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경 인터파크 과장은 “1년에 한두 번 공연을 볼까 말까 하는 사람들도 12월 24~25일, 30~31일 특정 시기에 몰리고 최근 들어 송년회를 회식 대신 공연으로 대체하는 기업이 증가하면서 전반적으로 티켓 판매가 늘고 있다”고 말했다. 12월뿐만 아니라 티켓 오픈을 시작하는 10월부터 이미 성수기에 접어든다. 특히 로맨틱한 크리스마스를 찾는 연인 관객, 3~4인 기준 가족 관객이 주를 이룬다.
가장 인기를 누리는 장르는 단연 뮤지컬이다. 인터파크 크리스마스 랭킹 뮤지컬 부문 상위권에 오른 공연들은 ‘시카고’, ‘레미제라블’, ‘프랑켄슈타인’ 등이다. 12월 공연은 진작 매진된 회차가 많다. 클래식 부문에서는 1~2위가 모두 ‘호두까기 인형’이다.
유니버설발레단과 국립발레단의 ‘호두까지 인형’은 매년 연말 찾아오는 단골 레퍼토리다. 1892년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마린스키극장에서 초연된 이 작품은 100년이 넘은 지금까지 전 세계 성탄절용 발레로 사랑받고 있다. 대형 제작사는 ‘명작 대 명작’ 경쟁
이들 인기 작품에는 공통점이 하나 있다. 모두 ‘검증된 명작’이라는 점이다. 명작 대 명작의 경쟁으로, 신작은 찾아보기 어렵다.
알고 보면 공연 하나를 올리는 데도 이유가 있다. 뮤지컬 ‘시카고’는 신시컴퍼니에서 제작한 라이선스 뮤지컬이다. 신시컴퍼니가 올리는 연간 6~7편의 뮤지컬 중 연말 공연으로 ‘시카고’가 낙점된 데는 상대적으로 넓은 관객 폭 때문이다.
뮤지컬 시장에서는 2030 여성을 전형적인 뮤지컬 마니아 층으로 본다. 꾸준히 공연장을 찾는 충성 관객이다. 연말 관객들의 특징은 시장 입문 단계(POE : point of entry)인 초보 관객들이 많다는 것이다. 이들 잠재 관객(Maybes)에게 지속 가능한 흥미를 유발해 참여 관객(Yeses)으로 만드는 것은 공연계의 영원한 숙제다.
모리슨과 달레시가 주장한 관객 개발 시스템 ‘평생학습 전략(SELL)’에 따르면 새로운 관객을 폭넓게 끌어들이기 위해서는 평이한 프로그램에서 난해한 프로그램까지 ‘단계별 학습’이 필요한데, 입문 단계에서는 우선 진입 장벽을 낮춰야 한다. 예를 들어 뉴욕 필하모닉이 세계적인 소프라노를 초대한 공연이라면 초보자도 쉽게 흥미를 가질 수 있다. 뮤지컬로 보면 세계적인 대작이 이에 해당한다.
또 수익성 차원에서도 재공연은 무대 제작 등에서 비용 절감을 통해 제작비를 줄일 수 있다. 신시컴퍼니는 연간 라인업 중 진입 장벽이 가장 낮은 ‘시카고’를 연말에 배치하고 ‘아리랑’ 같은 창작 뮤지컬을 비수기에 배치하고 있다.
공연장도 고심 끝에 선택한다. 작품에 따라 극장과의 ‘합’을 결정하는데, ‘시카고’가 올라가는 신도림 디큐브아트센터는 객석과 무대와의 거리가 가까워 ‘시카고’의 어두컴컴한 배경과 잘 어울린다. 작품과 맞는 장소를 택하기 위해 이미 1년 전에 일찌감치 대관을 마쳤다.
‘호두까기 인형’은 발레 공연의 ‘입문작’으로 통한다. 워낙 인기가 좋아 전 회차 전석 매진 행렬을 기록하고 있다. 두 발레단이 양대 산맥으로 ‘같은 작품, 다른 느낌’으로 경쟁을 벌인다. 국립발레단의 평균 유료 객석 점유율이 80%라면 ‘호두까기 인형’은 100%에 달한다. 유니버설발레단도 10% 프로모션 티켓을 제외하고 나머지 90%는 유료 객석으로 꽉 채우고 있다.
