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리동 ‘일단 멈춤’, 책에서 사진까지… 여행에 관한 모든 것
서른을 코앞에 두고도 사는 것이 서툴다. 자신의 인생을 어느 정도 책임져야 하는 서른이기에 그 바로미터 앞에 선 스물아홉의 삶에 대한 고민은 깊다. 그의 20대 마지막도 그랬다.

“회사 생활을 하며 실은 그리 만족스럽지 않은 일상 속에서 딱히 무엇이 문제인지도 모른 채 반복되는 하루를 보내며 지냈어요. 그러다 아일랜드 여행에서 인생 최대의 모험을 하고 새로운 미래를 선택할 수 있는 용기를 얻었어요. ‘좋아하는 일을 하자’고 마음먹고 나서 고민하는 모든 것들을 잠시 내려놓고 일단 멈췄죠.” 여행 책방 ‘일단 멈춤’의 송은정(30) 대표의 얘기다.

2014년 11월, 여행과 책을 좋아하는 송 대표는 서울 마포구 염리동에 작은 책방을 만들었다. 그리고 ‘일단 멈춤’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자신처럼 여행과 책을 좋아하는 이들이 이곳에서 잠시 쉬어 갔으면 하는 바람이 담긴 이름이다.

대형 서점과 차별화된 콘텐츠로 승부

33㎡(10평) 남짓 조그만 공간인 일단 멈춤은 여행에 관련된 것들로 채워졌다. 넉넉하게 자리 잡은 책들에서 노곤한 여유가 느껴진다. 책장 사이에 놓인 엽서나 오래된 여행 소품은 감성을 자극한다.

콘텐츠는 여행 이야기가 담긴 독립 출판물이 주를 이룬다. 대형 서점에서는 볼 수 없는 작고 소소한 책들을 만날 수 있는 것이다. 여행의 영감을 불러일으키는 인문, 문화·예술, 환경 관련 단행본도 여러 권 눈에 띈다. 송 대표의 깐깐한 기준으로 철저하게 선택된 책만이 일단 멈춤에 모습을 보일 수 있다. 가이드북은 판매하지 않는다.

“출판사와 잡지사 에디터를 지내면서 내 책방을 열고 싶다는 생각은 늘 해왔어요. 처음에는 독립 출판 서점을 고민했지만 이미 온·오프라인에 많이 분포된 상태라 다른 경쟁력을 찾아야 했죠. 그러다 여행이 경쟁력이 있다고 판단했어요. 여행은 남녀노소 불문하고 누구에게나 친숙하고 좋아하는 주제잖아요.”
염리동 ‘일단 멈춤’, 책에서 사진까지… 여행에 관한 모든 것
여행 책방을 열기로 마음먹고 가장 고민했던 것은 책방의 자리였다. 상권이 확산되고 있는 마포구 연남동·상수동·망원동부터 서대문구 연희동, 이태원 해방촌 등을 구석구석 살폈다. 하지만 확신이 들지 않았다. 그는 오히려 낯선 골목 안의 어딘가가 일단 멈춤과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책방의 콘셉트가 여행이듯 책방을 찾아가는 길도 낯선 여행지로 떠나는 여행 느낌이 들었으면 했다.
반년을 발품을 팔며 찾은 끝에 그는 마포구 염리동의 한 오래된 주택 길을 골랐다. 서울지하철 2호선 이대역 5번 출입구에서 200m 떨어진 거리이지만 이대역의 번화한 상권과 전혀 다른, 뜻밖의 장소인 것은 확실했다.

“여행 책방을 오고가는 길부터 책방 안에서 보내는 시간까지, 여행의 설렘이 이어지길 바랐어요. 골목 안쪽에 있어 접근성은 떨어지지만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를 통해 방문하는 이들이 고객 중 90% 이상이에요.”

