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초 암스테르담에 ‘VR 시네마’ 개관}
{난민문제 그린 ‘인 유어 페이스’등 상영}

[헤이그(네덜란드)=김민주 한경비즈니스 객원기자] 지난 3월 25일 세계 최초의 가상현실(VR) 전용 영화관을 체험하기 위해 네덜란드의 수도 암스테르담을 찾았다. 네덜란드의 콘텐츠 기업 삼하우드미디어는 3월 초 ‘VR 시네마’란 이름의 영화관을 개관했다.

스크린 없이 VR 기기 헤드셋과 헤드폰을 착용한 채 회전의자에 앉아 영화를 본다는 것이 과연 어떤 느낌일까 궁금해졌다. 해당 영화관의 홈페이지에서 예약했다. 관람 날짜와 시간을 선택하고 입장료 12.5유로(1만6000원)를 결제했다.

◆스크린 따로 없고 자리마다 VR 헤드셋

영화관은 암스테르담 중앙역과 매우 가까운 거리에 있었다. 기차역에서 암스테르담 공공 도서관 방향으로 5분을 걷자 영화관이 나왔다. 영화관 건물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니었고 한 레스토랑의 1층 공간 일부를 영화관으로 만들어 놓았다.

알고 보니 이 레스토랑은 영화관을 연 삼하우드미디어가 운영하고 있는 곳이었다. 영화관은 1회 상영에 50명, 1일 최대 400명의 관객을 수용할 수 있었다.

직원의 안내에 따라 실내로 들어가자 스크린 대신 통유리창이 보였다. 내부엔 회전의자들이 놓여 있었고 의자마다 삼성전자의 기어 VR 헤드셋과 독일 음향 전문 기업 젠하이어의 헤드폰이 걸려 있었다.

원하는 자리에 앉자 직원들이 돌아다니며 관객들의 장비 착용을 도와줬다. 관객들이 일제히 헤드셋을 쓰자 행인들이 신기해하며 이 모습을 들여다봤다. 관객들은 성인용과 어린이용 두 가지 버전의 영상 중 한 가지를 고를 수 있었다.

필자가 성인용을 선택하자 직원이 시작 버튼을 눌렀고 고글 형태의 헤드셋을 얼굴에 씌워 주고 옆에 달린 끈을 이용해 기기와 착용자의 얼굴을 밀착시켰다. 헤드폰을 착용하자 곧바로 영화가 시작됐다.
베일 벗은 세계 최초 ‘VR 전용 영화관’
(사진) 네덜란드에서 3월 초 개관한 세계 최초 VR 전용 영화관.

아쉽게도 이 VR 전용관에서 볼 수 있는 상업 영화는 없었다. 그 대신 삼하우드미디어가 편집한 30분짜리 동영상들이 순서대로 화면에 나왔다. 시작은 영국의 인디밴드 폴스(Foals)의 ‘마운틴 앳 마이 게이츠’ 뮤직 비디오였다.

노래가 진행되자 멤버인 야니스 필리파키스가 기타를 연주하면서 화면 곳곳을 떠다녔다. 이 뮤직 비디오는 익스트림 스포츠 활동 촬영에 주로 사용되는 고프로 카메라의 가상현실 기술을 적용해 촬영한 것으로 알려졌다.

뮤직 비디오가 끝나자 짤막한 애니메이션이 나왔고 사람들이 뉴욕 상공을 떠다니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이 맛보기 영상들은 별다른 대사가 없었기 때문에 내용을 이해하기보다 가상현실의 다양한 콘텐츠들을 체험하는 데 목표를 둔 듯했다.

뒤이어 본편에 해당하는 ‘인 유어 페이스’가 상영됐다. 이 영상은 한 네덜란드 커플의 집에 카메라를 든 방송국 직원들과 시리아 난민이 함께 오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뤘다.