늘어나는 기업 고객을 잡기 위한 숨은 노력도 있다. 티켓을 가장 안전하게 판매하는 방법이 바로 기업과 제휴하는 것이다. 전관 대여를 통해 특정 회차 공연의 전체 좌석을 판매하는 방법이 대표적이다.
특히 카드·증권 등 금융권에서 고객들을 대상으로 문화 이벤트를 활발히 펼치기 때문에 수요가 많은 편이다. 이들 기업 고객을 잡기 위해 제안서를 들고 할인 혜택을 제안하기도 한다. 국립발레단은 공연 전 VIP룸에 기업 고객을 초대해 작품 해설 서비스를 하기도 한다.
일부 대작 제외하면 ‘티켓 할인’ 경쟁
대표적으로 유니버설발레단의 ‘호두까기 인형’은 올해 4개 업체와 함께 전관 행사를 진행한다. 그중 일부는 사회 공헌 활동 차원에서 소외 계층을 무료 초대하는 형태로 공연 기부를 하고 있다. 뮤지컬 ‘레미제라블’은 KB국민카드와 함께 전관 행사를 벌일 계획이다. KB국민카드는 자사 카드 결제 고객에게 ‘원 플러스 원’ 혜택을 제공하는 식으로 활용한다.
가만히 있어도 관객들이 몰리는 연말 공연이 있는 반면 발품을 팔아야 관객을 모을 수 있는 공연들도 있다. 관객 수가 늘어도 특정 공연에 쏠리기 때문에 사실상 유명 대작을 제외하고는 성수기를 맞아 티켓 전쟁을 벌여야 한다.
진화하는 마케팅 기법도 등장하지만 티켓 판매를 위해 ‘할인 경쟁’을 벌이는 형태가 대부분이다. 할인 티켓의 경우 유료 관객 증가율을 높이기 위한 공연 티켓의 가격 전략으로 학생 할인, 경로 할인 등 특별한 자격을 가진 관객에게 10~20% 할인 혜택을 주는 게 일반적인 형태다.
이 할인 티켓은 최근 다양한 형태로 진화하고 있다. ‘굿모닝 할인’, ‘카카오톡 할인’ 등 각종 이름으로 20~30% 이상 할인하는 게 허다하다. 제값을 치르고 공연을 보는 일이 이상할 정도로 넘치는 할인 혜택이 등장하고 있다.
특히 올해는 ‘원 플러스 원’ 정부 지원 정책이 더해지며 이전에 없던 50% 이상 할인 티켓이 등장했다. 과거에도 전례는 있었다. 뮤지컬 ‘영웅’이 정부 지원을 받고 티켓 가격을 전 좌석 5만 원으로 파격 할인하면서 공연계가 발칵 뒤집어진 일이다. 소비자로서는 싼값에 대형 뮤지컬을 볼 수 있는 기회이지만 공연 시장에서는 자생력이 약한 공연 생태계에 찬물을 끼얹는 행위라고 비판했다.
최근에는 인기 공연까지 ‘원 플러스 원’ 행사에 동참하면서 소규모 공연들은 최대 80% 전후 할인 티켓까지 내놓고 있다. 창작 뮤지컬 ‘레미제라블’은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낮 시간 공연을 편성해 80% 이상 할인가에 티켓 판매를 시작했다. ‘레미제라블’ 관계자는 “수요는 한정돼 있는데 유명 대작들까지 원 플러스 원 행사를 벌이면서 관객들이 대형 공연에 더욱 쏠리고 있다”고 말했다. 화려한 연말 공연 성수기에도 한쪽에서는 양극화로 고심하고 있는 듯한 모습이다.
과도한 할인을 막는 방법으로 ‘패키지 티켓’도 눈에 띈다. 연간 공연을 하나의 티켓으로 엮어 할인된 가격에 판매하는 것으로, 일회성 관객이 아닌 고정 관객을 확보하는 방법이다. 국내에서는 국립극장이 실험적으로 시작했고 LG아트센터도 시즌제를 통해 패키지 티켓을 판매하고 있다. 물론 이러한 방법에도 한계는 있다. 한 해의 모든 라인업이 미리 갖춰져야 하고 그만큼의 규모가 확보되지 않으면 섣불리 진행할 수 없는 ‘보기 좋은 떡’이다.
이현주 기자 chari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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