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부모에 의한 의붓자식 학대 사건 빈발…과연 피는 물보다 진한가}

[김진국 문화평론가(융합심리학 연구소장)] 애플의 창업자 스티브 잡스의 회고록에 이런 말이 있다. “나의 양부모님이 1000% 나의 부모님이다. 친부모는 정자와 난자은행에 불과하다.”

잡스는 낳아준 부모의 존재가 알려지고 난 뒤에도 끝내 찾아가지 않았다. 자신을 버린 부모에 대한 상처는 아물지 않았지만 길러준 부모에 대한 감사함은 지극했던 것 같다.

태어난 지 3일 만에 버려지고 6개월 만에 프랑스로 입양됐다가 양부모의 지극한 정성으로 최고의 엘리트 코스를 밟았던 한인 여성이 장관 자리에 올라 화제가 됐던 적이 있다. 프랑스 중소기업 디지털 장관 플뢰르 펠르랭이 그 주인공이다.

◆입양의 어두운 그림자

현실 속의 잡스와 펠르랭처럼 역사나 문학 속에 등장하는 인물 중에서도 양부모와 의붓자식과의 관계가 좋은 경우가 많다. 아버지가 당대 최고 실력자의 아들로 입양되는 바람에 천하 쟁패의 기반을 닦을 수 있었던 조조. 그 때문인지 조조는 입양한 자식들을 친자식처럼 잘 대해 줬다고 한다.

동명 소설과 영화의 주인공 벤허도 유력한 로마 귀족 아리우스의 전적인 신뢰를 받는 양자가 돼 어릴 적 친구였지만 원수가 된 메셀라를 응징한다. 율리우스 카이사르 역시 자신의 조카인 옥타비아누스를 양자로 입양해 자신의 재산과 권력과 후광까지 물려줬다.

잡스나 펠르랭 같은 잘된 케이스도 많지만 현실이 항상 그런 것만은 아니다. 입양인의 천국으로 알려진 스웨덴에서 입양인들이 살아가는 모습은 그리 밝지 않다.

보도에 따르면 그들의 자살률은 일반인들의 3.7배에 달한다. 일반인 대비 정신과 치료 2.7배, 약물중독 3.2배, 교도소 수감률은 1.5배다. 이들의 모습은 흡사 콩쥐팥쥐나 신데렐라, 백설공주 등 전래 동화나 민담 속 주인공을 연상시킨다.

연구에 따르면 친부모가 자신의 자식을 살해하는 일은 생각보다 자주 일어난다. 아무리 친부모라도 자식이 선천적으로 결함이 있거나 병들었을 때 혹은 이미 자식이 많아 더 이상 부양하기가 불가능할 때 친자식을 살해하는 경우가 많다.

진화심리학의 2대 키워드는 ‘생존’과 ‘번식’이다. 자신과 동일한 DNA를 공유하는 자식들을 성공적으로 번식시키기 위해 좀 더 성공 가능성이 높은 자식에 투자하고 그렇지 못한 자식에 대한 투자를 거둬들이는 일은 사람이나 동물 세계에서 흔한 일이다.

캐나다에서 친부모에 의해 저질러진 141건의 유아 살해 중 62%는 친모에 의해 일어난다고 한다. 그것도 일반적으로 친부보다 더 양육 본능이 강하다고 하는 친모에 의해서 말이다.

친부모도 이러할진대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양부모의 행태는 어떠하겠는가. 사자는 수컷이 자신의 무리를 장악해 ‘우두머리 수컷(α-male)’이 되면 이전 알파메일의 새끼들을 사정없이 물어 죽여 버린다. 이런 양태는 침팬지나 인간과 같은 영장류는 물론이고 곰·사자·돌고래, 더 나아가 조류도 마찬가지다.

