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존의 취향 분석·추천 기술 적용…웹 사이트 방문자 70% 증가

워싱턴포스트 살린 제프 베조스의 마법 '큐레이션'
정보기술(IT) 산업에서 가장 주목받는 단어 중 하나는 바로 큐레이션(curation)이다.

큐레이션은 미술관이나 박물관의 전시 작품을 기획하고 관람객들에게 설명해 주는 큐레이터에서 파생된 단어인데, IT를 활용해 개개인에게 적합한 맞춤형 정보와 서비스를 선별해 제공하는 기능을 말한다.

인터넷이 등장하기 전에는 큐레이션의 중요성이 그리 높지 않았다. 하지만 인터넷과 모바일을 기반으로 IT 산업이 빠르게 성장하면서 큐레이션은 오늘날 많은 기업들의 핵심 경쟁력으로 부상하고 있다. 수많은 정보가 하루가 멀다고 우후죽순 쏟아지고 있기 때문에 사람들이 이를 일일이 확인해 올바르게 판단하는 게 사실상 불가능해졌기 때문이다.

게다가 엄청난 정보의 대부분이 중복된 것이므로 정교한 데이터 수집과 분석을 통해 불필요한 정보를 거르고 꼭 필요한 정보만 제공하는 큐레이션에 대한 필요성이 더욱 강조되고 있다.

한 해에만 수천 편이 넘게 제작되는 영화·드라마·예능 등 멀티미디어 콘텐츠를 제공하는 서비스는 이러한 큐레이션이 가장 활발하게 사용되는 분야다. 워낙 많은 콘텐츠가 새롭게 선보이고 있기 때문에 어떤 콘텐츠를 선택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도 덩달아 증가하고 있다.

따라서 많은 콘텐츠 서비스 기업들이 이를 돕기 위한 큐레이션 서비스 투자를 강화하고 있다.

시청자가 남긴 평점과 댓글 등을 기초로 개인들에게 가장 적합할 것 같은 콘텐츠를 추천해 주거나 일정 기간의 시청 패턴과 취향 등을 종합해 각 상황에 맞는 콘텐츠를 제시하는 등 그 방식도 한층 다양해지고 있다.

특히 최근에는 큐레이션만 전문으로 제공하는 신생 기업들도 등장하면서 일반인들도 큐레이션에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큐레이션 서비스는 생각보다 더욱 큰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 세계 최대의 동영상 스트리밍 기업 넷플릭스(Netflix)는 자사가 보유한 3만 개 이상의 영화를 체계적으로 분류하고 시청 시간과 성향·선호도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해 현재 상황에 맞는 영화를 각 고객에게 추천해 준다.

그러므로 특정 영화를 염두에 두지 않는 고객들은 넷플릭스의 큐레이션 서비스가 추천하는 영화를 고민 없이 선택할 수 있다. 이러한 넷플릭스의 큐레이션 서비스는 가입자들의 큰 호응을 얻게 됐고 더욱 많은 사람들이 넷플릭스의 서비스에 가입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넷플릭스 큐레이션 서비스. 넷플릭스 이용자의 80% 이상이 큐레이션 서비스에 만족하고 있다.
넷플릭스 큐레이션 서비스. 넷플릭스 이용자의 80% 이상이 큐레이션 서비스에 만족하고 있다.
현재 넷플릭스 이용자의 80% 이상이 큐레이션 서비스에 만족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데, 넷플릭스는 큐레이션 서비스를 보다 정교하게 개선하기 위해 매년 수백만 달러 이상의 거액을 투자하고 있다.

큐레이션의 적용은 뉴스에서도 두드러지고 있다. 기존에는 사람들이 각 매체를 통해 일방적으로 제공되는 뉴스를 보는 방식이었지만 인터넷을 통해 엄청난 양의 뉴스가 시시각각 쏟아지면서 관심사에 맞는 뉴스만 골라 볼 수 있게 해 주는 서비스도 등장하고 있다.

이들 서비스는 개인의 취향과 기호에 적합한 뉴스를 선별하고 재배치해 제공하기 때문에 독자들은 흥미 있는 뉴스를 보기 위해 수많은 뉴스 기사를 일일이 찾아 뒤지는 수고를 크게 덜 수 있게 됐다.

1996년 아마존이 첫 도입…기술 개발에 과감한 투자

현재 전 세계적으로 뉴스 큐레이션에 대한 관심이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영국의 10대 소년 닉 달로이시오는 원하는 뉴스만 골라 볼 수 있는 뉴스 큐레이션 애플리케이션 섬리(Summly)를 만들어 야후에 거액을 받고 매각해 큰 화제가 됐다.

구글이나 애플 등도 독자적인 큐레이션 알고리즘을 사용해 개인의 성향에 맞는 뉴스를 우선적으로 보여주는 서비스를 발표하는 등 뉴스 큐레이션 서비스 시장에 뛰어들고 있는 상황이다.

원래 큐레이션은 전자 상거래에서 가장 먼저 도입됐다. 1996년 당시 온라인으로 도서를 판매하던 벤처기업 아마존은 북매치(Bookmatch)라는 새로운 기술을 도입했다.

북매치는 자사 웹 사이트 방문 고객들의 도서 열람 행태와 구입 도서에 대한 평가를 근거로 취향과 기호에 맞는 책의 유형을 판단한 후 이를 근거로 고객들이 아마존을 방문할 때마다 좋아할 것으로 추측되는 책을 추천하는 기능이다.

고객들은 북매치를 통해 자신이 선호하는 책을 쉽게 선택, 구입할 수 있었기 때문에 아마존의 이색적인 실험은 큰 관심을 불러일으켰고 수익성 강화에도 기여할 수 있었다.

