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정판으로 고정 팬 확보, 북페어 '언리미티드 에디션'에 1만 명 몰려

'베스트셀러 사절'… 독립 출판물로 승부
서울 서교동 한 골목길, 5층짜리 건물 꼭대기 층 노란 불빛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엘리베이터도 없이 좁은 계단을 오르면 닫혀 있는 출입문 하나를 마주하게 된다. ‘오픈 두 시’ 안내 문구를 확인하고 손잡이를 돌리면 반전의 공간이 나온다. 의자를 차지하고 있는 고양이 세 마리와 탁 트인 천장과 다락방 느낌의 책방이 보인다. 이곳은 ‘독립 출판물’을 제작하고 판매하는 ‘셀렉티드 북숍, 유어 마인드’다.

‘취향’을 파는 서점

서가에 진열된 책을 둘러보면 단번에 ‘다르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베스트셀러’는 단 한 권도 없다. 처음 보는 책들인데 형식도 독특하다. 예를 들면 이렇다. ‘딱지도감’이라는 책은 추억의 딱지를 파는 전국 문구점 사진들로 꽉 채워져 있다. ‘맥주도감’은 갖가지 맥주의 제작 방식과 특징이 일러스트와 함께 한 페이지씩 정리돼 있다. 저자가 살던 집과 그때 느낀 감정을 적은 책도 눈길을 끈다.

이곳에서는 대형 서점에서 쉽게 볼 수 없는 소자본, 개인에 의한 출판물을 취급한다. 국제 표준 도서번호(ISBN)가 없는 책들이다. 사진집, 일러스트 북, 비정기 간행물, 인디 음반 등도 있다. 기존 서점과 뭐가 다를까. 유어 마인드에서 만난 한 독자는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를 통해 알게 된 이후 한 달에 두세 번씩 꼭 들른다”며 “출입문도 잘 보이지 않고 친절한 공간은 아니지만 개인적이고 사소한 내용의 책들이 많아 공감이 가고 평온한 느낌이 든다”고 말했다.

‘한국 타워 탐구 생활’이라는 책을 집어든 하박국 씨는 “평소 여행을 가면 타워에 가서 내려다보는 걸 좋아하는데, 외국인의 시선으로 본 한국 타워가 흥미로워 구입했다”고 말했다. 이 책은 일본인 작가가 한국의 베스트 타워 15곳을 선정해 사진을 찍고 한국어로 글을 쓴 것으로, 유어 마인드에서 제작해 ‘언리미티드 에이션’을 통해 소개된 따끈따끈한 신작이다.

색깔 있는 서점, 유어 마인드의 주인은 국어국문학·법학과 출신의 이로·모모미 부부다. 이로 대표는 ‘책등에 베이다’ 등의 책을 쓴 작가이기도 하다. 그가 처음 홍대 인근에 서점을 연 것은 5년 전의 일이다. 소규모로 독립 출판물을 만들어 왔지만 책을 팔 곳이 마땅치 않자 ‘유통 채널’을 확보하기 위해 선택한 길이었다.

이로 대표는 “우리가 만든 책을 팔 공간을 만들자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우리와 비슷한 책을 모아 판매해 보자는 아이디어가 시작이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미 오프라인 서점은 하향세를 걷고 있었다. 대형 서점도 줄줄이 문을 닫는 상황이었다. 자영업은 처음이었던 이로 대표는 온라인의 문을 먼저 두드렸다. 2009년 8월 온라인 서점을 열고 가능성을 확인해 보기로 한 것. 2010년 5월 오프라인 서점을 연 것은 틈새시장에 대한 자신감이 붙으면서다. 이로 대표는 “출판 시장이 어려운 가운데 특별히 길이 있다고 생각하진 않았지만 개인적인 작업에서부터 시작해 조금씩 성장해 나갔기에 가능한 일이었다”고 말했다.

