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업 제한 규정 있지만 유명무실…규제 느슨한 보험·증권사 선호}
다시 활개 치는 ‘금피아’, 대형 보험대리점까지 ‘침투’
[한경비즈니스=조현주 기자] 최근 금융권의 인사 시즌이 마무리되면서 또다시 ‘금피아(금융 관료+마피아)’ 논란이 불거지고 있다. 전직 경제 관료 혹은 금융감독원(이하 금감원) 출신들이 금융회사의 사외이사·감사 등 요직에 대거 선임된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세월호 참사 이후 공직자윤리법이 강화되면서 잠시 주춤한 듯했던 금피아가 다시 활개를 치고 있는 것이다. 이들은 공직자윤리법을 교묘히 비켜 가는가 하면 대놓고 규제를 무시하며 금융회사 고위직 자리를 속속 꿰차고 있다.

◆퇴직 3년 이내도 심의 통과하면 가능
다시 활개 치는 ‘금피아’, 대형 보험대리점까지 ‘침투’
금감원 전자 공시 시스템과 금융 업계에 따르면 최근 열린 금융회사의 정기 주주총회에서 금감원 국장 출신들이 대거 신임 감사로 선임됐다.

삼성화재는 3월 25일 주총에서 오수상 금감원 전 손해보험서비스국장을 신임 감사로 선임했고 현대해상은 앞서 3월 11일 성인석 금감원 전 손해보험검사국장을 감사로 선임했다. 오 전 국장은 2011년 금감원을 떠난 뒤 이듬해부터 지난해 9월까지 생명보험협회 부회장으로 재직했고 성 전 국장도 2011년 퇴직 후 그린손해보험 기업개선 대표 관리인, MG손해보험 부사장을 지냈다.

정부는 2014년 공직자윤리법을 강화하면서 퇴직 공직자가 민간 기업이나 협회로 이직하는 것을 엄격히 제한했다. 개정된 공직자윤리법에 따르면 퇴직 공직자는 ‘퇴직 전 5년 동안 일했던 기관의 업무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기관에 3년간 취업할 수 없다’는 취업 제한 규정을 적용받는다.

두 사람 모두 퇴직 후 3년의 시간이 지나 공직자윤리법상 규제를 피해 갈 수 있었다. 삼성화재의 전임 감사는 보험연수원장을 지낸 조병진 금감원 전 보험검사1국장, 현대해상은 나명현 금감원 전 런던사무소장이 지난해 6월까지 맡았다. 결국 금감원 출신이 떠난 자리를 또 다른 금감원 출신이 채운 셈이 됐다.

게다가 성 감사는 퇴직 후 취업 규정 위반 문제로 불명예 퇴진했던 처지여서 이번 인사에 대한 뒷말이 무성하다. 성 감사는 금감원에서 퇴직한 뒤 그린손해보험의 기업개선 대표 관리인을 맡았다가 이후 1년여 만에 그린손보가 MG손보에 인수되자 부사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성 감사는 이 과정에서 공직자윤리위원회의 퇴직 공직자 취업 심사를 받지 않았는데 이 때문에 과태료와 함께 해임을 권고 받았다.

성 감사는 행정소송까지 제기하며 맞섰지만 1심에서 패소했고 지난해 2월 부사장직에서 중도 퇴임해야 했다. 이렇게 퇴진했던 그가 불과 1년 만에 다시 다른 보험사의 감사로 복귀한 것을 두고 금융권에선 ‘금감원의 입김이 작용한 것 아니겠느냐’는 식의 성토가 나오고 있다.

사실 취업 제한 규정에 걸려도 공직자윤리위원회의 심의를 통과하면 바로 민간으로의 재취업이 가능하다. 공직자윤리법상 취업 제한에 걸리는 대상이지만 심의를 통과해 민간으로 직행하는 이도 여럿 있다.

장병용 금감원 전 저축은행감독국장과 임병순 금융중심지지원센터 전 실장은 지난 2월 공직자윤리위의 심의를 통과해 각각 신협중앙회 검사·감독이사와 롯데카드 감사로 선임됐다. 자리를 옮기기 불과 2~3개월 직전까지 금감원에서 실무를 보고 있었지만 공직자윤리위는 ‘업무 연관성이 없다’고 판단해 이들의 재취업을 허용했다.

정헌호 금감원 홍콩주재원 전 실장은 공직자윤리위의 취업 심사 결과가 나오기도 전에 신한금융투자의 신임 감사로 선임됐다. 정 전 실장은 3월 23일 신한금융투자의 신임 감사로 뽑혔는데, 그에 대한 공직자윤리위의 취업 심사는 이틀 뒤인 25일 진행됐다.

취업 제한 규제 문턱에 걸려 넘어져도 아랑곳하지 않고 다시 도전하는 이도 있다. 은행연합회 전무 자리를 노리는 김형돈 국무조정실 전 조세심판원장이 이에 해당한다.

김 전 원장은 2014년 1월부터 조세심판원장을 지내다가 지난해 11월 명예퇴직했다. 퇴직 후 몇 달 되지 않아 은행연합회 전무 자리에 이름이 오르게 됐지만 지난 1월 공직자윤리위의 퇴직 공직자 취업 심사 심의에서 그가 맡은 조세 업무가 은행 업무와 연관된다는 판정이 나와 결국 심사를 통과하지 못했다.

