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고세이부, 지역 메이커와 협력해 PB 상품 개발…‘직판 연합’도 활기}

[전영수 한양대 국제학대학원 특임교수(전 게이오대 방문교수)] 성장은 독점과 연결된다. 이 때문에 불황은 자본에 기회다. 자본화가 거셀수록 양극화는 커진다. 이에 따라 자본주의는 거대화·세계화·융합화를 지향한다. 쏠림적인 자원 배분은 당연지사다.

역으로 메인 조류에서 벗어나면 생존 확률이 급락한다. 숱한 제품·기업의 명멸 역사가 이를 뒷받침한다. 상권도 비슷하다. 갈수록 다양성이 실종된다. 상전벽해의 골목길 간판 변화가 대표적이다. 즉 전국구 상품·서비스의 주권 확보와 영역 확장이 거세다. 반대로 지역 명물의 토착적 경쟁력이 급감했다.
‘전국구’ 꿈꾸는 일본 지역 특산품들
(사진)일본의 지방 특산품 판매 매장.(전영수 교수 제공)

◆지방 백화점의 새로운 도전

이 풍경은 일본에서 일상적이다. 전국구에 밀려 신음하던 지역 선수의 화려한 부활 스토리가 연일 주목받는다. 대량생산·대량소비의 전국구 시장 공급과 함께 한편에선 소품종·소량생산의 지역 한정판이 부쩍 힘을 얻었다.

시골·농촌 등 제한 시장임에도 불구하고 약점을 되레 희귀한 부가가치로 전환해 많은 응원을 받는다. 움츠러들었던 지방 상권은 간만의 훈풍에 지역구의 품질 강화와 라인업 확대에 열심이다. 관광 유치와 맞물려 지역 명물을 경험하자는 슬로건을 통해 도시 상권에 도전장을 던진 형국이다.

주지하듯이 지방 상권의 연쇄 몰락은 일본뿐만 아니라 한국에서도 거대한 사회문제로 부각된다. 저출산·고령화의 인구 악재가 ‘지방→도시’로의 인구 이동을 재촉하면서 지방 권역의 과소 경고가 위험수위에 달한 결과다. ‘축소 일본’의 냉엄한 샘플 사례다. 덩달아 기초지자체는 물론 향토 기업이 경제 축소의 후폭풍에 노출된다.

위기를 해결하자는 목소리는 그만큼 절박하다. 너 나 할 것 없이 지방 경제를 살릴 비즈니스를 찾는 데 열심이다. 대체적으로 지방 특유의 산업과 특산물을 활용, 소비 수요로 연결할 상품 개발에 초점이 맞춰진다. 지방색이 완연한 토종 상품을 도심에서 판매하는 새로운 도전 행렬이 증가세다.

특이 사례를 소개하면 먼저 지방 백화점의 도전 스토리다. 도심 백화점은 엔저에 힘입어 외국 관광객이 방일, 중국인 관광객 중심의 ‘폭풍 구매’라는 신조어를 히트시키는 거대 수혜를 받았다.

반면 ‘명소 관광, 도심 쇼핑’의 여행 패턴 때문에 지방 백화점은 고전을 반복했다. 소비 증세까지 뒷덜미를 잡았다. 난국 타개가 필요했다. 이 와중에 전국에 24개 백화점을 운영하는 대형 업체 소고세이부는 지방 점포를 활성화하기 위해 2015년 3월 새로운 자체 상품(PB) 전략을 내놓았다.

요컨대 ‘에어리어 모드(area mode)’다. 백화점의 독자 개발 상품이라면 통상 본사가 일괄 기획 후 전국 점포에서 판매하곤 했다. 유행 최첨단인 도쿄에서 팔리는 상품이면 지방에서도 먹혀들 것인 데다 무엇보다 대량생산의 비용 절감이 메리트였다.

그런데 이번엔 좀 달랐다. 지방 점포가 지방 산업과 손잡고 지역 특색이 풍기는 잡화·의류 등을 개발·판매한다. 지역의 전통 기술과 특산품을 조화한 게 특징이다. 가령 사양길에 접어든 장롱은 공예 디자인을 반영한 새로운 아이디어로 기술력을 평가받는다.

장인 정신이 녹아든 장롱 모양의 여행 캐리어가 그 예다. 이를 기획·주선한 게 지역 PB 발굴에 나선 지역 백화점이다. 전통 작물로 염색한 의류나 공예 산지의 장인 기술이 들어간 장신구도 브랜드로 탄생한다.


