곱게 말린 ‘꽃잎’ 선물해 보세요
◆비싼 양주·와인보다 오래 기억돼…마음 담긴 선물이 최고의 선물

[한경비즈니스=김경집 인문학자, 전 가톨릭대 인간학교육원 교수] 선물은 주는 사람도, 받는 사람도 행복하게 만든다. 하지만 딱 맞는 선물을 고르는 것은 생각보다 어렵다. 상대에 따라, 주머니 사정에 따라, 상황에 따라 선물은 다 다르다.

그 조건들에 맞춰 최적의 선물을 고르는 것은 생각보다 어렵다. 어떤 옛 현인은 ‘선물은 마음의 변명’이라고 했다. 맞는 말이다. 공자도 예(禮)를 가르치면서 아무리 마음속에 있어도 그것을 나타내지 않으면 쓸모없다고 했다.

선물도 그와 비슷하다. ‘어떤 선물이 좋을까’ 궁리하면 대부분이 ‘현찰’이 가장 좋고 실용적이라고 말한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돈을 선물이라고 여기는 것은 좀 마뜩찮다. 그리고 그것은 가족 관계에서처럼 서로 막역한 사이에나 그럴 뿐이다. 선물은 주고받는 사람의 ‘관계’에 따라 달라진다.

◆설탕에서 갈비 세트까지…선물의 변천사

선물도 시대에 따라 변한다. 몇 해 전 한국경제신문에서 조사한 바에 따르면 1950년대에는 직접 수확한 농산물을 주고받다가 1960년대 들어서면서 선물이 일반화되기 시작했다. 당시 최고의 선물은 3900원짜리 30kg들이 설탕 한 포대였는데 주로 상류층에서 사용됐다.

일반인들은 사카린과 같은 인공감미료를 쓰던 시절이었다. 라면·비누·치약 등이 선물로 인기였다. 당시 최고가의 선물은 단연 양복지였다. 그러다가 1970년대 산업화 과정을 겪으면서 선물도 주로 공산품으로 바뀌었고 먹거리 가운데는 커피 세트가 인기였다.

선물이 고급화되기 시작한 것은 1980년대 이후다. 선물의 종류도 1000가지가 넘기 시작했다. 최고의 인기는 갈비 세트였다. 아이들에겐 ‘종합 과자 선물 세트’가 안겨졌고 넥타이나 스카프, 지갑과 벨트 등이 인기 선물 품목이었다.

1990년대 들어서면서 고가품과 실용적 중저가 선물로 나뉘기 시작했다. 양주를 선물하기 시작했고 무엇보다 상품권이 인기 품목으로 등장했다.

2000년대 이후 사람들의 최고 관심사가 건강 문제가 되면서 참살이 열풍의 여파로 초고가의 농수산물들이 등장했다. 앞으로 어떤 선물이 인기 품목이 될지 궁금하다. 하지만 모든 선물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마음’이며 ‘배려’라는 점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만은 변하지 말아야 한다.

외국인 바이어에게 양주나 와인을 선물하는 것도 어설프다. 그러니 도자기나 목기 등 천편일률적인 선물이 대부분이다. 특히 외국인 파트너에게 선물할 때는 그의 문화적 배경 등도 참조해야 한다.

예를 들어 채식주의자에게 고기류를 선물한다든지, 아미시(Amish) 공동체주의자의 집을 방문하면서 아이들에게 무기류의 장난감을 선물한다든지 하는 것은 역효과만 일으킬 뿐이다.

이런 점을 따져본다면 만나는 사람이 많을수록, 그 사람들에게 자신의 마음을 전할 일이 많을수록 선물은 곤혹스러운 일이다. 선물의 가장 큰 힘은 무엇일까. 액수의 문제가 아니다. 그 힘의 가치를 모르니까 천박하게 돈의 액수로 가늠할 뿐이다.

