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style design] 세대 교체와 하산 비용
제20대 국회의원 선거가 끝났다. 승자와 패자 간에 희비가 엇갈렸다. 보통 노인을 사회적 약자로 여기기 쉽지만 이번 선거에서 드러난 것처럼 정치에서만큼은 꼭 그렇지만은 않다. 통계에 의하면 이번 국회의원 총 선거권자 4210만 중 60세 이상이 1000만 명으로 4분의 1에 가깝다. 그뿐만 아니라 투표율은 어느 세대보다도 높다. 이제 우리나라도 본격적인 노인 정치(gerontocracy)의 시대가 막을 올린 느낌이다.

추세적으로 보면 노령층의 정치적 영향력은 더욱 높아질 것 같다. 무엇보다도 전 세계적으로 고령화가 급속히 진행돼 수적으로 우세해지고 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젊은이에 비해 복지 정책에 대해 훨씬 더 절박하다는 점도 중요한 이유가 된다. 행동경제학적으로 볼 때, 젊은 시절에는 남은 시간이 많다고 여기기 때문에 미래를 위한 준비에 게을러진다. 반면 노인은 당장 눈앞에 닥친 노후를 해결하려면 결사적일 수밖에 없다. 게다가 낀 세대인 중·장년층은 노인과 이해관계를 같이 하기 쉽다. 나이 들 순 있어도 다시 젊어질 순 없기 때문이다.

1.3명 밑도는 출산율…젊은 세대의 반란
역사적으로 세대교체가 원활하지 못한 국가는 예외 없이 쇠퇴했다. 로마의 원로원이나 구소련의 공산당은 노인들이 권력을 독점해 사회적 활력을 떨어뜨리고 나라를 퇴행시킨 대표적 사례다. 물이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것과 같이, 노인에게서 젊은이에게로 권력이 자연스럽게 흘러가야 한다. 선거철마다 공약의 단골 메뉴가 되는 복지제도는 노인과 관련이 깊다. 국가의 복지 정책 중 핵심이 되는 연금과 건강보험의 최대 수혜자는 단연코 노인들이다. 문제는 연금, 건강보험과 관련된 국가의 재정적 부담이 한계점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젊은이들이 권력, 일자리, 복지를 노인이 독점한다고 반발하는 것은 당연하다. 무상으로 베풀어진 복지에 대해 갚아야 할 빚은 전적으로 자신들의 몫이 되는 것이 뻔히 보이기 때문이다.

최근 결혼을 하지 않고 아이를 낳지 않는 젊은이들이 늘고 있는 현상은 일종의 신호로 볼 수 있다. 젊은 세대의 반란이 시작된 것이다. 2005년도 1.08명까지 떨어졌던 합계 출산율은 10여 년간의 국가적 총력에도 불구하고 1.3명을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 근본적으로 결혼을 안 하거나 늦게 하는 풍조 때문이다. 이미 한국 여성의 초혼 연령이 30세를 넘어섰다. 심지어 결혼을 아예 포기하는 젊은이도 점점 늘어나는 추세다. 기성세대는 젊은 세대의 이기심을 탓하지만 젊은 세대는 기성세대의 욕심을 성토한다. 그러나 세대 간의 전쟁은 승자도 패자도 없는 공멸의 길이다.

일본에서 몇 년 전 ‘하산(下山)의 사상(思想)’이란 책이 발간돼 사회적으로 큰 논쟁을 불러일으켰다고 한다. 이 책에서는 은퇴세대와 청년세대를 하산과 등산하는 상황에 빗대어 절묘하게 풍자하고 있다. 여유롭게 정상을 정복하고 흘린 땀의 보상을 충분히 누리며 하산하는 은퇴세대가 가뜩이나 좁고 험해진 등산로를 힘들게 올라오고 있는 청년세대에게 업어달라고 요구하는 형국이라는 것이다. 저자는 산행을 할 때는 올라오는 사람이 우선이기 때문에 하산하는 쪽에서 길을 비켜주어 먼저 오를 수 있도록 배려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은퇴세대가 청년세대를 배려하는 방법은 하산 비용을 스스로 마련하는 것이라고 결론짓고 있다.

은퇴세대, 하산 비용 재고해야
사회적으로 세대전쟁이 벌어지는 동안 가정에서는 정반대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사회는 젊은 세대에게 가혹할 정도로 냉정하지만 부모는 자녀에게 지나치게 관대하다. ‘내 자식의 성공을 위해서라면 어떤 희생도 각오하겠다’는 부모가 늘고 있는 것이다. 자녀를 교육시키고 결혼시키는 데 드는 비용 때문에 자신의 노후 준비를 못하는 부모도 많다. 2014년 기준으로 우리나라의 노인 빈곤율은 49.6%인데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4개 회원국 평균 13%와 비교할 때 4배에 가까운 압도적 1위다. 자녀라도 원하는 대로 성공하면 좋을 텐데 과보호를 받으며 자란 자녀들은 결국 문제 해결 능력이 현저히 떨어지는 의존적인 성인이 된다. 사회적으로는 세대 간에 내 몫을 지키려는 전쟁이 벌어지지만, 가정 내에서는 너무 많이 물려주려고 하는 게 문제라는 것이다. 어느 쪽이든 바람직하지 않은 것은 마찬가지다. 가정 내에서도 하산 비용을 생각하지 않고 자녀에게 지출하는 것은 재고돼야 한다.

이와 같이 자신의 노후를 스스로 준비하는 것은 개인적 의무일 뿐만 아니라 사회적 의무이기도 하다. 곳간 열쇠를 맘 편히 물려주기 위해서는 최소한의 생활비를 마련해 놓아야 한다. 머리 아픈 권력일랑 후세대에게 물려주고 자신을 위한 투자를 시작할 때다. 젊은 시절 정신없이 살아왔지만 이제 비로소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이 점점 다가오고 있다.

지철원 트러스톤자산운용 연금포럼 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