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생각’보다 ‘회사 평가기준’이 성공의 핵심이다

신현만 커리어케어 회장

일러스트 김호식
일러스트 김호식
기업마다 인사고과 철이 되면 사내 분위기가 묘하게 바뀐다. 직원들은 인사고과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연봉과 성과급, 승진이나 직책·직무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한 해 업무 성과에 대한 평가이자 앞으로의 업무, 사내 위치나 진로에 큰 영향을 주는 인사고과에서 자유로울 사람들은 많지 않을 것이다.

인사고과가 끝나면 십중팔구 여기저기서 불만의 목소리가 터져 나온다. 인사고과의 부당성이나 상사의 불공정한 평가를 성토하는 글들이 온라인상에 줄지어 올라오기도 한다.

“나는 최선을 다했고 상당한 성과를 거뒀다. 그런데 인사고과는 예상 밖이다.”
“크게 잘못한 게 없는데도 내 평가는 왜 항상 바닥일까?”
“내 동료는 적당히 일하고 성과도 별로인데, 내가 그 사람보다 나쁜 평가를 받은 이유를 모르겠다.”

그런데 이런 반응은 인사고과 시기에만 나오는 게 아니다. 많은 직장인들이 ‘왜 나를 몰라줄까’라며 답답해한다. 특히 업무 지식과 경험이 쌓이면서 업무 의욕이 높아진 30대 직장인들은 자신의 가치와 성과를 몰라주는 상사와 조직에 심하게 답답함을 느낀다.
‘왜 저 사람이 먼저 승진하지? 내가 저 사람보다 뭐가 못한 거야?’

이런 의문은 자신의 능력을 알아주지 않고 성과를 인정해 주지 않는다는 불만과 뒤엉켜 업무 의욕을 끌어내린다. 어떤 이들은 자기 스스로에게 내리는 평가와 타인의 평가가 다른 것 때문에 힘들어 하다가 회사를 떠나기도 한다.

사람들은 자기 자신을 잘 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다. 스스로를 가장 잘 알고 있는 사람은 자신이지만 반면 가장 모르는 사람도 자기 자신이다. 자신에 대한 평가 때문에 고민하는 사람들 중 상당수도 이렇게 스스로를 잘 모른다.

착각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스스로 생각하고 있는 자신과 남들이 보는 자신 사이의 괴리가 계속 심해진다. 이들은 자신의 업무 능력이 뛰어나고 열심히 노력해 많은 성과를 냈으며 잘못한 적이 없다는 주장을 펼친다.

그런데 자세히 살펴보면 이들의 주장은 사실과 다른 경우가 많다. 그렇게 믿고 싶고 그런 평가를 간절히 원하다 보니 자신도 모르게 다른 평가를 하고 있는 것이다.

◆ 혹시 ‘방어기제’가 작동하는 건 아닌지

나는 인재를 평가하고 추천하는 일을 하다 보니 직장인들이 이와 같은 착각에서 벗어나도록 도와야 할 때가 종종 있다. 현실을 정확하게 파악하라는 뜻에서 냉정하게, 때론 집요하게 이런 질문을 던진다.

“당신은 정말 남들에 비해 유능한가?”
“당신은 동료보다 열심히 했고 훨씬 많은 성과를 거뒀나?”
“당신은 전혀 잘못한 것이 없고 설령 잘못한 게 있어도 심각한 수준이 아니어서 넘어갈 수 있는 정도인가?”
“당신은 누가 봐도 90점, 아니 100점짜리 직원인가?”

심리 치료사인 메릴린 케이건과 닐 아인번드는 ‘내가 말하는 진심, 내가 모르는 본심’이라는 자신들의 저서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스스로 생각하는 만큼 그렇게 진실하지도 친절하지도 않다고 말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진실을 목격했을 때 받을 마음의 상처를 보호하려는 ‘방어기제(defense mechanism)’가 작동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들의 말처럼 방어기제는 사람들을 착각에 빠지게 하는 요인 중 하나로 작용한다. 자신의 능력과 성과를 과대평가하게 만들고 잘못과 약점은 과소평가하도록 왜곡한다. 상황을 자신에게 유리하게 인식하고 해석하도록 해 착각을 조장하는 것이다.

