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기업가 정신이 사라지고 있다고 걱정이 많다. 기업가 정신은 여러 가지로 정의될 수 있지만 ‘위험을 무릅쓰고 새로운 사업을 추진해 보려는 정신’이라고 본다면 정말 국내 상황이 그렇게 변해 가고 있는 것 같다. 미국의 실리콘밸리에서 뉴 비즈니스가 하루가 다르게 태어나고 바이오와 관련해서는 보스턴이나 샌디에이고에서 매일같이 혁신이 일어나고 있는 것을 보고 배우려는 태도는 이제 호사스러운 일이 돼 버렸다.


우리 뒤를 따라오는 존재로만 여겼던 중국에서 베이징의 중관춘을 넘어 이제 세계 최대 전자상가라고 불리는 화창베이에 이르기까지 나날이 새로운 비즈니스가 태어난다는 소식을 접하게 된다. 그러다 보면 한국 기업가 정신의 미래가 어둡게 느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기업가 정신이 약해지고 있는 사실을 두고 표면적인 진단과 처방은 넘쳐난다. ‘우리 젊은이들의 도전 정신이 약해지고 있다’는 지적, ‘대기업이든 중소기업이든 새로운 사업을 벌이기를 꺼린다’는 반성, ‘창업의 열기가 식어간다’는 진단 등이 흘러넘치고 여기에 근거해 젊은이들의 도전 정신을 고취하기 위한, 창업을 유도하기 위한, 기업들의 새로운 사업 기회를 인도하기 위한 정책적 노력들도 다양하게 추진되고 있다.


그런데 산업화 과정에서 그렇게 넘쳐나던 기업가 정신이 왜 지금 이렇게 힘을 잃어 가고 있는지에 대한 근본적 진단과 처방이 선행되지 않는다면 이 모든 노력들이 진정한 결실을 보기를 기대하기는 힘들 것이다.
‘미국 실리콘밸리’가 한국에 없는 까닭은
기업가 정신 발휘할 당근이 없다
우선 기업가 정신을 발휘할 인센티브가 충분한지 곰곰이 생각해 봐야 한다. 새롭게 세상에 나서는 젊은이들이 모험심을 발휘해 어떤 일에 성공했을 때 얻을 수 있는 성과가 과거만큼 충분한지 반성해 봐야 한다. 똑똑한 젊은이들이 고시·공기업·대기업으로의 취업을 선택하는 이유가 젊은이들의 모험심이 줄어서일까. 과연 좋은 아이디어로 초기 사업화에 성공한 젊은이가 그 사업을 충분한 대가를 받고 처분할 수 있는 시장이 존재할까.


‘김기사’가 카카오에 높은 가격을 받고 인수된 것이 오히려 예외로 느껴지는 환경에서 어렵게 초기 사업화에 성공한 후에라도 다시 큰 비즈니스로 발전시키는 일조차 모두 스스로가 해내야 하는 게 현실이다. 이런 여건에서는 사업의 성공 확률이 더 떨어질 수밖에 없다. 미국의 실리콘밸리, 중국의 화창베이에서는 조금만 될성부른 작은 기업들은 어느새 큰 기업에 인수되고 그 대가로 받은 자금이 또다시 새로운 사업을 전개하는 종잣돈으로 사용되는 과정이 수없이 이뤄지는 이른바 산업 생태계가 갖춰져 있는 것과는 너무나 동떨어진 환경이 아닌가. 창업이라고 하면 치킨집이나 작은 식당을 여는 것이 연상되는 분위기에서 기업가 정신이 고양되기를 기대하는 것은 난망한 일이다.


다른 한편으로 기껏 자그마한 성공을 거둔 중소기업들의 사업이 대기업에 먹혀 버렸다는 불만이 팽배해 있는 한국의 기업 생태계는 또 다른 기업가 정신을 가로막는 장벽이다. 아무리 작은 아이디어라도 그만큼 기업가 정신을 발휘한 부분은 정당한 가치를 인정받아야 한다. 어쩌면 대기업들이 창업 기업들을 대하는 태도만 바뀌어도, 즉 그들을 정당한 파트너로 인정하기만 하더라도 기업가 정신은 크게 고양될 수 있지 않을까.


