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인공지능(AI) 바둑기사인 알파고와 한국을 대표하는 프로기사 이세돌과의 대국에서 알파고가 승리하며 큰 화제가 됐다. 이에 따라 알파고로 대변되는 인공지능에 대한 관심이 늘고 있다. 각 분야에서 인공지능을 활용하는 아이디어가 등장하고 있으며, 금융권에서도 마찬가지다. 최근 정부도 ‘금융의 알파고’라고 불리는 로보어드바이저의 활용 방안을 찾고 있으며 그 과정에서 온라인 투자자문에 대한 규제를 완화하는 등 다양한 정책 방안을 내놓고 있다.
로보어드바이저는 일종의 자동화된 자산관리 시스템으로 자체적인 알고리즘을 통해 고객의 투자 성향에 맞는 포트폴리오를 자동으로 생성해 제공하게 된다. 이를 통해 기존의 고액자산가 위주였던 자산관리 서비스를 대중으로 확대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다만 아직까지는 로보어드바이저가 등장한 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에 데이터를 기반으로 하는 알고리즘의 유효성에 대한 검토가 더 필요하다. 금융업 특성상 신뢰가 가장 중요하다는 점에서 아직 로보어드바이저가 안정적인 사업모델로 자리 잡기에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투자 리밸런싱, 위험자산 재조정 작업
로보어드바이저를 그냥 시기상조로 치부하기보다는 최근 도입 자체가 화제가 되는 이유를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로보어드바이저의 핵심은 고객 성향에 맞는 맞춤형 포트폴리오를 좀 더 편리하게 제공하고 이를 꾸준히 관리하고 리밸런싱해주는 데 있다.
로보어드바이저에 관심이 늘고 있는 이유를 몇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한국 경제의 구조적 저성장·저금리 기조가 고착화되는 가운데, 글로벌 경기 사이클 관점에서 올해에는 더욱 변동성이 커질 가능성이 높아졌다. 로보어드바이저는 이러한 환경에 아직 많은 수의 국내 투자자들이 자산관리의 기본이라고 불리는 포트폴리오 투자와는 거리가 먼 투자 행태를 보이고 있다는 문제 의식을 해결하기 위한 고민의 일환이라고 볼 수 있다.
포트폴리오 투자를 통해 투자자는 동일한 위험 부담으로 수익을 극대화할 수 있고, 동일한 수익 아래 위험을 최소화할 수 있다. 이를 위해선 상관관계가 낮은 자산들로 포트폴리오를 적절하게 구축할 필요가 있으며 이러한 자산 배분은 고객의 위험 성향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적절한 포트폴리오를 구축하는 것만큼, 아니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이 바로 포트폴리오 리밸런싱(rebalancing)이다. 이는 각각의 포트폴리오 구성 자산의 수익률이 변화하는 가운데, 변화하는 위험자산의 비중을 재조정하는 과정을 말한다. 리밸런싱의 효과는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첫째, 고객의 투자 성향에 맞는 포트폴리오로 재조정할 수 있다. 둘째, 리밸런싱은 위험자산 비중을 조정하는 과정인 동시에 비싼(가격이 오른) 자산을 팔고 싼(가격이 내리거나 변하지 않은) 자산을 사는 과정이기도 하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투자 실패의 가장 큰 요인 중 하나인 감정과 비이성적인 판단 오류를 줄일 수 있다.
한국투자공사(KIC)가 뽑은 최우수 외부 자산운용사로 선정돼 2014년에 방한했던 적이 있는 미국 대형 자산운용사 AQR(운용 자산 규모가 우리 돈으로 107조 원에 달한다)의 클리프 애즈니스 대표는 포트폴리오의 중요성, 특히 리밸런싱의 중요성과 관련해 다음과 같은 조언을 남겼다.
“통상 많은 투자자가 단순히 주식과 채권이라는 2가지 자산군만 갖고 나눠 투자하는 걸 포트폴리오 투자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러한 자산 배분은 충분한 분산 효과를 내지 못한다. 대부분은 변동성이 훨씬 큰 주식에 의해 포트폴리오 전체 수익률이 좌우된다. 분산투자는 좀 더 체계적으로 해야 한다. 같은 자산군 안에서도 충분히 분산투자를 하고, 새로운 투자 수익을 낼 수 있는 원천을 찾는 노력이 필요하다.”
지금처럼 변동성이 커질 수 있는 환경에서는 포트폴리오 내에 채권 또는 절대수익 추구형 자산 등 방어적 자산을 포함해야 한다. 채권의 경우, 대표적인 안전자산으로 꾸준히 금리 수익을 수취할 수 있다는 점에서 상대적으로 낮은 변동성을 보인다.
해외 채권 중에서는 미국 하이일드 채권과 투자등급 채권이 상대적으로 금리 매력이 높다. 또한 원화로 투자하는 한국 투자자에게는 한국 채권 역시 매력적인 투자 대안이다. 최근 국내 경기 둔화로 인해 상반기 중 금리 인하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고 있어 금리수익 외에도 소폭의 자본수익 역시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절대수익 추구형 자산으로는 헤지펀드와 같은 대안(대체)투자 자산이 대표적이다. 대안투자 자산의 경우, 시장의 방향성과 관계없이 절대수익을 추구하는데, 다양한 전략 중에서 지금처럼 경기 둔화에 대한 우려가 있는 시점에는 매크로 전략, 멀티 전략 등을 활용하는 헤지펀드를 고려해볼 만하다. 과거에는 일반 투자자들이 유동성과 접근성이 부족하다는 점에서 이 같은 헤지펀드에 투자하기가 어려웠는데, 최근에는 뮤추얼펀드의 형태를 갖춘 헤지펀드 상품들이 등장하고 있어 좋은 투자 대안이 되고 있다.
또한 정기적으로 현금수익(인컴)이 발생하는 자산으로 구성된 멀티에셋 인컴자산 역시 변동성을 방어하는 데 유용하다. 채권, 고배당주, 우선주, 리츠와 같이 이자 또는 배당과 같은 현금수익을 꾸준히 수취할 수 있는 자산들에 고르게 투자하는 상품으로 인컴이 꾸준히 쌓이는 구조이기 때문에 변동성 환경에서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모습을 나타낸다.
‘투자’라고 하면 주식 등 고수익 자산만을 떠올리는 단편적 시각에서 벗어나 다양한 자산의 조합을 통해 위험을 낮추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특히 지금처럼 금융시장의 변동성이 커지는 상황에서는 최근의 주식시장 랠리를 리밸런싱의 기회로 활용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주식의 빈자리를 채권, 절대수익 추구형 자산과 같은 변동성 관리에 유용한 자산으로 채울 것을 고려해야 한다.
주봉준 SC제일은행 투자자문부장
© 매거진한경,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