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 CEO의 산실 '반도체', '포스트 스마트폰 시대' 삼성전자 누가 이끌까

‘글로벌 삼성’의 밑바탕에는 반도체 산업이 있다. 과거 삼성전자는 1970년대 백색 가전을 만들던 여러 회사 중 하나에 지나지 않았다. 하지만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반도체 사업을 신성장 동력으로 선택한 뒤 급격한 국내외 팽창을 거쳐 지금의 삼성전자로 재탄생했다.

삼성전자 반도체는 이 회장이 1974년 동양방송 이사로 재직하던 시절 경영 위기를 겪고 있던 ‘한국반도체’ 지분 50%를 인수하며 시작됐다. 당시 고 이병철 삼성 회장과 삼성전자 임원들은 하나같이 “반도체 같은 최첨단 사업은 지금 삼성에는 무리”라며 이건희 회장을 말렸다.

하지만 이 회장은 반도체 사업이 자원 없이 성공할 수 있는 길이라는 확신 아래 결국 한국반도체를 사비로 인수한다. 이후 이병철 회장도 반도체에 대한 가능성을 확인하고 한국반도체의 나머지 지분을 모두 인수해 1977년 삼성반도체가 출범한다.

삼성반도체는 1980년 삼성전자, 1982년 한국전자통신으로 합병되며 삼성반도체통신으로 재탄생한다. 1984년 2월 현재의 삼성전자로 상호를 변경했다.

삼성 반도체 사업의 몸집은 지속적으로 불어났지만 신제품 개발과 이를 맡아 운영할 인재가 국내에 많지 않았다. 이때부터 삼성은 ‘기업의 운명은 인재에 있다’는 일념 아래 글로벌 인재 영입에 속도를 냈다.

이때 영입된 인물이 삼성전자 반도체의 초석을 쌓은 김광호(1940년생) 전 부회장과 이윤우(1946년생) 전 부회장이다. 이들은 삼성전자 반도체 1세대로 불린다.

“반도체를 키워라”…인재 영입의 시작

김광호 전 부회장은 반도체 산업에서 빼놓을 수 없는 입지전적 인물이다. 김 전 부회장은 삼성전자 입사 후 35년간 전자와 반도체 분야의 한 우물을 파며 삼성을 세계 1위 반도체 기업으로 성장시켰다.

김 전 부회장은 64K D램(RAM), 1메가 D램, 4메가 D램을 개발하며 선진국과의 기술 격차를 줄여 삼성이 반도체 부문에서 일본 등을 역전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 또 “서양보다 동양이 반도체 사업을 잘하는 것은 동양인들이 젓가락을 사용해 손놀림이 섬세하기 때문”이라는 ‘젓가락 이론’을 내놓으며 글로벌 반도체 산업의 살아 있는 ‘전설’이 됐다.

김 전 부회장은 1964년 동양방송에 입사해 1978년 삼성전자 TV사업부 이사, 1987년 삼성반도체통신 부사장, 1992년 삼성전자 대표이사 사장, 1994년 삼성전자 대표이사 부회장을 지냈다.

김 전 부회장과 함께 반도체 1세대의 대표 격인 이윤우 전 부회장도 삼성 반도체의 역사를 함께했다. 이 전 부회장은 삼성이 컬러TV도 제대로 만들지 못하던 1980년대 64K D램을 개발했다. 그는 인재를 보는 눈이 탁월해 진대제·황창규 등 이후 삼성전자를 이끈 굵직한 인재들을 영입했다.

이 전 부회장은 1968년 삼성전관 입사, 1987년 삼성전자 반도체총괄 상무, 1991년 반도체총괄 전무(기흥연구소장), 1992년 메모리사업총괄 부사장, 1996년 반도체총괄 대표이사 사장, 2004년 대외협력담당 부회장 겸 삼성종합기술원장, 2010년 대표이사 부회장 겸 이사회 의장을 지냈다.

