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후반 대학원을 다니다가 뒤늦게 군대에 간 필자는 임관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결혼했다. 필자야 고향에서 신혼 생활을 하는 복 받은 사람이었지만 객지에서 고달픈 군대 생활을 하는 나이 어린 동기 중·소위들은 죽을 맛이었다.

1980년대 전두환 정권하에서 대학을 다닌 사람은 공통으로 거대담론에 짓눌려 있었고 그런 시름을 술로 달랠 때가 많았다. 시대 풍조도 ‘술 잘 마시면 충신, 못 마시면 역적’ 취급을 받을 만큼 술 권하던 사회이기도 했다. 하지만 필자는 워낙 술이 받지 않는 체질인데 대학 때 억지로 배운 술로 몸이 상당히 망가져 있었다.

찬 맥주 한 잔만 마셔도 배탈·설사를 하던 내게 구세주가 나타났다. 신기하게도 지인이 선물해 준 청매실로 담근 술은 어지간히 마셔도 배탈이 나지 않았던 것이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따뜻한 성질에 새콤한 맛을 지닌 매실(梅實)은 설사나 가래 기침을 잡아주는 좋은 한약재이기도 했다. 매실주 덕분에 필자는 젊은 군인들과 어울려 ‘복통 없는 취흥’을 즐길 수 있었다.

매실에 얽힌 영웅들의 이야기
매실 이야기는 소설 ‘삼국지’에도 나온다. 지원해 주는 사람도 없이 오갈 데가 없게 된 유비가 조조에게 몸을 의탁하고 있던 시절 이야기다. 유비는 조조가 행여나 자신의 잠재력을 알아보고 죽이지나 않을까 전전긍긍했다. 유비는 자신의 야심을 감추고 하루 종일 집안에 틀어박혀 채소나 가꾸며 은인자중하고 있었다. 어느 날 유비가 채소에 거름을 주고 있는데 조조에게서 전갈이 왔다.

“현덕공! 관저에서 술이나 한잔하는 게 어떠하시오?”
조조의 관저에 들어선 유비를 조조가 큰소리로 웃으며 맞았다. 테이블 위에는 술과 매실 안주가 준비돼 있었다. 조조는 술 주전자에 매실을 넣어 데웠다. 매실로 담근 술은 아니었지만 이 역시 매실주인 것은 틀림없었다. 조조가 유비에게 매실주를 권하며 물었다.

“현덕공! 무릇 영웅이라 함은 가슴에는 큰 뜻을 품고 배에는 좋은 모략을 지니며 우주의 진리를 감추고 있고 천지의 기운을 뱉어낼 수 있는 자를 말합니다.”

유비가 물었다.
“누가 그런 영웅입니까?”

조조가 손가락으로 가리켰다가 자신의 가슴에 손바닥을 갖다 댔다.
“천하에 영웅은 현덕공과 나 조조, 둘밖에 없소이다!”

자신의 속내를 들킨 유비가 당혹한 나머지 들고 있던 젓가락을 떨어뜨렸다. 그때 마침 천둥·번개가 쳤다. 유비는 둘러댔다.

“제가 천둥소리에 너무 놀라 젓가락까지 떨어뜨리는 무례를 범했사옵니다. 헤아려 주세요!”
남을 속이는 재주가 뛰어난 조조마저 속일 정도로 유비의 연기는 탁월했다. 조조가 속으로 빙그레 웃었다.

“잠룡인 줄 알았던 유비가 천둥소리에 놀라는 겁쟁이 소인배였구나!”

‘청매실을 안주 삼아 영웅을 논하다’라는 ‘청매자주, 논영웅(靑梅煮酒, 論英雄)’의 고사가 여기서 나왔다.

