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에 수사관 240명 투입…비자금 조성·국부 유출 규명에 초점}
1주일 새 롯데그룹 32곳 압수수색 ‘오너 일가 정조준’
(사진) 롯데그룹이 검찰 수사 등 잇따른 악재로 곤욕을 겪는 가운데 6월 11일 서울 중구 소공동 롯데그룹 본사 건물에 긴장감이 돌고 있다. /(연합뉴스)

[한경비즈니스=최은석 기자] 검찰이 대우조선해양에 이어 롯데그룹에 대한 수사에 착수했다.

검찰은 롯데그룹 및 경영진의 비자금 조성, 횡령·배임 등 ‘기업 범죄’ 혐의를 입증하는 데 수사력을 모으고 있다. 검찰은 이러한 혐의의 배후에 롯데그룹 컨트롤타워인 정책본부가 있다고 보고 있다. 검찰의 이번 수사가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을 정조준하기 위한 수순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서울중앙지검 특수4부(조재빈 부장검사)와 첨단범죄수사1부(손영배 부장검사)는 지난 6월 10일 서울 소공동 롯데그룹 정책본부와 호텔롯데·롯데쇼핑·롯데홈쇼핑·롯데피에스넷·롯데정보통신·대홍기획 등 총 17곳을 압수 수색했다. 분식회계 혐의 등으로 대우조선해양 본사를 압수 수색한 지 이틀 만이었다.

◆롯데호텔 34층에 들이닥친 검찰

압수 수색 대상에는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 집무실(롯데호텔 34층)과 신동빈 회장의 평창동 자택, 가회동 롯데그룹 영빈관도 포함됐다.

이날 검찰의 압수 수색은 매우 이례적인 사례로 기록됐다. 인지수사를 담당하는 서울중앙지방검찰청 3차장 산하 특수4부와 개인 정보 범죄나 보이스 피싱 등을 수사하는 첨단범죄수사1부가 동시에 투입됐다. 검사와 수사관 240여 명이 동원됐다. 수색 대상과 투입 인원 모두 최근 들어 없었던 대규모였다.

대기업 총수의 자택이 수사 첫날부터 압수 수색 대상에 포함된 것도 검찰의 수사 강도를 짐작하게 한다.

검찰은 “두 부서가 올해 초부터 각각 롯데그룹의 비리와 관련한 내사를 진행 중이었다”며 “최근 네이처리퍼블릭의 롯데면세점 입점 로비와 관련해 신영자 롯데장학재단 이사장에 대한 수사를 시작하자 롯데그룹이 관련 증거를 인멸한다는 첩보를 입수해 급히 수사에 나섰다”고 설명했다.

검찰은 6월 14일 롯데건설·롯데케미칼·롯데상사·롯데알미늄·롯데제과·롯데부여리조트·롯데제주리조트 등 계열사 10곳과 주요 임원 주거지 2곳 등 총 15곳에 대한 추가 압수 수색을 벌이기도 했다.

검찰은 롯데그룹이 계열사 간 거래를 하면서 자산 가격을 과다 계상하는 방법 등으로 비자금을 조성하고 이를 빼돌린 것으로 보고 있다. 검찰은 이와 관련해 그룹 2인자로 통하는 롯데그룹 정책본부의 이인원 부회장과 황각규 운영실장, 소진세 대외협력단장 등 세 명을 비롯해 압수 수색 대상 계열사의 전·현직 최고경영자(CEO)를 무더기 출국 금지 조치했다.

출금 전 출국한 신동빈 회장은 국내로 들어오는 대로 소환 조사 일정을 조율할 계획이다.

신 회장은 검찰의 압수 수색 전인 6월 7일 대한스키협회장 자격으로 국제스키연맹 총회에 참석하기 위해 멕시코 칸쿤으로 떠났다. 신 회장은 6월 25일 열릴 예정인 일본 롯데홀딩스 주주총회에 참석하기 위해 일본에 머무르고 있다.

신 회장은 6월 14일 미국 루이지애나 주 레이크찰스에서 열린 롯데케미칼 에틸렌 생산 공장 기공식에서 “국내 문제로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 죄송하다”며 “책임을 느끼고 있고 모든 회사에 검찰 수사에 적극 협조하도록 이야기하고 있다”고 말했다.
1주일 새 롯데그룹 32곳 압수수색 ‘오너 일가 정조준’
(사진) 검찰이 6월 10일 신동빈 회장의 개인 비밀금고를 압수한 장소로 전해진 서울 종로구 가회동 롯데그룹 영빈관. /연합뉴스

◆신격호 총괄회장 재산관리인 소환

검찰은 이번 수사에서 크게 네 가지 혐의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롯데그룹의 계열사 간 자산 불법 거래, 일감 몰아주기, 비자금 조성, 부동산 고가 매입 혐의 등이다.