선물을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상대의 삶의 방식, 사고의 특징, 좋아하는 문화적 태도 등을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 그러니 비싼 선물이 중요한 게 아니라 상대가 자신을 위해 심사숙고했다는 정성과 마음을 읽을 수 있는 것을 골라야 한다. 선물 고르기가 힘든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그걸 외면하고 가볍게(?) 돈으로 때우려는 것은 천박한 일이다.

◆미리 준비해 둬야 ‘좋은 선물’ 가능해

봄이다. 곧 사방에 꽃이 핀다. 꽃잎을 잘 챙겨 안 쓰는 두툼한 책장에 눌러두면 압화(壓花)를 만들 수 있다. 곱게 말린 압화를 화선지 등에 잘 붙여 작은 프레임에 끼워 창가에 두면 뜻밖에 멋진 액자가 된다. 햇살이 투과되면서 꽃은 생화일 때와 또 다른 감동과 행복을 선물한다. 직접 실용적인 것은 아니지만 그 작은 선물 볼 때마다 보내준 이의 마음이 떠올려질 것이다.

작은 꽃잎을 물에 담가 냉동실에서 얼리면 얼음 속에 핀 꽃으로 뜬다. 오미자 달인 물이나 좋은 차를 차갑게 마실 때 꽃잎 머금은 그 얼음을 띄워 마셔보라. 누군가 불러 그것을 함께 나누면 작지만 따뜻한 정을 교환할 수 있다. 돈이 크게 드는 것도 아니다. 진짜 선물은 이런 것이고 품격과 고상함이 담겨 있어 서로가 행복해진다.

이런 것들은 계절마다 누릴 수 있다. 그러니 계절에 맞게 잘 갈무리해 두면 매우 유용한 선물이 된다. 가을이면 들에 지천으로 다양한 들국화가 핀다. 청명한 가을에 가족들과 가벼운 나들이 삼아 자연으로 나가 작은 봉투에 구절초 꽃을 따서(다른 사람을 배려해 너무 많이 따는 건 삼가는 게 좋다) 집에 와 응달에 말린다.

그렇게 잘 말려 예쁜 한지로 곱게 싸 누군가에게 선물로 주면 어떨까. 한심하다는 듯 차갑게 대하며 쓰레기통에 던져버릴까. 그렇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대하는 사람과는 교유하지 않는 게 좋다. 그게 갑이건 을이건….

그런 국화차를 선물 받는 일은 쉽지 않을 것이다. 돈 주고 사는 것과 또 다른 아취(雅趣)를 느낄 수 있고 자신을 그런 격으로 대해준 상대에게 각별한 고마움을 느낄 것이다. 선물은 상대의 마음을 얻을 수 있을 때 가장 가치 있다.

꼭 뭘 바라서가 아니라 그것을 통해 자기 마음을 전하고 상대의 마음을 얻을 수 있는 게 바로 선물이다. 그저 널린 꽃을 말려 선물할 수 있다는 것은 잘 생각하지 못한다.

정말 이것도 선물할 수 있을까. 차마 손부끄러워 선물을 못하겠다고 생각할 필요 없다. 그 선물을 받은 사람은 감동한다. 그런 선물을 받아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마음을 얻고 서로 행복할 수 있는 선물이 가장 좋은 선물이고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는 덤도 있다.

마음만 먹으면, 가슴만 따뜻하면, 그래서 몸을 조금만 놀리면 누군가를 감동시킬 선물의 자료들이 지천이다. 자연에는 당신의 마음을 담아 전할 수 있는 선물 꾸러미가 가득 널려 있다.

따뜻한 마음이 담긴 선물이 주는 최고의 대가는 신뢰다. 비싼 선물을 받으면 먼저 계산이 떠오르지만 마음이 담긴 선물에는 마음을 먼저 떠올린다. 평소 선물의 내용과 대상에 대해 생각해 둬야 한다. 일이 닥쳤을 때 찾을 수 있는 선물은 돈으로 사는 물건뿐이다. 마음이 담긴 선물로 나누는 신뢰는 오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