◆지방 연합 ‘부활 카드’로 큰 효과

성과는 기대 이상이다. 인터넷으로 전국 어디서든 동일 상품을 구매하는 시대란 점을 역이용, 지역 한정의 부가가치를 창출한 셈이다. 지역 주민의 고향 사랑은 덩달아 높아진다. 여세를 몰아 백화점은 지방 개발 토종 상품을 모아 도쿄에서 대규모 기획전을 개최했다. 지금까지와는 반대 전략이다.

지방 부활을 위해 고안해 낸 토종 상품이 도시 소비자에게 먹혀들면서 이 도전은 언론의 주목을 받는 데 성공했다. 고급 지향의 백화점이 기획부터 판매까지 지역 메이커와 상호협력 아래 종합적으로 관할하니 품질관리와 신뢰 확보가 자연스럽다. 고객으로서는 브랜드로 인식하는 주요 근거가 된다.

백짓장도 맞들면 나은 법. 쇠퇴 지방을 부활시키기 위해 지방 연합이라는 새로운 생존 전략도 등장했다. 도심에서의 판매 거점을 확보하지 못한 전국의 중소 식품 메이커의 제품을 역내의 소규모 점포에서 내다 파는 것이 그렇다. 이른바 ‘1평 숍’이다.

JR순환선 등 승객 집적도가 높은 역에 판매망을 갖춘 생산자 직판 연합이 운영 주체다. ‘핫텐도’라는 지방의 소형 빵 공장을 부도 직전에 되살려 낸 한 컨설팅 업체가 네트워크의 중심에 섰다. 차게 먹는 크림빵이라는 신선한 콘셉트를 내세워 대히트를 쳤다. 역내에서만 팔아 ‘빵선물(데미아게)’이라는 새로운 선물 장르를 만든 것으로 유명하다.

이런 성공 경험을 지닌 직판 연합은 ‘특산품 브랜드화 지원 사업’에 사활을 걸었다. 지역에서 잠자는 특산품을 브랜드로 만들어 매출 증진과 함께 지역을 통째 홍보하려는 의도다. 2015년 6월 홋카이도의 한 도시(미카사시)는 직판 연합과 손잡고 토종 멜론으로 승부를 걸었다.

예전 탄광 산업이 한창일 때 6만 인구를 자랑하던 곳이 9000명까지 줄어들자 지자체가 고민 끝에 내놓은 부활 카드다. 현지에서는 특산품으로 잘 알려진 멜론이지만 전국적인 지명도는 거의 없었는데, 여기에 직판 연합 회원사가 멜론을 원재료로 한 아이스크림 등을 만들어 협업 성과를 냈다.

운영 방법은 간단하다. 브랜드로 만들어 낼 상품 기획은 적절한 경쟁력을 갖춘 지역 회원사에 의뢰·개발한다. 회원사 위주의 연합 집단이 내뿜는 네트워크의 힘이다. 과소화로 지역 메이커라면 느낄 수밖에 없는 존망 위기의 공유감도 상호 연대의 기반이다.

전시·판매는 역내의 별도 점포가 아니라 통행에 지장이 없는 범위에서 공간을 확보해 이곳에 한데 모아 해결한다. 3.3㎡(1평) 정도에 개별 지역의 주력 상품을 개별 판매대에 놓고 내다 판다.

해당 지자체는 판매에 관여하지 않는 위탁 형태다. 현재 직판 연합 회원 메이커는 전국 100여 개에 달한다. 회비는 월 10만원이다. 지방 메이커로서는 리스크 없는 도심 판로 확보가 가능하고 직판 연합은 규모의 경제 달성이 장점이다.

‘지산지소(地産地消)’는 지역 부활의 핵심 단어다. 지역구가 전국구를 이길 비책은 여기에 숨어 있다. 지방은 힘들다. 그런데 이곳엔 감춰진 지역 특산품이 가득하다. 지명도를 높일 브랜드가 없을 뿐 상품 가치로는 손색이 없다.

이런 무명 발굴을 통해 지역 경제를 되살리는 단초를 찾아낼 수 있다. 농작물·과일 등 생산 발상지로서, 대량산지로서 주도권을 내세워 명물을 키워 내는 노력이 필수다. 가능하면 원재료를 넘어선 재가공을 통한 다양한 부가가치 창출 노력이 권유된다. 언제까지 도시에 뒤질 수는 없는 노릇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