피는 물보다 진하다. 그런데 조건이 있다. 그 피가 자신과 ‘유전자를 공유’한 이의 것이어야 한다. 무조건 물보다 진한 것이 아니라 자신과 가까운 이의 피가 진하다는 말이다. 모든 생명체는 본능적으로 자신과 유전자를 공유한 이들의 대물림에 도움이 되는 행동을 지지한다. 이를 진화심리학자들은 ‘포괄 적합도’ 원칙이라고 한다.
재혼은 적군을 침대에 끌어들이는 것?
◆인간과 동물 유전자의 동일성

얼룩다람쥐는 자신들을 해치려는 포식 동물들이 나타나면 다른 친인척보다 우선해 자신의 친형제를 보호하기 위해 위험을 감수한다. 흰목벌잡이새도 이복형제보다 친형제와 음식을 나눠 먹는 경우가 많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서구사회에서 계부가 있을 때에는 0~2세 유아 살해의 비율이 무려 150배 이상 커진다고 한다. 양부모가 슬하의 의붓자식들에 살해당할 확률도 40~100배로 높아진다. 의붓자식이 학대받을 확률도 친자식에 비해 40배 정도 높다는 것이다.

재혼 가정의 소년소녀들은 상급 학교 진학률이 떨어지고 학업 기간도 짧다. 친자식에 대한 대학 등록금 지원 비율은 의붓자식보다 5배 이상 높다. 의붓자식들은 친자식들보다 독립하는 나이도 어리다.

유산의 상속도 비슷하다. 사람들은 자신의 가족에게 유산을 상속하는 경우가 90% 이상이다. 유전자를 50% 공유하는 이에게 상속하는 비율은 84%이고 25%를 공유하는 이에게는 14%다. 하지만 12.5%를 공유하는 이에게 유산을 상속하는 비율은 2%가 넘지 않는다고 한다.

요즘 계부모에 의한 아동 학대와 아동 살해에 관한 뉴스가 자주 나온다. 의붓자식을 쇠파이프 등으로 무자비하게 때리고 굶기고 감금했다가 죽음에 이르게 하는 경우가 한두 건이 아니다.

때리다가 이마가 찢어졌는데 병원에도 데려가지 않고 욕실에 가둬 죽인 ‘평택 계모’ 사건, 굶기고 때리고 배설물까지 먹인 ‘칠곡 계모’ 사건, 목사라는 자가 계모인 부인과 함께 자신의 딸을 빗자루로 5시간이나 때려 숨지게 하고도 11개월이나 미라 상태로 방치한 사건 등등 헤아
리기조차 어렵다.

“솔직히 말해 계부모는 의붓자식을 돌볼 번식적 동기가 거의 없다. 반면 의붓자식을 제거하길 바라는 동기는 강하다. 의붓자식을 살해한 계부는 아내가 귀중한 자원을 경쟁자의 자식들에게 투자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진화심리학자인 데이비드 버스의 말은 ‘아이 엄마의 재혼 결심은 적군을 침대로 끌어들이는 것이나 마찬가지다’라는 프랑스 속담과 같은 맥락이다. 물론 그 반대도 마찬가지다.

그러므로 이혼이 급증하고 재혼 가정도 늘어나는 상황에서 이러한 현실을 외면한 채 행해지는 모든 사회문화적 논의와 사회 복지정책은 사상누각에 불과할 것이다. 그렇다고 모든 건강한 재혼 가정을 매도하는 것은 아니므로 오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전래 민요 중에 ‘계모가’가 있다. “수싯대야 수만대야/ 오실동실 오라비야/ 전처의 자식 두고/ 후실장가 가지마소/ 모시적삼 속적삼이/ 눈물까지 다 젖는다” 조선시대 재혼을 앞둔 오라비와 딸린 자식들의 신세를 걱정하는 고모의 노파심은 바로 지금 우리가 풀어야 할 과제이기도 하다.

그나저나 신데렐라는 왕자님과, 콩쥐는 감사와 결혼해 행복하게 살게 되었건만 장화와 홍련 자매처럼 원통하게 죽은 수많은 어린이들의 원혼은 대체 누가 풀어준단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