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성비 경쟁의 늪, ‘팬덤’으로 뚫어라
중국 정보기술(IT) 업체인 샤오미가 생산한 휴대용 배터리, 이어폰, 블루투스 스피커 등 소형 전자 제품들은 일부 얼리어답터들을 통해 2015년부터 국내에서 입소문을 타기 시작했다. 높은 가성비를 빗대 ‘중국의 실수’라는 애칭을 얻은 샤오미는 국내에서 별다른 마케팅 활동을 하지 않았음에도 국내 공식 진출 이전부터 이미 국내 소비자들에게 각광 받는 브랜드가 됐다.

샤오미의 휴대용 배터리는 국내 가격 비교 사이트 집계 기준 2015년 1~11월 판매량 1위를 기록했고 샤오미의 블루투스 스피커는 국내에 출시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중국 직구만으로도 그해 11월 국내 블루투스 스피커 판매 순위에서 1위를 기록했다.

2015년 8월 문을 연 판교 현대백화점 내 디저트 카페 ‘매그놀리아’에는 매일 긴 줄이 늘어서 있다. 이곳의 컵케이크는 뉴욕을 배경으로 한 인기 미국 드라마 ‘섹스 앤드 더 시티’에 소개된 후 드라마 팬을 중심으로 알려졌다. 국내 개장 이후 소셜 미디어에 방문 후기와 인증 샷이 몰려 사진 기반 소셜 미디어 인스타그램에는 ‘매그놀리아’로 한글 검색이 가능한 콘텐츠만 2만5000여 개가 게시됐다. 국내 오픈 4개월 만에 컵케이크 누적 판매량 55만 개, 매출 20억 원을 돌파한 매그놀리아는 최근 서울에 신규 매장을 오픈하는 등 사업 확장을 시도하고 있다.

소비자 간 커뮤니케이션, 소비자의 제품 관련 정보 열람이 언제 어디서나 가능한 ‘초연결 시대’가 되면서 소비자의 제품 수용 패턴과 속도가 동적으로 변하고 있다. ‘캐즘의 아버지’로 널리 알려진 에버렛 로저스 교수가 1962년 제시했던 고전적인 혁신 수용 곡선에 따르면 혁신 제품은 혁신자, 조기 수용자, 주류 수용자, 지체 수용자 등의 단계를 거쳐 시장에 확산된다.

하지만 2013년 래리 다우니즈 등이 ‘빅뱅 파괴(Big Bang Disruption)’라는 책에서 제시한 혁신 수용 곡선의 모습은 초기 사용자 그룹과 나머지 단 그룹뿐이다. 시작부터 모든 그룹이 동시에 수용될 수 있어 수용 곡선은 위로 더 볼록하고 길이는 훨씬 짧아진 형태다. 초기 사용자 그룹의 반응에 따라 시장에서의 성패가 빠르게 결정되는 것이다.

소비자 81%, 구매 전 온라인 검색
소비자 간 연결성 강화로 기존 기업들에 마케팅과 브랜딩은 점점 어려운 과제가 되어 가고 있다. 기업이 제시하는 마케팅용 슬로건보다 제품을 이미 사용해 본 경험이 있는 다른 소비자들의 추천에 기반해 구매를 결정하는 소비자들이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위에 언급한 사례들도 고전적인 기업 마케팅의 결과물이 아닌 소비자들 간의 자발적 추천을 기반으로 한 상업적 성공의 사례들이다.

실제로 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미국 소비자들 중 81%가 제품 구매 전 온라인에서 추가적인 정보 검색을 하며 55%가 사용자 후기를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90%의 소비자들은 소셜 미디어인 페이스북 지인들의 추천을 신뢰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트위터를 사용하는 사람들 중 51%는 특정 브랜드를 팔로우하고 있고 트위터를 매일 사용하는 헤비 유저(heavy user) 중 31%는 팔로워들에게 제품이나 서비스에 관한 의견을 묻는 등 지인 추천의 영향력이 크게 증가한 것을 알 수 있다.

소비자 간 추천에 기반한 구매 결정의 증가는 기업의 마케팅 관련 지표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우선 광고에 대한 소비자들의 관심이 크게 하락했다. 1960년대 중반만 하더라도 소비자들은 자신이 시청한 광고의 34% 정도를 기억했지만 최근 AC닐슨 조사에 따르면 소비자가 실제로 기억하고 있는 광고 개수는 2.21개에 불과하다.

또한 특정 브랜드에 대한 소비자들의 신뢰도와 충성도도 낮아지고 있다. 지난 10년간 브랜드에 대한 소비자들의 신뢰도는 50% 하락했고 50여 개의 제품 카테고리 중 90%에서 브랜드 및 제품 차별화 정도가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소비재 브랜드의 제품 매니저들 중 70%는 제품 가격 하락 압력과 함께 소비자들의 충성도 약화를 가장 큰 걱정거리로 꼽고 있다고 한다.