역세권을 피한 덕에 임대료가 저렴한 편이다. 이 지역 평균 시세는 보증금 1000만~2000만 원에 월세 50만 원이다. 부동산 관련 비용을 제외하고 오픈 때 들어간 비용은 300만 원이 채 안 된다. 주로 책 구매와 기물 등을 구입하는 데 든 비용이다. 따라서 책 판매로 한 달 평균 100만 원의 수익과 그가 틈틈이 부업으로 하는 에디터 아르바이트 비용이면 책방을 운영하는 데 큰 어려움이 없다는 게 송 대표의 말이다.

그렇다고 고민이 없는 것은 아니다. ‘욕심내지 말자’고 늘 읊조리지만 책 판매만으로 계속 운영할 수 있을지 의구심을 떨쳐내지 못했다. 그래서 그는 또 다른 수익원을 고안해 냈다. 어느새 일단 멈춤의 히든 콘텐츠로 자리 잡은 워크숍과 강연 등의 유료 이벤트다. 여행·사진·음악 분야 아티스트들에게 책방의 한 공간을 무료로 대관해 주고 그들의 작품을 소개하는 무료 전시회도 열기도 한다.
전시를 통해 아티스트와 인연을 맺고 이들과 워크숍 또는 강연을 진행해 송 대표는 돈보다 값진 것을 창출하고 있다. 아티스트들의 팬이 일단 멈춤의 새로운 고객이 되는 것도 감사한 일이다.

“마진율이 적은 책 판매만으로는 아무래도 운영에 어려움이 따릅니다. 사실 100% ‘사입(자점 매입)’해야 하기 때문에 재고 부담도 없지 않고요. 서점 자체가 엄청난 부와 성공을 불러오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마음을 내려놓고 하고 있지만 계속 운영하기 위해서는 안정적인 수익원이 필요했어요. 그래서 워크숍 등의 콘텐츠를 계속해 제공하려고 합니다. 차별화된 콘텐츠를 만들어 가는 게 핵심이라고 생각해요.”

일단 멈춤에서 열리는 워크숍은 주로 4~6주 과정으로 10명 미만의 소수 인원들이 모여 여행 책 만들기, 인디자인 등을 배운다. 비용은 10만~15만 원 정도 든다. 참여자들은 20~30대부터 40~50대 주부들까지 다양하다. 이들과 함께 때로는 제지사·인쇄소 등에 견학을 나가기도 한다.

여행 콘텐츠 전문 ‘1인 출판사’ 계획도

전시는 거의 1년 내내 열린다. 결혼식 대신 4박 5일간의 안나푸르나 트레킹을 선택한 부부의 사진, 여행 사진 엽서 등 다양한 전시가 열렸다. 조만간 가족 여행기를 다룬 ‘꿈사냥을 떠나자’에 소개된 사진이 전시될 예정이다.
일단 멈춤의 모든 홍보·마케팅은 SNS를 통한다. 주로 인스타그램과 페이스북을 사용하는데, 팔로워 수가 각각 6000명 정도다.

“일단 멈춤이 대중적인 공간은 아니지만 찾아오는 많은 이들이 취향을 공유하며 서로 소통하고 즐기고 있어요. 독립적인 공간에서 자신들의 개성과 취향을 공유하는 데 기꺼이 소비하는 분위기고요. 그래서 그런지 더 많은 이들에게 여행과 책 그리고 일단 멈춤이라는 공간이 주는 분위기가 보다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는 걸 느껴요.”

일단 멈춤이 문을 연 지도 어느새 1년이 지났다. 송 대표의 또 다른 계획은 없을까.

“1년이 됐으니 이제 내 인건비를 남겨야 해요(웃음). 그래서 다른 수익 구조를 구상하고 있어요. 여행 콘텐츠를 만드는 ‘1인 출판사’가 되는 겁니다. 하지만 책방 운영을 가능하면 너무 진지해지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그래야 집착이 생기지 않고 생활이 피폐해지지 않거든요. 그렇지 않으면 멈춰선 이유가 퇴색돼 버리겠죠.”

김보람 기자 boram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