방어기제는 정신분석의 창시자인 지크문트 프로이트가 만들어 냈고 그의 딸인 안나 프로이트가 체계화한 개념이다. 인간은 자신이 위협받거나 상처받을 상황에 맞닥뜨렸을 때 무의식적으로 자신을 속이거나 상황을 다르게 해석해 자신의 마음을 보호한다는 것이다.

방어기제 가운데 대표적인 것은 부정과 합리화다. 부정은 어떤 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 힘들 때 사실대로 인정하지 않으려는 태도다. 애써 보거나 들으려고 하지 않고 지각한 것을 왜곡해 회피한다. 또 지각은 했지만 인지하는 과정에 공상이 들어가 현실을 다르게 받아들인다.

합리화는 자존심이 상하거나 죄책감을 느끼지 않으려고 현실을 왜곡하는 것이다. 원하는 행동을 하지 못하고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했을 때 그럴듯한 이유를 찾아내 상처 받는 것을 방지한다.

이솝 우화 ‘여우와 신 포도’에 등장하는 여우처럼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이다. 간절히 바라는 것을 이루기 어려운 상황에서는 그것의 가치를 낮추고 인정하고 싶지 않은 것을 인정해야만 하는 상황에서는 그 가치를 높이기도 한다.

이 같은 방어기제는 무의식적으로 일어나는 현상으로 의도적 망각이나 거짓말·변명 같은 것과 다르다. 외부 상황을 접할 때 생기는 심리적 상처를 줄이고 갈등에 잘 적응하도록 하기 때문에 심리학자들은 정신 건강에 도움을 준다고 말한다.

하지만 방어기제는 갈등 자체를 바꾸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속이고 관점만 다르게 하기 때문에 사회생활 적응을 어렵게 만든다. 따라서 직장인들은 방어기제가 지나치게 작동해 착각에 빠지지 않도록 경계할 필요가 있다.

◆ 최고경영자와 생각 다르면 떠나는 게 답

직장 생활에서 착각에 빠지는 것을 피하는 방법 중 하나는 회사의 평가 기준을 정확하게 이해하는 것이다. 착각의 상당 부분은 평가 기준이 다른 데서 비롯된다. 자신이 생각하는 평가 기준과 남들이 생각하는 평가 기준이 다르면 당연히 평가 결과도 달라진다.

업무 능력과 성과에 비해 평가가 나쁘다고 착각하는 직장인들 중 일부는 평가 기준을 자기 마음대로 정한다. 대부분의 회사는 임직원에 대한 평가 기준을 갖고 있는데, 이들은 이 기준을 자기 멋대로 변경한다. 회사가 정한 것이 아니라 자신이 생각하는 기준으로 평가하는 것이다.

이런 사람들은 회사가 뭐라고 생각하든 관계없이 자기 마음대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경향이 있다. 자기가 판단하는 대로, 혹은 자기에게 유리한 대로 움직인다. 예를 들어 회사가 성실성이 중요하다고 강조하고 있지만 ‘성실이 뭐가 중요해, 창의성이 중요하지’라면서 창의성 중심으로 행동하는 것이다.

이럴 경우 회사를 위해 열심히 일했고 그 결과 일정한 성과를 거뒀다고 하더라도 조직에서 좋은 평가를 받기 어렵다.

대학 입학 논술 시험 강사들이 수험생들에게 입이 닳도록 하는 얘기가 있다. 논술 시험은 자기 생각을 쓰는 게 아니라 출제자가 원하는 답을 써야 한다는 것이다. 글을 잘 쓰는 학생들이 생각보다 좋은 점수를 받지 못하는 것도 이 점을 간과하기 때문이라고 강조한다.

경험이 많은 강사들은 글을 매끄럽게 쓰고 설득력 있게 논리를 전개하는 것 이전에 출제자가 무엇을 원하는지에 관심을 집중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어찌 논술 시험뿐이랴.