전통적인 마케팅의 강자로 알려진 글로벌 소비재 기업들조차 이러한 환경 변화에 적응하기 위해 안간힘을 쏟고 있다. 각종 광고에 연간 10억 달러 이상을 투자하던 프록터앤드갬블(P&G)은 지난 수년간 1000여 명의 마케팅 인력을 구조조정하며 자사의 광고 포트폴리오를 디지털 채널 쪽으로 대폭 전환했고 P&G의 경쟁사 유니레버도 마케팅 직군 축소의 일환으로 800여 명의 마케팅 인원을 구조조정했다.

이타마르 시몬슨 미국 스탠퍼드대 교수는 ‘절대 가치’라는 개념으로 이러한 변화 추세를 요약했다. 최근 소비자들은 구매 의사 결정 시 브랜드 인지도, 과거의 특정 브랜드 사용 경험 등을 감안하던 습관에서 벗어나 다양한 제품 리뷰, 다른 사람들의 사용기 등을 통해 제품의 가치를 객관적으로 평가한 절대 가치로 구매를 결정한다는 것이다.

이처럼 수많은 경쟁 제품이나 서비스들 사이에서 절대 가치, 즉 객관적인 가치 우위를 통해 소비자의 선택을 받는 것은 기업으로선 쉬운 일이 아니다. 가격과 품질 모두 실시간으로 소비자들에게 평가되고 공유되는 상황은 시장 경쟁의 강도와 지속성을 심화하는 것을 의미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부 기업들은 ‘연결된 소비자’의 속성을 능동적으로 활용, 자칫 불리할 수도 있는 시장의 변화를 오히려 기회로 전환하는 데 성공했다. 소비자들이 공유하는 정보와 추천에 의해 제품의 판매가 영향을 받는 상황을 활용하기 위해 소비자들의 감정적·주관적 판단이 개입되는 ‘팬덤’의 요소를 공략, 가성비 경쟁의 늪에서 벗어난 것이다.
가성비 경쟁의 늪, ‘팬덤’으로 뚫어라
‘연결된 소비자’의 속성 활용
팬덤은 동일한 관심사에 대한 공감과 연대감을 공유하는 팬들로 구성된 커뮤니티 그 자체, 또는 그들의 문화적 활동을 지칭한다. 팬들은 특정 대상이나 관심사에 대한 강한 소속감과 지지 의사를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초연결 사회에서의 소비자 간 자발적 정보 확산의 강한 구심점 역할을 할 수 있다. 또한 ‘서브컬처’라고 불리는 이들이 공유하는 문화에서 파생되는 다양한 콘텐츠들은 지지 확산의 매개물 역할을 할 수 있다.

전설적인 힙합 가수이자 프로듀서 닥터 드레가 설립한 비츠 오디오는 유명 제조사들이 즐비한 헤드폰 시장에 진입한 지 채 10년이 되지 않았음에도 헤드폰 시장점유율 1위를 달성하는데 성공했고 2014년에는 애플에 약 3조 원에 인수됐다.

비츠 오디오의 성공은 힙합을 즐겨 듣는 문화 커뮤니티의 특성을 감안한 제품 기획 및 마케팅을 통해 가능했다. 비츠 오디오의 공동 설립자인 닥터 드레와 지미 러바인은 제품 개발 초기에 음악 프로듀서라는 위치를 활용해 유명 가수 등 힙합 커뮤니티 리더들에게 지속적으로 청음을 요청했고 이를 토대로 저음을 극단적으로 강조한 헤드폰을 개발했다. 제품에 대한 피드백을 주던 유명 인사들은 실제 제품이 출시되자 자발적으로 제품을 착용하고 다니기 시작했고 비츠 오디오의 헤드폰은 ‘셀러브리티들이 이용하는 헤드폰’으로 단시간에 널리 알려지게 됐다. 비츠 오디오는 이후에도 힙합 커뮤니티를 타깃으로 한 마케팅을 진행했는데, 힙합의 문화적 영향력이 강해지면서 자연스럽게 제품에 대한 글로벌 수요도 증가하게 됐다.

비츠 오디오의 헤드폰은 디자인에 있어서도 기존 업체들과의 차별화를 시도했다. 기존 업체들은 회색과 검은색 등 무채색을 주로 사용한 반면 비츠 오디오는 제품 외관에 강렬한 원색, 모조 보석 등 힙합 문화나 패션에서 자주 사용되는 색깔이나 디자인 소품 등을 적극 활용했다. 또한 흑인 음악이나 문화를 상징하는 셀러브리티나 브랜드와의 협업을 적극적으로 시도, 팝스타 레이디 가가, 농구스타 르브론 제임스, 심지어 미국 대통령 버락 오바마 에디션 등을 제품화하기도 했다.

