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프스타일 큐레이션, 비즈니스를 바꾸다
[경영전략 트렌드=고객의 삶을 디자인하라]
{소셜 미디어에 익숙한 소비자들… ‘새 문법’ 필요}

[허지성 LG경제연구원 책임연구원] 최근 음식·여행·인테리어는 물론 장난감 수집과 독서·육아·애견 및 애묘 관련 팁 제공 등을 소재로 한 방송 콘텐츠들이 방송가를 점령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지에 대한 해석은 다양하다.

시간이 점점 부족해짐에도 불구하고 경제적으로는 점점 빠듯해지는 현대인의 대리 만족이라는 해석에서부터 일상과 관련된 콘텐츠 시청을 통해 1인 가구의 증가에 따른 외로움을 달래려고 한다는 해석까지 나온다.

분명한 것은 이러한 콘텐츠들이 ‘소비자들이 선호하는 라이프스타일에 대한 정보를 선별적으로 제공한다’는 기본 포맷을 공유한다는 것이다. 즉, ‘라이프스타일 큐레이션’이라는 큰 흐름이 방송계의 주류로 자리 잡게 됐다는 의미다.

사실 ‘라이프스타일 큐레이션’은 방송에 한정된 것이 아니다. 오히려 방송계는 환경의 변화를 이제야 본격적으로 반영하기 시작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수많은 사람들이 사용하는 페이스북·인스타그램·트위터 등 소셜 미디어 서비스들에서는 이러한 현상이 수년 전부터 일반화됐다.

해외여행에서의 셀카, 자신이 방문한 음식점, 자기가 본 공연, 자기 강아지, 자신이 최근에 구입한 액션 피규어 등의 체험기와 이를 인증하는 사진이나 동영상의 형식을 갖춘 ‘큐레이션 콘텐츠’들은 소셜 미디어에서 공유되는 콘텐츠의 형태 중 상당한 비율을 차지하고 있다.

◆‘정보의 필터링’이 핵심

그러면 이러한 라이프스타일 기반의 콘텐츠들은 왜 우리의 안방 TV까지 점령할 정도로 일반화된 것일까. 이러한 변화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 ‘큐레이션’이라는 개념에 익숙해질 필요가 있다.

큐레이션은 주로 미술계에서 사용되던 용어로, 미술관·박물관 등의 소장 작품의 컬렉션 목록 관리, 해석 및 전시, 전파 활동을 통칭하는 의미로 사용돼 왔지만 최근 정보 수집 및 해석, 배포 주체로서의 사람의 역할에 대한 중요성이 부각되면서 미술의 영역을 넘어 보다 광의의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큐레이션’의 저자 스티븐 로젠바움은 큐레이션을 ‘인간이 수집, 구성하는 대상에 인간의 질적인 판단을 추가해 가치를 높이는 활동’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또한 ‘큐레이션의 시대’의 저자인 사사키 도시나오는 ‘이미 존재하는 막대한 정보를 분류하고 유용한 정보를 골라내 수집하고 다른 사람에게 배포하는 행위’라고 정의하고 있다.

자료 수집 및 질적 판단이라는 큐레이션의 주요 활동 자체는 새로운 활동이 아니다.
그러면 큐레이션, 즉 정보 필터링 활동이 새삼스럽게 주목받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첫째, 매스미디어의 시대가 퇴조하고 정보의 유통이 인터넷에 의해 개방되면서, 정보 생산의 주체가 매스미디어에서 일반 이용자로 확대되면서 매스미디어에 의해 형성됐던 ‘사물에 대한 합의된 사회적 가치’의 힘이 약화됐기 때문이다.

정보의 양이 많아지고 정보의 생산 주체도 다양해지면서 ‘주류’ 또는 ‘여론’이라는 이름으로 제시되는 매스미디어의 주장을 더 이상 액면 그대로 신뢰하기 힘들어졌다. 그 대신 믿을 수 있는 전문가나 지인이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를 통해 공유하고 많은 지인들의 추천에 의해 그 중요성과 신뢰성이 검증된 정보가 그 자리를 차지하게 된 것이다.

즉, 지인이나 전문가에 의해 ‘큐레이션 된’ 정보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지는 것이다.

둘째, 미디어 환경이 변하고 소비자들의 연결성이 강화되면서 고급 브랜드 소비를 통해 소비자 스스로를 간접적으로 드러내던 사회적 소비의 행태가 ‘라이프스타일 자체’로 대체돼 가고 있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에게 공감을 얻을 수 있는 취향 기반의 콘텐츠들을 생산, 공유할 수 있는 사람들은 소셜 미디어에서 많은 구독자들을 보유하고 있고 구독자 수에 기반 한 영향력은 실제로 제품의 유행은 물론 사회적 여론 등에까지 영향력을 미친다. 이들은 자신의 라이프스타일을 선택적으로 콘텐츠화해 공유하는데, 이러한 활동이 바로 ‘라이프스타일 큐레이션’이다.
라이프스타일 큐레이션, 비즈니스를 바꾸다
◆서점·호텔·카드 등 다양한 영역에서 활용

