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퇴사하는 법을 가르쳐 드립니다

[한경비즈니스=이해인 인턴기자] 회계사 부부 A(30) 씨와 B(29) 씨는 퇴사를 심각하게 고려하고 있다. 힘들게 회계사 시험에 합격해 대형 회계법인에 들어갔지만 강압적인 조직 문화, 주말까지 이어지는 야근으로 삶을 돌볼 여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A 씨는 “회사 일을 해주는 객체가 아니라 내 일을 하는 주체가 되고 싶다”며 “1~2개월 안에 퇴사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요즘 퇴사를 고민하는 직장인들이 부쩍 늘고 있다. 지난 6월 6일 발표된 한국경영자총협회 조사에 따르면 대졸 신입 사원의 퇴사율은 2012년 23.6%에서 매년 증가해 올해 27.7%를 기록했다. 신입 사원 4명 중 1명꼴로 퇴사하는 셈이다.

올해 부동산 신탁 회사에 입사한 강모(26) 씨는 “신입 사원에게도 희망퇴직을 받는 시대에 평생직장이란 옛말이 됐다”며 “많은 동기들이 입사 때부터 퇴사 후의 삶을 고민하고 있다”고 전했다.
퇴사학교 장수한 대표가 '퇴사학개론' 강의를 진행하고 있다. 퇴사학교 제공
퇴사학교 장수한 대표가 '퇴사학개론' 강의를 진행하고 있다. 퇴사학교 제공
◆‘퇴사학개론’·‘퇴사 후 세계일주’ 인기

퇴사를 고려하는 직장인들을 위한 학교가 문을 열었다. 지난 5월 15일 오픈한 ‘퇴사학교’다. 퇴사학교에는 ‘퇴사학개론’, ‘퇴사 전 병행 창업’, ‘회사 다니며 로스쿨 준비’, ‘퇴사 후 세계일주’ 등의 과목이 개설돼 있다. 실제로 퇴사 후 변호사·요리사·작가로 활동하고 있는 ‘퇴사 선배’들이 퇴사를 고민하고 있는 직장인들에게 경험과 노하우를 전달한다.

대부분의 퇴사학교 강의는 전반부는 강사의 경험담으로, 후반부는 수강생들의 고민 공유로 채워진다.

‘회사 다니며 로스쿨 준비’를 수강한 C 씨는 “퇴사 후 로스쿨에 진학한 변호사로부터 비용이나 진로와 같은 실질적인 정보를 얻었다”며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하는 강의가 아니라 비슷한 고민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모여 자신의 이야기 나눌 수 있다는 점이 좋았다”고 소개했다.
[비즈니스 트렌드] 삼성 출신이 운영하는 ‘퇴사학교’ 등장…퇴사 후 새로운 삶 제시
퇴사학교 강의는 대부분이 10~20명의 소규모로 진행된다. 주로 평일 저녁이나 주말에 서울 강남이나 홍대입구 등지의 세미나 룸에서 열린다.

퇴사학교는 실제로 대학교와 마찬가지로 개론·기초·전공의 3단계로 나뉘어 있다. ‘개론’ 수업들은 ‘일과 삶’에 대해 고민하는 직장인을 대상으로 한다. 삼성전자를 퇴사한 후 퇴사학교를 창업한 장수한 대표의 ‘퇴사학개론’은 가장 인기 있는 ‘개론’과목 중 하나다.

장 대표는 자신의 실제 퇴사 경험을 공유하면서 수강생들에게 ‘왜 퇴사하고 싶은지’ , ‘정말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인지’ 질문을 던진다.

‘기초’ 수업에서는 세분화된 진로를 제시한다. ‘나만의 카페 창업’, ‘퇴사 후 세계일주’, ‘좋아하는 맥주로 먹고살기’ 등이 대표적이다. 이 중에서도 ‘퇴사 후 세계일주’가 큰 인기다. 서른 중반에 퇴사를 결정하고 1년간 세계여행을 떠난 배준호·조유진 부부가 강의한다.

퇴사학교 관계자는 “퇴사를 고민하는 사람들이 퇴사 후 가장 먼저 하고 싶은 것이 바로 여행일 것”이라며 인기 이유를 분석했다. 이 과목을 수강한 회계사 A 씨는 “퇴사 후 여행을 간다고 하면 이상한 사람 취급을 받곤 했는데 우리와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많아 유대감을 느꼈다”고 말했다.

‘전공’ 수업은 퇴사 후 실질적인 준비를 할 수 있도록 돕는 과목들로, 6주 과정의 ‘회사 다니며 창업 준비’ 등이 있다. 이 강의를 빼고는 모두 1회성 수업으로, 2~3시간짜리로 운영된다. 전공 수업을 제외한 교양·기초수업은 과목당 3만3000~4만9000원에 신청할 수 있다.

오픈한 지 한 달이 채 되지 않은 퇴사학교는 대부분의 과목이 매진될 정도로 인기를 끌고 있다. 퇴사학교 페이스북 게시물은 누적 조회 수 100만 건을 돌파했다. 퇴사학교 장 대표는 “퇴사에 대해 고민하고 있는 직장인들이 얼마나 많은지 몸소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퇴사학교는 건강한 퇴사 문화를 만들고 있다는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 하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는 평가도 있다. 수강생 D 씨는 “어느 정도 준비해 왔던 터라 다른 곳에서는 들을 수 없는 실질적인 팁을 기대했는데 생각보다 막연하게 온 사람들이 많아 강의가 감성적인 수준에 그쳐 아쉬웠다”고 털어놓았다.

‘회사 다니며 로스쿨 준비’를 수강한 C 씨 또한 “모인 사람들의 준비 수준이 천차만별이어서 같은 과목이더라도 단계별로 구분됐으면 좋겠다”고 제안했다. 이런 지적에 대해 장 대표는 “앞으로 과목을 더 심화해 보완해 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해인 인턴기자 hi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