그렇게 국내에 독립 출판물에 대한 인식이 거의 없는 상황에서 유어 마인드, 북 소사이어티, 가가린 등이 전문 서점을 내기 시작했다. ‘취향을 파는 서점’으로 이름을 알리며 점차 고정 팬들이 늘어났다. 유어 마인드를 비롯해 현재 전국에는 약 50개의 독립 출판물 서점이 자리하고 있다.

유어 마인드는 초창기 ‘희귀한 중고책’에 승부수를 걸었다. 출판 업계 제작자들 사이에서도 독립 출판이라는 용어가 낯선 시기였다. 독립 출판물만으로는 한계가 있어 보였다. 이로 대표는 중고책 중 희귀한 책들을 모아 50 대 50 비율로 판매하기 시작했다. 고정 독자층을 확보하는 게 시급한 일이었다. 이후 독립 출판이 독자적인 시장을 형성하면서 진짜 팔고 싶은 책을 유통하기 시작했다. 다행히 시간이 갈수록 중고책 비중은 줄어들고 독립 출판물만을 다룰 수 있었다.
'베스트셀러 사절'… 독립 출판물로 승부
'베스트셀러 사절'… 독립 출판물로 승부
에코백 사업 등 다각화 나서

그들이 선택한 콘셉트는 명확했다. 처음부터 대형 서점과 ‘다른 길’을 택했고 한 권을 팔아도 ‘다른 책’을 판 것이 경쟁력이었다. 이로 대표는 “엄밀하게 이야기하면 우리는 ‘특수한 서점’이지 ‘동네 책방의 다른 버전’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강조했다. 장르 자체의 특이성이 대형 서점, 중소형 서점, 동네 서점과의 차별점이자 주요 포인트였다는 설명이다. 기존 서점에서 판매하지 않는 책을 주로 다룬다는 점에서 유어 마인드는 새 시장을 연 셈이다. 모두가 불황을 겪는 가운데, 소규모 서점이 사는 길은 대형 서점과의 ‘경쟁’이 아닌 소수 영역에서의 ‘개척’이었다. 이 때문에 “대형 서점이나 온라인 서점과 경쟁 구도 자체가 나오지 않는다”고 이로 대표는 말했다.

유어 마인드의 판매 전략은 ‘희귀한 책’에서 ‘이상한 책’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초창기엔 독립 출판 그 자체로 차별점이 됐지만 시장이 커지고 새로운 경쟁자가 생기면서 고유의 특성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2015년 현재 유어 마인드는 소수의 서적만을 입고하는 방식으로 ‘더 이상한 책’을 선별하고 판매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해외 독립 출판물도 나름의 ‘편집’을 통해 들여온다. 일례로 유어 마인드의 신간 ‘예술가의 항해술’은 영국의 문예지 ‘화이트 리뷰’에서 유어 마인드의 ‘취향’에 따라 선별해 다시 엮은 책이다.

아트 북 페어 ‘언리미티드 에디션’은 단연 유어 마인드의 최대 히트작이다. 올해로 7회째를 맞은 이 행사는 해를 거듭하며 기록을 경신하고 있다. 지난 11월 7~8일 서울 세종로 일민미술관 앞에는 궂은 날씨에도 불구하고 긴 줄이 늘어섰다. 단 이틀 동안 열린 독립 출판사들의 행사에 무려 1만3000명이 몰렸다. 2013년 5000명, 지난해 8000명에 비하면 놀라운 성장세다.

언리미티드 에디션은 한 해의 독립 출판 시장을 정리하는 행사다. 180여 개의 독립 출판사를 비롯해 작가와 독자들이 한자리에서 만나며 시끌벅적한 장을 형성한다. 이 기간에 맞춰 새롭게 출간되는 책이 적지 않다. 제작자는 자신의 출판물을 돌아보고 방문객과 제작자의 위치가 바뀌기도 한다. 전해의 방문객이 올해의 제작자가 되는 식이다. 그렇게 ‘서로를 확인하는 시간’을 통해 독립 출판 시장에 활력을 불어넣는다. 유어 마인드는 그 ‘플랫폼’을 만든 주역이다.

