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진 기회 적고 힘없는 ‘기피 부서’…독립성 강화도 과제
한국은 순환보직 ‘맹점’ 외국은 수십 년 베테랑
최근 중국 경제의 불안과 유가 하락으로 세계경제가 흔들리고 있는 가운데 가계 부채와 부실기업의 증가로 금융권의 리스크가 크게 증가하고 있다.

진웅섭 금융감독원장도 최근의 금융시장에 대해 “봄철을 앞두고 살얼음판을 밟고 있는 것처럼 경계의 끈을 놓아서는 안 되는 형국”이라고 말할 정도로 시장에 불안감이 감돌고 있다.

그런데 과연 한국 은행들이 리스크에 얼마나 잘 대비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우려를 금할 수 없다. “우리가 역사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사람들이 역사의 교훈을 기억하지 않는다는 것”이라는 워런 버핏 벅셔해서웨이 회장의 말에 새삼 공감이 간다.

한국의 은행들은 외환 위기라는 된서리를 맞고 엄청난 구조조정을 겪은 바 있다. 정부·은행·제2금융권·기업이 뒤엉켜 리스크를 무시하면서 경쟁하다가 국가적 경제 위기를 맞게 된 대표적인 리스크 관리 실패의 사례다.

외국 은행선 승진 코스로 통해

또한 그 후로도 세계 금융 위기 이후 환율이 급등하면서 KIKO 사태가 발생해 은행의 불완전 판매가 비난의 화살을 맞았고 프로젝트 파이낸싱(PF) 대출에 대한 리스크 관리 부재가 저축은행 사태를 촉발해 엄청난 규모의 국민 혈세가 공적자금으로 투입됐다.

이와 같은 끊임없이 벌어지는 크고 작은 경제 사태들의 저변에는 항상 리스크 관리의 실패가 깔려 있다. 역사로부터의 교훈을 잊고 반복적으로 리스크 관리에 실패하는 대표적인 원인은 리스크 관리에 대한 인식 부족, 리스크 관리 인력의 전문성 부족, 리스크 부문의 독립성 부족에 있다.

우선 리스크 관리에 대한 인식 부족은 최고경영자(CEO)로부터 시작된다. 대주주가 없는 은행은 CEO나 임원이 낙하산으로 임명될 때가 많다.

은행은 일반 기업에 비해 리스크 관리의 중요성이 훨씬 더 높은데, 비은행 출신 CEO가 은행의 경영을 맡았을 때 제대로 된 리스크 관리를 기대하기 힘들다. 대부분이 단기 성과 위주의 경영 정책을 추구하다 보니 투자 포트폴리오가 왜곡돼 리스크에 쉽게 노출된다.

그리고 ‘낙하산 CEO’가 있는 은행은 더 심하겠지만 그렇지 않은 은행은 임원 중 리스크 관리를 전문으로 하거나 리스크 관리 경력이 있는 임원이 많지 않다. 심지어 리스크 관리를 경험해 본 임원이 한 명도 없는 은행도 있고 리스크 관리 담당 임원에 리스크를 전혀 모르는 사람을 계속해 배치하는 은행도 있을 정도다.

리스크 관리직은 영업 부서에 비해 승진의 기회가 적고 영향력도 작다 보니 우수한 전문 인력이 키워지기도 힘들다. 그리고 리스크의 중요성에 대한 직원들의 인식도 약하다. 심지어 은행 직원의 70% 이상이 신용 리스크 관리의 기본 인프라인 회계나 기업 분석 관련 기초 지식을 갖추지 못한 형편이다.

외국의 은행은 고위 간부로 성장하려면 반드시 리스크나 신용 평가 경력을 갖춰야 하고 영업 부서 직원들도 행원 시절부터 리스크 분석과 심사 분석에 대한 교육 훈련을 여러 단계별로 심도 있게 받도록 하고 있다. 한국과 많이 다른 지점이다.

50대 들어서면 벌써 명퇴 분위기

그러다 보니 한국 은행들엔 리스크 전문가가 별로 없다. 전문가는 단기간에 키워지지 않는다. 전문가가 양성되기 위해서는 수년간 한 분야에만 근무하면서 실무 경험과 교육이 병행돼야 한다. 외국 은행에선 리스크 관리나 심사 분석은 수십 년 같은 일을 한 60대 후반의 전문가들이 맡아 하고 곳이 많다.

그런데 한국은 2~3년마다 이뤄지는 순환 보직으로 한 군데 오래 머무르지 않아 전문가가 키워지기도 힘들 뿐만 아니라 전문 인력이라고 해도 50대에 들어서면 명퇴하는 분위기이다 보니 소중한 경험이 제대로 활용되지 못하고 있다.

리스크 관리가 제대로 작동하려면 리스크 관리 부문의 독립성이 매우 중요하고 리스크 부문과 영업 부문 간의 소통이 잘돼야 한다. 외국에선 리스크 관리에 성공한 은행과 실패한 은행의 가장 결정적인 차이는 리스크 관리가 얼마나 독립적으로 이뤄졌는지 여부다.

성공적인 은행은 리스크 관리 부서가 영업 부서들과 밀접하게 공조하면서 상호간 위험을 경고하도록 돼 있다. 영업 담당자는 물론 CEO도 상품 내용이나 리스크를 알도록 해 시장과 현장에서 멀어지지 않도록 수시로 경종을 울려 주면서 리스크를 관리한다.

그러나 실패한 은행은 이익과 시장점유율에만 신경을 쓰고 리스크 관리는 외면한다. 성과급도 이익에만 연동하고 리스크를 반영하지 않는 등 실적 위주의 경영으로 무리한 리스크 부담을 지다가 몰락하게 되는 경우도 다반사다.

대표적인 예가 서브프라임(비우량 주택 담보대출) 부실 사태의 시발점이 된 리먼브러더스다. 이 회사는 부동산 담보대출의 부실에 대한 조기 경보를 무시하고 수익성만 추구해 위험 자산에 투자를 확대하다가 158년 전통의 거대 금융회사가 파산을 맞이한 것이다.

그런데 한국 은행들도 시스템상으로는 많이 개선됐다고는 하지만 운영은 구태의연하다. 리스크 관리 부문의 영향력과 독립성이 매우 약할 뿐만 아니라 영업 부문과의 의사소통이나 업무 협력이 원활하지 못한 곳이 대부분이다.

그러니 언제든지 제2의 리먼브러더스 같은 은행이 나오지 말란 법이 없다. 지금 이 시점에서라도 한국 은행들은 다시 한 번 과거의 국내외 사례가 주는 교훈을 바탕으로 실천에 나서야 한다. “리스크 관리에는 지름길이 없다. 오직 원칙에 충실해야 한다.”
한국은 순환보직 ‘맹점’ 외국은 수십 년 베테랑
김지홍 연세대 경영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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