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내 새로운 위반 행위 적발되면 기존 감면 조치 전면 취소}

[한경비즈니스=김현기 기자]

사례 1 국내 노래방 기기 시장을 양분하고 있는 G사와 T사. 노래방 반주기 제조업체인 두 업체는 2011년 노래방 반주기와 신곡 가격 인상 여부를 놓고 담합하다가 적발됐다. G사와 T사는 공정거래위원회(이하 공정위)로부터 41억1700만원과 15억5700만원의 과징금을 각각 부과 받았다. 지난해 10월 두 업체는 부과된 과징금을 낮추기 위해 ‘리니언시’를 악용, 이중 담합했다가 또다시 적발된 첫 사례라는 오명을 남겼다.

사례 2 2020년 완공을 목표로 한국철도시설공단이 발주한 국책사업인 서해선 복선전철 공사. 총사업비가 4조원에 육박하는 이 공사는 총 10개 공구로 이뤄졌다. 수천억원대에 이르는 각 공구를 낙찰받기 위해 국내 주요 건설사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입찰일 1주일 전, 한 커피숍에서 만난 이들은 일부 공구 입찰에서 담합하기로 합의했다. 공정위는 담합 행위가 적발된 이들 업체에 수십억원에서 수백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하지만 이 중 몇몇 기업은 리니언시 제도에 따라 과징금을 감면받았고 형사처분도 면했다.

공정위는 앞으로 이런 형태로 리니언시 제도를 ‘악용’하는 업체에 대해선 채찍질의 강도를 높이게 된다. 국회는 지난 3월 3일 본회의에서 리니언시 제도를 통해 처벌을 감경 받은 다음 5년 안에 새로운 위반 행위를 하게 되면 기존 감면 조치를 취소하는 내용의 공정거래법(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리니언시(Leniency)는 담합을 자진 신고한 기업에 과징금을 감면해 주는 제도를 말한다. ‘관대함·관용’이란 뜻을 지닌 리니언시는 부당한 공동행위를 한 기업들의 자진 신고를 유도하기 위해 마련됐다. 1978년 미국에서 처음 도입됐고 한국에는 1996년 공정거래법에 적용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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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년 공정거래법에 도입된 리니언시 제도

현행법은 사업자가 담합한 사실을 공정위에 자진 신고하거나 증거 제공 등의 방법으로 조사에 협조한 경우 과징금을 100% 면제해 준다. 둘째 신고자에게는 과징금의 50% 감면 혜택을 준다.

이 제도는 상호 기업 간에 불신을 자극해 담합을 방지할 수 있다는 효과가 있는 반면 담합으로 가장 많은 혜택을 본 기업이 가장 먼저 자진 신고해 처벌을 면할 수 있는 문제를 안고 있었다.

공정위가 담합행위를 조사하기 전에 최초로 자진 신고한 자와 사건 조사 이후 신고한 자 간의 과징금 액수에 큰 차이가 없어 제도의 취지를 제대로 살리지 못한다는 지적도 있었다. 또 같은 내용으로 자진 신고를 팩스로 했다면 1초라도 먼저 접수한 곳이 100% 감면받는 웃지 못할 해프닝도 있었다.

강기정 더불어민주당 의원(광주 북구갑)이 2014년 6월 대표 발의한 ‘공정거래법 개정안’은 이런 문제점을 개선하자는 취지에서 제안됐다.

신현윤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이번 개정법의 특징은 공정위가 ‘운영 고시’를 ‘법률’ 차원으로 승격시켜 그 규범력을 강화한 것”이라며 “그동안 실제 시장을 좌지우지하는 기업들이 자진 신고해 제재를 피한 후 다시 담합을 반복하더라도 자진 신고만 하면 제재를 반복적으로 회피할 수 있는 불합리한 점을 개선하고 사업자 스스로 담합을 두 번 다시 반복하지 못하도록 억제하는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최준선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자진 신고 시 처벌을 감면하는 제도는 고발하는 사회를 부추긴다”면서 “이를 엄격히 해 5년에 1회만 처벌을 감면할 수 있도록 한 것은 타당한 조치”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일각에선 너무 엄격하게 제한하면 정책적인 효과가 떨어질 우려가 있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리니언시 제도를 통한 효과가 가시화되고 있는 시점에서 이를 제한할 경우 긍정적인 효과가 줄어들 것이란 지적이다.