매실과 관련된 일화가 또 있다. 이른바 망매지갈(望梅止渴)의 고사다. ‘매실을 생각하며 갈증을 해결하다’는 뜻이다. 망매지갈의 고사에는 두 개의 버전이 있다. 하나는 조조가 주인공이고 다른 하나는 사마염이 주인공이다. 내용은 사실상 똑같다. 조조 대신 사마염이 등장하고 장수를 토벌하러 가는 것이 아니라 오나라를 공격하러 가는 것이 다를 뿐이다.
청매실 안주 삼아 영웅을 논하다
희망의 메신저 ‘매화’에 담긴 의미들
어느 날 조조가 군사를 이끌고 장수를 공격하러 갔다. 때는 여름,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엔 햇볕이 온 세상을 태울 듯한 맹렬한 기세로 내리쬐고 있었다. 행군 중인 군사들에게 물 한 방울도 남아 있지 않았다. 그때 조조가 말채찍으로 앞을 가리키며 병사들에게 말했다.

“저 앞에는 넓은 매실나무 숲이 있다. 그 매실은 아주 새콤달콤해 우리가 목을 축이기에는 안성맞춤이다. 조금만 더 참고 힘을 내 행군하자!”

조조의 말을 들은 병사들은 새콤달콤한 매실을 생각하며 파블로프의 조건반사처럼 침이 흘러 잠시나마 목마름을 해결하고 식수를 찾을 때까지 무사히 행군을 마칠 수 있었다고 한다.
알다시피 매실은 매화나무의 열매다. 동양에서 매화는 고상한 품격을 상징한다. 엄동설한 추운 겨울의 빙설을 이기고 나와 활짝 꽃을 피우는 매화는 봄소식을 알리는 ‘희망’의 메신저였다. 우리 조상들은 추운 날씨를 이기고 봄소식을 알리는 매화가 험악한 난세에도 ‘절개’를 지키는 군자의 덕성을 닮았다고 해서 높이 숭상했다.

중국 북송대의 시인 임포(林逋)는 매화 마니아였다. 그는 매화에 빠져 평생 벼슬도 마다한 채 결혼도 하지 않고 항주 서호의 산중에 은거하며 매화를 아내 삼고 학을 자식 삼아 지냈다고 해서 ‘매처학자(梅妻鶴子)’라고 불리기도 했다. 그에게는 매화가 유일한 희망이었던 모양이다.

‘여말선초’의 유학자 목은 이색(李穡)은 고려 조정의 충신이었다. 그는 이성계의 위화도 회군으로 어지러워진 난세를 이렇게 노래했다. 목은에게 매화는 희망의 상징이다. 반가운 매화가 보이지 않는 세상은 목은에게 절망적인 세상이다.

“백설이 자자진 골에 구름이 머흘에라 / 반가운 매화는 어느 곳에 피었는고 / 석양에 홀로 서 있어 갈 곳 몰라 하노라”

매화를 희망의 상징으로 보는 전통은 이육사의 시 ‘광야’에도 나타난다. 이육사에게 매화는 일제에 빼앗긴 조국의 광복이었다.

“지금 눈 내리고 매화 향기 홀로 아득하니 내 여기 가난한 노래의 씨를 뿌려라”

각설하고, 조조가 유비를 불러 매실 안주와 함께 매실주를 대접할 때 조조의 희망은 무엇이었을까. 유비와 더불어 기울어 가는 한 황실을 복원하고자 하는 원대한 비전이었을까. 아니면 황실의 종친이라고 주장하는 유비가 더 세력을 키우기 전에 싹을 자를 흉악한 음모였을까.

오늘 흰 눈이 펑펑 쏟아진다. 국내외를 막론하고 세계적인 불황이다. 정치나 경제도 한 치 앞을 내다보기 힘들다. 요즘과 같은 난세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빙설(氷雪)을 헤치고 반가운 봄소식을 전해줄 매화는 언제쯤이나 필까. 이 산을, 이 고비를 넘어가면 과연 새콤달콤한 매실이 있어 우리의 이 타는 목마름을 해결해 줄까.

김진국 칼럼니스트, ‘재벌총수는 왜 폐암에 잘 걸릴까?’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