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봄날, 광한루에 나간 이몽룡이 그네 타는 춘향이를 보고 한눈에 반한 것처럼.
남녀 사이를 이어주는 매개체로써 그네의 역할은 동양과 서양이 별반 다르지 않다. 프랑스 로코코 시대에는 귀족들의 애정 행각을 묘사한 ‘우아한 연회(fete galante)’라는 회화 유형이 등장했다. 주로 야외에서 벌어지는 남녀의 만남, 파티, 소풍 같은 달콤한 내용을 담았는데 종종 그네가 주요 모티프로 다뤄졌다. 장 오노레 프라고나르(Jean-Honore Fragonard)의 는 그런 대표적인 그림이다.
![[LIFE & Motif in Art] 그네(swing): 멈추지 않는 사랑의 유혹](http://magazine.hankyung.com//magazinedata/images/raw/201606/a544160d8b6ae45279969814685b4458.jpg)
나무가 울창한 정원에서 젊은 여인이 신나게 그네를 타고 있다. 초록빛이 짙은 가운데 분홍빛 드레스로 치장한 여성의 외모가 환히 빛난다. 그네가 힘차게 날아오르는 바람에 치맛자락이 벌어져 속옷이 드러나고 한쪽 신발은 벗겨져 달아난다. 여자는 즐거운 듯 행복한 표정을 짓고 있다. 이 모습을 왼쪽 아래 덤불 속에서 젊은 남자가 황홀하게 올려다보고 있다. 한편 오른쪽 구석 어둠 속에서 나이 든 남자가 그네 줄을 잡고 있다. 실제로 그네를 조종하는 사람은 이 남자다. 이들 세 사람은 누구이며 어떤 관계일까. 그네 위의 여자를 중심으로 대조적인 두 남자가 삼각형의 구성을 이룬다. 이들은 정말 삼각관계일까.
이 그림을 주문한 사람이 귀족 남자라는 점 외에는 불확실하지만, 주문서의 내용은 비교적 상세히 알려져 있다. 요구사항은 정원에서 그네를 타는 자신의 애인을 그려 달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네를 가톨릭 주교가 흔들어줘야 하고, 여자의 다리가 잘 보이는 곳에 자신을 넣어 달라는 조건이 붙어 있었다. 프라고나르는 미션을 훌륭히 소화해 매혹적이며 에로틱하고 자유로우면서도 긴장감 넘치게 장면을 구성했다.
그림 속 왼쪽 젊은 남자와 여자는 어스름을 틈타 밀회를 즐기고 있다. 남자 위쪽 구석의 큐피드 조각상이 입술에 손가락을 대고 있어 이들의 만남이 비밀임을 알려준다. 여자의 속옷 사이로 다리가 드러나고 그것을 장미 덤불 속에서 남자가 보고 있는 것은 두 사람의 애정관계를 암시한다. 이 작품에서 특히 관객의 눈길을 사로잡고 긴장시키는 핵심 포인트는 여자의 벗겨진 신발이다. 날아가는 신발은 그네의 격렬한 움직임을 실감나게 전달하는 동시에 남자에게 던지는 에로틱한 유혹을 상징한다. 젊은 남자는 상기된 얼굴로 모자를 벗어 적극적인 호응을 보내고 있다.
한편 오른쪽 늙은 남자는 두 남녀의 만남을 모르는지, 알고도 눈감아주는지 한 자리에 앉아 묵묵히 그네 줄만 잡고 있다. 주문서대로라면 그는 주교라야 하는데 옷차림이나 정황으로 볼 때 맞지 않는다. 주문자는 무능한 성직자나 허울 좋은 교회의 권위를 조롱하려 했을까. 그러나 화가는 늙은 남자의 신원을 불확실하게 묘사해 다른 가능성을 열어 두었다. 그는 여자 뒤에서 실질적인 작용을 하는 보호자가 아닐까. 어쩌면 성적 매력은 없지만 경제력이 있는 그녀의 남편일지도 모른다. 그네가 흔들리듯이 젊은 여인도 양쪽을 오가며 두 가지 이득을 취하고 있는지도. 어느 한쪽이 여자의 욕망을 완전히 채워주지 못하니 말이다. 마찬가지로 남자의 입장에서 그네 탄 여인은 붙잡고 싶은 욕망의 대상이지만 다가왔다 멀어지는 그녀를 온전히 가질 수는 없다.
![[LIFE & Motif in Art] 그네(swing): 멈추지 않는 사랑의 유혹](http://magazine.hankyung.com//magazinedata/images/raw/201606/ac9527a8a7a54756d1d4580338610286.jpg)
![[LIFE & Motif in Art] 그네(swing): 멈추지 않는 사랑의 유혹](http://magazine.hankyung.com//magazinedata/images/raw/201606/58615f736db11ba6529e254c27188ce0.jpg)
공중에 매달려 흔들리는 그네는 멈추지 않는 사랑의 유혹을 암시한다. 또한 그네는 땅과 하늘을 연결하고 그 중간에서 현실과 이상을 끊임없이 왕래한다. 다가왔다 멀어지기를 반복하며 샘솟는 갈망을 유도한다. 우리가 그 유혹에 한없이 빠져들 수 있도록. 비록 완전히 만족하지 못한다 해도 또다시 흔들리며 행복한 기대를 품을 수밖에 없도록 말이다.
박은영 미술사가·서울하우스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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