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심 가치는 ‘경력’44% vs‘가정’42%…능력보다 열정이 중요

일부는 부장이나 과장이 됐다. 대부분은 일터를 떠나 가정으로 돌아가야 했다. 여태까지 직장에서 살아남아 임원으로 일하고 있는 여성들은 드물다.

실제로 한국 기업에서 여성 임원을 찾기는 쉽지 않다. 국내 기업 중 여성 임원 비율이 2%에 불과하다는 통계는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러한 척박한 환경에서도 ‘유리 천장’을 깨고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는 여성 임원들이 있다. 이들의 경험에는 여성으로서 겪는 남다른 아픔들이 녹아 있다. 직장인으로서, 엄마로서, 아내로서, 딸로서, 며느리로서 다양한 상황과 입장에 맞물려 있기 때문이다.

국내 주요 기업의 여성 임원 50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해 이들이 갖고 있는 일에 대한 가치관과 직장 생활, 가정과 일의 조화를 이룬 비결을 들어봤다.
여성 임원 "사내정치·자녀 육아가 가장 어렵다"
“여성 직원과 갈등 관리 어려워” 50%

먼저 여성 임원들이 생각하는 일에 대한 가치관을 알아보기 위해 총 5문항을 질문했다. 첫째, ‘자신의 직업에서 가장 큰 가치를 두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응답자 중 52%인 26명이 ‘자아를 실현하기 위한 통로’라고 답변했다.

이어 ‘업무 능력을 통한 사회 기여(20%)’, ‘엄마·아내가 아닌 개인으로서 독립성을 확보하기 위한 조건(16%)’, ‘생계를 위한 수단(8%)’, ‘미래를 위한 준비(4%)’ 등의 순서였다.

이들이 직업을 선택하는 데 가장 중요한 조건으로 꼽은 것 역시 이와 일맥상통했다. 가장 많은 사람이 자율성과 성취감(74%)을 선택했고 적성(18%)이 그 뒤를 이었다. 하지만 급여(8%), 정규직·비정규직 같은 고용 형태(6%) 등 현실적인 조건에 대한 응답은 상대적으로 적었다.

사회적으로 성공한 여성 임원들은 처음부터 지금과 같은 여성 임원을 목표로 했을까. 이에 대한 질문에 대해서는 52%인 26명이 ‘직장에서 인정받으며 꿈꿨다’고 답했고 ‘크게 상관없었다’고 응답한 임원도 10명(20%)이나 됐다.

‘처음부터 꿈꿨다’는 응답도 6명(12%)이었지만 ‘임원을 목표로 한 적이 없다(7명, 14%)’거나 ‘불가능한 것으로 생각했다(1명, 2%)’는 이도 있었다.

‘여성 임원으로서 직장 내 영향력’을 묻는 질문에는 74%가 ‘직급에 걸맞은 영향력이 있다’고 응답했고 ‘직급에 비해 영향력이 크다(10%)’는 답변도 나왔다.

그렇다면 국내 여성 임원들이 일과 자신의 인생에서 우선순위를 두는 것은 무엇일까. 조사 대상자의 44%(22명)는 ‘자신의 경력’이라고 응답했고 42%(21명)는 ‘가정과 자녀’를 꼽아 개인별로 생각 차이가 큰 것으로 나타났다.

직장 생활과 관련해 여성 임원들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을까. 이를 좀 더 구체적으로 알아보기 위해 다음과 같이 질의했다. 우선 여성 임원이 되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묻자 대부분이 유사한 답변을 내놓았다. ‘일에 대한 열정’을 꼽은 임원이 44%였고 이어 ‘업무 능력(40%)’, ‘포기하지 않는 마음가짐(14%)’ 등의 순으로 나타났다.

여성 임원으로 업무 수행 시 어려운 점을 묻는 질문에는 ‘사내 정치(32%)’와 ‘가정생활 양립(32%)’이라는 두 가지 답변으로 크게 갈렸다. 이어 ‘업무의 이해도와 능력(12%)’, ‘유리 천장 등 업무 평가에 대한 차별(10%)’을 꼽은 응답자도 있었다.

여성으로서 상사와의 관계 시 어려운 점에 대해서는 ‘소통 방식’이 34%로 가장 많았고 ‘의견 충돌 시 갈등 관리(32%)’도 큰 비율을 차지했다.

남성 직원들과의 어려운 점에 대해서는 38%가 ‘정서적 공감대 형성’을 꼽았다. 이어 ‘소통 방식’이 24%로 나타났고 ‘의견 충돌 시 갈등 관리’가 어렵다고 생각하는 여성 임원도 14%나 됐다. 반대로 여성 직원과의 관계에서 어려운 점으로는 남직원과 다르게 ‘의견 충돌 시 갈등 관리’가 50%를 차지했고 ‘업무상 소통 방식’을 어려워하는 여성 임원도 18%나 됐다.

업무 능력 “자신 있다” 86%

자신의 업무 능력에 대한 스스로의 평가는 긍정적이었다. 무려 86%가 어느 정도 인정받거나 월등히 인정받고 있다고 답했다. 보통이라고 답한 사람이 나머지 14%를 차지해 부족하거나 인정받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여성 임원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여성 임원으로 성공하기 위해 보완해야 할 것으로는 ‘인맥 관리’가 32%로 나타났고 ‘업무 능력’과 ‘남성 중심 조직 문화 적응’을 선택한 응답이 각각 22%였다.

여성 임원들은 일과 가정을 어떻게 조화시켜 나가고 있을까. 이들이 일과 가정생활을 양립하는 데 가장 어려운 점으로 꼽은 것은 다름 아닌 ‘자녀 육아’였다. 무려 72%가 이를 선택했다. 뒤를 이어 ‘가족들의 이해 부족’이 12%, ‘집안 살림에 대한 부담’이 6%였다.

육아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고 있느냐는 질문에는 ‘시부모나 친부모 등 가족의 도움을 받는다’는 응답이 50%로 가장 많았다. ‘베이비시터를 고용한다’는 응답은 22%, ‘어린이집 등 육아 시설을 활용한다’와 ‘부부가 함께 해결한다’는 대답은 각각 8%였다.

남편 등 가족들과 갈등을 빚는 이유로는 ‘바쁜 업무로 가족들과 보내는 시간이 부족해서’라는 응답이 62%였고 육아 문제에 따른 갈등은 18%였다.

이토록 수많은 난관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가정과 일을 모두 포기하지 않을 수 있었던 원동력은 무엇일까. 이 역시 ‘가족’을 꼽은 이들이 가장 많았다. 능력 있는 엄마·아내로서 가족들의 인정이 가장 큰 힘이 됐다는 응답이 46%였다. 이어 ‘자아 성취’와 ‘경제적 보상’이 각각 14%, ‘사회적 지위 상승’이 12%였다.

가정과 일을 동시에 챙겨야 하는 부담은 여성 임원 수가 적을 수밖에 없는 현실과도 맞닿아 있다. 구체적으로 여성 임원이 적은 이유를 묻는 질문에는 ‘출산·육아 등에 따른 경력 단절’이라는 응답이 61%였다. 이어 ‘남성 중심의 조직 문화(18%)’와 ‘성공에 대한 간절함이나 열정 부족(16%)’을 꼽은 응답도 적지 않았다.

한경비즈니스=차완용 기자 cw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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