이들에 이은 삼성전자 반도체 2세대로는 진대제·황창규 전 사장이 있다. 진 전 사장은 1983년 미국 IBM 왓슨연구소 연구원을 거쳐 1985년 삼성전자 미국현지법인 수석연구원으로 삼성에 입사했다. 진 전 사장은 1990년 16메가 D램 시제품을 일본보다 먼저 시장에 선보이는 데 큰 공을 세웠다. 이후 64메가 D램도 진 전 사장의 작품이다.

진 전 사장은 삼성전자 반도체의 역량을 크게 향상시켰다는 평가를 받으며 1997년 삼성전자 S.LSI(시스템 대규모집적회로) 사업부장 대표이사 부사장, 2000년 삼성전자 디지털미디어총괄 대표이사를 거친 뒤 2003년 제9대 정보통신부 장관으로 자리를 옮겼다. 이후 정보기술(IT) 기업에 전문적으로 투자를 유치하는 스카이레이크 인베스트먼트를 창업했다.

‘황의 법칙(반도체 메모리 용량이 1년마다 2배씩 증가한다는 이론)’으로 유명한 황창규 전 사장(현 KT 회장)은 1988년 미국 스탠퍼드대 연구원 등으로 근무하다 삼성전자에 영입됐다.

1992년 삼성전자 반도체연구소 이사에 이어 2001년 삼성전자 메모리사업부장(사장), 2004년 삼성전자 반도체총괄 사장, 2008년 삼성전자 기술총괄 사장을 지낸 뒤 2014년부터 KT 대표이사 회장을 맡고 있다.

특히 황 전 사장은 2007년까지 ‘황의 법칙’에 맞춘 제품을 출시하며 직접 자신의 이론을 입증하기도 했다. 그는 1994년 세계 최초로 메모리 반도체 256메가 D램 개발에 성공하며 세계 최고의 반도체 전문가라는 수식어를 달았다.

이들에 이어 삼성전자 반도체 3세대로는 불리는 권오현 현 삼성전자 DS부문장(부회장)이 여전히 삼성전자 반도체를 총괄 지휘하고 있다. 권 부회장은 1985년 미국 삼성반도체 연구소 연구원을 시작으로 2008년 반도체총괄 사장, 2011년 삼성전자 DS부문 부회장, 2012년 삼성전자 대표이사 부회장에 올라 5년째 삼성전자를 이끌고 있다.

권 부회장은 IM(정보기술·모바일)부문과 CE(소비자가전)부문, DS(디바이스 솔루션)부문 등 3개 부문을 총괄하며 반도체의 삼성을 글로벌 IT 기업으로 변신시켰다. 권 부회장 역시 1992년 삼성이 세계 최초로 개발한 64메가 D램 개발 주역으로 참여하기도 했다.

이 밖에 2014년 SK텔레콤 부회장으로 자리를 옮긴 임형규 전 사장도 삼성전자 반도체 역사를 함께 만든 인물 중 하나다. 임 전 사장은 서울대 전자공학과를 졸업한 뒤 1976년 삼성전자 반도체사업부에 입사했다. 2001년에는 삼성전자 S.LSI부장(사장), 2005년 삼성종합기술원장, 2008년 삼성전자 신사업팀장에 임명됐다.

임 부회장은 삼성전자 입사 후 비메모리 반도체 분야에서 탁월한 능력을 인정받았다. 이 때문에 그는 ‘비메모리 반도체의 얼굴’이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특히 황창규 KT 회장과는 서울대 출신 동갑내기여서 그룹 내 라이벌로 주목받으며 경쟁 구도를 펼쳤다. 이들 두 라이벌은 국내 대표적 통신사인 KT와 SK텔레콤에서 한 번 더 라이벌 구도를 형성하고 있다.