세계적 피겨스케이팅 선수들은 어떻게 구성하고 연기해야 높은 점수를 받는지 잘 알고 있다. 이들은 채점 기준을 명확히 알고 철저히 그 기준에 맞춰 연습한다. 자기 마음대로 연습하고 경기하는 선수는 초보 선수이거나 경기를 즐기는 아마추어다.

직장 생활도 마찬가지다. 회사의 성과 평가 기준에 따라 생각하고 행동하는 직원이 좋은 점수를 받는다. 무턱대로 열심히 한다고 좋은 평가를 받는 게 아니다. 혼자 생각해 일하는 것은 평가를 더 나쁘게 만들 뿐이다.

직원의 평가 기준은 대개 회사의 전략적 목표와 일치한다. 직원의 평가 기준은 회사가 추구하는 가치와 비전을 구체화한 것이고 그 가치와 비전을 가리키는 방향등 역할을 한다. 회사는 평가 기준을 통해 직원들에게 그 방향으로 가라고 신호를 보내는 것이다.

따라서 회사가 그 길을 잘 따라오는 직원을 높게 평가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회사의 평가 기준을 소홀히 하거나 무시하는 직원이 성과를 내고 성장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선생님이 시험문제로 낸다고 몇 번씩 강조한 것을 무시하고 자기 생각대로 시험 준비를 하는 학생과 다를 게 없다.

물론 회사의 직원 평가 기준에 전적으로 동의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동의하지 못한 채 따르는 것만큼 고역도 없다. 만약 직원 평가 기준이 무엇이고 그 배경과 목적을 충분히 이해했는데도 동의할 수 없다면 생각을 바꿔야 한다. 한시라도 빨리 다른 길을 찾아나서는 게 현명하다.

회사가 추구하는 가치와 비전, 최고경영자의 경영 철학에 동의하지 못한 채 직장 생활을 하는 것은 비극이다. 성과를 제대로 낼 수 없고 회사와 본인 모두 불만족스러운 상황에 처하는 것은 시간문제다. 세상은 넓고 할 수 있는 일은 많다. 굳이 자신에 대해 좋은 평가를 하지 않는 기업에 남아 속앓이를 하면서 30대의 황금 시간을 소비할 이유는 없지 않을까.

◆ 나뿐만 아니라 내 조직까지 움직이도록 해야

나는 입사하기 전 회사가 추구하는 가치와 창업자나 오너, 최고경영자의 경영 철학을 꼼꼼하게 살피라고 권한다. 아무리 브랜드가 잘 알려져 있고 보상 수준이 높고 근무 여건이 좋아도 가치와 비전에 동의할 수 없으면 입사하지 말아야 한다.

상처를 입고 떠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회사에 입사했다면 최대한 빨리 그 회사의 직원 평가 기준을 파악하고 숙지하는 게 좋다.

한 발 더 나아가 그 회사에서 임원이 되고 경영자로 자리 잡고 싶다면 단순히 기준을 따라서 일만 하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그 정도로는 최상의 평가를 받기 어렵다. 그냥 일 잘하는 사람이란 얘기는 들을 수 있다.

하지만 그런 사람은 회사에 많다. 앞서 나가려면 회사가 무엇을 원하는지 미리 알고 그것을 해야 한다. 논술 시험에서 시험관이 원하는 글을 쓰고 면접장에서 면접관이 원하는 답을 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나는 지금까지 욕심 없는 사람이 사업 책임자가 되는 것을 본 적이 없다. 임무가 주어져야만 움직이는 사람이 경영자에까지 오르는 것도 접한 적이 없다. 회사에서 탁월한 평가를 받고 임원이 되는 사람은 직원 평가 기준을 정확히 파악해 본인은 물론이고 자신이 속한 조직 전체가 그에 걸맞게 움직이도록 노력한다.

당신은 몇 점짜리 직원인가. 자기 기준이 아니라 회사의 직원 평가 기준으로 한 번 따져보자.

신현만 커리어케어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