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현주 회장님, 금융 통해 국부 늘려 주세요”
해외에 투자하는 금융회사·연기금 역할 커질 것


미래에셋증권이 최근 KDB대우증권 인수 우선 협상자로 선정됐습니다. 얼마 전 한 언론사에서 제게 박현주 미래에셋 회장의 개인사를 포함해 과거와 현재를 평가해 달라는 부탁을 받았습니다. 전 거절했습니다. 왜냐하면 제가 회장님을 잘 모르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25년 정도 여의도에서 일하면서 개인적으로 회장님을 뵌 적이 한 번도 없었군요. 물론 ‘돈은 꽃보다 아름답다’는 회장님의 자서전을 읽으면서 성장 과정을 어렴풋이 짐작할 수는 있었습니다.

그래서 과거보다 미래 이야기를 좀 하려고 합니다. 국민 모두가 1997년 외환 위기(이른바 IMF 관리체제)로 뼈아픈 구조조정을 할 때 회장님은 미래에셋캐피탈과 자산운용사를 설립해 오늘날 미래에셋금융그룹으로 키웠습니다. 저는 앞으로 1~2년 내에 세계경제가 위기를 겪는 가운데 미래에셋은 글로벌 금융회사로 도약하고 나아가 금융으로 우리 국부를 늘릴 수 있는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합니다.

세계경제 구조조정 과정에서 기회 많아
현재 세계경제는 디플레이션 압력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거의 모든 산업에서 공급이 수요를 초과하고 있습니다. 초과 공급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수요가 늘거나 공급이 줄어야 합니다. 글로벌 경제 환경을 보면 수요 증가보다 공급 감소에 의해 디플레이션 압력이 해소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우선 선진국 사정을 살펴보겠습니다. 2008년 미국에서 글로벌 금융 위기가 시작됐습니다.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선진국 정부와 중앙은행은 적극적인 재정 및 통화정책으로 대응했습니다. 대규모로 국채를 발행해 정부 지출을 늘렸습니다. 중앙은행은 기준금리를 거의 0%로 인하했고 전례 없는 양적 완화를 통해 천문학적인 돈은 풀었습니다.

그래서 주가와 집값 등 자산 가격이 상승하고 소비도 증가하면서 미국을 중심으로 선진국 경제가 어느 정도 회복됐지요. 하지만 아직도 디플레이션 압력은 존재합니다. 회복세가 가장 빠른 미국 경제만 보더라도 2015년 3분기 현재 실제 국내총생산(GDP)이 잠재 GDP를 2.5% 정도 밑돌고 있습니다.

문제는 다시 경기가 나빠질 조짐을 보이고 있다는 데 있습니다. 이미 제조업 경기를 나타내는 공급자관리협회(ISM) 제조업지수가 침체 국면에 접어들고 산업 생산도 전년 동월 대비 증가율로 보면 2015년 11월에는 2009년 12월 이후 처음으로 감소세로 전환됐습니다. 일본과 유럽 경제 회복 속도는 미국보다 더 더딥니다.

다시 경기가 침체에 빠지면 마땅히 수요를 부양할 정책이 없습니다. 지난 위기 때 경기를 부양하면서 정부가 부실해졌습니다. 일본 정부 부채가 GDP의 260%에 이르고 미국과 독일도 100%를 넘어서고 있습니다. 한편 정책 금리는 거의 0%까지 내려놓았고 양적 완화를 통해 엄청난 돈을 풀었지만 돈이 돌지 않고 있습니다. 미국의 통화승수가 2008년 9배에서 최근 3배로 떨어진 것이 그 증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수요가 증가하지 못하면 결국 공급 측면에서 구조조정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직설적으로 말하면 많은 기업이 사라질 것이라는 얘기입니다. 저는 ‘산업의 심화’라는 표현을 쓰는데, 산업은 존재하지만 그 산업 내의 기업 수는 갈수록 줄어들 것입니다. 어떤 곳은 인수·합병(M&A)을 통해 합쳐질 수 있고 그렇지 못하면 시장에서 퇴출될 것입니다. 기업의 M&A 등 구조조정 과정에서 미래에셋이 할 일이 참 많을 것입니다.