팬덤은 문화·예술 영역의 현상을 주로 지칭하는 말이지만 기업 활동의 영역에서도 존재할 수 있다. 할리 데이비슨이나 애플 등은 강력한 소비자 팬덤을 보유한 기업의 상징이 됐다. 하지만 이를 위해서는 이미지 메이킹을 위한 마케팅 메시지가 아니라 기업의 사업 방식 내부에 소비자들이 감정적인 동요를 일으킬 수 있는 스토리들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요소가 존재해야 한다.

미국의 온라인 신발 판매 사이트인 자포스(Zappos.com)는 온라인 유통 업체라는 특성에도 불구하고 업계 내 다른 업체들 대비 고객들의 충성도가 높은 것으로 특히 유명하다. 자포스는 고객의 75%가 재구매하며 신규 고객 중 절반 이상은 광고가 아닌 입소문, 특히 소셜 미디어를 통한 기존 고객들의 자포스 관련 언급이나 공유 링크 등을 통해 유입되고 있다.

자포스의 브랜드는 14초에 한 번씩 소셜 네트워크 사이트에서 언급되며 긍정적인 언급과 부정적인 언급의 비율이 8 대 1로, 유통 업체로서는 최고 수준을 기록하고 있다. 실제로 자포스 이용자에 의해 트위터에서 공유되는 자사의 링크 1회당 33.66달러의 추가적인 매출이 발생할 정도로 자포스는 소셜 미디어를 통한 입소문의 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다.

진정성 전달하면 입소문은 저절로
자포스의 서비스가 소비자들의 입소문을 만들어 내는 이유 중 하나는 바로 ‘고객충성팀(Customer Loyalty Team)’이라고 불리는 콜센터다. 콜센터 직원들은 늦은 밤 근처 피자집 전화번호를 묻는 생뚱맞은 고객의 질문에 친절하게 대답해 주기도 하고 자포스에 없는 물건을 찾는 고객에게 경쟁사를 알려주기도 한다. 결혼식에 입고 갈 양복과 어울리는 구두로 무엇이 좋을지 묻는 고객에게는 ‘코디네이터’ 역할을 하기도 한다.

물론 그러한 문의들이 판매와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오히려 손해를 볼 수도 있지만 토니 셰이 자포스 최고경영자(CEO)는 이러한 활동이 광고나 프로모션에 마케팅 비용을 지불하는 것보다 훨씬 효과적이라고 믿는다. 자포스가 지향하는 것은 당장 하나의 제품을 팔기 위해 고객을 몰아붙이는 것이 아니라 고객을 감동시키고 평생 가는 관계를 만드는 것이고 고객을 위해서는 때때로 비효율도 기꺼이 감수한다는 진정성을 소비자들에게 전달할 수 있을 때 입소문은 저절로 나게 된다는 것이다.

마크 얼스는 그의 저서 ‘허드(Herd)’에서 ‘인간은 기존에 알려졌던 것과 달리 스스로 판단해 주체적으로 의사결정을 하기보다 무의식적으로 타인을 의식하고 다른 사람들로부터 끊임없이 영향을 받는 존재다. 너무나 사회적인 인간을 대상으로 하는 마케팅을 위해서는 마케팅 방법론의 근본적인 전환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또한 세스 고딘은 그의 저서 ‘트라이브(Tribes)’에서 ‘트라이브(집단)란 규모에 상관없이 서로 연결된 사람들의 모임을 지칭하며 사람들은 굉장히 오랫동안 이러한 집단에 속하길 추구한다.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를 비롯한 온라인 플랫폼의 확산은 이러한 집단을 다양한 규모로 쉽게 형성하는 것이 가능해졌다’고 말했다.

기업들은 이제 소비자들의 변화에 귀를 기울여 단기적인 마케팅적 시각보다 제품·서비스·브랜드가 어필할 수 있는 팬덤의 요소를 장기적 관점에서 주의 깊게 발굴하고 기업들의 마케팅 활동에 있어서도 소비자의 공감과 자발적인 추천을 이끌어 내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소비자들이 어떠한 경우에 자신이 사용하는 제품과 서비스를 자랑스럽게 다른 사람들에게 공유하고 추천하는지, 어떻게 해야 팬덤을 기반으로 소비자들의 자발적인 입소문을 북돋을 수 있는지에 대한 이해를 통해 환경 변화에 대해 대응하려는 선제적 노력이 중요한 시점이다.

허지성 LG경제연구원 책임연구원 jsheo@lgeri.com
가성비 경쟁의 늪, ‘팬덤’으로 뚫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