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경제의 미래 '스타트업'을 살려라
스타트업(창업 초기 기업) 가운데 대규모 일자리를 창출하는 중견기업으로 성장하는 비율은 3%에 불과하다. 카우프만재단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보고서를 토대로 오스트리아·벨기에·핀란드·이탈리아·네덜란드 등 16개 국가 스타트업의 고용 창출 역량을 분석한 결과다. 스타트업이 제대로 된 기업으로 성장할 확률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국내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다. 한국 벤처기업이 창업 이후 생존 확률은 41%로, OECD 회원국 중 17개국 가운데 최하위인 것으로 나타났다. 창업 기업의 성공을 판단하는 조건은 투자금 회수 단계인 엑시트(투자금 회수) 달성 여부다.

스타트업이 제대로 된 기업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요소가 필요하다. 하지만 기술의 완성도 등 사업의 직접적 아이디어에 역량을 집중하기에도 버거운 스타트업으로서는 사업에 필요한 절대적 요소들을 모두 챙기기 어려운 실정이다.

일련의 상황 속에서 창업 생태계의 새로운 지원 체계인 ‘액셀러레이터(Accelerator)’가 등장했다. 2000년대 초반 뜨거웠던 벤처 창업 열풍 속에서 살아남아 나름 성공 기업으로 자리매김한 기업들이다. 본인들이 겪은 어려움을 토대로 신생 스타트업에 멘토의 역할은 물론이고 업무 공간과 마케팅·홍보 등 비핵심 업무도 지원하고 있다.

성공 벤처인을 중심으로 40여 개 활동
액셀러레이터는 성공한 벤처인 등 민간의 전문성을 활용해 초기 창업자를 발굴, 투자할 뿐만 아니라 6개월 내외의 짧은 기간 동안 투자자 및 고객 지향형 성공 제품을 만들도록 실전 창업 교육가 전문 멘토링을 지원하는 민간 전문 기관 또는 기업을 말한다. 현재 전 세계에 2000개 이상이 운영 중이다. 각 산업 분야별로 전문화되면서 구글·코카콜라·나이키 등 해외 글로벌 대기업이 참여하는 기업형 액셀러레이터 운영도 확산 중이다.

액셀러레이터는 스타트업에 사무실·컨설팅 서비스를 제공할 뿐만 아니라 마케팅 전략 등 각 분야의 세계적 전문가를 멘토로 연결해 준다. 최초의 액셀러레이터는 2005년 미국 실리콘밸리에 설립된 ‘와이컴비네이터’다. 630여 개 스타트업 기업을 발굴해 지원했고 매년 두 차례에 걸쳐 전 세계를 대상으로 약 85개 스타트업을 선발해 투자하고 있다.

국내 액셀러레이터는 이제 걸음마 단계다. 액셀러레이터리더스포럼(ALF)에 따르면 국내에서는 40여 개의 액셀러레이터가 활동 중이다. 대표적인 국내 액셀러레이터로는 프라이머·네오위즈·더벤처스·벤처스퀘어·스파크랩 등이 꼽힌다.

액셀러레이터는 시기에 따라 초기 자금 지급과 비즈니스 모델 개발에 집중하는 초기 액셀러레이터와 전반적인 경영 자문 서비스를 제공하는 후기 액셀러레이터로 구분된다. 국내에는 초기 액셀러레이터가 보편화돼 있고 지원 프로그램이 끝나면 사업 아이디어를 발표하는 자리인 ‘데모데이(demoday)’를 마련해 벤처캐피털과 엔젤들의 투자 유치 기회를 제공한다. ALF는 지난 3년 동안 진행한 투자 프로그램을 통해 403개의 스타트업 중 178개(44.2%)의 스타트업이 약 2780억 원의 후속 투자를 유치했다.

하지만 국내 액셀러레이터는 아직 초기 단계이며 정부의 지원도 부족한 상황이다. 캐나다는 선정된 액셀러레이터에 1년간 100만 달러(약 10억4000만 원), 최대 5년간 500만 달러까지 보조금을 지원한다. 스타트업을 단기간 집중 육성하기 위해 액셀러레이터를 적극 지원하는 것이다. 영국도 성장 가능성이 있는 스타트업이 멘토링이나 코칭 서비스를 원활히 이용할 수 있도록 정부가 액셀러레이터 프로그램의 일정 비용을 보조한다.
한국 경제의 미래 '스타트업'을 살려라
국내 액셀러레이터 성장 위한 법제화 시급
이에 따라 국내 액셀러레이터들은 법제화가 시급하다고 입을 모은다. 사실 한국 정부의 벤처 지원 정책에는 적지 않은 맹점이 있다. 정부의 개입이 지나치다는 점, 자금 지원에 치중한 나머지 제도적 장치가 미비하다는 점, 글로벌 시장에 대한 개방성이 부족하다는 점 등이 주요 문제점으로 지적돼 왔다.

이에 정부는 최근 스타트업 육성 모델로 주목받고 있는 액셀러레이터에 대해 세제 감면을 포함한 지원 방안을 법제화하는 작업에 착수했다. 국회 산업통상자원위원회에서는 2015년 10월 ‘중소기업 창업 지원법 일부 개정 법률안’, 일명 액셀러레이터법이 입법 예고됐다. 창업 기업의 창업 성공률을 제고하고 신속한 성장을 지원하는 액셀러레이터를 체계적으로 지원하고 육성하기 위해 액셀러레이터의 등록 요건, 육성 근거에 대한 법제화를 골자로 한다. 현행법은 금융 및 보험업을 창업 지원 제한 대상 업종으로 하고 있어 최근 부상하고 있는 정보통신기술(ICT) 기반의 핀테크 업종 등에 대한 각종 창업 지원이 제한되고 있는 실정이다.

