갈래지고갈래 등 고령층의 모임 장소가 많아 나이 든 소비자가 많이 몰리는 곳”이라며 “그동안 젊은 층의 유입이 활발하지 않아 상권 자체가 정체된 분위기가 강했다”고 말했다.

◆ 익선동 이웃 돈의동 '고기골목'도 주목

‘노후화된 상권’이라는 이미지가 강한 이 지역에 최근 젊은 층의 발길이 잦아지고 있는 건 놀라운 변화다. 특히 2013년 인사동에서 종로3가 쪽으로 넘어올 수 있는 횡단보도가 들어선 것이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인사동에는 늦은 시간까지 문을 여는 주점이나 음식점이 거의 없다.

이와 반대로 포장마차 등이 포진해 있는 종로3가 일대는 밤늦게까지 먹을거리를 판매하는 곳이 많다. 우연히 이곳을 찾았다가 포장마차와 국밥집 등의 사진을 블로그나 SNS에 올리는 이들이 늘어나면서 젊은 층과 외국인 관광객의 유입이 늘고 있다.

종로낙지 관계자는 “아직은 고령층이 더 많지만 갈수록 젊은 층이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아직은 상권의 변화가 크게 느껴지는 단계가 아닌 만큼 임대료는 크게 변동이 없다. 66㎡(20평) 기준으로 2013년 월세 250만~300만 원, 보증금 2000만~3000만 원, 권리금 8000만~1억 원이었던 시세가 지금도 그대로다. 다만 대로변인 돈화문로와 수표로 근처는 2년 전에 비해 임대료가 상승했다. 66㎡ 기준으로 2013년 월세 200만~250만 원, 보증금 3000만~4000만 원, 권리금 1억 원 미만이었던 시세가 2015년 월세 350만~400만 원, 보증금 4000만~5000만 원, 권리금 1억5000만~2억 원으로 올랐다.

그중에서도 주목해 봐야 할 곳은 익선동과 바로 이웃하고 있는 돈의동 고기골목이다. 종로3가 6번 출입구로 나오자마자 바로 연결되는 고기골목은 1990년대 형성된 곳으로 좁은 지역으로 저녁이면 사람들로 북적인다. 드럼통 위에 철판을 하나 깔고 옆 사람과 어깨를 부딪치며 고기를 먹는 모습이 불편해 보이면서도 어딘가 정겹게 느껴진다.

고기골목에 있는 가게의 시세는 66㎡ 기준 권리금 1억8000만~2억 원이다. 보증금은 3000만 원, 월 임대료는 250만~300만 원이다. 천명수 성도컨설팅 대표는 “골목을 얼마나 활용할 수 있느냐에 따라 권리금과 임대료가 다르다”며 “가게의 3면이 골목과 맞닿아 있으면 비싼 편”이라고 말했다.

익선동에 20~30대 젊은 층이 하나둘 유입되기 시작하면서 돈의동 고기골목에도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근처 직장인과 주민들만 이용했던 고기골목이 외부인들로 북적이기 시작한 것이다. 고기골목에서 고깃집을 운영하는 C 씨는 “아직까지 매출이 크게 늘지는 않았다”며 “하지만 익선동을 찾는 사람들이 많아진 만큼 고기골목에도 변화가 생길 것”이라고 말했다. 이정흔 기자 viva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