검찰은 압수 수색 대상 계열사와 그룹 정책본부가 어떤 형태로 비자금을 조성했는지와 비자금이 오너와 대주주에게 흘러들어갔는지 여부를 중점 확인하고 있다. 계열사 간 자산·자본거래 또는 호텔롯데와 롯데쇼핑 내부 사업부 간의 거래에서 배임 행위가 있었는지도 살펴보고 있다.

검찰은 오너 일가가 지배하고 있는 회사에 일감을 몰아주는 게 비정상적 특혜 구조라고 판단하고 있다. 오너 일가와 그룹 계열사 간 부동산 거래 과정에서 회사 측에 손실을 끼친 부분이 있는지도 확인 중이다.

검찰은 우선 비자금 조성 의혹과 관련해 신격호 총괄회장과 신동빈 회장이 매년 300억원대의 자금을 계열사로부터 받아 온 사실을 확인했다.

검찰은 신 총괄회장의 재산관리 업무를 맡았던 전 비서실장 이모 전무를 6월 11일 소환 조사해 신 총괄회장이 매년 100억원 이상의 자금을 계열사로부터 받아 운용하고 있다는 진술을 얻어냈다.

검찰은 6월 13일 이 전무가 신 총괄회장의 개인 금고에서 서울 목동 자신의 처제 집으로 옮긴 금전출납부와 현금 30억원을 찾아내 압수했다.

검찰은 신 회장의 재산 관리 업무를 맡은 임원 조사를 통해서도 신 회장이 매년 약 200억원의 계열사 자금을 수령해 오고 있다는 진술을 확보했다.

이 전무 등은 소환 조사에서 “신 총괄회장과 신 회장이 급여와 배당금 명목으로 받은 것”이라고 해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롯데 관계자도 “법이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 급여와 배당금을 두 회장에게 지급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검찰은 총 300억원의 자금을 단순 급여와 배당금으로 보기에는 액수가 너무 많다고 보고 있다.

검찰은 롯데그룹 총수 일가의 부동산 거래 내역도 들여다보고 있다. 검찰은 신 총괄회장이 개인 소유 토지를 계열사들에 넘기는 과정에서 시세보다 비싸게 팔아 비자금을 조성했을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실제로 롯데쇼핑은 2007년 신 총괄회장 소유의 경기도 오산시 토지 10만2000여㎡를 물류센터로 개발하면서 애초 매입 추진가인 700억원보다 330억원 비싼 1030억원에 사들였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중국 사업 적자는 비자금 조성용?
1주일 새 롯데그룹 32곳 압수수색 ‘오너 일가 정조준’
(그래픽) 윤석표 팀장

검찰은 롯데그룹이 중국 사업을 하는 과정에서 비자금을 조성하고 횡령·배임 등의 범죄를 저지른 것으로 보고 있다.

검찰은 롯데쇼핑·롯데홈쇼핑·롯데케미칼·롯데제과·롯데칠성음료 등이 비자금 조성의 핵심 계열사인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롯데쇼핑은 롯데백화점·롯데마트·롯데슈퍼·롯데시네마 등 4개 사업부가 한 개 회사를 구성하는 구조다.

검찰은 이 가운데 롯데백화점과 롯데마트가 중국에 대규모 투자를 하면서 횡령 및 배임에 연루됐을 것으로 보고 있다. 롯데제과와 롯데칠성은 롯데그룹에서 가장 이른 1990년대에 중국에 진출했다.

검찰은 중국 등에서 이뤄진 롯데그룹의 인수·합병(M&A) 과정도 살피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롯데쇼핑은 2008년 홍콩·싱가포르에 잇따라 중간 지주회사를 완전 자회사(100%)로 설립했다. 롯데쇼핑은 롯데쇼핑홍콩지주에 1조3569억원을 투자해 중국 쑤저우·웨이하이 등에 있는 유통회사를 인수했지만 손실을 봤다. 2014년 3439억원 등 지난 2년간 순손실이 7700억여원에 달한다.