◆각종 금융협회 고위직도 꿰차

하지만 김 전 원장은 조세에 대한 전문성이 은행 산업 발전에 도움이 된다며 다시 취업을 승인해 달라고 구제를 요청했다. 공직자윤리위는 지난 3월 25일 둘째 심사를 거쳐 3월 31일 ‘취업 불승인’ 결과를 내놓으며 다시 퇴짜를 놓았다.

정부는 2014년 공직자윤리법을 강화하면서 금피아 낙하산에 대한 규제에 나서자 금융위원회(이하 금감원) 또한 금융권에 만연한 낙하산 관행을 끊기 위한 방안을 내놓았다. 금융위는 각종 금융협회의 부회장직을 없애고 그 대신 전무직을 신설해 협회 내부 출신을 선임하도록 권고했다.

하지만 김 전 원장의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금융협회 임직원 자리에도 전직 금융 관료 출신들이 대거 자리 잡을 채비를 하고 있다.

예컨대 손해보험협회와 생명보험협회는 지난해 1월 9월 부회장들이 자리를 물러난 뒤 아직까지도 전무 자리가 공석으로 남아 있다. 현직 금감원과 금융위 출신 인사가 내정됐다는 이야기가 끊임없이 흘러나오면서 지금은 적절한 시기를 조율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주총 시즌 낙하산 인사에 대한 부정적 여론에 몰리는 것을 피하기 위한 것이란 해석이 나온다.

◆보험·증권사에 이어 GA로 우르르

금피아의 세력 확장은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 제도권 금융사를 넘어 ‘외곽지대’로 분류되는 곳에도 금피아의 손길이 뻗치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퇴직 공직자 취업 제한을 받고 있는 분야는 일정 규모 이상의 법무법인, 회계법인, 시장형 공기업, 공공기관 등이다.

금융회사여서 증권사·보험사 등은 상대적으로 규제를 덜 받고 있다. 이 때문에 증권사·보험사 등은 상부기관의 압박을 받기보다 오히려 앞다퉈 ‘금피아 모시기’에 나설 정도의 분위기가 조성돼 있다.

최근에는 보험대리점(GA) 분야에까지 이런 현상이 퍼져 나가고 있다. 보험회사를 대신해 보험을 모집하거나 고객에게 서비스를 제공하는 보험대리점들이 보험사 영업 조직을 능가하는 수준으로 대형화되자 금감원 출신들의 주요 진출지로 급부상하고 있다.

최근 금감원이 민병두 더불어민주당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으로 대형 GA(설계사 500인 이상) 43곳에 임직원으로 재취업한 금감원 출신 인사는 총 14명이나 됐다. 직책별로는 감사 3명, 준법감시인 9명, 고문 2명이었다.

2015년 한 해 동안에는 금감원 출신 인사 4명이 대형 GA로 자리를 옮겼다. 규모가 작은 중소형 GA의 낙하산 실태는 파악하기조차 어려운 상황이다.

GA는 규모가 커지면서 보험 불완전 판매 비율이 증가하는 등 불건전 영업 행위가 끊이지 않아 금융 당국의 골칫거리가 되고 있다. 이 와중에 현직 시절 자신들이 감독했던 보험대리점에 재취업하는 금피아들이 급증하면서 감독 당국과의 유착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이들이 감사나 준법감시인으로서 본연의 역할에 충실하기보다 금감원 조사에 대한 방패막이로 전락할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서다.

이처럼 금피아 낙하산이 활개를 치지만 이에 대한 금융권 안팎의 대응은 이상할 만큼 조용하다. 금융권에 성과주의 도입 등 산적해 있는 이슈들이 많은 데다 4월 13일 20대 국회의원 선거까지 맞물려 여느 때와 달리 주목을 받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기존에는 금융 노조들이 낙하산 인사에 반대하는 성명을 내고 반발이 거셌다. 하지만 올 들어 성과주의 도입 등 금융권에 거대 이슈가 터지고 있어 금피아 문제가 상대적으로 덜 부각되는 측면이 있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또 총선 때문에 아무래도 분위기가 어수선한 게 있다. 총선이 끝나 뒤 자리를 잡지 못한 정피아(정치인+마피아)들을 위해 임원 자리를 비워둔 금융사들도 많은데, 낙하산 논란은 총선 이후 더 본격화할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정명희 금융경제연구소 연구실장은 “금융권 낙하산 문제는 낙하산 인사와 유착 기관과의 네트워크를 통해 각종 부실 재앙이 발생한다는 점에서 문제가 심각하다”며 금피아 문제의 개선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정 연구실장은 “공직자윤리법이 한층 강화됐다고는 하지만 올해도 역시 기존의 금피아 자리를 또 다른 금피아가 꿰차는 식의 관행이 이어지고 있다”며 “법을 개정해 낙하산을 견제하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사전에 방지하는 것도 필요하다. 유럽 등에서는 (금융회사)임원추천위원회에 직원 대표, 시민단체 대표 등을 포함해 사전에 견제할 수 있도록 하는 장치를 마련해 두고 있다”고 강조했다.

ch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