신석훈 한국경제연구원 부연구위원은 “리니언시 제도는 담합 참여자들의 신뢰를 와해시켜 담합 형성을 억제하는 기능이 크므로 리니언시 제도를 제한하는 데 신중할 필요가 있다”며 “특히 최근 리니언시 제도가 활발하게 활용된 후 전체 담합 형성에서 기업집단에 소속된 기업이 참여한 담합이 차지하는 비중이 감소하고 있는 등 그 효과가 가시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리니언시 활용을 제한하면 이러한 효과가 위축될 가능성도 있다”고 설명했다.

송옥렬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역시 “리니언시가 담합 등 적발에 상당히 유효했다고 평가되고 있지만 실무에서는 대형 재벌들이 다 빠져나간다는 비판이 많이 있었다”며 “재벌들이 리니언시를 이용하는 문제는 어느 정도 해소될지 모르겠지만 그동안의 긍정적인 효과도 줄어들 수 있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법률 개정안은 정부 이송 후 국무회의를 거쳐 공포된 날부터 시행되지만 이번에 개정된 리니언시 제도는 하위 규정 정비가 필요해 공포 후 6개월이 경과한 날부터 시행될 예정이다.

◆대기업집단 계열사 공시 의무도 강화

이번에 본회의를 통과한 공정거래법 개정안에는 리니언시 제도 외에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대기업집단)의 현황 공시 항목에 지주회사 체제 밖 계열회사 현황과 금융·보험사의 의결권 행사 여부를 추가하고 공시 의무를 위반한 경우 1억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할 수 있는 내용도 담겼다.

지난해 4월 1일을 기준으로 공정거래법상 지주회사는 140개로, 이 가운데 61개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에 소속된 지주회사는 30개 그룹이다. 상호출자제한기업은 자산 총액 5조원 이상인 그룹에 대해 매년 4월 공정거래위원회에서 지정한다.

이 집단으로 분류되면 계열사 간 상호 출자와 신규 순환 출자 및 채무 보증이 금지되고 소속 금융·보험사의 의결권 행사가 제한되며 공시 의무도 지게 된다.

박해식 법무법인 율촌 변호사는 “개정안 시행 이후 공정위가 점검에 면밀히 나설 것으로 예상된다”며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한 기업집단은 새롭게 부과되는 공시 의무의 적용 대상에 해당하는지 점검해 공시 사항을 누락하지 않도록 유의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전삼현 숭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금융회사가 보유한 비금융 계열사 주식에 대한 의결권 행사는 주주로서의 주된 권리 중 하나이자 경영 판단 사항 중 하나”라며 “입법 취지는 고객 자금으로 기업집단의 지배력을 유지하는 것을 차단하기 위한 것으로 이해된다”고 말했다.

하지만 전 교수는 “공정거래법과 금융지주회사법상 이미 의결권 행사 금지를 원칙적으로 금하고 있다”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가피하게 예외적으로 15%만 허용한 경우에도 그 행사 여부를 추가로 공시하도록 요구하는 것은 글로벌 스탠더드와 비교해 볼 때 과도한 규제”라고 꼬집었다.

그는 이어 “한국 외에 제2금융권의 주식 소유 제한과 의결권 제한을 가하는 국가가 없다는 것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며 “규제로 얻는 공익보다 침해되는 법익이 더 큰 것으로 과잉 금지의 원칙에 위배될 여지가 있고 1억원의 과태료는 과도하다”고 덧붙였다.

한편 대기업집단의 소유·지배 구조 관련 공시 의무 강화 규정도 공포 후 6개월이 지난 날부터 시행된다.

henry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