아마존 창업자 제프 베조스는 다양한 종류의 데이터를 기반으로 사람들의 기호와 성향을 정확히 예측할 수 있기 때문에 큐레이션이야말로 아마존의 핵심 경쟁력이라고 주장한다. 아마존은 큐레이션 기술을 도서 구입을 넘어 온라인 상품 전체로 확장하고 있고 큐레이션 성능을 발전시키는 데 투자를 아끼지 않고 있다.

현재 아마존에서는 인문학·자연과학·컴퓨터공학 등 다양한 분야를 전공한 수백 명의 연구원들이 사람들의 기호를 정확히 분석하고 상품을 제시할 수 있는 큐레이션 기술 연구에 전념하고 있다. 아마존은 이와 같은 전략을 기반으로 오늘날 인터넷 서점을 넘어 세계 최대의 전자 상거래 기업으로 올라설 수 있었다.

최근 아마존이 인수한 워싱턴포스트의 극적인 재기 역시 아마존이 보유한 큐레이션 기술 도입이 큰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아마존 인수 당시 워싱턴포스트는 온라인 미디어의 범람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했기 때문에 빠르게 쇠락의 길을 걷고 있었다.

하지만 아마존에 인수된 후 IT 인력을 확충하는 등 전열을 재정비한 워싱턴포스트는 자사의 웹사이트 방문자를 무려 70% 넘게 끌어 올리면서 전 세계 미디어 업계의 큰 주목을 받았다.

워싱턴포스트는 아마존의 북매치 기술에 착안해 뉴스를 추천해 주는 클래비스(Clavis)라는 큐레이션 기술을 만들었다. 클래비스는 사람들이 읽은 기사의 주요 문구와 내용을 수집하고 분석해 좋아할 만한 다른 기사를 함께 제시해 주는 알고리즘이다.

워싱턴포스트를 방문한 사람들은 클래비스 기반의 큐레이션 서비스를 사용해 관심이 없는 뉴스를 건너뛰고 취향에 맞는 뉴스만 편리하게 골라 읽을 수 있게 됐다. 클래비스의 사용에 힘입어 워싱턴포스트의 고객은 이전과 달리 빠르게 늘었고 광고와 유료 구독 매출 역시 자연스럽게 증가했다.

또한 워싱턴포스트는 클래비스를 기반으로 ‘브랜드 커넥트 인텔리전스(Brand Connect Intelligence)’라는 광고 추천 엔진을 만들었다. 이는 워싱턴포스트를 방문한 사람들이 정독하는 기사를 분석하고 이를 기반으로 관심사를 분류해 여기에 맞는 광고만 노출하는 기술이다.

대부분의 온라인 광고가 사람들이 그다지 관심이 없는 제품만 보여준다는 문제점에 착안한 워싱턴포스트는 각 독자의 취향을 정교하게 분석해 이들이 선호할 만한 제품을 보여준다면 광고 노출 효과도 크게 높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워싱턴포스트는 브랜드 커넥트 인텔리전스를 통해 많은 기업들이 워싱턴포스트에 게재한 광고를 통해 톡톡한 효과를 볼 수 있었다고 주장한다.

컴퓨터 대신 친구가 추천 ‘소셜 큐레이션’

각종 IT의 눈부신 발전을 기반으로 큐레이션은 하루가 다르게 진화하고 있다. 주로 사람들이 웹 사이트에 입력하는 기초 정보에 의존해 기호와 성향을 두루뭉수리 파악하던 것에서 벗어나 구매 행태와 오프라인 방문 기록 등 방대한 정보를 통해 개개인을 보다 정확하게 파악하고 이에 맞는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특히 빅 데이터의 수집과 분석이 한층 수월해지면서 사람들의 특성을 보다 빠르고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는 기술의 진보 속도도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

게다가 향상된 인공지능 기술이 큐레이션에 적용되면서 정확도가 더욱 높아질 것으로 기대된다. 수많은 데이터 가운데 의미 있는 행동과 패턴을 발견하고 이를 통해 상품을 광고하거나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분류 체계를 만들기 위해서는 고도의 인공지능 기술이 필요하다.

그러므로 구글·페이스북·아마존 등 많은 IT 기업들이 색다른 인공지능 기술을 큐레이션에 접목하는 연구를 계속하고 있으면 가시적인 성과도 등장하고 있다.

한편 컴퓨터가 자동으로 사람들의 취향을 분류하는 것과 달리 개개인이 자신들의 취향에 맞게 직접 선택한 정보를 다른 사람들과 공유할 수 있는 소셜 큐레이션(social curation)도 큰 관심을 불러 모으고 있다.

컴퓨터의 천편일률적 분류와 달리 자신과 비슷한 이들이 추천하는 정보와 제품에 재미와 공감을 보내는 사람들이 늘면서 소셜 큐레이션의 인기도 상승하고 있다. 특히 소셜 큐레이션을 기반으로 이뤄지는 사람들의 집단지성을 활용해 중요한 트렌드 정보를 새롭게 발견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많은 기업들이 주목하고 있다.

물론 큐레이션 서비스에 대한 비판도 존재한다. 큐레이션 서비스가 사람들이 스스로 판단하고 행동할 수 있는 사고력을 제한하기 때문에 합리적인 소비를 막을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주요 IT 기업들의 데이터 독점 논란이 고조되면서 큐레이션 서비스의 적합성과 악의적 활용 가능성도 많은 논쟁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따라서 큐레이션 기술의 고도화가 진전될수록 따르는 부작용 문제를 완화하는 것도 IT 산업의 큰 관심사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전승우 LG경제연구원 선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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