이로 대표는 “독립 출판 제작자는 기성 서적과 달리 자기 자신을 알리거나 마케팅 측면에서 작가와의 대화를 하는 경우가 드물기 때문에 독자와 제작자 모두 ‘누가 만들고 누가 읽는가’에 대한 궁금증이 있었다”며 “이런 각자의 호기심을 풀기 위해 시작한 행사였다”고 말했다. 그의 의도는 적중했다. 언리미티드 에디션은 독립 출판을 시도하는 이들에게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주는 중심축이 되고 있다.

독립 출판물의 주요 고객층은 2030 세대다. SNS를 통해 서적을 지속적으로 알리는 점 또한 유어 마인드의 강점이다. 트위터는 약 2만 명의 구독자를 자랑한다. 적극적으로 SNS를 활용하기 위한 유어 마인드의 전략은 ‘건조하게 쓰기’다. 책방 공식 계정을 통해 알리는 소식과 서적 홍보는 과장되거나 감정적이지 않다. 가장 건조한 어투로 책의 특성을 그대로 알리고 있다. 이로 대표는 “우리가 올리는 콘텐츠에 대해 반응해 주는 것은 구독자”라며 “‘꼭 봐야 한다’거나 ‘너무 좋다’는 식으로 반응을 이끌어 내면 각 내용 간의 차별성도 없어지고 사람들도 그 콘텐츠에 쉽게 질릴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또한 온라인 서점에도 지속적으로 공을 들이고 있다. 소규모 독립 출판 서점이 전국 단위로 퍼져 있지만 유어 마인드처럼 온·오프라인에서 동시에 활약하는 독립 서점은 많지 않다. 유어 마인드는 50 대 50의 비율로 서점을 운영하고 있다.

최근 동네 서점이 주목받는 배경 중 하나는 수익성 측면에서의 매력도 한몫하고 있다. 이로 대표의 표현에 따르면 “크게 흥하지도 크게 망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출판 산업 자체는 사양 중에 있지만 ‘책’이라는 매체는 크게 유행을 타지 않는다. 다른 산업과 비교했을 때 큰 수익을 기대하기 어렵지만 시간이 지나도 고정적인 수요가 존재한다는 특징이 있다. 이로 대표는 “단적으로 요식업과 비교할 때 2~3호점을 기대할 만큼 크게 성장하지 않으면서도 일정 수준의 방문객이 있고 장기 보유가 가능하다. 책은 조금 더 보수적으로 움직이는 편”이라고 말했다. 또한 그는 “개인의 의지가 있다면 버틸 수 있는 정도인데, ‘문화적인 것’을 유통하고 알린다는 기쁨과 자부심을 누릴 수 있다는 점에서 매력적”이라고 말했다.

유어 마인드는 2009년 대비 4배의 매출 성장으로 아직 규모가 크지 않지만 오프라인 서점은 하루 30명 이상이 꾸준히 방문하고 있다. 유어 마인드는 최근 에코백 브랜드 ‘원 모어 백’으로 사업을 확대하는 등의 다각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동네 서점의 인기에는 하나의 공통점이 있다. ‘작은 테두리’ 공식이다. 최근 새로운 형태의 동네 서점 및 독립 서점의 활동들은 대부분이 ‘한정적’이라는 공통점을 갖는다. 한정판이 대표적이다. 유어 마인드는 한 독립 출판물이 크게 흥행해도 기성 출판 서적보다 이른 시점에 판매를 종료한다. ‘값비싸지 않은 한정판’은 ‘한정적인 문화의 일원’이라는 자부심을 만들어 낸다. 동네 서점 또한 크게 무리하지 않는 범위에서 경영할 때 ‘작은 테두리’가 효과적으로 기능한다. 대형화·온라인 파도에 휩쓸리지 않으면서 소규모로 그들이 생존하는 방식이다.

이현주 기자 chari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