액셀러레이터를 활용한 스타트업 지원 정책도 다양하게 진행되고 있다. 정부는 2014년 3월 제7차 창조경제위원회에서 글로벌 액셀러레이터 육성 계획을 확정했다. 이어 미래창조과학부는 2015년 ‘K-글로벌 액셀러레이터 육성 사업’의 대상으로 스파크랩 등 6개 액셀러레이터를 선정했다. 6개 액셀러레이터 모두 미국이나 이스라엘·중국·일본 등 해외에 현지 창업 지원 전문 기관을 협력 기관으로 두고 있어 해외 네트워크를 적극 활용할 수 있다는 것이 선정 이유였다.

미래창조과학부가 주최하고 정보통신산업진흥원·액셀러레이터리더스포럼이 주관하는 ‘2015 액셀러레이터 통합 데모데이’가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2015년 11월 27일 개최됐다. 행사에 참석한 25개의 스타트업은 국내외 벤처캐피털·엔젤 등 투자자(50여 명)를 대상으로 자신들의 창업 아이템을 소개하고 사업성을 검증 받았다.

박인환 미래창조과학부 정보통신방송기반과 과장은 “액셀러레이터는 비즈니스 세계에 첫 발을 내딛는 스타트업이 시행착오를 줄이면서 순항할 수 있도록 방향을 제시하는 페이스메이커 역할을 하고 있다”고 평가하며 “한국에도 액셀러레이터가 더욱 확산돼 민간 주도의 역동적인 창업 생태계가 마련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인터뷰] 이한주 ALF 의장
한국 경제의 미래 '스타트업'을 살려라
“스타트업이 살려면 액셀러레이터부터 키워야”

누구나 성공을 꿈꾸며 창업을 하지만 현실은 그리 녹녹하지 않다. 대부분의 스타트업이 실패의 쓴맛을 본다. 툴툴 털고 일어서야 성공에 가까워질 수 있지만 재창업에 대한 두려움은 이미 커져 버린 상태다. 외롭고 막막한 실패자들에게는 액셀러레이터가 절실하다. 이한주 액셀러레이터리더스포럼(ALF) 의장은 국내 액셀러레이터를 대표하는 스파크랩의 대표이기도 하다. 이 의장은 한국 경제의 미래는 ‘대기업’이 아닌 ‘스타트업’이라고 강조했다.

먼저 ALF와 스파크랩 대해 간단히 소개해 주세요.
“ALF는 국내 23개 액셀러레이터가 회원사로 활동하고 있는 단체입니다. ALF는 액셀러레이터와 스타트업 업계에 대한 정보와 노하우를 공유하고 창업 생태계 활성화에 대한 방안을 연구하기 위해 미래창조과학부·정보통신진흥원 관계자들과 매달 최소 한 번씩 모여 회의를 진행하면서 협업하고 있습니다. 스파크랩은 글로벌 진출 역량을 갖춘 스타트업을 발굴하고 초기 투자·멘토링 등을 통해 육성하는 액셀러레이터입니다. 3개월 과정의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2만5000달러의 초기 투자금과 사무 공간 등을 제공합니다. 현재 6기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며 48개 회사에 투자하고 있습니다.”

액셀러레이터를 어떻게 신뢰할 수 있나요.
“액셀러레이터가 아직 익숙하지 않다 보니 다양한 문제를 일으키는 일종의 ‘브로커’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액셀러레이터는 스타트업에 조언만 하는 게 아니라 직접 투자까지 한다는 점에서 차이를 보입니다. 초기 단계의 스타트업에 직접 자금을 지원하는 만큼 스타트업이 성공해야만 액셀러레이터도 수익을 거둘 수 있습니다. 스타트업이 가장 믿을 수 있는 것이 액셀러레이터라고 자신할 수 있는 이유입니다.”

액셀러레이터로서 국내 스타트업의 장점은요.
“그동안 다수의 국내 스타트업을 만났습니다. 그들은 하나같이 해외 진출을 꿈꾸고 있었습니다. 국내 스타트업은 해외에 진출할 충분한 경쟁력을 가집니다. 스타트업 경쟁의 관건은 속도입니다. 상품 개발 등을 빨리 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한국의 ‘빨리빨리’ 문화는 국내 스타트업의 해외 진출에 큰 강점으로 꼽힙니다.”

성공하는 스타트업은 무엇이 다른가요.
“성공한 스타트업들의 공통점은 없습니다. 절대적인 것은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도 꼭 필요한 것을 꼽자면 바로 ‘그릿(Grit)’입니다. 스타트업은 결코 쉽지 않은 길을 걸어야 합니다. 실패와 어려움도 견딜 수 있어야 합니다. 버텨야 살아남는 것이 스타트업입니다. 또한 직원들과의 소통도 필요합니다. 사업가는 발명가와 다릅니다. 좋은 상품을 개발했다고 끝이 아니라 직원들과의 소통을 통해 상용화 등의 속도를 높여야만 수익으로 연결할 수 있죠.”

스타트업과 액셀러레이터가 발전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침체된 경제가 살아나려면 대기업이 아닌 스타트업이 살아야 합니다. 스타트업을 살리기 위해 나선 것이 10여 년 전 벤처 창업 열풍에서 살아남은 선배 스타트업들입니다. 액셀러레이터라는 이름으로 후배 스타트업의 성공을 돕고 있는 이들에 대한 지원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액셀러레이터에 대한 법적 지위와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것이 시급합니다.”

김병화 기자 kb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