갑자기 들이닥친 리포터는 커플에게 난민을 위해 방 한 칸을 내어 줄 수 있겠느냐고 물어보고 이 같은 요청에 당황해 하는 커플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영상 속 인물들이 네덜란드어로 대화했기 때문에 배우들의 머리 위엔 영어 자막이 있었다.

◆360도에서 영상 쏟아져…화질 개선 등 보완 필요

독특한 것은 필자가 몸의 방향을 바꾸면 보이지 않던 장면이 보인다는 것이다. 기존 방식으로 영화를 볼 때에는 눈앞에 사각의 스크린이 있고 그 화면 안에 영상 전체가 담겨 이를 관람하게 되는데, VR 영화는 관객을 기준으로 360도에서 영상이 나오기 때문에 고개를 좌우로 돌리거나 몸을 틀면 새로운 영상을 접할 수 있게 된다.

예를 들어 필자의 왼쪽에 있던 커플의 이야기를 듣다가 의자를 돌려 오른쪽으로 몸을 틀자 부엌의 살림과 집 벽에 걸려 있던 그림들이 보였다. 고개를 돌릴 때마다 화면의 전환이 빠르고 자연스러웠다.

영화는 배우들이 화면을 응시한 채 관객에게 질문을 던지면서 마무리됐다. 에필로그에서는 한 여성 카메라맨이 아이를 안은 채 도망가는 시리아 난민의 발을 걸어 넘어뜨려 세계적인 공분을 샀던 동영상이 나왔다. 최근 유럽으로 몰려드는 난민들을 어떻게 대할 것인지에 대해 유러피언의 윤리적인 고민을 최첨단 기술에 담아낸 것이다.
베일 벗은 세계 최초 ‘VR 전용 영화관’
VR 영화관은 새로운 것에 대한 호기심이 강한 관객들에겐 만족도가 높은 체험을 제공할 수 있을 듯했다. 이날 관객의 대부분이었던 어린이들은 처음 본 장비를 착용한 채 자신의 몸을 움직이면서 영상을 볼 수 있는 것에 즐거워했다.

방향을 틀자 새로운 영상이 보이는 것은 독특한 경험인 것은 분명했다. 이 기술을 이용한다면 해외의 명소들을 둘러본다거나 스포츠를 관람하는 식의 간접 체험도 충분히 가능할 것 같았다.

하지만 아쉬운 점들도 있었다. 우선 시청 몰입을 높이는 데 필수 요소인 ‘화질’이 그리 뛰어나지 않았다. 기존 3D나 4D 영화를 볼 때 느껴지는 입체감과 선명도 수준에 미치지 못했다. 또한 눈앞에서 영상이 펼쳐져 어지러웠다. 시간이 흐르자 헤드셋의 무게도 불편했다. VR 기기를 착용한 채 장시간 영화를 관람하기가 쉽지 않아 보였다.

현재 VR 사업에 대한 정보기술(IT) 업체 전문가들의 전망은 매우 낙관적이다.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최고경영자(CEO)는 지난 2월 열린 세계 최대 이동통신박람회 ‘MWC 2016’에 참석해 “VR는 차세대 플랫폼”이라며 “앞으로 사람들이 일하고 커뮤니케이션하는 삶의 방식 전체를 바꾸게 될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시장조사 업체 트렌드포스는 전 세계 VR 기기 판매량이 올해 1400만 대에 달할 것이고 2020년에는 3800만 대까지 늘어날 것이라고 예측했다. 해당 기업도 현재 암스테르담과 베를린 두 곳에서 영화관을 운영 중이며 조만간 런던·마드리드·파리에서도 VR 전용관을 열 계획이다.

아직 초기 단계에 불과한 VR 전용관이 본격적으로 상용화되기 위해서는 어지럼증 해결 등의 기술적인 보완과 함께 영화나 드라마 등 킬러 콘텐츠 개발에도 속도를 내야 할 것으로 보인다.

vitamjk@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