이러한 ‘라이프스타일 큐레이션’ 활동은 실제 소비자들의 구매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실제로 소셔블랩(Sociable Labs)의 설문 조사 결과에 따르면 온라인 쇼핑 이용자들 중 62%가 페이스북에 올라오는 지인들의 제품 사용 관련 코멘트를 읽어본 적이 있고 그들 중 75%는 제품 정보 링크를 눌러 해당 제품 판매 페이지를 방문한 적이 있으며 이 중 53%는 해당 제품 정보에 근거해 실제로 제품을 구매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에서 공유된 정보를 바탕으로 구매를 결정한 제품이 마음에 들면 구매 경험자의 81%가 해당 경험을 다른 지인들과 재공유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러한 소비자 변화로 비즈니스 영역에서도 ‘라이프스타일 큐레이션’이라는 트렌드를 활용하려는 움직임이 본격화되고 있다. 주로 패션 분야에 한정됐던 ‘편집숍’의 영역이 제품이나 서비스 또는 마케팅이나 브랜딩 영역 전반으로 빠르게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한국에서도 최근 그 수가 증가하고 있는 ‘지역 서점’의 원형인 일본의 쓰타야서점이 그 대표적인 예다. 1983년 1호점을 연 이후 현재 일본 전역에 걸쳐 1400여 개의 서점을 운영하고 있는 쓰타야서점은 ‘라이프스타일 제안’이라는 콘셉트를 통해 서점계의 불황을 돌파, 규모를 지속적으로 확대해 나가고 있다.

쓰타야서점에는 도서뿐만 아니라 음반·비디오·필기류와 기타 전문 제품 등을 판매하는데, 각 제품 종류별로 전문적인 지식과 취향을 지닌 전문 컨시어지들이 제품 선택에 대한 팁을 제공한다.

또한 도서들 중 일부는 주제나 소재별로 매칭되는 고급 라이프스타일 제품들과 함께 전시돼 있다. 이러한 비치 방식은 지적인 또는 정서적인 자극을 찾아 서점을 방문한 소비자들에게 서적 또는 제품의 의미를 ‘환기’시켜 판매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된다.

호텔 업계에도 ‘라이프스타일 큐레이션’의 바람이 불어 부티크 호텔이나 라이프스타일 호텔이 늘어나고 있다.

부티크 호텔은 규모는 작지만 독특하고 개성 있는 건축 디자인과 인테리어, 운영 콘셉트, 서비스 등으로 기존 대형 호텔들과 차별화된 호텔을 지칭하며 라이프스타일 호텔은 유명 호텔 브랜드들이 이러한 부티크 형식의 호텔을 체인으로 운영하는 것을 의미한다.

기존의 호텔들이 안락하고 깨끗하고 표준적인 시설과 서비스를 운영하는 데 반해 부티크 호텔들은 디자인·인테리어와 각종 라이프스타일 소품은 물론 도서·음반 등을 통해 강한 개성을 표현한다. 뚜렷한 방향의 취향을 보유한 고객들이 주요 타깃이다.

해외에는 에이스호텔이나 호텔아메리카노 등을 비롯한 다양한 종류의 부티크·라이프스타일 호텔이 존재하며 국내에도 최근 수년간 라이프스타일 콘셉트의 호텔이 오픈했다.
라이프스타일 큐레이션, 비즈니스를 바꾸다
라이프스타일 큐레이션을 브랜딩 자체에 활용하는 업체도 있다.

현대카드는 자사의 회원들에게 문화 행사에 대한 할인 쿠폰 등을 제공하는 기존의 카드사 마케팅 방식에서 벗어나 콘서트(폴 매카트니, 에미넴), 전시회(팀 버튼, 스탠리 큐브릭 전시회), 국내 유명 맛집 할인 이벤트(현대카드 고메위크) 등 현대카드에서 직접 문화 이벤트를 소비자에게 선별해 제시하는 방식으로 라이프스타일을 ‘큐레이션’하고 있다.

현대카드는 여기에서 한 발 더 나아가 하우스 오브 퍼플이라는 레스토랑·바, 뮤직 라이브러리, 디자인 라이브러리 등 실제 문화·예술 관련 장소를 실제로 운영하며 소비자들로 하여금 현대카드가 ‘큐레이션’한 취향과 문화·예술 콘텐츠들을 체험할 수 있도록 하는 방식으로 소비자들의 공감을 얻고 있다.

라이프스타일은 자신 스스로에 대한 표현인 동시에 사회 내에서 자신의 지위나 위치에 대한 표현이기도 하다. 소비자들이 스스로 많은 사람들에게 자랑하고 싶어하는 제품이나 브랜드가 된다는 것은 소비자의 ‘라이프스타일 큐레이션’ 목록에 들어간다는 의미가 됐다는 것이다.

결국 소비자의 선호와 비선호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취향의 선도자’들에게 인정받을 수 있는 취향의 요소를 제품에 반영하는 것이 중요한 시점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