걱정스러운 '사농공상'의 부활
오늘날 한국 사회의 국회의원같은 정치인이나 관료들의 모습은 어떠한가. 아마도 많은 국민들은 권력자인 이들이 국민에게 봉사하는 일보다 모든 사람위에 군림하고자 하는 모습을 떠올릴 것이다. 여기에 더해 많은 사람들이 이들 관료들에게 줄을 서고 더 큰 기득권층을 구성해 자신들만의 리그를 만드는 모습을 보며 허탈감을 받을 것이다.

걱정스러운 '사농공상'의 부활
개발연대를 거치면서 그동안 잠깐 가라앉았던 사농공상(士農工商)의 계급 이념이 급속도로 재생되고 있다. 어디를 가도 정치인이 갑이요, 관료나 전직 관료가 갑인 사회다. 그래서 너도나도 이 대열에 끼기 위해 줄을 서고 있다. 이 사회에 자조(自助)해 부가가치를 창출하고 세금을 납부하는 사람은 점차 2등, 3등 국민이 되고 있다.

19세기 말과 20세기 초에 걸쳐 일어난 문명사의 일대 변화 중 하나는 아마 미국 경제가 태양이 지지 않는다는 그 막강한 영국 경제를 추월한 사건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일은 그 전 세기 막강 중국을 영국이라는 섬나라가 추월하며 서양의 세기를 연 사건 만큼이나 큰일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영국은 17세기에서 19세기 초까지만 해도 소위 ‘현대식 유한책임 주식회사’ 제도를 발명해 산업혁명을 일으켰다. 그 결과 세계경제를 쥐락펴락하는 경제 대국으로 올라섰다. 인도와 아프리카 식민을 주도한 동인도회사 또한 국가권력을 부여받은 주식회사였다.

르네상스 이후 과학기술의 혁신과 창의적 아이디어들을 대량생산 방식을 이용해 값어치 있는 재화와 서비스로 전환시킨 주식회사 기업 제도가 영국으로 하여금 산업혁명을 통해 중국을 추월하고 서구의 시대를 열 수 있게 한 원동력이었다.

하지만 영국은 사농공상의 계급적 이념이 강한 귀족 사회였다. 주식회사 제도를 발명했지만 상류층의 인재들은 여전히 기업을 일으키고 기업의 일원으로 삶의 성공을 추구하기보다 정치가·관료·학자 등 소위 고매한 직업에 종사하는 것을 선호했다.

산업혁명이 진행되면서 영국 등 서구의 소위 선진 기존 질서에서 이탈해 신대륙으로 이주한 ‘새로운 아메리카인’들은 모국과 전혀 다른 개척자적 인생관과 세계관을 창출했다. 자본주의적 기업을 일으켜 대기업으로 키워 내고 그 조직의 일원으로서 부를 일구는 것을 가장 중요한 인생의 삶의 가치로 여기는 새로운 이념을 창출했다.

미국은 지구상에서 가장 실사구시적, 기업 친화적 세계관을 창출해 영국이 발명한 기업 제도를 최상으로 활용했다. 그 결과 미국은 짧은 기간에 영국을 추월할 수 있었다. 결국 영국은 기업가나 기업가적 삶을 인생의 수단으로 간주했지만 미국 사회는 이를 인생의 목적으로 간주하는 새로운 신대륙 문화를 창출한 것이다. 강력한 기업 생태계를 창출함으로써 세계경제를 1세기 이상이나 주도하고 있다.

일류 대학을 박차고 나가 창업하는 것을 아무도 폄훼하지 않고 졸업생들이 얼마나 많은 창업을 했는지를 자랑으로 여기는 대학 문화가 미국의 강력한 기업 생태계의 바탕이 되고 있는 것이다.

자본주의 경제는 바로 역동적인 기업과 기업가들이 이끄는 경제다. 이들이 폄훼되는 사회는 어떤 방법으로도 성장과 발전을 이룰 수 없다는 것이 역사의 경험이다. 동북아에서도 일본의 명치유신이 그러하고 한국의 개발연대 ‘한강의 기적’이 그러하고 중국의 지난 30년의 기적이 그러하다.

일본은 명치유신으로 중앙집권이 강화되면서 봉건제의 산물인 사농공상의 최상층이었던 사무라이 계급이 무너지고 이들이 주판을 든 사무라이로 변신해 산업보국의 이념을 체화한 새로운 기업가 그룹을 형성하면서 일본의 근대화가 가능했다.

한강의 기적을 이끈 박정희 전 대통령은 성공하는 기업과 기업인을 국민적 영웅으로 대접함으로써 5000년도 더 되는 세월 동안 사농공상의 계급 이념 속에서 짓눌렸던 한민족의 기업가적 창조의 본능을 살려내 오늘날 세계를 호령하는 세계적인 한국 기업들을 만들어 냈다.

그런가 하면 중국은 일본과 한국의 기업 주도 성장 경험을 잘 살려 선부론(先富論)을 펼치며 성공을 거뒀다. 선부론은 부를 쌓는 자를 우대하는 ‘반사농공상’의 이념으로, 덩샤오핑 전 국가주석은 중국 국영기업에 신속하게 자본주의적 경영을 도입하며 지난 30여 년간 기업 주도의 산업혁명을 이뤄냈다.

개발연대에 세계 최고의 동반 성장을 경험했던 한국 경제는 지난 30여 년간 선진화한다고 갖가지 균형성장 정책을 추진했지만 오늘날 오히려 저성장과 양극화에 직면하고 있다. 개발연대 이후 한국은 민주화와 선진화라는 이름하에 대기업(가)들을 ‘재벌’이라고 폄훼하고 독재정권의 화신인 양 규정함으로써 성공한 기업(가)들을 평가절하해 사농공상의 농경사회 계급 이념을 재건하는 데 온힘을 기울였다.

그동안 정치인들과 관료 사회는 법과 정책으로 기업(가)들 위에 군림하는 데 혈안이 됐고 대학 사회는 세계 일류 기업가들의 양성보다 정치인과 관료 등 부의 창출이 아니라 그 소비에 몰두하는 비생산적 계급을 양성하는 데 자원을 낭비해 왔다. 이 시대가 조선조의 몰락을 가져 온 사농공상의 계급사회로 되돌아 가고 있다는 주장에 누가 반론을 제기할 수 있을까.

기업을 일으키고 대기업으로 성장시키는 것이 국가 번영에 기여하는 일일 뿐만 아니라 가문의 영광이 되는 상공농사(商工農士)의 실사구시적 국부 창출의 사회 이념이 확고해져야 젊은이들의 창업과 중소기업의 성장과 대기업의 세계시장 개척을 역동적으로 이끌어 낼 수 있다.

성공하는 기업과 기업인을 폄훼하는 데 혈안이면서 성장 의욕에 충만한 기업가와 기업이 활개 치는 선진 한국 경제를 기대하는 것은 연목구어에 불과하다. 성공하는 기업과 기업인을 존중하지 않으면서 좋은 기업이 일어나고 경제가 성장하고 좋은 일자리가 늘어날 수는 없는 일이 아니겠는가. 성공 기업을 누구보다 존중한 박정희 전 대통령의 경제정책 패러다임은 아직도 살아있는 경제학이다.

좌승희 전 한국경제연구원장·영남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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