롯데 관계자는 “여러 계열사가 중국에 많은 투자를 한 것은 사실이지만 M&A 과정에서 일부 손실이 났을 수는 있어도 비자금을 조성한 것은 전혀 없다”고 해명했다.

국부 유출 의혹도 수사 대상이다. 검찰은 지주회사 격인 호텔롯데를 통해 대규모 배당금이 일본으로 흘러들어 갔다는 의혹을 들여다볼 계획이다.

검찰은 일본 롯데를 통해 오너 일가로 돈이 흘러들어간 사실이 확인되면 일본 수사 당국에 협조를 요청하는 방안도 검토하기로 했다.

롯데그룹은 6월 12일 해명 자료를 통해 “롯데그룹의 2014년 영업이익 3조2000억원 중 일본 주주사에 배당된 돈은 341억원으로 약 1%에 불과하다”며 “배당 외에 일본으로 흘러들어간 자금은 없다”고 강조했다.

◆그룹 내 내부 거래도 샅샅이 뒤져

검찰이 6월 14일 추가 압수 수색한 롯데그룹의 15곳(회사 10곳, 리조트 2곳, 기타 3곳)은 대부분이 주식 불법 거래나 부동산 고가 매입 의혹과 연관된 곳이다.

롯데쇼핑에 주식을 헐값에 넘긴 롯데건설·롯데칠성·롯데정보통신이 대표적이다. 이들 회사는 2014년 7월 롯데상사 주식(8만3000여 주)을 롯데쇼핑에 판매하면서 시가보다 싸게 팔았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이들 회사는 총 160억원의 손실을 봤다.

이후 롯데쇼핑은 보유 중이던 롯데알미늄 주식 전량(12만5000여 주)을 지난해 11월 호텔롯데에 840억원을 받고 팔았다. 복잡하게 얽혀 있는 그룹 순환 출자 고리를 끊고 상장을 앞둔 호텔롯데의 가치를 높이기 위한 조치였다. 하지만 호텔롯데가 당시 롯데알미늄의 주식 가치(69만9303원)보다 주당 2만원 이상 싼 가격에 사들였다는 의혹이 증권 업계에서 제기됐다.

2013년 롯데 제주리조트와 롯데 부여리조트가 호텔롯데로 넘어가는 과정도 수사선상에 올랐다. 리조트 지분을 갖고 있던 롯데쇼핑·롯데건설·롯데제과·롯데칠성 등이 호텔롯데에 장부가보다 싸게 팔았다는 의심을 받고 있다.

검찰은 이러한 그룹 내 모든 자산 거래의 중심에 정책본부가 있다고 보고 있다. 롯데 관계자는 “정책본부는 계열사 간 거래에 대해 사전에 정보를 공유하거나 사후에 보고받고 있을 뿐 지시하지 않는다”고 해명했다.

검찰은 특히 롯데케미칼과 롯데건설에 대해 새로운 혐의를 두고 들여다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추가 압수 수색 과정에서 다른 8개 계열사는 단순 자료 제출을 요구하는 수준이었지만 이들 회사에 대해서는 전면 압수 수색을 실시했기 때문이다.

검찰은 부동산 거래가 많은 롯데건설의 업종 특성에 주목하고 있다. 롯데케미칼에 대해서는 수년간 중국과 우즈베키스탄 등에서 공격적으로 사업을 확장해 온 점을 눈여겨보고 있다. 해외에서 원료를 사오면서 실제 가격보다 비싸게 장부에 기입하거나 다른 석유화학 업체를 M&A하는 과정에서 비자금을 조성했는지 등을 조사할 것으로 알려졌다.

롯데케미칼은 6월 15일 해명 자료를 통해 “케미칼 원료 구입 과정에서 롯데그룹으로부터 별도 자금 형성을 지시받은 적이 없고 회사 대표이사가 별도 자금 형성을 지시한 적도 없다”고 강조했다. 검찰은 다음 날 “해명을 증명할 수 있는 자료를 내라”며 롯데케미칼을 압박했다.

한편 일각에서는 검찰의 이번 수사가 ‘국면 전환용 카드’라는 지적을 내놓고 있다. 정권 후반기 권력 누수 현상을 차단하고 국정 운영 동력을 확보하려는 의도가 깔려 있다는 추측이다.

법조 로비 의혹에 휩싸인 검사장 출신 홍만표 변호사와 ‘주식 대박’ 논란을 일으킨 진경준 검사장에 대한 수사에 부담을 느낀 검찰이 롯데 수사를 돌파구로 삼으려는 것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

choie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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