또한 삼성전자는 일본 샤프 고문이던 이임성 박사, 내셔널세미컨덕터에서 64K D램 개발에 참여했던 이일복 박사, 자일로그 반도체 공정 개발을 담당했던 이상준 박사, 사이너텍에서 C-MOS 제조수율 개선에 성공한 이종길 박사 등을 영입하며 ‘반도체 신화’를 써 내려왔다.

이건희 회장이 반도체로 삼성전자를 한 단계 더 성장시킨 데 이어 이재용 부회장의 삼성전자는 반도체보다 IT 산업에 역량을 집중했다. 지금까지 삼성의 최대 약점이었던 디자인 부문도 강화하고 있다. 이 때문에 최근 영입되는 주요 인재들은 대부분이 IT와 디자인 분야 전문가라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

이 부회장은 헬스 케어도 삼성의 미래 먹을거리 창구로 판단하고 있다. 이 부회장의 사람들 중 가장 주목받는 인물은 지난해 영입된 영국 디자인 회사 탠저린 대표 출신의 이돈태 연구위원이다. 삼성전자는 애플 등에 비해 디자인적 요소가 부족하다는 지적을 지속적으로 받아 왔고 2014년 출시한 ‘갤럭시 S5’는 언론은 물론 소비자들로부터 디자인과 관련해 혹평을 받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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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에서 IT로…이재용이 선택한 사람들

이후 영입된 이돈태 연구위원은 삼성전자 입사 후 ‘갤럭시 S6’와 ‘노트 5’의 일체형 디자인 개발을 주도해 전작 갤럭시 S5에 비해 2배 이상 높은 판매 실적을 올렸다. 이 부회장의 디자인 경영이 들어맞은 것이다.

이 연구위원이 몸담았던 탠저린은 삼성전자·LG전자·도요타 등과 디자인 계약을 하고 있는 글로벌 회사다. 특히 이 연구위원은 디자인만이 아닌 기업의 성과를 함께 고민하는 디자인 경영자로 평가받는다.

2014년 영입된 김태성 연구위원은 애플에서 아이패드 고화질 터치스크린 개발에 참여한 핵심 인력이며 생활가전사업부 민소영 위원은 크랜필드경영대학원을 졸업하고 영국 테스코에서 소비자 분석을 진행한 전문가다. 2004년부터 3년간 테스코 본사에서 개별 맞춤 마케팅 서비스 ‘클럽카드’로 성공을 거두기도 했다.

현재 삼성전자를 이끌어 가는 임원들의 특징은 무엇일까. 작년 9월 말 기준 삼성전자 임원은 725명이다. 이들은 대부분이 1960년대생(47~56세)이었다. 전체의 82.3%인 총 597명에 이른다.

세부적으로 보면 이건희 회장을 제외한 삼성전자 임원은 모두 1950년대 이후 출생자들이다. 1950~1954년생 10명, 1955~1959년생 57명, 1960 ~1964년생 328명, 1965~1969년생 269명, 1970~1974년생 58명, 1975~1979년생 2명 등이다.

출신 대학은 골고루 분포된 편이지만 서울대가 64명(8.8%)으로 가장 많았다. 이어 삼성전자가 지원하고 있는 성균관대 55명(7.6%), 연세대 51명(7%), 고려대 49명(6.8%), 카이스트 37명(5.1%), 한양대 37명(5.1%), 경북대 35명(4.8%) 등의 순이었다. 서강대·한국외국어대·숭실대·중앙대·아주대·경희대·인하대·광운대 등도 10명 이상의 임원을 배출했다.

학력별로는 고졸 1명(0.1%), 전문학사 1명(0.1%), 학사 436명(60.1%), 석사 228명(31.5%), 박사 59명(8.2%) 등이다. 이들 임원 중 560명(77.8%)은 국내 대학을 졸업했다.
[대한민국 신인맥(2)] 삼성전자 임원만 700명 선…60년대생 82.3%
삼성그룹 여성 부사장은 2명

삼성전자 남성 임원 비율은 96.9%에 달해 압도적이다. 부사장급 이상에서는 전체 86명 중 이영희 부사장(무선사업부)이 유일하다.