한편 신흥 시장은 공급 측면에서 뼈아픈 구조조정을 해야 할 것입니다. 특히 중국의 공급과잉 문제는 심각합니다. 2008년 미국에서 금융 위기가 시작된 후 2009년 세계경제는 선진국 중심으로 마이너스 성장을 했습니다. 하지만 중국 경제는 9~10%라는 고성장을 하면서 ‘중국만이 자본주의를 구제한다’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중국 경제가 투자 중심으로 고성장했고 이제 과잉투자 문제가 드러나고 있습니다. 중국 GDP에서 고정 투자가 차지하는 비율이 최근 48%까지 올라갔습니다. 세계 평균이 22% 정도인 것을 고려하면 중국 기업이 얼마나 많은 투자를 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중국의 기업 부채가 2014년 GDP의 157%까지 급증했습니다. 기업 부채가 높다는 한국도 102%로 중국보다 낮습니다.

기업이 투자 확대로 생산능력을 키워 놓았는데 국내외 수요가 이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중국 기업 이익이 줄고 많은 기업이 점차 부실해지고 있습니다. 기업 부실은 더 늘어 정부가 통제할 수 없을 정도로 쌓이고 결국에는 은행도 같이 부실해질 것입니다. 쌓인 부실은 한번은 처리하고 넘어가야 합니다. 1997년 한국이 겪었던 외환 위기는 기업과 은행의 부실을 처리하는 과정이었습니다. 당시 원화 가치가 큰 폭으로 하락한 데다 주식을 포함한 거의 모든 자산 가치가 급락했습니다.

‘금융’의 ‘삼성전자’ 기대
저는 중국이 조만간 금리와 외환시장 자유화를 통해 구조조정을 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2015년 6월 하순 이후 중국 주가가 급락하면서 정부가 여러 가지 증시 부양책을 내놓았습니다만 별 효과가 없었습니다. 중국 정부는 사람을 통제할 수는 있지만 시장을 통제할 수는 없다는 것을 알았을 것입니다. 중국의 구조조정 시기에 자산 가격이 크게 하락하고 우리에게 큰 이익을 남길 수 있는 투자 기회를 줄 것입니다. 2007년 ‘인사이트펀드’의 불명예를 씻을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될 것을 믿어 의심하지 않습니다.

2015년 경상수지 흑자가 사상 처음으로 1000억 달러를 넘어섰습니다. 그런데 이 흑자가 금융계정을 통해 다 해외로 나가고 있습니다. 주로 직접 투자와 증권 투자를 통해서죠. 여기서 증권 투자가 매우 중요합니다. 경상수지 흑자는 대부분이 상품수지 흑자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해외투자를 하는 연·기금이나 금융회사의 역할이 과거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적절한 시기에 미래에셋이 KDB대우증권을 인수한 것 같습니다. 세계경제가 초과 공급을 해소하는 과정에서 구조조정을 해야 할 것입니다. 여기서 M&A 등 증권회사가 할 일이 많을 것입니다. 또한 중국 등 신흥국의 구조조정 과정에서 이들의 자산을 싸게 살 기회가 곧 올 전망입니다. 대폭의 경상수지 흑자로 한국은 해외투자를 할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회장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이번 합병을 통해 미래에셋은 세계적 증권회사로 도약할 것입니다. 더 나아가 해외투자로 한국의 국부를 늘릴 기회입니다.

미래에셋이 지금까지 성장하는 과정에서 고객은 그 과실을 함께 누리지 못했다는 일부 시각도 있습니다. 부디 작금의 국내외 경제 상황을 잘 활용해 회사와 고객 자산을 같이 키우고 나아가 한국의 국부를 늘려주시기 바랍니다. 여기에는 회장님의 ‘인사이트(통찰력)’와 뛰어난 직원들의 ‘과학’이 필요하다는 것도 잊지 마시고요.

박현주 회장님, 대단한 결단을 내리셨습니다. ‘금융’의 ‘삼성전자’를 기대합니다.

김영익 서강대 경제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