혼자만의 힘으로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고 그것을 성공시키는 일은 참으로 힘들다. 그래서 동업자가 필요하고 멘토가 필요하고 선배 기업들의 도움이 필요한 것이다. 스티브 잡스는 기술자 스티브 워즈니악을 친구이자 동업자로 삼고 사업을 시작했다. 또 ‘중국 사람들은 세 명만 모이면 사업 이야기를 한다’고 들었다. 각자가 가진 장점을 서로 보완해 사업을 일궈 내는 문화가 형성돼 있는 것이다.


척박한 협업 문화도 장벽
반면 한국에서는 동업·협업의 문화가 척박하다. 좋은 동업자를 만나기부터 어렵다고 한다. 설사 좋은 동업자를 만나 일단 사업화가 성공하더라도 사업을 더 키우기 위해서는 비즈니스 컨설팅을 해 주는 ‘선배 비즈니스’가 필요하다. 과연 성공한 우리 대기업들이 그런 역할을 담당할 수 있을까. 오히려 외국의 열린 기업들이 한국에서 발견되는 좋은 창업 기업들과 협업해 새로운 사업을 발굴하려는 의지를 보이는 것을 보면 이 부분에서도 환경이 열악하다고 할 수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대기업들이 자신들의 비즈니스 경험을 ‘오픈 플랫폼’으로 삼아 창업 기업들에 제공하고 창업 기업들과의 협업을 추구하게 된다면 한국에서도 젊은이들이 기업가 정신을 발휘하려는 자세가 고무될 것은 분명하다. 창조경제혁신센터에만 그 역할을 맡기지 말고 기업 전체 차원에서 창업 기업과의 협업을 추구하기를 기대한다. 정부도 역할을 해야 한다. 될성부른 사업들을 글로벌 비즈니스로 이끌어 주는 역할, 시장을 찾아 주는 역할 등의 분야에서는 정부와 공공 기관들이 할 일이 많을 것이다.
국내 새로운 비즈니스를 열려고 할 때 이를 도와주는 힘이 약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새로운 비즈니스를 가로막는 힘이 곳곳에 잠재해 있다. 각종 규제들이 새로운 비즈니스가 열리는 길을 가로막고 규제를 용케 피하더라도 기존 사업자단체들이 견제하거나 반대하는 사례가 빈번하다. 한국의 법체계가 ‘허용되는 것’을 규정하는 포지티브 시스템으로 이뤄져 있다는 지적은 계속 지적돼 왔다. 우리 법체계는 예전에 만들어진 제도로 미래의 변화까지 재단하려는 속성을 가진 셈이다. 새로운 비즈니스의 중요성이 부각될 때마다 이를 허용하기 위해 법을 개정해야 하고 그때마다 정치적 논란이 일어나는 환경에서 새로운 비즈니스가 태어나기를 기대하는 것은 정말 힘들다.


이제 한국 경제는 (수출 성과를 포함하더라도) 3% 정도의 성장에 만족해야 하는 저성장 구조로 접어들고 있다. 그렇다 보니 지금까지 자신들이 영위해 오던 분야를 지키려는 사회적 압력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 수많은 사업자단체들이 만들어져 자신들의 사업 영역을 지키기 위한 사회적 압력이 그 어느 때보다 높아지고 있는 것 같다. 기존 사업자들이 새로운 형태의 사업이 등장하는 것을 가로막는 사태가 빈번하게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새로운 비즈니스를 열려고 하는 창업이 활성화되기를 기대하는 것은 참으로 어려울 수밖에 없다.


마지막으로 이 모든 것이 부족하더라도 사업을 영위할 때 지불해야 하는 각종 비용이 낮은 것만 해도 도움이 될 것이다. 하지만 이 부분에서도 한국은 선진국 못지않은 고비용 구조를 보이기 시작한 지 오래다. 근로자의 임금 수준도 그렇고 도시에서 창업하려면 치러야 하는 임대료 또한 젊은 사업가들을 낙담시키기에 충분하다. 창업 기업들에 높기만 한 금융 문턱이 문제고 그 문턱을 넘어서더라도 그들이 치러야 하는 금융비용은 높기만 하다.


이런 상황 속에서 젊은이들에게 기업가 정신을 발휘하기를 요구하는 것은 우리 모두의 억지 요구일 뿐이다. 정부도 기존 기업도 그리고 사업자단체도 노동조합도 나아가 정치집단도 모두 함께 기업가 정신이 살아나도록 지혜를 모아야 하지 않을까 싶다.
‘미국 실리콘밸리’가 한국에 없는 까닭은
김도훈
산업연구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