1964년생인 이 부사장은 연세대 영문학과와 미국 노스웨스턴대 대학원 광고마케팅학과를 졸업하고 유니레버코리아 마케팅 매니저, SC존슨코리아 마케팅 디렉터, 로레알코리아 약국병원사업부 총괄이사 등을 거쳐 2007년 삼성전자 DMC부문 무선사업부 전략마케팅팀 상무로 영입됐다. 2010년 7월 전무로 승진한 지 4년여 만인 2014년 말 부사장 자리에 올랐다.

특히 이 부사장은 최근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세계 최대 가전 전시회 ‘CES 2016’에서 ‘기어 S2’ 클래식 신제품인 로즈골드를 직접 소개했다. 작년 3월에도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열린 ‘모바일 월드 콩그레스(MWC) 2015’에서 ‘삼성 갤럭시 언팩 2015’ 행사를 열고 ‘갤럭시 S6와 S6 엣지’를 공개하면서 언론의 주목을 받기도 했다.

삼성그룹 전체로 보면 김유미 삼성SDI 전무가 지난해 말 부사장으로 승진했다. 삼성그룹 역사상 최초로 연구·개발(R&D) 분야에서 배출된 첫 여성 부사장이다. 1958년생으로 충남대 화학과를 나와 같은 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김 부사장은 소형 전지부터 중대형까지 SDI만의 전지를 개발해 온 전문가다.

또 지난해 말 실시된 조직 개편으로 신설된 ‘전장사업팀’을 이끌게 된 박종환 부사장도 주목받는 인물 중 하나다. 전장사업팀은 자동차 전장 부품(전기 관련 부품)과 IT를 결합해 신사업을 창출하는 역할을 맡는다. 1961년생인 박 부사장은 대구 달성고와 연세대 경영학 석사를 수료했다.

그는 1986년 삼성전자에 입사해 경영전략담당 과장, 디지털미디어총괄 생활가전사업부 기획그룹장 상무, DM부문 생활가전사업부 키친솔루션사업팀장 전무, 생활가전사업부 C&M사업팀장 전무 등을 두루 거쳤고 2013년 말 인사를 통해 부사장으로 승진했다.

1970년대 이후 출생한 임원 중에선 이민혁 전무가 주목받고 있다. 2014년부터 삼성전자 무선사업부 무선디자인팀을 맡고 있던 이 전무는 지난해 말 인사에서 상무에서 전무로 승진했다.

이 전무는 경희대에서 산업디자인을 전공한 뒤 르노삼성차를 거쳐 삼성전자에서 휴대전화 디자인 업무를 담당했다. 특히 2010년 정기 인사에서는 차장에서 상무로 두 단계파격 승진하며 최연소(당시 38세) 임원으로 주목받았다. 이 전무는 블루블랙폰·벤츠폰·갤럭시 S3 등을 직접 디자인했다.

또 2015년 삼성전자에 합류해 ‘삼성페이’에 큰 공을 세운 토마스 고 역시 이재용 부회장의 사람이다. 고 전문위원은 회계 기업 KPGM과 데이터베이스 관리 시스템 기업 사이베이스, 글로벌 금융사 씨티그룹을 거친 금융·IT 전문가다. 그는 최근 삼성페이의 저가폰 지원과 온라인 결제 시스템 도입을 직접 언론에 밝히며 핵심 인재임을 증명하기도 했다.

지난해 의료기기 사업부 전략마케팅팀에 영입된 송인숙 전문위원 역시 1974년생이다. 송 전문위원은 존스홉킨스대에서 신경과학을 전공한 뒤 GE헬스케어에서 마케팅과 브랜드 전략을 수립했다. 앞으로 삼성전자에서 승진할 인물들과 외부에서 영입될 인재들에게 더욱 관심이 쏠릴 전망이다.

김태헌 기자 kt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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