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njoy] 계절의 변화 못 느끼는 당신
계절의 변화가 느껴지지 않는 건 뇌가 지쳤다는 신호다. 비즈니스 활동은 뇌의 에너지를 상당히 소비한다. 다양한 사람들과 소통을 잘 하기 위해서는 공감이 필수적인데 이때 뇌의 감성 에너지가 상당히 쓰인다.

어려운 경기 상황 속에서 위기 대처 전략을 짜고 수행하는 것은 뇌의 스트레스 시스템을 과도하게 항진시키기에 뇌를 지치게 만든다. 에너지 소모가 지나치게 되면 스마트폰이 방전되듯 우리 뇌도 방전 현상이 일어나는데 이를 소진증후군(burnout syndrome)이라고 한다. 소진증후군이 찾아오면 다양한 스트레스 관련 증상이 동반되는데 대표적인 것이 불면증, 기억력 감퇴, 소통의 거칠어짐, 의욕 저하 등이다.

이런 스트레스 증상을 보이는 경우 꼭 하는 질문이 있는데 “지금, 계절의 변화가 느껴지세요?”라는 질문이다.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당황해하며 대답하지 못한다. 현재 계절이 무엇인지 느낄 여유도 없이 에너지가 소진된 채로 뇌가 공회전을 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소진증후군은 뇌가 에너지를 소비하는 것만큼 충전하지 못할 때 찾아오는 현상이다. 계절의 변화는 우리 뇌가 매우 좋아하는 에너지원이다. 특히 봄과 가을은 뇌를 충전시킬 에너지가 가득한 계절이다. 그런데 내가 봄기운이 가득한 상황에 놓여 있어도 뇌 안에 충전 시스템의 스위치가 꺼져 있으면 그 봄의 향기를 느끼지 못하게 된다. 건조하고 메마른 사막에 놓여 있는 것과 같은 상황이 되는 것이다.

뇌 안에 충전 스위치가 꺼졌다?

법무법인을 운영하는 대표변호사가 어느 날 짜증, 의욕 저하 등의 불편을 호소했다. 일할 의욕도 뚝 떨어지고, 함께 일하는 변호사들에게도 자꾸 거친 소통이 일어나고, 그러다 보니 실제로 비즈니스도 잘 안 풀리는 상황이었다.

소진증후군이 찾아오고 그로 인해 업무 능력도 저하된 결과다. 계절의 변화가 느껴지는지 질문하니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고 한다. 지난해 봄과 가을 기억이 나느냐고 질문하니 뼈 빠지게 일한 기억밖에 없다고 한다. 봄과 가을의 파란 하늘을 보았던 기억이 없는 것이다.

지난해에 봄과 하늘을 즐겼던 기억이 있는지 스스로 질문해봤을 때 기억나는 것이 없다면 내 뇌 안의 충전 장치가 작동을 멈추었다고 진단해야 한다. 봄이 가져다주는 청명한 하늘과 아름다운 꽃들의 만개도 뇌 안의 충전 장치가 작동하지 않으면 느껴지지 않게 된다. 과도하게 뇌 안에 스트레스 시스템만 작동하면서 봄이란 긍정적인 자극이 내 뇌에 충전을 일으키는 것을 방해하고 있는 것이다.

그 변호사에게 어떻게 스트레스를 푸는지, 취미는 무엇인지를 물었다. 답변은 스트레스는 주로 술로 풀었는데, 요즘은 건강이 나빠져 술도 자제하고 일하기 바쁘다 보니 취미 생활은 꿈도 꾸지 못했다고 한다.

시간이 있다면 하고 싶은 취미가 있는지 다시 물었다. 이 질문에도 대답을 못하는 경우가 많은데 다행히 이 변호사는 하고픈 것이 있었다. 사진 찍기와 그림 그리기였다. 자기가 하고 싶은 취미 활동에 몰입하는 것은 단순히 여가 시간을 때우는 행동이 아니라 꺼진 뇌 안에 있는 충전 장치의 스위치를 켜는 좋은 전략이다.

그래서 미술 공부도 시작하고 봄의 아름다운 꽃들도 카메라에 담아볼 것을 권했다. 두 달쯤 지나 다시 방문했는데 누군지 몰라볼 정도로 얼굴 표정이 밝고 나이도 젊어 보였다. 바쁜데 이런 취미 활동을 해도 되나 처음에는 불안감이 컸는데 그 불안감을 누르고 그림도 배우고 봄꽃을 사진에 담기 시작하니 다시 삶의 의욕도 오르고 부정적인 생각도 줄어들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직원들과 소통도 좋아지고 비즈니스도 더 잘 되지 않느냐고 묻자 “그렇다”며 회사 분위기도 좋아지고 계약도 잘 성사되고 매출도 증가하고 있다며 신기하다고 즐거워했다.

앞의 사례에서 일하는 시간을 줄이고 더 놀았는데 비즈니스가 오히려 잘 된 이유는 무엇일까. 잘 논다는 것은 뇌 안의 충전 시스템을 잘 활성화한 것이고 이 충전 시스템이 비즈니스 성공에 중요한 요인인 창조성과 공감 소통을 강화하기 때문이라는 것이 뇌 과학과 경영학을 접목시키고 있는 학자들의 주장이다.

이들의 주장을 요약하면 열심히 일만 한다고 성공하는 시대는 지났다는 것이다. 일할 때 켜지는 뇌 안의 장치가 조정 신경망이다. 조정 신경망은 에너지를 태워 외부의 여러 상황에 대처하고 반응하는 활동을 담당하는데 비즈니스에서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그러나 현대인들이 너무 조정 신경망만을 과도하게 쓰다 보니 뇌가 지쳐 오히려 뇌의 기능적 효율성이 떨어지고 더 나아가 창조성과 공감 소통 능력도 떨어지게 된다는 것이다.

일도 않고 봄만 잘 즐긴다고 해서 비즈니스가 성공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비즈니스 활동에 너무 몰입해 뇌가 지쳐 있다면 이제 봄을 즐겨야 한다. 그 여유가 뇌의 업무 능력도 향상시킨다. 그런데 성공을 위한 동기에 봄을 즐겼다 하더라도 어느 순간 ‘지금 이 상태로도 행복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살며시 마음에 찾아온다. 봄이 가져다주는 심리적 겸손이란 선물이다. 심리적 겸손은 마음의 기대치가 떨어지는 것을 말한다. 다르게 이야기하면 행복에 대한 예민도가 증가한 것이다. 주변의 작은 자극에도 뇌가 행복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점심 시간, 잠시라도 짬을 내어 봄이 주는 파란 하늘과 만개한 꽃, 그리고 그 따사로운 온기를 느끼는 것을 권한다.

글·사진 윤대현 서울대학교병원 강남센터 정신건강의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